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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Mar 03. 2017

목화 솜이불 같은 위안부 영화

영화 <눈길>을 보고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  - 윤동주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 주는 이불인가 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영화 <눈길>을 보고, 윤동주의 시 <눈>이 떠올랐다. 


같은 눈이지만, 윤동주의 '눈'과 영화 <눈길>에서의 '눈'은 절대로 같지 않다. 윤동주가 바라본 눈은, 독자로 하여금 따뜻한 이불속에 있는 기분 그리고 정겨운 설경을 떠올리게 한다. 윤동주의 따뜻하고 포근한 시선이 빚어낸 감상이다. 하지만 영화 <눈길>에서의 눈은 차갑고 아프다. 어머니가 만들던 목화솜 가득한 푹신한 이불이 떠오른다고, 죽어가는 영애는 말한다. 사방이 끝없이 눈으로 쌓인 그곳에서 영애는 고된 삶을 마치고 만다. 관람객인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며 그저 영애가 춥지 않기를, 저렇게 한껏 쌓인 눈이 영애의 이불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눈길>은 사실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2015년에 2부작으로 제작됐던 드라마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보는 내내, 작년 2월 24일에 개봉했던 영화 <귀향>이 떠올랐다. 1년의 간격을 두고 개봉한 두 영화는 어쩐지 다른 듯 비슷하다.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두 주인공이며, '집으로 돌아가자'라는 문구며, 스토리도 꽤나 닮았다. 

영화 <귀향>


둘이 같이 끌려갔다가 한 명이 돌아오지 못해 홀로 남은 현대의 위안부 할머니, 그 옆에 나타나 과거의 죽은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현대의 어린 학생, 그로부터 회상되는 너무나 아픈 과거. 


이나정 감독은 <눈길> 드라마의 제작 과정에서 이미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했지만, 그래도 영화 <눈길>은 어딘가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귀향>을 볼 때는 바닥을 치는 아픔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보는 나까지도 힘들고 고통스럽고 결국 펑펑 눈물을 흘렸다. 종종 꽤나 잔혹한 장면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겪으셨던 끔찍한 경험을 고스란히 보여주기도 했고, 영화 마지막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손수 그린 그림들을 통해 관객들을 끝까지 아프게 했다.

영화 <귀향>

그에 비해 <눈길>은 덜 잔혹하고 덜 아팠다. 물론 철저히 보는 이의 입장에서다. 간간히 등장하는 배우 김영옥의 반전 연기나 피식하게 하는 스토리가 특히 그랬다. 잔혹한 장면이나 사실적 묘사에는 힘을 살짝 뺐지만, 서로 극명히 반대됐던 두 인물들이 결국 같은 공간에서 같은 끔찍한 비극을 겪고 의지하는 모습, 둘 간의 감정과 의지하는 모습들만큼은 관객들로 하여금 마음 깊숙한 곳을 아리게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고통은 그 어떤 영화도 다 담지 못한다'라는 점이다. <눈길>의 영애, 종분이도 <귀향>의 정민, 영희도 영화의 스크린에는 다 보여주지 못할 아픔, 수치심, 분노를 느꼈음이 분명하다. 영화는 그들의 전부를 보여주지 못했고, 우리는 할머니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모두 느낄 수는 없다. 다만 감히 짐작하고 상상해볼 뿐이다. 


그러기에, 그 누구도 그분들을 대신해 사과를 받을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아직 할머니들은 진짜 '귀향'도, '눈길'을 통해 돌아오시지도 못했다. 할머니들이 진정으로 사과받게 되는 날, 그 날이 진짜 할머니들의 진짜 '집에 돌아온 날'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꺼내고 사람들에게 경계 의식을 일깨워주는 이러한 영화들이, 그 기술이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일단은 고맙다. 잊지 않게 해줘서. 

고통 속에서도 서로에게 의지했던 영애와 종분

눈길을 떠올리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 소복이 쌓인 예쁜 눈길이 아니라, 산에도 길에도 사방팔방이 눈으로 뒤덮인 추운 곳에서의 눈길을 떠올려야 한다. 


적어도 나는 춥고, 걷기 힘들고, 길을 알아볼 수 없는, 모종의 공포가 느껴진다. 

그 와중에, 영애는 어머니가 짜던 목화솜 이불을 떠올렸다. 이미 그 순간, 영애는 앞에 쌓인 눈이 자신이 밟고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자신이 영원히 잠들 곳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눈' '길'이지만, 길이 되지 못한 그 수북한 눈길이 왠지 더 마음을 아프다.


영화 내내 영애와 종분은 겨울 한가운데에 있다. 꽁꽁 언 호수와 눈이 쌓인 하얀 산, 발갛게 얼어버린 얼굴과 손. 영애를 포함해, 그 아프고 차가웠던 시절을 통째로 포근히 덮어주고 싶었던 탓인지, 종분은 나이가 들어서도 이불을 계속 손질하고 따뜻한 털실로 옷들을 짓는다. 이 영화 역시, 종분이 그렇게나 손에서 놓지 못하던 솜이불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들, 할머니들을 위해 싸우는 많은 이들, 그 외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겨울'을 이기게 해주었으면 한다. 


영애가 덮어야만 했던 차가운 '눈 이불'이 아니라, 영애가 진짜 덮고 싶었던 따뜻한 어머니의 이불 같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할머니들도 이토록 순수하고 어여쁜 소녀였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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