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구속

정치인생 19년 ‘시작과 끝’ 최순실과 동행…결국 ‘영어의 몸’

이용욱·이지선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9일 청와대에서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한 출입기자가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들었지만 외면한 채 단상에서 내려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9일 청와대에서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한 출입기자가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들었지만 외면한 채 단상에서 내려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박근혜 전 대통령의 19년 정치인생이 31일 새벽 법정구속으로 막을 내렸다. 국정농단 스캔들로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가 내려진 이후 21일 만이다.

헌정사상 처음 탄핵당한 대통령이자, 임기를 채우지 못한 두 번째 대통령, 구속된 세 번째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이 추락을 촉발했지만 실상 그간 역주행과 일방통치에 대한 민심의 반감이 추락을 부른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통령은 1998년 4월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정치를 시작하기 전의 18년은 칩거로 집약된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숨진 뒤 퍼스트레이디를 했지만,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살해된 이후 공개활동 없이 사실상 은둔생활을 했다.

최씨 아버지 최태민 목사는 어머니를 잃은 박 전 대통령에게 접근해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 총재 등을 지내면서 대통령 딸과의 친분을 앞세워 호가호위했다. 세상과 단절된 박 전 대통령 주변을 챙긴 것이 최씨 일가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이력 시작부터 최순실씨와 전남편 정윤회씨가 등장한다. 그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물론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문고리 3인방도 그들이 발탁했다.

정계 입문 2년 만인 2000년 한나라당 부총재로 선출됐고, 이회창 총재의 독선적 당 운영을 비판하면서 입지를 넓혔다.

대선에서 패한 한나라당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쓴 데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해 곤두박질치던 상황에서 2004년 3월 대표로 추대됐다. 당사를 ‘천막’으로 옮기고, 전국을 돌면서 선거유세를 했고 TV 연설에선 눈물을 흘렸다. 17대 총선에서 참패가 예상되던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었고, 그에게는 ‘선거의 여왕’이란 호칭이 붙었다. 2006년 6월 지방선거 유세 때 커터칼 피습을 당하면서도 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최씨가 병원을 지켰지만,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2007년 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했지만, 이른바 ‘친박 학살’ 공천에는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후보 검증 과정에서 최태민 일가 관련 의혹이 제기됐지만, 그는 연관성을 부인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실정 등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은 2011년 12월 다시 박 전 대통령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2012년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예상 밖 승리(152석)를 끌어냈다. 같은 해 치러진 대선 과정에선 경제민주화 어젠다를 선점하면서 중도로 외연을 확장했고, 결국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제치고 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34년 만의 청와대 귀환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권력을 잡은 뒤 여전히 아버지 그늘에 머물렀다. 공안검사 출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기용했고, 북한 붕괴론에 기반을 두며 남북은 대결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경유착도 되살렸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국민연금 등이 지원토록 했고, 그 대가로 삼성은 최씨와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등에 430억원대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광범위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특정 인사들을 배제했고 세월호 참사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선 번번이 편가르기로 대응했다. 무능도 심각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았고 행적조차 오리무중이다.

지난해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안 통과 직후 박 전 대통령의 민낯은 더욱 드러났다. 세 차례 대국민담화에서 검찰과 특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검찰·특검의 대면조사 요구, 청와대 압수수색 등을 모두 거부했다.

직무정지 중에 예고 없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무죄를 강변하고, 헌재의 탄핵 선고 이후에도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면서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사실상 불복 메시지를 던지며 법적 투쟁을 예고했다. 대통령직을 내려놓고 피의자 신분으로 이뤄진 검찰 조사에서도 “430억원 받으려고 대통령 한 줄 아느냐”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19년 정치인생은 결국 구속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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