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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십자군 원정에서 살라딘의 능력은 어느정도였나?
devs**** 조회수 26,449 작성일2005.04.12
예전에 살라딘의 얘기를 들어 본 건데요.
살라딘이 크루세이더를 7부대 정도 1부대 가지고 격파할 정도라는데 이게 사실인가요?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의 무력이 좋은 건가요, 아니면 그의 계략이 상당히 뛰어난 거였나요?

이 밖에 십자군 원정 때 활약한 살라딘의 활약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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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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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딘의 전략적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뛰어난 전략가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직접 전장에 나서서 칼을 휘두르는 무장이 아니라, 군대를 통솔하는 총사령관입니다. 리처드와 싸울 때만 해도 50대의 노인인데다, 하마터면 어쌔신들에게 살해 당할 뻔 한 이후로는 항상 몸조심을 했습니다.

무력이 뛰어난 경우는 살라딘의 맞수인 리처드였죠.

하지만 회전에서 십자군 7부대를 1부대 가지고 격파한다는건 힘들지요. 대부분 살라딘과 십자군이 벌인 전투에서는 대부분 살라딘이 숫적으로 우위에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성당기사단의 제라르 드 리포르가 망상에 사로잡혀 500명의 병력으로 무슬림 7천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가 세 명만 살아남은 사건이 있죠. 물론 그것이 살라딘의 군사적 전략 능력을 깎아먹는 것은 아닙니다.

하틴 전투에서는 십자군을 유인, 물이 없는 지역에 고립시켜 2만여명의 십자군을 거의 인명손실도 입지 않고 완파하였으며 아르수프에서 패배를 당하고도 전열을 잘 정비하여 결국 리처드를 몰아내는 등, 전술적 능력에서는 리처드에게 뒤질지 몰라도 대국적인 면을 보는 능력에선 리처드를 능가하는 위인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에서 살라딘의 활약을 보자면-

일단, 십자군 전쟁 당시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하여 술탄에 오른 살라딘은 예루살렘 왕국을 압박합니다. 트리폴리의 레몽은 방어전을 주장하였으나(아마 십자군이 마음먹고 방어전으로 나갔다면 살라딘도 그렇게 쉽게 승리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레날 드 샤티용과 제르르 드 리포르가 무모하게 공격전에 나설것을 주장합니다. 군사적으로 문외한이었던 예루살렘 왕 기 드 뤼지냥은 예루살렘 왕국의 정예병을 털털 털어서 하틴으로 진군하지만, 살라딘의 유인에 빠져 물도 없는 지역에 고립되어 전멸되어 버립니다.

살라딘은 이 전투에서 사로잡은 파렴치한 레날 드 샤티용을 처형하고 오랜 숙원인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 사실상 예루살렘 왕국에게 치명타를 가합니다. 결국 예루살렘 왕국을 구원하기 위해 서유럽의 가장 강력한 세 왕이 파견됩니다.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프랑스의 존엄왕 필리프, 독일의 붉은수염황제 프리드리히였죠.

그러나 가장 수가 많은 독일 십자군을 이끌었던 황제 프리드리히는 코니아에서 투르크계 무슬림을 꺾고 기세를 올리지만 살레프강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고 독일 십자군은 흩어져버립니다.

사자왕 리처드와 존엄왕 필리프는 시칠리아와 키프로스를 거쳐 예루살렘 왕국에 도착, 중요한 항구도시인 아크레를 점령하고 기세를 올립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불화가 생겨 필리프는 고국으로 돌아가고-실제로는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를 빼앗으려- 리처드만이 살라딘과 전투를 벌입니다.

아르수프에서 리처드는 무슬림 군대의 압박을 잘 견디다 단 한 차례 공격을 성공하여(저그와 한방 테란과 비슷합니다-_-;;) 살라딘의 군대를 와해시킵니다. 그러나 살라딘은 패배한 군대를 다시 재정비하여 리처드에게 맞섰고, 무슬림의 완강한 저항에 의욕을 잃은 리처드는 결국 예루살렘까지 진군하지 못하고 물러납니다.

살라딘과 리처드는 이후 평화 협정을 벌이는데 이 와중에도 왕왕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특히 야파 전투에서는 말도 없이 싸우는 리처드를 위해 말 두 마리를 선물로 보내기도 하고, 앓아 누운 리처드에게 약과 과일(사실 평화 협정을 위한)을 보내는 등 관대하고 기사도적면모를 보입니다.(사실 이것보다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약간의 몸값만 받고 기독교도를 석방한 것이 더욱 빛나는 모습같아 보이지만...)

결국 리처드는 별다른 성과도 얻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버렸고 살라딘은 성지를 탈환, 수호한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이 끝난 직후 긴장이 풀려서인지 병을 얻은 살라딘은 채 1년도 되지 않아 병석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가 죽었을 때 그의 금고에는 약간의 은 부스러기만 들어있어서 친구와 가족들은 그의 묘지를 마련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돈을 꾸러 다녔다고 합니다.

200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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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군,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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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파에서 리처드가 맨몸으로 돌격했을때 살라딘은 순결한 정신을 발휘해 아랍말 두 마리를 주어 싸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리처드가 혼자서 아랍병사를 전부 상대할때 살라딘 역시 다마스커스 칼을 뽑아들고 붙을려고 하였으나 양측 병사들이 군주가 위험하여 모두 말리는 바람에 시작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살라딘과 리처드의 일화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리처드가 유럽 검의 파괴력을 보여주고자 비늘갑옷을 마구 쳐서 부수자 살라딘은 우습게 보며 다마스커스 도로 그냥 방석을 떨어뜨리자 방석이 쪼개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럽인들이 이슬람의 강력한 철제련술에 매우 놀라워했고 리처드는 요파전투 무승부 후 열병에 걸려 쓰러져 살라딘은 얼음을 구해다가 그의 열을 낫게 하고 그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님말대로 미개한 십자군 7부대를 1부대로 격파할 만한 이슬람 군주는 바이발스가 있습니다..

바이발스1세는 무예에도 뛰어났으며 십자군을 사정없이 격파하였다고 합니다.. 몽골군과도 세 차례나 싸운 끝에 승리하였으며 살라딘도 함락 못 시킨 난공불락의 크락 드 슈발리에도 함락시켰습니다..

200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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