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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운현궁의 봄(전문가의 서평이 필요합니다)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9,530 작성일2005.08.29

전문가의 서평이 꼭 필요합니다

학교에서 찾아 오라는데 평이 없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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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운현궁의 봄>론

 

박 종 홍 (국어교육과 교수)

 

Ⅰ. 머리말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조선일보, 1933.4.26-34.2.6)은 왕권은 실추되고 조정의 실권은 소수의 양반 일문에 의해 독점되어 기형적인 세도정치의 폐해가 극심했던 조선말 철종 시기를 배경으로 삼아,1) 작가의 개성이 강하게 투영된 주인공 이하응의 영웅성과 파란만장한 집권 과정을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김동인이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투영한 영웅을 역사소설의 주인공으로 삼아 영웅주의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은 여러 연구들에서 거듭 지적된 바 있다.2) 그러나 김동인의 개성이 강하게 투영된 영웅주의란 어떠한 것인가, 그의 역사소설에서 그러한 영웅주의가 어떠한 방식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하는 점은 구체적으로 검토되지 않았다.  

이에 본고에서는 먼저 김동인의 개성이 강하게 투영된 영웅주의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본 다음에, <운현궁의 봄>에서는 그러한 영웅주의가 어떤 서술방식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하여 김동인이 '독립자존'의 영웅주의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것을 대조와 병치의 방식을 통해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밝혀보고자 한다.

 

Ⅱ. 신의 부정과 '독립자존'의 영웅주의

 

김동인은 신을 부정한다. 그는 종교적인 절대자를 신앙할 수 없기에 평양 교회의 장로였던 아버지 김대윤과 달리 기독교의 신을 거부하며, <이 잔을>, <명문>, <신앙으로> 등 기독교를 비판하는 작품을 쓰고 있다. 그런데 김동리가 "자연으로서의 인간은 곧 신과 절연된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며 신과 절연된 인간이란 곧 동물로서의 인간이라고 그는 믿었던 것이다."3)라고 하듯이, 김동인은 이렇게 신을 거부함으로써 자연의 영원성과 신성도 부정하게 된다. 이에 자연은 인간에게 자의적인 횡포를 가하는 광포한 적대자로 존재하며, 인간 역시 신성을 상실하여 동물의 수준으로 추락한다.

<태형>과 <감자>에서 주인공들은 감방과 거지 소굴이라는 극도로 타락한 상황에서 원초적 욕구의 충족에 굴복하고 있다. 이처럼 김동인의 단편소설에서 주인공들은 타락한 외적 상황에 굴복하거나 원초적인 내적 충동에 굴복하고 있다. 인간은 너무 무력해서 강력한 자연의 힘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을 그러한 자연의 힘에 결코 맞서 싸울 수 없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동인은 비범한 인간인 영웅을 자연의 광포한 힘에 맞설 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 그는 "사람에게는 심적 영웅을 숭배하고 의지하려는 본능이 강하다."4)라고 하며, 일찍부터 영웅 숭배를 당연시한다. 이런 점에서 김동인은 영웅주의자이다. 그런데 그에게 영웅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가.  

<배따라기>는 이러한 영웅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유-토피아를 생각할때는, 언제던, 그 「위대한 인격의 소유쟈」며 「사람의 위대함을 끗까지 즐긴」진나라 시황을 생각지 아늘수업다."5)라고 하듯이, 김동인은 삶의 진정한 향락자로 용기 있는 사람이란 점에서 진시황을 역사 이후의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 숭배하고 있다. 이렇게 일탈적 향락자인 진시황을 위대한 영웅으로 숭배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무제약적인 힘을 발휘한 강자만이 자연의 강한 힘에 맞설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긴다는 것이다.6)  

그리고 <배따라기>에서 제시된 영웅이 진시황 같은 절대적 권력자뿐인 것은 아니다. '영유배따라기'를 부르는 형이 다른 면모의 영웅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질투심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자살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동생마저 고향을 떠나게 만든 범속한 인간이지만, 작가를 대신하는 관찰자 화자인 '나'뿐만 아니라 기자묘 솔밭의 초목마저 감동시키는 뛰어난 예술가라는 점에서 비범한 인간이다. 그는 범속한 인간으로서의 패배를 예술을 통해 극복하는 천재적 예술가로서의 영웅인 것이다.

이처럼 김동인에게 영웅이란 막강한 권력을 무제약적으로 행사한 절대적 권력자이거나 심오한 영감을 무한하게 발휘한 천재적 예술가이다. 그런데 김동인은 영웅인 이들 절대적 권력자와 천재적 예술가가 냉혹한 자연에 맞설 수 있는 비범한 인간이기에 일상인의 규범적 질서와 윤리를 거부해도 무방하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이들은 일탈적 면모를 드러낸다.

그리고 김동인은 작품에서 이러한 일탈적 존재로서의 영웅에게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투영하고 있다. "작가가 제일 힘주어 놓은 것은 대원군에 강렬한 개성을 부여한 점이다. 그것은 작가 김동인의 자기 개성의 투영이기도 하다."7)라고 하듯이, <젊은 그들>과 <운현궁의 봄>에서는 김동인 자신이 바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었다.8)

그런데 김동인이 이처럼 일탈적 영웅에게 작가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투영하여 독자적인 영웅주의를 추구한다고 할 때에 그의 개성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독립자존'이다.

 

날카롭은 이지의 「메스」로 모든 것을 기탄 없이 해부키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는 동인에게 벽창우 같은 고집이 언제나 심두에 붙어서 떠날 줄을 모르니 사람의 생겨 먹은 성격이란 이지와 교양과의 체질로는 암만하여도 고쳐지는 것이 아닌상 싶습니다. 그러기에 요한군까지라도 괴물이니 「스핑스」니 독립자존이니 하는 말을 동인에게 던지는가 보외다.9)

 

인용문에 의하면 김동인은 소학교 친구이자『창조』동인으로 누구보다 가깝게 지낸 주요한에게 괴물 같은 '독립자존'의 인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러한 지적은 김동인이 기성의 권위와 규범에 제약받지 않는 독자적 삶을 추구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직선적이요 야성적인 그는 막연한 타협으로 자기자신을 위무하거나 기만할 수도 없었"10)다는 것이다.

김동인은 평양의 대지주인 김대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후취인 어머니 옥씨의 과도한 사랑 속에서 유아독존적으로 성장하였으며,11) 귀족적 성향이 유달리 강했던 인물이다.12) 그렇다면 '독립자존'의 개성은 그의 유아독존적인 성장과정과 귀족적 성향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동경유학 시기에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고고성을 지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데에서도,13) 이런 '독립자존'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김동인의 개성이 강하게 투영된 영웅주의란 달리 말하면 '독립자존'의 영웅주의인 것이다. 이것은 일탈적 존재인 절대적 권력자와 천재적 예술가를 영웅으로 삼아 타락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한다. 김동인은 이를 통해 광포한 자연의 힘에 대항할 위대한 인간의 면모를 제시해 주고 있다. 하지만 '독립자존'의 영웅주의는 비범한 인간인 영웅만이 자연과 맞설 수 있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범속한 인간이 일상적인 능력으로 부당한 자연의 횡포와 맞서 싸울 수 없다면 영웅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웅 역시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그의 승리 역시 제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영웅의 관념적인 승리가 순간적인 위안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범속한 인간의 현실적 승리가 아니기에 오히려 환멸감과 좌절감을 더해 줄 뿐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 중반 이후 <광화사>와 <광염소나타>의 주인공 솔거와 백성수 같은 천재적 예술가로서의 일탈적 영웅들이 점차 광기를 노골화하며 파탄을 보이고 있듯이, 작가인 김동인도 점점 광기를 더해가면서 심신이 심각하게 피폐하고 있었다.14) 그렇다면 일탈적 영웅을 통해 냉혹한 세계에 대한 자아의 승리를 모색한 '독립자존'의 영웅주의가 김동인에게 구원의 참된 좌표가 되어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Ⅲ. <운현궁의 봄>의 '독립자존'의 영웅주의

 

<운현궁의 봄>에서 주인공 이하응은 영웅적 활약을 통해 시정의 파락호에서 조정의 섭정으로 극적인 변신을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이하응의 영웅성은 집권 이전과 이후로 그 성격을 달리 한다. 집권 이전에는 김씨 문중을 비롯한 세상의 눈을 속이고자 자신의 영웅적 면모를 숨기고 파락호로 행세하여 명연기를 펼치는 것이라면, 집권 이후에는 개인적인 은원을 모두 떨쳐 버리고 나라를 위해 대승적인 결단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대비로서 이하응의 어리석음을 이용하려면 이하응은 자기를 어리석게 가장할 것이요, 대비로서 이하응의 활달함을 이용하려면 이하응은 자기를 활달하게 가장할 것이요, 대비로서 이하응의 '김문에 대한 악감'을 이용하려면, 이하응은 또한 그만큼 자기를 가식하지 않으면 안될 경우이라, 이하응은 대비의 손가락의 조그만 움직임이라도 주의하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15)

 

인용문에서 이하응은 조대비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돌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왕실의 후사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조대비의 환심을 얻어 집권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김씨 일문에게 넌지시 암시를 주어 자신의 경쟁자인 이하전을 제거하도록 충동질하고 있다. 이처럼 이하응은 주어진 여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비윤리적인 방법도 동원하면서 최선을 다해 그것을 실행함으로써 합리적인 차원에서 집권하고 있다. 그가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지도 않으며, 초월적 힘의 도움도 받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16)

그러므로 "대원군의 집권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결국 우연히 맞아떨어진 일련의 행운과 조대비라는 일 개인의 심리적 요인에 좌우된 듯이 그려 놓은 것은, 역사발전에 대한 불가지론과 시니시즘의 징후조차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17)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하응이 우연한 행운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합리적인 노력으로 집권할 수 있었다는 점이 작품에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누구보다 당시의 시대적 모순을 폭넓게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시정에 영락되어 돌아다니는 몇 해, 이 공자는 고귀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서민들의 불평 불만이며, 그 성격이며 생활상태며 심리 등을 다 알았다. 그리고 그 원인이며 동기며 경로 등을 다 알고 있었다. 고귀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냥 귀한 공자로서 길러난  사람들은 짐작도 하지 못하는 모든 제도상의 결함이며 제도 운행상의 결함을 다 알고 있었다.18)

 

인용문에서는 이하응이 비록 종친의 귀공자로 태어났지만, 파락호 노릇을 하며 시정에서 다양한 체험을 함으로써 서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양반이면서 서민의 입장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은 그가 상층과 하층을 매개하는 '중도적 인물'19)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물론 그는 역사적 대인물이기에 중도적 인물로는 적합하지 않다. 역사적 대인물을 주인공로 삼을 때에 작가는 그를 일상적 인물과는 다른 비범한 인물로 부각시키기 위하여 계속 그를 미화시켜야 하며, 오히려 그런 점이 역사의 실상을 왜곡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정과 조정을 넘나든 이하응의 중도적 면모가 철종 말기의 역사적 전환기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상층과 하층을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는 매개적 존재였고 소상인과 보부상 등 당시 선진계급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으로 인해 이하응은 김씨 일문의 세도정치에 대한 광범한 비판 세력의 지지와 협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20)

<운현궁의 봄>에서 '독립자존'의 영웅주의에 의거한 이하응의 영웅적 면모는 작가적 화자가 직설적으로 언급하는 경우와 다른 인물의 입을 빌어 언급되는 경우의 두 가지로 나타난다. 이때에 조성하와 계월처럼 이하응에게 처음부터 우호적인 인물뿐만 아니라 김좌근과 김병기 같은 적대적인 인물도 결국 그의 영웅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날이 바로 조선 근대의 괴걸이요, 유사이래 어떤 제왕이든 감히 잡아 보지 못하였던 '절대적'권리를 손에 잡고 이 팔도 삼백여 주를 호령하며, 밖으로는 불란서, 미국, 청국들을 내리 누르고 안으로는 자기 백성의 복지를 위하여 그의 일생을 바친 흥선 대원왕 이하응이 별세한 날이다.

조선 오백 년 역사에 있어서 조선을 사랑할 줄 알고, 왕가와 서민, 정치가와 백성,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지위를 참으로 이해한 단 한 사람인 우리의 위인 이하응이 그 일생을 마친 날이다.21)

 

1장의 서두인 인용문에서는 작가적 화자가 이하응의 죽음을 알리면서 그가 어떤 제왕보다 절대적 권리를 행사한 위인임을 나타내고 있다.22) 그는 다른 사람에 구애받지 않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 유일한 존재란 점에서 '독립자존'의 영웅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이하응은 이러한 절대적 권력자일 뿐만 아니라 화가로서 천재적 예술가이기도 하다.

 

이 기괴한 난초 앞에 응원의 마음은 차차 혼란되는 듯하였다. 한 포기를 휘호하면 휘호하느니만치, 주인 대감의 필법은 나날이 법을 무시한다. 나날이 그 기교가 더하여 완벽에까지 도달하여야 할 것이로되, 흥선의 난초는 그와 반대로 나날이 법을 무시한다. 그러나 그 법을 무시한 난초의 위에 흐르고 넘치는 <힘>을 응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법을 무시하였으면 그것은 당연히 <싱거운 난초>일 것이다. 이러한 응원의 상식적 판단을 거슬러서 '법'을 무시한 흥선 대감의 난초에는, 그 힘은 여전히 있을뿐더러 필법을 무시하면 하느니만치 힘은 더 늘어가는 것이었다.23)

 

5장의 인용문에서는 이하응의 예술적 자질을 그의 청지기인 김응원의 눈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하응이 기교와 화법을 무시한 파격적인 힘의 예술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런 점이 그의 뛰어난 예술적 능력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가로서도 권력자일 때와 마찬가지로 일상의 규범과 질서를 거부하는 일탈적 존재로 '독립자존'의 영웅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하응은 이렇게 절대적 권력자이자 천재적 예술가이기에 '독립자존'의 영웅주의에 의거할 때에 최상의 영웅이 된다.

김동인이 이하응을 최상의 영웅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은 이하응이 부인물로 등장하는 <젊은 그들>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24) 여기에서는 이하응의 재집권을 도모하고자 활약하는 비밀조직 활민숙의 일원인 안재영과 이인화란 젊은 남녀가 주인공이지만, 임오군란 후에 자신들이 숭배하는 이하응이 청국으로 압송되자 절망하여 함께 자결할 정도로 그들의 삶은 이하응에게 종속되어 있다. 이처럼 이하응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인 입장은 거의 맹목적이다. 그리하여 "대원군의 쇄국주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민비 일파에 대한 가혹할 정도의 비판"25)을 보여준다.

이처럼 김동인은 역사적 대인물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절대적 권력자이자 천재적 예술가란 점에서 '독립자존'의 영웅주의에 의거한 최상의 영웅으로 부각시키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역사소설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26)

 

Ⅳ. 대조와 병치의 극적 서술

 

<운현궁의 봄>에서는 대조와 병치의 방식에 의거한 극적 서술로 '독립자존'의 영웅주의에 의거한 주인공 이하응의 영웅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장편소설은 어떤 특정한 흐름의 농축된 핵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의 생성과 소멸의 경로를 보여주고자 한다.27) 그러므로 인물의 특성보다 토대가 되는 상황을 더욱 중시하는 것이 장편소설의 일반적인 경향이라면, 여기에서는 대조와 병치를 통한 극적 서술로 역사적 상황의 비중을 약화시키고 역사적 인물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에 이하응의 영웅성을 부각하는 데에는 주로 대조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면, 영웅성을 발휘하는 기반이 될 역사적 상황을 나타내는 데에는 주로 병치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두 가지가 엄격하게 분리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조하는 과정에 병치가 나타나기도 하고 병치하는 과정에 대조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하응의 성격은 섭정으로의 집권 이전과 이후가 대조적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집권 이전에도 집안과 집밖의 경우가 대조적으로 제시되고 있고, 집밖의 경우에도 적대자인 김씨 일문의 사람을 마주할 때와 후원자인 조대비를 마주할 때가 대조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비굴한 행동, 비굴한 말을 예사로 하는 인물이었다. 그 수모를 받으면서도 대관댁이며 대신댁을 그냥 지근지근 찾을 때에 그의 얼굴에 떠도는 비굴한 미소―그것을 한낱 연극으로는 결코 볼 수가 없었다."28)라고 하듯이, 집권 이전의 이하응은 신변의 안전을 위해 집밖에서 자신을 몰염치한 파락호로 철저히 위장하며 비굴하고 천박한 행위를 거침없이 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집안에서 위엄 있는 남편과 아버지로서 후일을 기대하며 아들의 훈육에 힘쓰는 대조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하응이 조대비를 찾아 볼 때에는 김씨 일문의 인물들을 대할 때의 비굴하고 파렴치한 면모를 벗어버린 귀공자의 단아한 위엄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사가 결정된 이후에는, 한번 이하응을 찾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이하응에게 복종하기를 맹세하였다. 이 패기, 이 위력, 이 압력, 이 지배력, 이 통찰력 아래 반항을 하거나 대항을 할만한 용기를 가져 본 사람이 없었다."29)라고 하듯이, 이하응은 집권 이전의 '상갓집 개'라 불리던 비굴하고 몰염치한 파락호에서 집권 이후에는 위엄과 감화력을 갖춘 위인으로 변신하여 대조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성격뿐만 아니라 사건 역시 대조적으로 제시된다. 작품의 서두인 1장에서는 이하응이 팽경장으로부터 수모를 받는 장면과 김병학으로부터 환대를 받는 장면이 시간의 순차적 흐름 속에서 대조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4장에서는 조대비를 만나 환대를 받는 사건 속에는 이하응이 김병기로부터 심한 수모를 받았던 장면이 과거 회상에 의거해 대조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2장에서는 극진히 아끼던 이하전의 죽음을 알게 된 조대비가 김씨 일문에 대한 복수심에서 이하응의 둘째 아들을 왕실의 다음 후계자로 삼고자 결심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동시적으로 이하응의 파락호 행위가 더욱 심해짐으로써 대조적인 사건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중첩적이고도 다양한 대조의 방식을 통해 영웅 이하응의 삶에 일어난 반전을 보다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씨 일문의 인물들도 대조적으로 제시된다. 이하응을 박대하며 조롱하는 김좌근과 그의 양아들 김병기 부자는 부정적으로 제시되고, 이하응을 도와주며 동정하는 김병학과 김병국 형제는 긍정적으로 제시되는 것이 그러하다. 그리하여 7장과 15장에서 김좌근은 욕심 많고 줏대 없는 인물로 그려지며, 김병기는 매관매직과 뇌물 수수를 일삼는 노회하고 탐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1장과 9장에서 김병학은 자신에 대한 이하응의 신랄한 비판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능력있는 인재의 불운을 안타까워하고 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관대한 인물로 그려지며, 김병국도 그렇게 타락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목숨을 보존하기 어려운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이하응에 대한 다른 권문들의 멸시를 막아주고자 애를 쓰는 사려 깊은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18장에서 김병학과 김병국 형제는 철종의 사후 최우선적인 왕위 계승자로 지목되던 종친 이하전이 역모사건으로 처형되자 조대비와 긴밀한 연결을 도모하는 이하응의 대권에 대한 야심을 짐작하면서도 그것을 묵인한다. 그들 형제는 김좌근과 김병기 부자와의 세력 대립 속에서 그들의 지나친 전횡과 국정의 타락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렇게 하기로 작정한다는 것이다.30)

<운현궁의 봄>은 이러한 대조의 방식뿐만 아니라 이하응의 집권을 통한 정치적 혁신이 긴요함을 나타내기 위해 역사적 상황을 영웅성 발휘의 기반으로 제시하고자 하면서 병치의 방식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병치되는 주요 사건으로는 왕실의 후사 문제를 다룬 것과 국정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것을 들 수 있다.

먼저 왕실의 후사 문제를 다룬 사건이 11장에서 병치되고 있다. 첫 번째로는 헌종이 후사 없이 죽은 뒤에 권세를 지속하기 위한 김씨 일문의 밀의에 따라 대왕대비 김씨가 강화도령 이원범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재상 정원용이 강화도로 가서 이원범을 데려 와서 철종으로 등극시키는 과정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철종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자 이번에도 정권을 계속 장악하고자 김씨 일문에서는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종친을 제거하고자 하는데, 이에 덕흥 대원군의 정통 후계자로 마음이 굳고 활달하며 정치적 안목이 높은 이하전이 역모를 꾸몄다는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는 사건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국정의 타락상을 다룬 사건이 10장과 14장에 병치되고 있다. 첫 번째로는 김좌근의 첩인 나합 양씨의 타락상을 통해 세도정치의 폐해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에 대다수 백성들이 굶고 있는데 적선을 한다고 스무 섬의 쌀로 밥을 지어 강물 속의 물고기들에게 던져 넣는 나합의 이기적인 행위와 강물 속에 숨어 그것을 몰래 건져내어 굶주린 배를 채워야만 하는 백성들의 절박한 사정을 대조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국정의 타락으로 인해 백성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31)

두 번째로는 조성하의 외척되는 이학사를 통해 서원의 폐해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천 석 재산을 지녔던 이학사는 십년 전에 향교의 장의 벼슬을 억지로 받느라 삼백 석을 빼앗기고, 다시 이방 석경원의 농간으로 남은 칠백 석을 빼앗긴 뒤에 끼니를 때우기 어려울 지경에 빠진다. 그런데 명유의 오대손이어서 명망 높은 서원인 사충사의 유사가 되자 서독을 발행하여 석경원을 잡아 가두어 뇌물을 받고 풀어준 다음에 다른 서원에서도 그렇게 하도록 사주하여 그를 거지로 만들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여 상당한 재물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학사의 경우를 통해 천진하고 단순하던 노인마저 그렇게 타락하게 만든 것이 바로 서원이라는 제도의 탓임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하여 조성하의 입을 빌어 "이런 모순된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그것은 여간한 과단성과 힘과 패기를 가지고서는 하지 못할 것이다. 천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하는 위대한 인물의 위대한 손이 아니면 도저히 행하지 못할 노릇이었다."32)라고 하며, 영웅 이하응이 권력을 장악하여 국정을 혁신하는 일을 시대적인 소명으로 정당화한다.

<운현궁의 봄>은 수미일관하지 않은 시간 역행적 회상의 방식을 보여준다거나,33) 작가의 요약적 설명이나 논평이 많다거나,34) 분산적인 삽화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받는다.35)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작품에 부분적으로 사용되거나 일반적으로 사용된 서술방식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김동인은 '독립자존'의 영웅주의에 의거해 이하응의 영웅성을 최대한 부각시키고자 대조와 병치를 본질적이고 지배적인 서술방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치의 방식에 의한 사건의 연결은 부분과 부분이 서로 대등하게 병렬되는 삽화의 성격을 다분히 지닌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 삽입된 삽화는 작품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본체적인 줄거리와 병행되어 있으며"36)라고 하듯이, <운현궁의 봄>에서 병치되는 사건이 작품의 본체적 줄거리와 분리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상황의 비중을 약화시켜 이하응의 영웅성을 부각시키고자 병치의 방식을 선택하고, 그렇게 병치되는 삽화를 이하응에게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37)

왕실의 후사 문제를 다루면서 병치되는 사건의 경우에 있어서 강화도령 이원범이 미리 후계자로 지목되어 있던 이하전 대신에 등극하는 사건은 대왕대비 김씨와 결부된 세도정치의 전횡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흥선의 집권을 예비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이하전이 역모자로 몰려 처형되는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하전이 역적으로 음해받아 처형되었기에 이제는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된 조대비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하응과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정의 타락상을 보여주고자 병치되는 사건의 경우에도 나합 양씨의 시반 사건은 밥을 훔친 죄로 태형을 맞은 뒤에 살던 동리에서 쫓겨나게 된 이차손의 아버지가 억울함을 하소연 하지만, 이하응이 해결해줄 힘이 없어 아픈 마음으로 내쫓는 일을 통해 그에게 연결되고 있다. 또한 서원의 만행을 보여주는 사건은 이학사가 이하응의 수하인 안필주를 잡아 가두려고 하자 조성하가 막아주는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물론 2장에서 이하응이 파락호 생활에 나선 배경을 설명하느라 명종에서 철종에 이르는 조정의 혼란상이 작가의 요약적 설명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20장에서처럼 국정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삽화가 단순하게 병치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삽화는 작품의 전체적인 비중에서 볼 때 지엽적이거나 단편적인 것일 뿐이다. 김동인 역시 그런 점을 의식하고 있었기에 "당시의 정계가 얼마나 타락하였는지, 여기 몇 개의 에피소오트로서 그 상황을 말하여 보겠다."38)라고 자신이 그런 삽화를 제시한다는 점을 직접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작품에 구조화되지 못하고 단순하게 병치된 삽화는 작품의 주류적 흐름에서 벗어난 보조적 사건일 뿐이다.

김동인은 <약한 자의 슬픔>, <마음이 옅은 자여> 등『창조』소재 초기의 단편에서는 완만하게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고 있으나, <감자>, <명문> 등 이후의 단편에서는 이와 달리 인물의 외적 행동을 긴박하게 서술하고 있다. 자신의 소설에서 시대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한 것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인물들을 작가의 의도에 따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도록 하고자 서술방식은 그렇게 변화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소설의 경우에는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반드시 인정해야할 역사가 존재하기에 단편에서처럼 시대의 영향을 배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운현궁의 봄>처럼 흥선대원군 이하응 같은 역사적 대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경우에는 특히 이러한 제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에 김동인은 역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역사적 상황의 비중을 최소화시키고 역사적 인물을 '독립자존'의 영웅주의에 의거한 최상의 영웅으로 부각시킬 수 있도록 대조와 병치의 방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영웅의 권력 장악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것은 강자에 의한 힘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김동인의 이런 시각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간의 관계에도 확대되어 민족간의 힘의 우열에 의한 제국주의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가 강력한 힘을 지닌 영웅의 권력 행사를 찬양하면 할수록, 그것이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더욱 옹호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Ⅴ. 맺음말

 

김동인은 신을 부정하고 있는데, 자신의 개성이 강하게 투영된 영웅을 통해 신성을 상실한 광포한 자연의 횡포에 대항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일상적 규범과 질서를 거부하는 일탈적 존재인 절대적 권력자와 천재적 예술가를 영웅으로 여기는 '독립자존'의 영웅주의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자존'의 영웅주의는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고양시키고 있다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일탈적 영웅의 활약에 의해서만 세계의 부당함에 맞설 수 있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실효성 있는 현실대응책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1930년대 후반에 이르면 점차 작품에서 일탈적 영웅들이 파탄을 보여주고 있고 작가의 삶 역시 그러하듯이, 그것이 김동인에게 삶의 진정한 좌표가 될 수는 없었다.

<운현궁의 봄>의 주인공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파락호에서 대권을 획득한 섭정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룬 위인으로 절대적 권력자이자 천재적 예술가이기에 '독립자존'의 영웅주의에 의거한 최상의 영웅이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경제적 파산과 이혼으로 상갓집 개와 같은 처지에 떨어졌지만, 1930년대에는 재혼을 하고 서울로 이사하여 삶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분투하던 김동인 자신이 바로 영웅 이하응이었기 때문이다.

<운현궁의 봄>은 대조와 병치라는 극적 서술방식으로 이하응의 영웅성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하응의 영웅성을 부각하는 데는 주로 대조의 방식을 사용하고, 역사적 상황을 제시하는 데는 주로 병치의 방식을 사용하여 '독립자존'의 영웅주의를 효과적으로 실현하였다. 이런 성과를 통해 김동인은 역사소설의 독자적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상황의 비중을 약화시키고 역사적 인물을 최상의 영웅으로 부각시키면서 강자의 논리에 지나치게 빠져들고 있었다. 김동인의 이러한 시각은 제국주의의 침략이란 부당한 힘의 행사도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에 일제의 한반도 강점도 정당화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각주/미주-->

1) 정조 때에 원빈을 누이로 둔 홍국영의 세도정치 이래로, 11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순조 때에는 왕의 장인인 김조순이 모든 정사를 좌우할 정도로 본격적이 세도정치가 행해졌다. 그리하여 이후에 계속된 안동 김씨 일문의 세도정치는 순조, 헌종, 철종을 거치는 약 60여년 동안에 걸쳐 국가의 정권을 거의 독차지하였다. 최창규, 새한민족사, 금오출판사, 1975, p.347.

2) 김흥규,「황폐한 삶과 영웅주의-김동인 소설의 대결구조와 세계인식」,『문학과 지성』,1977년 봄호, p.216-238. 김영화,「<운현궁의 봄>과 인물의 형상화」,『김동인연구』,김열규·신동욱편, 새문사, 1982, pp.Ⅱ36-46. 김윤식,「우리 역사소설의 4가지 유형」,『소설문학』제11권 6호, 소설문학사, 1985. 6, pp. 159-166. 신재성,「1920-30년대 한국역사소설 연구」, 서울대 석사논문, 1986, pp.48-56. 최희연,「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연구」,『연세어문학』제19집,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1986.12, pp.263-277  등을 들 수 있다.  

3) 김동리, <자연주의의 구경-김동인론>, 문학과 인간, 청춘사, 1952, p.13.

4) 김동인, <영웅숭배>, 김동인전집6,  삼중당, 1976, p.571. 앞으로 김동인전집은 모두 전집으로 약칭하여 권수만 표시한다.

5) 김동인, <배따락이>,『창조』제9호, 1921,5, p.3.

6) 그런데 이러한 욕망의 무제약적 실현자는 <목숨>(『창조』제8호, 1921.1)에서 시인 M이 생사의 기로에서 갈색 악마와 토론할 때에 이미 제시된 바 있다. 갈색의 악마는 M에게 "우리 사회에서 제일 강한 자가 하는 일은, '마음에 하구 십흔 것은 꼭 하구야 만다'는 것이다."라고 하며, 강자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강자가 기존의 질서와 윤리를 도외시하는 일탈적 존재일 때에 내세에서의 신의 심판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는 다시 갈색의 악마를 통해 현세와 내세와의 관계를 정자에서 탯줄을 지닌 태아, 태아에서 탯줄을 끊어버린 인간이라는 자연과학의 차원으로 논리화함으로써 내세의 존재와 신의 심판을 무의미화 시키고 있다.

7) 김윤식,『김동인연구』,민음사, 1987, p.305.

8) 1926년 이후부터 김동인은 대규모 간척사업의 실패로 인한 경제적 파산과 아내 와 재혼하고 다음해에 서울로 이사하여 신문 연재소설을 본격적으로 집필하면서 이하응처럼 재기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하응의 극적인 변신과 화려한 등장은 김동인에게 무엇보다 뜻깊게 인식되었을 것이다.

9) 김억, <김동인론-문단인 종횡담>, 「동광」 27호, 1931.11, p.70.

10) 김동리, 앞의 책, p.14.

11) 박현숙, <새 자료로 본 동인 문학의 이면>,『문학사상』2호, 1972.11, p.294.

12) 춘해, <김동인은 엇더한 사람인가>, 「조선문단」 제9호, 1925.6, p.244.

13) 박종홍,「김동인연구」, 서울대 석사논문, 1982, p.29.

14) 1930년대 후반부터 김동인은 지독한 불면증과 수면제의 과용, 도박에의 몰두, 마약복용 등 일련의 자기학대 행위 속에서 심신이 다 병약해지며 심각한 정신적 불안감을 드러낸다. 전영택, <생각나는 사람들⑤-김동인 (하)>,『대한일보』, 1967.3.2.

15) 김동인, <운현궁의 봄>, 전집1, p.116.

16) 박종화의 <전야>에서는 이하응이 제왕이 날 수 있다는 명당자리를 속임수로 빼앗아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쓴다. 그리하여 이에 의거한 초월적 힘인 조상의 음덕이 집권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박종홍,「일제강점기 한국역사소설 연구」,경북대 박사논문, 1990, p.81.

17) 강영주,「한국근대역사소설연구」,서울대 박사논문, p.63.

18) 김동인, <운현궁의 봄>, 전집1, pp.154-155.

19) 루카치는 역사소설의 주인공으로는 중도적 인물이 적합하다고 한다. 중도적 인물은 개성의 윤곽이 비교적 뚜렷하지 않거나 주도적인 일방적 위치를 확보할 만한 정열이 결여되어 있거나 서로 적대적인 진영에 고루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로, 그런 요소를 통해 인물과 환경과의 복잡한 상호 관계를 적절히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Georg Lukács, The Historical Novel, Penguin Book, 1969, p.149.

20) 철종이 사망하기 전 해인 1862년 5월에 삼남지방의 민란을 수습하면서 박규수는 경상우병사 백낙신 같은 탐관오리뿐만 아니라 경상도 사림의 선배들이 모두 법도를 이탈했다고 하며 사건을 조사하여 법에 따라 처벌할 것을 상소로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민란이 확산되는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박규수가 탐관오리뿐만 아니라 사림을 고발하고 있는 것은 국왕의 왕권 강화와 국정 쇄신 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4품 부호군의 낮은 직위에 있던 박규수가 경상도라는 한 지역에서이지만 그 지방 사림을 비난할 수 있게 된 것은 삼남민란의 힘과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선진계층 세력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처럼 철종 말기가 조선에 있어 역사적 전환기였고, 그러한 현실의 복합적인 양상 속에서 왕권 강화를 통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회복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지지를 얻었기에 이하응의 정계 등장이 파행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藤間生大, 「대원군정권의 구조」,『한국근대정치사연구』,양상현 편, 사계절, 1985, pp.137-151.

21) 김동인, <운현궁의 봄>, 전집1, p.9.

22)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은 이렇게 이하응의 죽음에서 사건이 시작하여 과거로 되돌아간다. 그리하여 그가 때를 기다리며 파락호의 생활을 하는 시기를 중점적으로 제시하고, 마침내 섭정의 자리에 올라 그의 포부를 펼치게 되는 절정의 순간에서 사건이 종결된다. 이처럼 몇 년 동안의 사건으로 압축하여 전개함으로써, 이하응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집정 이후의 본격적인 정치 활동까지 일대기적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박종화의 <전야>와 <여명>에 비해서, <운현궁의 봄>은 이하응의 영웅성을 보다 극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23) 김동인, <운현궁의 봄>, 전집1, pp.43-44.

24) <운현궁의 봄>에서는 대원군이 주인공으로 설정됨으로써 지나치게 빈번하고 상세하게 묘사되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던 반면, <젊은 그들>에서는 그의 역사적 의미가 추종자인 주인공들의 움직임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명되고, 대원군 자신은 중요한 장면에만 등장함으로써 역사적 대인물로서의 그의 위대성이 효과적으로 부각될 수 있었다고 본다. 강영주, 앞의 글, p.59.

25) 홍기삼, 역사의식과 문학」,『현대문학』183호, 1970.3, p.568.

26) 김윤식은 "김동인의 역사소설 <젊은 그들>(1930)과 <운현궁의 봄>(1933)은 민족주의 이념을 구현한 것도 아니지만 계급의식을 담고자 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작가 김동인의 개성이 강렬히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앞의 책, p.300.)라고 하면서, 현진건, 박종화, 이광수의 '이념형 역사소설'과 홍명희의 '의식형 역사소설'의 사이에 낄 수 있는 '중간형 역사소설'로 김동인의 역사소설을 분류하고 있다.

27) Georg Lukács, 앞의 책, p.164.

28) 김동인, <운현궁의 봄>, 전집1, p.61.

29) 위의 책, p.202.

30) 황현은『매천야록』에서 이하응이 철종의 왕비와 연결, 당시의 세도가인 김씨 세력을 분활하여 그 일부를 자기 편으로 삼기 위해 명복이 왕이 되면 그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고 하여 김병국을 설득하였다고 한다. 藤間生大, 앞의 글, p.145.

31) 박종화의 <전야>에는 대왕대비 김씨에게 바칠 진찬을 갖고서 부당하게 출입하고자 하는 나합의 종 옥섬를 막았던 대궐의 수문장이 영의정 조인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함경도 삼수로 귀양가는 사건을 통해, 김씨 일문의 세도가 얼마나 컸는가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서는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의 시반 사건의 경우와 달리 평민의 절박한 곤궁상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32) 김동인, <운현궁의 봄>, 전집1, p.128.

33) 백철은 이러한 시간 역행적 서술방식을 거론하면서 작품이 이하응의 집권에서 종결됨으로써 서두와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아 다소 미진하게 끝난 듯한 인상을 준다고 본다. 백철,「<운현궁의 봄> 작품해설」, 전집1, p.582.

34) 강영주는 "작중 논평은 실제의 작품세계와는 유리된 작가의 관념에 불과하여 설득력을 잃고 있다."라고 비판한다. 강영주, 앞의 글, p.64.

35) 송백헌은 "역사소설적인 스토리의 구성이 없이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그 중심을 이룬 이 작품은 다만 역사적인 야사를 독자의 흥미와 일치시켜 나가고 있다."라고 비판한다. 송백헌,『한국근대역사소설연구』, 삼지원, 1985, p.136

36) 신재성, 앞의 글, p.51.

37) 권영민도 "물론 각각의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할 때에는 스톨리의 통일성을 결여할 위험도 없지 않다. <운현궁의 봄>에서는 이러한 구성방식이 주인공의 운명의 반전과 그 내면심리의 변화를 긴장감 있게 보여주는 데에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하며, 삽화의 사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권영민,「영웅적 인물의 심리극-<운현궁의 봄>의 성과와 한계, <운현궁의 봄> 김동인전집9, 조선일보사, 1987, p.335.

38) 김동인, <운현궁의 봄>, 전집1, p.162.

 

 

200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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