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대한민국의 보수, 진보 간의 갈등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9,029 작성일2013.03.22

 최근 인터넷 등에서 보수, 진보 등의 여러 단어들이 나오고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서로 간의 비하용어를 사용하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이념적으로 갈라서 보는 것은 옳지 않은데 왜 이렇게 싸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꼴, 종북, 빨갱이, 좌좀 등의 많은 보수, 진보 간의 비하용어들이 많은데... (여기서 '종북, '빨갱이'는 실제 종북, 빨갱이가 아닌 좌파를 비하하는 용어) 이번 대선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보수 진영에서, '문재인 후보'는 진보 진영에서 내세운 후보라고 말하기까지 하잖아요...

 

또 세대 간의 보수, 진보 간의 갈등도 심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우리나라는 보수, 진보 등에 대하여 보수적이고, 진보적으로 편향적인 시각들을 가지고 색안경을 써서 서로를 욕하면서 싸우나요?

 

 

1. 보수, 진보의 정확한 뜻이 뭡니까?

 

2. 보수, 진보 간의 갈등의 역사

 

3. 현 보수, 진보 간의 갈등

 

4. 보수, 진보 간의 갈등의 문제점

 

5. 보수, 진보 간의 갈등의 해결점

 

-----------------------------------------------------------------------------------------

 

추신 : 전문적이고, 확실한 답변만 추천해드립니다. 내공 100점으로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주의 : 내공냠냠, 이념대립이나 보수, 진보 등의 갈등을 조장하거나 의심되는 댓글은 신고가 갈 수 있습니다.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2 개 답변
2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반닼팬고그마
초인
독일어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1. 보수, 진보의 정확한 뜻이 뭡니까?


정치적 성향과 생각에 따라 나뉘죠


말 그대로 현재의것을 지키고 발전시키자는 성향을 보수


현재의것을 바꾸고 개혁을 해나가자 하는것이 진보라고 보시면 됩니다 

 

2. 보수, 진보 간의 갈등의 역사


역사적으로 정치는 항상 여러 의견이 충돌했었죠


보수파 진보파의 갈등은 우리나라가 생긴후부터라고 보시면 됩니다만


대한민국이 건국된후에 6.25전쟁의 여파로 극우반공주의를 내세워서


진보파는 입도 뻥끗못하는 시대도 있긴했죠

 

3. 현 보수, 진보 간의 갈등


경제개발이 먼저냐 복지가 먼저냐로 대표될수 있겠네요


보수파에서는 국가경제개발과 경쟁을 주장하고 진보에서는


보편적으로 국민들에게 복지가 먼저라고 주장을 하고있죠


그 외에 크게 갈라지는것이 대북정책인데 보수파에서는 북한에


강경하게 대응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진보파에서는 북한에게


지원을 해주고 타협점을 찾자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관해선


최근 북한의 행위에 의해 진보파도 북한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4. 보수, 진보 간의 갈등의 문제점

 

원래 보수 진보의 갈등은 사회적으로 필수적이기는 합니다


둘중 하나의 의견을 채택하여 모자란부분은 다른쪽의 의견으로 보완을


하는 그런 상호보완적인 관계이고 사회를 더 발전시키는거죠


하지만 우리나라에 경우 질문자님이 아시듯이 좌빨 수꼴 등등의 언어가


난무하죠 즉 양극화가 매우 심화되었다는것입니다 정치적 사상이


다르다고해서 지나치게 비방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단거죠


자기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다보니 멀쩡한 시민들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상대방을 비방하고 전국민에게 불똥이 튈수있습니다


5. 보수, 진보 간의 갈등의 해결점


사실 이게 우리나라 건국후 얼마안되서 극우적인 사상이 한번 휩쓸었고


거기다 극좌적인 성향의 사람들마저 정치에 뛰어들고


양극화가 심화되고해서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겁니다


우선 미성년자들을 바꿔야합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루머들


누구 대통령이 인터넷 하는 시간마다 요금을 부과한다느니 의료민영화


를 해서 우리나랄 망치려고 한다느니 하는 근거없는 루머들을 쉽게 받아


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정치인을 좋아하는데 잘한점은 하나도 모


르고 혹은 어느 정치인을 혐오하는데 못한점을 이야기 하라고 해보면


모두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던지 이런게 너무 심하단거죠


미성년자들에게 언론사마다 다 정치적성향이 있으니 언론을 쉽게


믿지 말라고 하고 무엇보다 주변 환경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어떤 정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합니다 전라도에서는 매 선거마다


비슷한 성향의 정치인 지지율이 90%가 넘는데 제가 전라도를 까려는 


의도는 아니고 전라도나 대구같은 특정 지방에서 한쪽의 지지율이 크게 


다는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자신의 주관적이고 논리적인 판단


으로 선거를 하지않고 주변의 영향에 따라 선거하는 경향이 매우 크단겁


니다 주변정치색에 영향을 받지않고 정말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인물과 정보를 판단하는 이런 국민들이 진정한


정치참여자격이 있는 국민들이고 이런 국민들이 많아진다면


그 어떤 정치인들도 국민을 호구로볼수 없습니다

2013.03.22.

  • 채택

    질문자⋅지식인이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탈퇴한 사용자 답변

질문자님, 제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

<질문 1> 스스로를 좌파라고 칭하는 민주통합당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에게 '변절자새X' 라고 욕설을 퍼붓는 사람이 국회의원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칭하는 통합진보당은 평양에서 원정출산한 사람이 비례대표입니다. 질문자님께서는 이들이 순수한 좌파와 진보라고 생각하십니까? 종북을 묵인하거나 지지하는 국민이 순수한 좌파이며 진보라고 생각하십니까?

-----------------------------------------------------------------------------------------

<질문 2> 마치 우파와 좌파를 모두 묵인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도이며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멍청한 분들이 있더군요. 이념때문에 같은 민족끼리 피를 흘리고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좌파의 탈을 쓴 종북세력과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경제좌파를 묵인하면 중도이며, 용납하지 않으면 수구꼴통인건가요? (제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애국하는 수구꽅통을 선택하겠습니다)

-----------------------------------------------------------------------------------------

 

정치이론만으로 볼때는 우파와 좌파가 공존해야겠죠.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종북'과 '빨갱이' 라는 단어는 좌파를 비하하는 단어라고 하셨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엄연히 종북세력이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경제좌파 빨갱이들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용어 설명> 

 

<보수와 진보의 차이> - 변화의 속도 

 

인간이나 조직의 성향이나 정책적 방향을 나타낼때는 우익(우파)/좌익(좌파) 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우익/좌익은 '변화의 방향'을 나태내는 말이고, 보수/진보는 '변화의 속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따라서 보수/진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익=보수, 좌익=진보 라는 의미로 씌이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노무현은 좌파진영이지만 김대중정권때의 노무현은 보수라고 봐야합니다. 이유는 노무현은 김대중의 정책을 유지 및 계승하는 정책을 폈기때문입니다. 즉, 현정권에 따라서 보수와 진보는 바뀔수 있다는거죠.

 

보수는 무조건 변화하지 않고, 진보는 무조건 변화시키는거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좋은건 유지하고 잘못된건 바꾼다는 개념은 둘다 똑같습니다. 다만 보수는 사회가 혼란에 빠지지 않는 안정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진보는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결국 변화의 속도를 나타내는 말인거죠.

 

정리하자면

 

* 보수 - 안정적인 변화를 추구

* 진보 -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

 

네이버에서 '우익' 과 '좌익' 을 검색만 해봐도 우익과 좌익이라는 용어는 '발전/성장'과 '복지/분배'에 대한 성향에 의해 나뉘어지는 정치적 경향이라는걸 쉽게 알수 있습니다.

 

<우익과 좌익의 차이> - 변화의 방향 

 

1. 우익 

* 경제정책 - 경제발전과 성장을 바탕으로 복지정책을 편다 (수정자본주의/복지자본주의 추구)

* 대북정책 - 북한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나올때만 경제적 지원을 한다

 

2. 좌익

* 경제정책 - 경제발전과 성장은 뒤로하고 우선적으로 복지정책을 편다 (사회주의 추구)

* 대북정책 - 북한의 행동에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한다

 

 

<대한민국의 좌파는 빨갱이다> 

 

이론상으로는 좌파와 빨갱이는 다른 개념이죠.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좌파 사회주의자의 탈을 쓴 빨갱이인 종북 좌빨들이 설치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연대를 하여 점점 그 구분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1) 황장엽씨의 증언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대를 이어 간첩활동을 하는 고정간첩의 수가 5만명을 육박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첩의 존재를 부정하고,

(2)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3) 예비군 폐지를 주장하고,

(4)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5) 한미연합사 해체를 주장하고,

(6) 한미FTA 폐기를 주장하고,

(7) 대기업 임원이 종북카페를 운영하고,

(8) 서울대 학생이 김정일 분양소를 설치하고,

(9) 평양에서 원정 출산한 사람이 정당의 비례대표가 되고, 

(10)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에게 '변절자 새X' 라고 욕설을 퍼붓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고, 

(11) 빨갱이식 사회주의 무상복지로 국민들에게 세금 폭탄의 부담을 안기고,

(12)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경제공산화를 추진하고,

(13) 외화벌이의 주체인 기업의 몰락을 부추켜 국가경제 몰락을 시도하고,

(14)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나중에 대답하겠다' 고 한 사람이 당대표가 되고,

(15) 한총련 합법화를 주장하고,

(16) 햇볕정책의 부활로 북한에 퍼주려고만 하고,

(17) 천안함 폭침은 대한민국 정부의 자작극이라며 북한을 대변하고,

(18) 미군장갑차사고/미국쇠고기수입 등과 같은 미국과 관련된 사건에는 반미를 부르짖으며 시위를 하고 난리가 나지만 금강산관광객살해사건/천안함피격사건/연평도포격사건 등과 같은 북한과 관련된 사건에는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19) 또한 위와같은 북한의 도발로 사망한 대한민국의 어머니와 젊은 장병의 장례식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면서 김정일이 사망하자 조문을 가야한다며 난리가 나고, 하물며 분양소를 설치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좌빨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정권심판론을 주장하며 통합진보당과 연대하여 제 1 다수당을 노렸던 민주통합당의 실체가 이런 것입니다. 겉으로는 미군철수를 주장하고 뒤로는 국민몰래 15억달러를 지원하는 등 막대한 경제적 원조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도와준 정당이며 내세우는 주장은 대부분이 북한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진보 좌파라고 주장하는 또하나의 좌파정당인 통합진보당의 실체를 아십니까?

 

<참고 동영상> 통합진보당의 실체 http://www.youtube.com/watch?v=CfCj9OJEr-s

 

단순히 좌파를 공격하기 위해서 지어낸 허위사실이 아니라 대한민국에는 정말로 좌빨이 존재합니다. 애국자라면 시대를 운운하며 "요즘 시대에 빨갱이가 어딨어?" 라는 좌빨들의 거짓선동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이들의 목적은 대한민국 국민의 국가안보의식을 저하시키는 동시에 남한사회를 좌경화시키는 것입니다.

 

좌파가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는 사회주의가 '친북/종북' 으로 가는 시발점이 되며 사상적으로도 공산주의와 종이 한장 차이라는걸 잘 알고 있기때문입니다. 북한 또한 좌파정권이 집권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과거 좌파정권(김대중/노무현)은 북한에 무지막지한 퍼주기식 경제적 원조를 하였습니다. 북한은 앞으로도 이렇게 퍼줄수 있는 좌파정권이 집권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연방제통일을 이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베트남이 어떻게 공산화 되었을까요? 미국은 철수 이전에 월맹군 12만중 9만을 제거합니다. 또한 10억달러를 지원하여 월남의 공군력을 세계 4위, 해군력을 세계 3위로 끌어올립니다. 그러나 베트남은 결국 공산화 됩니다. 무력에 의한 공산화가 아니라 베트남 사회의 좌경화로 인해 공산화가 됩니다.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반미감정을 부추키고 사회 각계각층에 간첩을 침투시키며 끊임없는 반정부시위 등으로 국민을 선동하였고 이로인한 월남사회의 좌경화는 결국 베트남 전체를 공산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참고 동영상> 월남 패망과 대한민국 http://www.youtube.com/watch?v=UPPQ9s7nJbo

 

이뿐만 아닙니다. 이들의 대북정책도 순수한 좌파라고 보기 힘들지만 이들의 좌파 사회주의 경제정책도 공산주의와 종이한장 차이이며 매국행위라고 봅니다. 왜일까요?  

 

첫째, 이들은 포퓰리즘에 의한 무분별한 복지정책으로 국가재정의 파탄을 부추킵니다. 복지는 무엇으로 하나요? 돈이 있어야 복지도 할수 있습니다. 때문에 경제적 성장과 발전이 밑받침이 되는 건전한 복지를 해야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장은 그만, 이제는 분배다' 를 외치고 있습니다.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경제적 성장과 발전이 배제된 복지로 경제적 위기를 자초했고 과거에 이미 그에 대해 수정을 했거나 지금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규모 8위의 이탈리아, 유럽 4위의 경제대국 스페인, 남유럽의 그리스, 남미의 아르헨티나 등 수많은 국가들이 경제적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에 빠져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기위해 경제발전과 성장은 뒤로한채 무분별한 퍼주기식 복지정책을 폈기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들의 후손들은 복지를 누릴수 없는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국가들을 교훈삼아 경제발전과 성장이 뒷받침되는 건전한 복지를 해야합니다. 

 

스웨덴의 2007년도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9654 달러이며, 대한민국의 2012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2000 달러입니다. 핀란드도 4만 5000 달러입니다. 5년전 스웨덴의 1인당 국민소득의 1/2도 못미치는 수준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또한 스웨덴 인구는 대한민국 인구의 1/5~1/6 수준이며, 핀란드의 인구는 1/9~1/10 수준입니다. 결정적으로 스웨덴의 부가가치세 세율은 25%입니다. 대한민국의 부가가치세 세율은 몇퍼센트일까요? 10%입니다. 어떻게 이들과 똑같은 수준의 복지정책을 주장할수 있겠습니까?

 

둘째, 좌파 경제정책은 기업이 성장하기 힘든 환경을 조성합니다. 너무 '서민'에 촛점을 맞추다보면 국가경제는 위기에 봉착할수 있습니다. 또한 몇몇 사회주의국가들처럼 포퓰리즘에 빠져 무분별한 복지정책으로 국가와 국민 모두가 빈곤해질수 있습니다. 다같이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다같이 못사는 사회로 전락하게 될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서민을 위한 대표적인 정책인 복지는 무엇으로 하나요? 기업이 왜 성장하고 발전해야할까요? 기업은 외화벌이의 주체입니다. 국민 개개인이 한류스타도 아니고 외화를 벌어올수 있는게 아니겠죠? 

 

기업이 수입이 늘어나면 또 무엇이 늘어나겠습니까? 국가에 내는 세금이 늘어나겠죠. 또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게 됩니다. 아울러 회사차원의 사원복지도 행해지고 사회차원의 기부도 행해집니다. 사실 대한민국의 노동법상 해고를 시킬수 없기때문에 일자리의 수는 정해졌고 매년 쏟아져나오는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모두 주기는 매우 힘듭니다. 인구도 많지 않기때문에 내수시장이 적기때문에 수출에 의존할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수출을 미국에 하기때문에 한미FTA가 절대적으로 필요한겁니다. 2011년 대한민국 10대 기업의 사회 기부 총액은 8000억원에 육박하며 이는 그 어떤 선진국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수치라고 합니다.

 

서민을 위한 복지도 돈이 필요합니다. 그럼 그 돈은 어디서 생깁니까? 그리스나 이탈리아처럼 다른 국가에 빚을 내서 할까요? 대한민국도 포퓰리즘에 의한 무분별한 복지로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경제위기에 봉착했으면 좋겠습니까? 아니겠죠. 복지도 돈을 벌어서 건전하게 해야합니다. 그러기위해선 대한민국의 기업이 국제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야하는겁니다. 만약 대한민국의 기업이 해외기업과의 경쟁에서 도태되어 수출을 해도 팔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수출의 길은 막히고 대한민국은 빈곤한 국가로 전락하겠죠. 대한민국의 대기업이 망하면 그 자리를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이 차지할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그 자리는 다른 해외 대기업이 차지하게 됩니다. 기업이 성장할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건 매국행위나 다름없는겁니다.

 

흔히들 좌파의 사회주의 경제정책만이 '서민을 위한 복지'를 추진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는 '계급투쟁'을 부추키는 좌파의 거짓선동에 의한 편견입니다. 우파가 지지하는 경제정책인 자본주의는 그 단점과 모순점을 보완한 '수정자본주의' 와 '복지자본주의'가 존재하며 이는 '서민을 위한 복지'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매하고 어리석으며 단순한 1차원적인 생각으로 '서민'만을 부르짖으면 대한민국은 망하게 됩니다. 내 배 채우겠다고 매국하면 안되는거죠.

 

 

<기업의 사원복지의 예> 

 

≪ LG 칼텍스정유 주요 복지 제도 : 2004년 기준 ≫


▶ 의료 및 건강 관리 지원
- 본인 및 배우자 의료비 전액 지원
- 본인 치아 보철료 50% 지원
- 현장 근로자 매년 특수 건강진단 실시(60만원 상당)
- 여수·순천 지역 내 헬스장 무료 이용
▶ 학자금 지원
- 자녀 수 제한없이 중, 고, 대학 학자금 100% 지원
(의대, 외국인학교 포함, 유학시 국내 최고 수준까지 지원)
- 본인 대학, 전문대 학자금 50% 지원
- 자녀 입학 축하금 지원(중:50만원, 초등:30만원,유치원교육비:60만원)
▶ 주택 및 생활안정 지원
- 여수 공장 기혼 직원용 5백64가구 무상 지원
(사택내 야외 수영장, 골프연습장, 테니스장 운영)
- 여수 공장 미혼 직원용 89가구 독신자 숙소 무상 지원
- 사택 퇴거자에게 6천만원 주거 보조비 융자(연리 0.5%)
- 주택 구입자금 3천5백만원, 전세 2천5백만원 융자(연리 1.0%, 2년 거치 10년 상환)
- 생활안정자금 1인당 1천만원 융자(연리 3%, 7년 균등상환)
▶ 휴가 · 여가 지원
- 해외 콘도(괌 라데라콘도) 무료 이용(4박5일에 시가 532달러)
- 전국 유명 콘도, 백암 생활연수원, 제주 휴양소 상시 운영
- 하계 시즌 특별 휴양소 운영(천산온천, 지리산 온천)
- 하계 휴가비 지원(회사 상품권 50만원)
▶ 위로 여행 · 견학 지원
- 노사협상 종료 후 매년 80명씩 6박7일 해외여행
- 장기근속자 여행비 지원(20년:60만원, 30년:250만원)
▶ 보험 · 연금 지원(4대 법정 보험 외)
- 단체 상해보험 가입(재해 사망 8천만원, 일반 사망 5천만원)
- 산재 사망시 산재보험금과 별도로 1억8천만원 지급
- 개인연금 보험료 10년간 월 5만원씩 불입


 

이쯤 되면 좌파들은 항상 '사회적 책임' 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소득자의 39%, 자영업자의 41%가 세금을 한 푼도 안 냅니다. 근로소득자 중 상위 6%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68%를 냅니다. 상위 12%가 85%를 냅니다. 자영업자도 상위 7%가 전체 종합소득세의 85%를 감당합니다. 소수의 고소득자가 대부분의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겁니다. 선진국에선 최소한 80%의 국민이 세금을 낸다고 하네요.

 

세금, 기부, 기업차원의 복지, 봉사, 사회사업 등을 봤을때 기업과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고 볼수 없습니다.

 

셋째, 좌파들이 주장하는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라고 하기보단 '경제적 결과의 평등'에 가깝습니다. 더욱이 좌파들은 '기업과 부자에게 뜯어서 복지에 사용한다' 라는 빨갱이적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돈은 내돈이고 넌 부자니까 니돈도 내가 좀 쓰자' 라는 도둑놈 심보인거죠. 복지란 부자에게 뜯어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파이를 증가시키고 그 부를 바탕으로 해야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좌파의 '대북정책'만으로 충분히 그들은 좌빨이라고 볼수 있으며, 그들의 '경제정책'의 기본사상도 공산주의 사상과 종이 한장 차이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를 추락시키는 매국행위라고 볼수 있습니다.

 

<꼭 봐야할 동영상>

 

(1)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ujUKxZODK80

 

(2) http://www.youtube.com/watch?v=Fyj-JEGQ9xM

 

(3) http://www.youtube.com/watch?v=OzvVr2Aoyx8&feature=player_embedded

 

* 00:00 ~ 26:00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괴담의 진실

* 26:00 ~ 37:00 촛불시위의 배후세력, 한국진보연대의 실체

* 37:00 ~ 43:00 북한이 원하는 통일의 방식, 연방제통일의 실체

* 43:00 ~ 52:56 결론

 

 

 

<국민의 행복과 경제정책>

 

좌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인생은 노력만으로 되는게 아니다' 라는 말은 인정하기 힘듭니다. 만약에 '빈병을 주워다가 파는 일' 을 열심히 노력해서 한다고해서 부자가 될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노력도 성공할수 있는 분야에서 해야하는거죠. 성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학창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거라고 봅니다. 이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은 조금더 편한 인생을 사는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공부도 때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이 시기에 공부라는 경쟁에서 도태되었다면 다른 분야에서라도 경쟁에서 이겨야하겠죠. 뭐 어린나이에 소속사에 들어가 연습생 생활을 7-8년간 하다가 아이돌이 된 젊은 연예인들도 어린나이에 철이 일찍 든 사람들이라고 봐야겠죠.

 

물론 대학교 등록금때문에 빚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며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합니다. 대학교까지를 공정한 경쟁을 하는 준비기간으로 본다면 사회생활을 하기전까지는 공정한 경쟁을 할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겠죠.

 

대한민국의 삶의 질은 급속도로 좋아졌는데 왜 행복지수는 떨어졌을까요? 이는 탈북자들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일부 탈북자들은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3국으로 가서 영주권을 기다리며 4-5명이 쪽방생활을 하고 있더군요. 이들을 인터뷰하니 김정일이 받아준다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답니다. 왜일까요? 북한에서는 굶어 죽을지도 모를정도로 빈곤하고 자유도 보장받지 못했고 남한에서는 최소한 밥을 굶지는 않고 자유도 보장되는데 왜 차라리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걸까요?

 

주변에 나보다 잘사는 사람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가난보다 이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이 인간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겁니다. 과거에는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고 주변에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생활을 하기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을 느낄 확률이 적었죠.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이에 대해서 인지할 확률이 높아졌고 이때문에 행복지수가 많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결국엔 '인간과 인간의 차이'가 불행한 사람을 양산하는거군요. 그렇다면 이 차이를 없앨까요? 이것을 없앤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공산주의의 실패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죠. 소련이 몰락했고 중국마저도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유는 '경쟁'이 없기때문에 발전이 더디기때문입니다. 아시겠지만 인류가 이렇게 달나라까지 가는 등 급속도로 발전한 원동력이 경쟁이라는건 잘 아실겁니다. 행복을 위해 대한민국만 이 '경쟁'을 없앤다면 국제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대한민국만 도태되고 빈곤한 국가로 전락하겠죠. 그렇다면 공산주의와 경쟁없는 사회는 일단 제외시켜야겠네요. 일부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국가가 망하면 안되니까요.

 

공산주의가 100% 뺏어서 공평하게 나누는 제도라면 기업과 부자들에게만 50% 뜯어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사회주의는 어떨까요? 이렇게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질까요? 불행한 사람들이 없어질까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50%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70% 혹은 80%가 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지고 불행한 사람도 없어질까요? 사실 세금도 이정도 되면 세금이 아니라 갈취라고 봐야겠죠.

 

그런데 이 사회주의 경제정책도 몇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체인 기업이 성장하기 힘든 환경이라는겁니다. 엄청난 세금과 노동법의 강화로 기업은 문을 닫거나 외국으로 본사나 공장을 옮기게 됩니다. 외국기업은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을뿐만 아니라 투자도 꺼리게 됩니다.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실업률증가의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이런 상황에 놓인 국가들은 세계 경제규모 8위의 이탈리아. 유럽 4위의 경제대국 스페인, 그리스, 아르헨티나 등이 있습니다. 이또한 역사가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인간과 인간의 차이를 줄이자니 국가의 경쟁력 감소로 부강한 국가에서 멀어지고 기업의 성장을 모토로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자니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떨어집니다.

 

이 두가지를 모두 해결한 대통령이 브라질의 룰라대통령입니다. 룰라대통령은 국민의 1/3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기업과 부자에게 갈취해서 끌어올렸을까요?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했다면 브라질이 세계 경제규모 10위권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을겁니다. 룰라대통령은 친기업정책으로 기업을 성장시켰고 이로인해 브라질의 국가경제 규모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국가 경제의 파이를 증가시키고 이 부를 이용하여 복지정책을 펴고 서민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린겁니다. 때문에 룰라대통령은 임기가 끝난 지금에도 지지율이 85%라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부 국민을 위해서 국가가 망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일부 국민을 위해서 국가의 발전이 저해되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국가가 망하면 '모두가 잘사는 사회'는 커녕 '모두가 못사는 사회'가 될테니까요. 국가가 발전할수 있는 범위안에서 최대한의 복지로 국민간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체재중에서 가장 정답에 가까운 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록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체제도 완벽할수 없고 그 어떤 정치인의 정책도 완벽할수 없지만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시기심을 버리고 노력하다보면 결국엔 원하는 삶에 조금은 근접해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 국가/사회탓만 하며 허송세월만 하는것보단 무엇이던 노력해서 하는게 인생에 도움이 될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이유에서 성장의 열매를 바탕으로 복지를 추구하는 우파의 경제정책을 지지해야 하는겁니다.

 

<관련기사>

 

'국보법 위반' '탈북자 막말' 임수경, 외통위 배정…與 반발

 

입력 : 2013.03.18 11:07 | 수정 : 2013.03.18 14:29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조선일보DB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18일 “민주통합당은 하필이면 국가보안법으로 실형을 살고 탈북자에게 막말을 한 임수경 의원을 외교·안보·통일·탈북자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배정했는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임 의원은 실정법을 위반하고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무단 방북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년 5개월 복역했다”며 “외통위원은 국가기밀인 정상회담록, 국내 탈북정책 등 매우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탈북자 정착과 생활 자료, 개인 신상정보 등을 열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 최고의원은 “임 의원은 비례대표로 당선된 후 탈북자 청년에게 막말을 해 민주당에 종북 주사파 논란을 일으킨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임 의원은 지난해 6월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난 탈북 청년에게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XX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겨”라는 막말을 했다가 이튿날 “부적절한 언행이었다”며 사과한 적이 있다.
 
앞서 새누리당 이철우 원내 대변인도 15일 “친북 좌파의 중심에 서 있는 임수경 의원을 국회 외통위원으로 보임했다. 이런 민주당식 인사가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인사’인가”라고 비난했다.

 

 

[김성욱 파일] 대북전단 탈북자단체에 '매국단체'

"종북이 어딨냐?"던 최재성, 부인동반 외유

북한인권법엔 “미친 정부”, “탈북귀족때문에···” 본인은 전대협 출신

  • 최종편집 2013.01.06 22:02:14

 

 

 

1.
 

 

부인을 동반한 외유성 해외(海外)출장 논란을 빚은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대북(對北)전단을 날리는 탈북자단체를 “매국단체”, 북한인권법 제정을 추진한 현 정부는 “미친 정부” 등으로 비난해 온 인물이다.

최(崔)의원은 새누리당 김학용·김성태, 민주당 홍영표 의원 등과 함께 지난 2일 해외 예산 시스템을 연구하겠다며 아프리카로 출국해 외유성 출장이라는 비난을 받다가 6일 급히 귀국한 인물이다.

최(崔)의원은 해외 출장에 부인을 동반한 게 확인돼 논란이 가중됐다.
중앙일보 5일자 보도에 따르면, 崔의원 측은 부인 동반 여부는 물론, 여행 경비를 어디서 부담했는지에 대해서도 함구로 일관했다.
최(崔)의원 측은 이날 “모르겠다. 취재에 응할 수 없다”며 입을 닫았고, 崔의원 본인도 중앙일보 기자와의 국제전화 통화에서 “후속 취재를 하려고 전화했느냐”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2.
이적단체 전대협 출신인 崔의원은 국회 입성 이후 북한정권에 우호적 발언으로 끝없이 논란이 돼 온 인물이다.  

그는 2012년 6월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탈북 귀족들이 현 정권의 냉전정책을 확대 재생산시키는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주장은 전날 기자회견 당시 “쓰레기 정보를 양산하는 일부 탈북귀족 때문에 먹칠이 되고 있다”는 崔의원 발언에 사과를 요구한 탈북자 단체에 대한 화답이었다.

崔의원은 또 8일 불교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대한민국 從北(종북) 논쟁은 실체가 없는 것이고, 정치권에 종북(從北)이 누가 있느냐”며 “이 정부의 비리라든가 민간인 불법사찰 등의 이슈들을 일거에 종북(從北) 국면으로 전환을 시켜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3.
崔의원은 2011년 9월23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주중 대사관 국정감사를 위해 들른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식당 ‘대성산관’을 찾아 식사를 하면서 “정부가 북한 식당 출입을 막아 푼돈 가는 걸 제한한다고 해서 뭘 하겠다는 거냐”고 했다.
“먹는 문제를 갖고 이렇게 하는 정권이 정말 치졸하다. 한반도 주변 국가가 모두 변하고 있는데, 우리만 식당 출입 금지 같은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고도 했다.

崔의원이 비난한 ‘푼돈 가는 걸 제한한’ 정부의 조치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취해진 5·24조치였다.
그는 46명의 자국민 희생에 대해선 침묵한 채 가해자인 북한정권에 돈을 주지 않는다고 피해자인 한국정부를, 중국에서 비난했다.

4.
최(崔)의원은 2008년 12월9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황진하 의원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안’을 “삐라지원법”으로 비난하며 “정말로 이 정부는 미친 정부”라고 극언했다.

“한나라당이 ‘북한인권 증진법’이라는 허울로 남북관계를 도탄에 빠뜨리려고 한다. 삐라 지원법이다.(···) 정말로 이 정부는 미친 정부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 경제위기에서 이런 황당한 일을 하는가. 남북관계, 개성공단이 어떻게 되든 오직 자신들의 이념을 피력하는 미친 정부다.”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 현안브리핑


5.
崔의원은 2008년 11월26일 대북(對北)전단을 날리는 탈북자단체를 “매국단체”라고 부르며 이렇게 비난했다.

“삐라를 살포하는 자유북한운동연합 관련자들은 남쪽에서 따뜻하게 맞아준 분들이다. 이들이 북한에서 남쪽으로 온 것을 따뜻하게 맞아준 것은 국익을 해치고, 국민정서와 정반대편에서 이런 황당한 일을 하면서 事故(사고) 치라고 맞아준 것이 아니다. 이점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 현안브리핑

 

 

 

북한 통일전선부 선전물 퍼나르다!..새해덕담이라며 "리명박 패당 입다물라"

임수경 충격트윗 "리명박패당 대신 사과드려"

임수경, 대한민국 국회의원? 북한 대변인?..“나를 잡아보시던가” 조롱까지!

 

  • 최종편집 2012.06.07 10:02:24

 

 


 

 

 

종북(從北) 본능을 숨길 수 없었을까?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이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계정(우리 민족)에 올라와 있는 글을 퍼나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임 의원은 지난 1월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우리 민족'의 글을 리트윗했다.

 

"리명박 패당은 입다물고 자기 앞날이나 생각하는 게 상책일 것이다."

임 의원은 대한민국 정부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이 글을 "새해 덕담"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함께 퍼트렸다.

이 뿐만 아니다.

그는 또 같은 날 더욱 충격적 트윗도 리트윗해 날렸다.

"막다른 궁지에 빠져들 때마다 충격적인 반공화국모략사건조작으로 숨통을 부지해오던 너절한 악습 그대로 또다시 '해킹' 나발에 매달리는 보수패당이야말로 가긍하기 짝이 없는 패륜아 집단이다"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

 

 

그는 여기에 "^^ 대신 사과드립니다"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남한이 북한을 향해 모략조작사건을 일으켰다는 북측의 주장이 옳다는 주장을 한 것을 넘어, 그러니 자신이 대한민국을 대신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김씨왕조에 대해 사과한다는 의미를 강하게 담았다.

 

또 지난 1월 30일에는 "지금 청와대는 리명박을 우두머리로 한 대결분자들의 집합체, 쉬파리 서식장으로 되고 있다"는 글도 리트윗했다.

이게 종북주의 아니면 무엇이 종북주의일까?

 

◇ 종북 비판 개의치 않아..문제되자 트윗 삭제

 

하지만 임 의원은 이런 비판에 개의치 않는다.

임 의원이 퍼나르는 '우리 민족'은 하루 평균 10개 가까이 북한 지도 체제를 찬양하고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있는 트위터다. 때문에 이 같은 북측이 올린 글을 보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댓글을 달거나 전파하는 것은 법에 저촉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그는 1월 17일 트위터에서 역시 '우리 민족'의 글을 리트윗하면서 "박정근 석방, 국가안보법 철폐 고의 RT"라며 "나를 잡아보시던가"라고 정부를 조롱했다.

 

자신이 종북 국회의원임을 만천하에 선언한 셈이다.

이에 대해 임 의원은 '고의적인 RT'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가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글을 집중적으로 옮긴 시기는 올해 1월이다. 사진 작가 박정근씨가 '우리민족끼리'의 글을 리트윗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 수사를 받던 것에 대한 '반발'이라는 얘기다.

당시 임 의원은 1월 12일 "리명박 역도의 망발이야말로 이미 력사(역사)의 준엄한 사형선고를 받은 자의 오금 저린 비명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등의 글을 옮기며 "고의 알티(리트윗)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하라!"고 썼다.

 

'우리민족끼리'가 유튜브에 올린 북한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의 주소와 함께 '대놓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머리말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당당했던 임 의원은 '국회의원'이 된 이후 종북문제가 논란이 되자 슬그머니 문제가 되는 트위터 문구를 모두 삭제했다.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해 김일성에서 허리를 구부리며 그를 칭송하던 대학생 임수경이 이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됐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 네티즌, "북한 대변인이냐?"

 

임 의원의 트위터 내용은 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북한 대변인'이라고 표현했다.

 

gwpar**** "임수경, 북한이 관리하는 트위터를 퍼 날라와 종북 논란에 불 지펴. 임수경=북한 대변인,종북이라는 확실한 물증."

kim_h**** "이런 X을 국회의원을 시키다니 대한민국에 국회의원할 사람이 그렇게도 없나? 완전 빨갱이가 대한민국 국회에 들어 갔군."

 

 


 


 

 

▲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은 현재 "나를 잡아보시던가", "새해 덕담", "대신 사과드립니다" 등 민감한 트윗글들은 모두 삭제했다. ⓒ 트위터 화면캡쳐

 

 

 

임수경 의원의 종북 성향을 비판하는 글도 쏟아져 나왔다.

 

ccnk**** "임수경은 1989년 6월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무단 방북해 실형을 치룬 국보법 복역 전과자로 종북 세력의 핵심인물이다."

Junghoon**** "북한 체제를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과거 이념에서 임수경은 벗어나지 못했다. ‘변절자 막말’은 탈북자를 힐난해온 북한 당국의 표현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말실수로 보기 어렵다."

kkj**** "박홍 신부 '임수경이 국회의원 된다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이렇게 품위가 떨어지느냐?' 진보의 이름을 빌려서 공산주의자들이 들어옵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무시합니다. 애국가 부르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한편, 탈북자 출신 대학생인 백요셉(28)씨는 지난 1일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임수경 의원에게 들은 폭언을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당시 백씨는 개인적으로 정치성향은 다르지만 어릴 적 북한에 있을 때부터 ‘통일의 꽃’으로 알고 있는 임수경 의원에게 사진 촬영을 요구했다. 그러나 곧장 웨이터에 의해 사진이 삭제됐다.

 

이에 백씨는 임 의원에게 "이럴 때 우리 북한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아시죠? 바로 총살입니다. 어디 수령님 명하지 않은 것을 마음대로 합니까"라고 북한식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임 의원은 "야~ 이 개새끼, 개념 없는 탈북자 새끼들이 어디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기는 거야?"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어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어, 이 변절자 새끼들아”, “하태경 그 변절자 새끼 내 손으로 죽여버릴꺼야"라며 막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國會로 진출한 '社會主義 혁명가' 민통당 은수미

남로당 이후 최대규모 非합법 사회주의 前衛(전위)조직 '사노맹' 출신
金泌材

[사진] 사노맹 조직원의 '혁명투쟁 결의서'의 일부내용 (자료출처: 국가안전기획부)
 
 
4.11 총선에서 민통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殷秀美(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남로당 이후 최대 규모의 非(비)합법 사회주의 前衛(전위)조직이었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핵심인물로 검거됐던 인물이다. 은 씨는 서울대 사회학과 2학년이던 1983년 시위를 벌이다 제적된 후 구로공단에서 미싱사 보조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사노맹에서는 정책실장 겸 중앙위원으로 ‘조 실장’(假名 조명혜)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1992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강릉교도소에서 6년간 복역했다. 당시 독방에서 4년6개월을 지냈으며, 이때 걸린 결핵 때문에 장까지 균이 퍼져 장을 50cm 가량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1997년 출소 후 서울대로 돌아가 1998년 학부를 졸업, 1999년 석사, 2001년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2005년 <한국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유형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지도교수: 송호근)을 발표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제의 논문은 노동 계급이 ‘민노당’을 통해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을 다룬 논문이다. 은 씨는 박사학위 취득 후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사회운동론’ 등을 강의하며 주로 비정규직 문제를 다뤄왔다.
 
사노맹은 武裝蜂起(무장봉기)로 대한민국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밝혔고, 나아가 조직원들에게 군사훈련까지 시켰었다. 조직원 자격기준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궁극적 목표로 하여 武裝蜂起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있는가” 등을 제시했다.

사노맹은 또 자금마련을 위한 보급투쟁을 했는데, 이를 위해 조직원간 위장결혼식으로 축의금 확보, 친지 가운데 반동적 가정의 재산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착취한 돈이므로 특공대를 투입해 强竊盜(강절도)할 것, 동창·친지·운동권 전력자들을 대상으로 한 후원회를 구성할 것 등을 지시했다.
 

은수미 민통당 비례대표 당선자

 

 

사노맹은 1988년 12월~90년 8월간 1억1천8백4십만 원을 확보했고, 이 자금은 인쇄소 시설비, 유인물 제작비, 활동비, 아지트 운영비 등으로 사용했다. 사노맹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노맹은 무장봉기로써 대한민국 체제를 타도한 후 노동자 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소위 민족민주혁명을 이루어 민중공화국을 수립한 뒤, 제2단계로 반동관료, 독점재벌 등을 숙청하고 토지 기타 생산수단을 몰수, 국유화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어 완전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자 계급의 전위정당임…(하략)” (대법원 92도256. 1994.4.24)

4.11 총선에서 민통당은 은 씨를 이른바 ‘비정규직 문제 전문가’로 영입했다. 2012년 3월22일자 <조선닷컴> 보도에 따르면 민통당 비례공심위 관계자는 “공심위 회의에서 노동문제 중 특별히 비정규직 문제를 다룰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은 후보의 이름이 나오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어 “안병욱 위원장이 개별적인 루트로 인터뷰를 거쳤다”면서 “은 후보가 관련 정책 입안 능력도 탁월하다는 판단이었고 삼고초려 끝에 모셨다”고 했다.

또 다른 민통당 관계자는 “사노맹 출신이긴 하지만 이미 사노맹은 그 주동 세력이 종말을 고하지 않았느냐”면서 “은 후보는 비정규직 분야 전문가로 민주당 주최 토론회에도 참석했었고, 黨 노동정책을 입안할 때도 참여해 인연을 맺었다”고 밝혔다.

김필재(金泌材)/트위터: https://twitter.com/#!/Iron_Alchemist3

[주] 90년대 중반 안기부는 국내 左翼(좌익)세력을 총 4만2천명으로 파악했다. 구체적으로 대학 등 학원가에 1만8천명, 노동계 1만 명, 재야·종교단체 5천5백 명, 교육·문화·언론계에 8천5백 명이었다. 이들 중 핵심세력은 1만2천명∼1만5천명, 적극 동조세력은 3만 명. 이념성향별로는 주사파 등 NL계는 2만7천명, 사노맹등 PD계는 1만5천명으로 보았다.
 
 
 
 
은수미 연루 '사노맹' 사건의 실체

조직원만 3천5백 명에 달하는 '사회주의 전위조직'
정리/金泌材


 

▲사노맹, 勞使현장에서 ‘공장의 혁명 요새화’ 주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은 조직원이 3천5백 명에 달하는 남로당 이후 최대 규모의 非(비)합법 사회주의 전위조직이다. 1989년 11월 결성된 사노맹은 발족 직후부터 유인물을 배포한 것이 단서가 되어 3년 동안 대대적인 수사발표만 2차례나 이뤄졌다.

이 사건은 1989년 11월 서울시경이 성균관대의 서울민주주의학생총연맹(서민학련)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노맹 출범선언문을 배포하려던 학생을 적발한데서 단서가 잡혔다.
 
경찰은 서민학련이 사노맹에 깊이 관련됐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 노동문학사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관련자들을 속속 체포했다. 안기부는 1990년 10월 1차 수사중간발표를 통해 사노맹 핵심조직원 40명을 구속하고 총책 白泰雄(백태웅, 서울대 법대 4년 제적)과 사노맹 중앙위원이자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본명 박기평)등을 수배했다.
 
안기부에 의하면 백태웅과 박노해는 1989년 2월 무장봉기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을 지도할 노동자당을 결성키로 하고 민족민주혁명론(NDR)을 추종자들을 모은 뒤, 같은 해 11월 서울대에서 열린 전노협 주최 건국노동자대회에서 사노맹 결성을 공개 선언했다고 밝혔다.
 
백태웅의 假名(가명) 이정로는 “이것이 정통정치노선이다”의 준말이고, 박기평의 假名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의 준말이다.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기반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훈련된 조직원을 각 사업장에 침투시켜 공장소조를 만들고, 세포분열식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이른바 ‘공장의 혁명 요새화’를 꾀했다.
 
▲사노맹, 사회주의 혁명 달성 목표 삼아
사노맹은 노사분규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배후에서 선동해 임금투쟁을 정치혁명투쟁으로 격화시켜 총파업으로 유도한 뒤, 결정적 시기에 봉기해 사회주의혁명 달성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한 1990년도 중점수행과제로 ‘사회주의혁명 선전 선동의 대중적 확산’, ‘노동자계급 주도 합법 민중정당 결성’, ‘전국 주요공장에 혁명적 사회주의자 공장소조 창출’, ‘학생운동의 노동자계급 동맹세력화’, ‘독점재벌 재산몰수 국유화’, ‘물가관리민중위언회 설치’, ‘농축산물 수입개방저지’ 등을 투쟁 슬로건으로 삼았다.

사노맹은 또 레닌의 ‘黨(당)조직 건설원칙’을 모방해 중앙위원회를 최고지도부로 하고 그 밑에 조직위 ,편집위 각 市都(시도) 지방위를 두었다. 부설조직으로는 남한사회주의과학원, 노동해방연구소, 사회주의학생운동연구소, 민주주의학생연맹을 두었다, 조직원 파견그룹으로는 민중당, 전노협, 노동해방문학사 등을 두고 단위조직을 철저히 비밀 운영했다.
 
실천지도부인 조직위는 조직관리와 재정을 전담하는 사무국과 조직수호, 면학, 유인물, 배포 등을 전담하는 연락국으로 구성되어있다. 연락국은 무장봉기를 위한 폭발물 개발, 무기탈취계획, 독극물 개발 등의 특수 임무를 맡았다. 지방조직으로는 서울을 비롯, 전국 9개 시도에 지방위원회를 두고 그 산하에 기획선전 담당부서 공장사업부 정파사업 담당부서를 설치해 정치-노동-종교계에 조직원 扶植(부식)을 꾀했다. 사노맹은 각 분야 ‘혁명인자’를 물색해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게 한 뒤, 사상성 비밀활동 능력 등 50여 가지 기능에 따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조직원으로 포섭했다. 이들은 1개월 내지 1년의 사상교육 체력훈련 등과 함께 ‘일상용어 음어화’, ‘철저한 안전관리’, ‘조직기밀유지’ 등 10대 조직보위수칙을 교육받았다.
 
이들은 또 서울시내 오피스텔과 상가 등에 10여개의 安家(안가)를 확보해 놓고 수사기관의 수색에 대비해 가스총, 도검류, 쇠파이프, 염산 등을 비치해 두었으며, 검거 때 문서와 메모지를 즉시 소각 또는 삼키도록 하고 기밀유지를 위해 자살용 독극물 캡슐까지 개발했다.
 
사노맹 조직원들은 조직자금 마련을 위해 1인당 3백만 원 내지 1천만 원씩 책임제로 모금하고, 친지 집을 상대로 强竊盜(강절도)를 하거나 위장결혼식으로 축의금을 받아 속셈학원, 비디오테이프 가게 등을 운영했다.
 
사노맹은 혁명이념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합법적인 월간지 《노동해방문학》과 출판사 노동문학사를 설립, 1989년 4월~12월까지 15만여 부의 선전 책자를 발간했다. 백태웅은 이정로라는 가명으로 《노동해방문학》에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에 대한 파산선고>, <사회주의 위기의 근원, 고르바쵸프 개혁노선의 우편향 비판> 등 논문을 기고했다.
 
박노해는 이 월간지에 <파업에 나선 노동형제들에게>, <김우중 회장의 자본철학에 대한 전면비판> 등 시와 평론을 기고했다. 박노해는 1989년 4월 《박노해 시인의 긴급 호소》라는 유인물에 “현실적 통일방안을 가진 김일성을 존경한다”는 내용의 <존경하는 김주석>이라는 詩를 게재해 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배됐다. 박노해의 부인인 金眞珠(김진주)는 한승호라는 假名으로 《노동해방문학》에 “노선 없는 실무가가 주도하는 노동조합운동의 경향성을 비판하다”등의 글을 기고했다. 사노맹은 非합법 지하기관지 《한걸음 더》, 《새벽바람》과 유인물 《긴급전술 결의》등 40여종 20만부 가량을 제작, 전국 대학과 노동현장에 뿌렸다.
 
사노맹은 각 운동단체를 VDR(민족혁명) 노선으로 통일하기 위해 민중당, 인민노련, 전노협,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등에 조직원을 침투시켜 ‘정파투쟁’을 전개하고 《노동자신문》,《말》지 대학신문 등의 기고문을 통해 NDR(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이념 전파 및 타 정파와의 사상투쟁을 벌여왔다. 또한 ‘공장의 혁명 요새화’ 원칙에 따라 무장봉기 때 방위사업체인 창원공단 내 (주)통일과 한국중공업을 무기탈취 대상으로 선정했다. 인천지방위원회에서는 사제폭탄 제조법, 총기제작법, 무기탈취방법 등을 연구하며 무장봉기 계획을 세웠다.
 
▲총책 백태웅, 중앙위원 박노해 검거로 와해
사노맹 중앙위원 박노해는 1991년 3월, 중앙위원장인 백태웅은 1992년 4월에 다른 조직원 30여명과 함께 각각 검거됐다. 백태웅의 경우 검거되기 5일전인 24일, 박노해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박노해는 1991년 9월 1심 선거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그해 12월 2심 선거공판에서도 역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백태웅의 검거로 사노맹은 조직이 사실상 와해되고 사건수사도 일단락됐다. 안기부는 백태웅을 검찰에 송치한 1992년 5월 사노맹이 전국의 공장과 대학에 훈련된 조직원들을 침투시켜 결정적 시기에 정부를 폭력으로 뒤엎고, 사회주의체제를 건설하려 한 지하혁명 조직으로 드러났다고 추가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사노맹은 고교생들까지 포섭, 사회주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등 남로당 이후 최대 조직으로 파악됐다는 것이었다.
 
안기부는 또 사노맹이 1994년까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을 결성한다는 중간목표 아래 공장을 ‘혁명요새화’ 할 목적으로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16개 지역의 69개 공장에 조직원 3백여 명을 침투시켜 공장소조라는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어 폭력 파업투쟁과 정치투쟁을 유도했다고 발표했다.

사노맹은 조직의 안전을 위해 조직의 이름을 일반 회사식 이름으로 불렀다. 예컨대 사노맹 중앙위원회는 대우자동차, 수도권위원회는 제일물산, 영남위원회는 삼테크, 호남위원회는 한양교통 등으로 부르고, 조직원의 직책도 실장, 부장, 과장 등으로 불러 외부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했다.

사노맹 사건 관련자들 중 玄廷德(현정덕, 사노맹 연락책)은 징역 8년을, 박노해의 부인인 김진주는 징역 6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유죄판결을 박은 사노맹 관련자들은 김대중 정권이 출범시기인 1998년 8.15 특사 때 백태웅, 박노해, 남진현이 석방되어 전원이 자유의 몸이 됐다. 백태웅과 박노해는 2008년 12월22일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다.

 

 

 

[단독] 평양서 딸 낳은 30대 한국 여성 "장군님께서…" 경악

 

입력 : 2012.05.30 03:23 | 수정 : 2012.05.30 20:52

 

공안 당국 황씨 노트 압수… 2005년 평양에서 출산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15번 황선(38·사진)씨가 김정일을 '장군님'으로, 자신을 '분에 넘치게도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일꾼'으로 지칭한 문건을 공안 당국이 과거 황씨 수사 과정에서 압수했던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공안 당국 소식통에 따르면 황씨가 2000년 초 일기 형식으로 쓴 노트에는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일꾼'이라는 제목으로 방북(訪北)까지 했다가 전향한 운동권 선배들을 '허튼 길로 발을 돌렸다'고 비판하면서 이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황씨는 이 노트에 '장군님은 (방북했던 선배들이 전향한 것을) 자식을 잃은 일보다 더 가슴 아파하셨을 것'이라며 '나도 (전향한 선배들처럼) 잘못 살면 장군님 가슴이 아플 것'이라는 취지로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는 또 스스로를 '장군님의 일꾼 중 하나'라고 지칭하면서 전향한 운동권 선배들에게 자신은 배신감을 느꼈지만 '장군님'은 안타까워했을 것이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황씨는 1998년 D여대 재학 시절 한총련 대표로 평양에서 열린 통일대축전에 참석한 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2000년 11월에는 이적(利敵)단체인 범청학련 남측본부 대변인 겸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조선노동당 창당 60주년인 지난 2005년 10월 만삭의 몸으로 방북해 평양에서 딸을 낳았다.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와 함께 진보당 구(舊)당권파 소속인 그는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되지는 못했다. 그도 이·김 당선자처럼 사퇴를 거부해 제명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정말 웃겨요!..'평양 것들' 추종하다보니 하는 짓도 비슷

 

[코믹사진]진보 당원증 표결..北조선로동당?

 

‘동지’ ‘통일전선’ ‘노선’ ‘혁명’ ‘척탄병’ ‘세작질’ 등 주사파들 즐겨 쓰는 용어도 유사

 

 

  • 최종편집 2012.05.07 15:41:13

 

 

 


▲사진 아래 남한의 통합진보당, 그 위 북한의 조선로동당과 김정일ⓒ

 

 

 

 

통합진보당 투표방식은 북한의 조선로동당과 유사하다. 4~5일 국회에서 열린 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의에선 운영위원들이 발언 신청을 하거나 투표를 할 때 말없이 이름이 크게 적힌 운영위원증을 높이 들어 올렸다. 개표도 현장 진행요원이 위원증을 일일이 세어 집계하는 방식이었다.

북한 조선로동당이나 중국공산당 역시 주요 회의에서 거수 대신 당원증을 들어 의사표시를 한다. 4~5일 당권파 핵심 인사들이 발언할 때마다 지지 당원들은 마치 약속한 듯 팔을 높이 들어 열정적으로 집단 박수를 쳤는데 그 모양새도 북한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많다.

진보당의 주요 인사들이 자주 쓰는 ‘동지’ ‘통일전선’ ‘노선’ ‘혁명’ ‘척탄병’ ‘세작질’ 등은 주사파들이 즐겨 쓰던 용어다.

 

 

 

위키리크스 폭로 미 외교전문...“인도는 핵보유 되고 北은 왜 안되는가”

 

노무현 “북한이 핵을 가지면 왜 안되는가?”

 

盧 “국방력 강화는 北 아닌 日-中 겨냥”...대북 정보 부족도 고백 



  • 최종편집 2011.09.17 17:35:35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8월 언론사 간부들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친북적 발언을 한 사실이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외교전문 공개를 통해 드러났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고한 2006년 8월 19일자 전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13일 한국의 일부 언론사 간부(editor)들과의 만찬 회동에서 “북한은 인도의 상황과 비슷한데 인도는 핵 보유가 용인되고 북한은 왜 안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미국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불안하다고 느끼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북핵 문제에 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다음 정부로 이 문제를 넘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의 국방력 강화는 북한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적 태세를 갖추는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에 대해선 “미국은 북한을 악랄한 존재로 여겨 공정하게 대하지 않고 문명의 규정(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미 외교전문은 이런 발언은 추정은 가능했지만 대통령이 언론사 간부들에게 직접 얘기한 것은 다소 놀랍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은 언론사 간부들에게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한국 당국의 북한 관련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노 전 대통령은 “우리는 과거 정보 수집을 위해 비공식 채널도 많이 사용했지만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했고 비공식 채널이 김정일이 원하는 것인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현재로서는 남북한 간의 공식 채널이 가장 정확한 정보 제공원이라고 인정했다.

 

노 전 대통령은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자신을 좋아하며 이는 자산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부시 행정부와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어렵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김정일 정권 붕괴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 중인 반면 북한은 매우 완고하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과 북한) 가운데에 낀 신세”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국방부를 방문했을 때 국방부 관리들이 자신을 일반 방문객으로 취급하는 느낌이었다면서 조롱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반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와 관련해서는 “작전권 환수가 군사적 공백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민감한 이슈인 농업분야를 언급하며 “농업 분야에서 3분의 1만이 경쟁력이 없지만 나머지 3분의 2는 경쟁력이 있거나 정부 지원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사행성 게임기(바다이야기) 파동이 발생했지만 청와대 시스템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미 외교전문은 이날 만찬은 노무현 정부에 ‘우호적인’ 일부 언론사 간부들을 초청해 비공개로 이뤄졌다면서 이 대화 내용은 만찬에 참석한 한 간부로부터 입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전문은 "비공개 오찬에 참석한 한 언론사 논설위원이 우리측에 발언록을 건네줬다"고 했다. 당시 비공개 오찬에 참석한 논설위원들은 한겨레·경향신문·서울신문·한국일보 소속이었다.

 

전문은 이 밖에도 “한국에서는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한 정보 제공) 따위는 없다. 특히 언론인들이 관계되면 그렇다”고 적어 눈길을 끌고 있다.

 

 

 

[월간조선] 국정원이 2009년에 요약한 '노-김 대화록' 전문 단독입수 공개

<全文공개>노무현-김정일의 역적모의, 사실!

과거 김대중-노무현의 남북정상회담 문재발언 발췌요약정리한 10쪽짜리 보고서

  • 최종편집 2013.01.18 22:43:57
  • 조갑제닷컴 

 

 

 

 

 

<월간조선>은 최근 정부의 고위소식통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토’라는 제목의 대외비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문건은 이명박(李明博)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던 2009년 5월 과거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전직(前職) 대통령들의 발언 중 주요 대목 또는 문제 부분을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  

A4 용지로 모두 10쪽인 보고서의 상단에는 ‘대외비 09. 5. 11 限 파기’라고 적혀 있다.  

문건을 만든 곳은 국가정보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간조선 기사 발췌)


 

[보고서 全文]

 

 

「南北 정상회담 대화錄」 검토


남북 정상 간 「대화錄」은 주로 「공동선언문」 의제 논의에 집중되어 있으나,
국가 정체성 훼손 및 국가수반으로서 위신 손상 등 문제점 상당

 

문제점

 

① 편향적 對北觀과 안보의식 결여로 국가정체성 훼손
○ NLL·北核문제 관련 북한 입장 지지 및 對北 우호적 발언 남발 등 국가원수로서 안보개념 희박

✓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 미국 제끼고… 얘기했음. 경수로 꼭 지어야 함”
✓ “NLL은 국제법적·논리적 근거가 분명치 않고, 헌법문제도 절대 아님.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음”
✓ “외국과의 정상회담 시 나는 북측의 대변인·변호인 노릇을 했으며, 6者회담에서의 북측 입장을 갖고 미국과 싸워 왔음”(이상 노무현)

② 형식적인 남북관계 진전에 집착, ‘북한에 끌려다니기’式 회담
○ 합의 이행을 次期 정부에 떠넘겨 現 정부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남북경협 = 북한의 시혜」라는 인식을 공공연히 표출, 협상력 저하.

 

 

✓ “어떤 정부가 와도 화해·통일의 길을 못 막도록 하는 것이 저의 소원”(김대중)

✓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 쐐기를 박아 놓자는 것”

✓ “조선공업 같은 것은 남측을 위해 돌파구를 열어주셔야 됨”, “남측 학자들이 북측 도로 건설에 90조가 든다고 하는데 헛소리로, 1/10이면 됨”(이상 노무현)

③ 북한 입장 대변 등 노골적인 북한 편들기
○ BDA·일본인 납치문제 관련 북한 주장에 동조, 북한의 불량국가 행태를 용인하고 韓·美·日 공조 균열을 자초

✓“분명히 얘기하는데 BDA 문제는 미국의 실책으로, 부당함”
✓ “납치문제 관련 일본이 생트집 잡고 있다고 써놓은 책도 있고… 駐韓 日本 대사에게 납치 일본인 다 귀환하지 않았냐고 했음”(이상 노무현)

④ 김정일에 대한 과도한 ‘저자세’로 국가위신 실추
○ ‘김정일 띄워주기·환심 사기’ 발언을 남발하고, 訪韓 간청·청탁성 어투 등으로 대등한 협상이 아닌 김정일 주도의 회담 진행 초래

✓ “좌우간 김위원장 존경합니다. 민족을 위해 탁월한 말씀을…”(김대중)
✓ “내가 분계선 넘은 사진 하나로 남측은 아마 수兆원 벌었음”,
“남측은 데모가 너무 자유로운 나라라서 모시기도 그렇게… 우리도 좀 어려움이 있음”
✓ “임기 마치고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하게 할 수 있게…”(노무현)

 

평가

 

○ ‌상기 문제발언은 전임 대통령들이 좌편향적 對北인식을 바탕으로 「공동선언」 합의라는 정치·상징적 결과물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
- ‌특히 납북자·국군포로·인권 등 북한이 껄끄러워 하는 문제에 대한 ‘의도적 침묵’으로 남북관계의 잘못된 관행을 고착化 

○ ‌특히 군사적으로 대치 중인 북한의 권력자와 대화라는 점에서 문제점 다대
- ‌국가정체성 훼손, 국익저해, 국가위신 추락, 노출 시 美·日의 불신 초래 등 부정적 파급 영향과 함께
- ‌북한이 정상회담 발언을 ‘김정일 위대성’ 선전 등 내부 교양자료로 활용하고, 향후 남북관계에서 악용할 수 있는 소지를 제공

* ‌정상회담 직후(07.10) 내부 강연자료를 통해 “美·日의 對北압박을 타파한 국제적 혁명환경 제고”·“南조선업계의 파산위기를 막기 위해 조선협력 합의” 등 선전

⇨ 국정원은 이 같은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6·15 및 10·4선언」의 문제점을 대내외에 전파하여, 북한·좌파의 전면이행 주장을 제압하고 우리 對北정책의 정당성을 부각해 나가겠음. 끝.

 

※붙임 : 1. 「남북 정상회담」의 주요 문제 발언
2. 「대화錄」 중 주요 현안에 대한 김정일의 언급내용

 

 


1. 「남북 정상회담」의 주요 문제 발언


1 ㅣ 편향적·감성적 對北인식

✓ “내가 원하는 우리 문제는 우리가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입니다”(김대중)
✓ “(김정일의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언급에 대해) 남북이 (對美日 등 관계에서)세게 하면 고립이 되지만, 자리를 잡고 난 뒤에 세게 하면 자주가 되거든요. 자주가 고립이 아니라 진짜 자주가 될 수 있도록…”
✓ “오늘 아리랑 공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나는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이상 노무현)

⇨ 북한의 「용어혼란 전술」 사례인 ‘자주’를 무비판 수용, 김정일 우상화·체제선전물 ‘아리랑’ 공연에 대한 기대감 표명 북한의 이념적 주장에 호응

✓ “北도 그렇겠지만, 南도 어떠한 대북 군사행동도 반대하고 또 누가 해도 반대함”(김대중)<br />✓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br />✓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 할라고 합니다. 이번에 군부가 개편되어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평화협력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이상 노무현)

⇨ 從北좌파적 시각과 함께 「軍」까지도 전향적·유화적 對北 분위기로 전환되었다고 강조, 북한이 통일전선전술 구사에 대해 자신감을 갖도록 오도

 

 


 

 

2 ㅣ 국가원수로서 안보의식 결여

✓ “국가보안법은 나도 10년 전부터 상당히 개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만 야당이 반대해서 못하고 있습니다”(김대중)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 보냈지 않습니까. 2011년 되면 나갑니다”
✓ “우리는 북측이 굳건하게 체제를 유지하고 안정을 유지한 토대 위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한테 거는데…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전쟁상황 자체를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뭐 갈 수 없습니다”(이상 노무현)

⇨ 북한의 ‘국가보안법 폐지·駐韓미군 철수’ 동조, 北 체제 인정 및 군사비밀인 ‘작계 5029’ 언급 등
국가안보 소홀

✓ “NLL문제, 그것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헌법문제라고 나오고 있는데 헌법문제 절대 아닙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습니다”

✓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경제 지도를 덮어 그려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큰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입니다”(이상 노무현)

⇨ 남북기본합의서 등을 통해 남북이 서해경계선으로 확인한 NLL을 무시, 북한의 NLL 무력화 빌미를 제공 

✓ “나는 지난 5년 동안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왔고, 국제무대에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 주문이 많죠. 근데 그것은 되도록 가서 판 깨고…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이상 노무현)

⇨ 우리의 최대 안보현안인 북핵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北 입장 옹호’·논의 회피 등의 위험한 안보관 표출

 

 



 

 

3 ㅣ 대못박기·협상입지 약화 자초 등 國益 저해

✓ “(공동선언 서명과 관련) 서울에 외국통신 600여 개가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늦게라도 되어야 내일 아침신문에도 나오고 전 세계에 나오고 나서, 서울에 가야됩니다”

✓ “어떤 정부가 들어오더라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길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이상 김대중)

✓ “내가 원하는 것은 시간을 늦추지 말자는 것이고… 또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 뒷걸음질치지 않게… 쐐기를 박아놓자”(노무현)

⇨ ‘보여주기 위한 성과 도출' 욕구로 합의이행 부담을 次期정부에 전가,
차기정부의 역할과 입지를 축소시키는 행위

✓ “북쪽 노동력은 중국보다 훨씬 우수하고 노임도 안 비싸고요, 경쟁력이 훨씬 있습니다. 남측 기업가들이 노리는 것은 북쪽 노동력의 우수성과 노임이 높지 않다는 것, 이걸 이용해서 세계로 투자하는 겁니다”(김대중)

✓ “조선공업 같은 것은 우리 남측을 위해서 돌파구를 열어주셔야 됩니다. 우리도 점차 중국에서 푸대접을 받기 시작하거든요. 조선부품이라든지, 우리도 중국 아닌 다른 쪽으로 가야 됩니다”

✓ “남측에서 학자들이 도로 닦는 데 90조가 들어가느니 하는데, 다 헛소리라고 나는 보는 것입니다. 북측은 국유토지이기 때문에 남측에 건설하는 도로의 10분의 1 정도면 건설할 수 있거든요”

✓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만든다는 데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반대를 하면 하루아침에 인터넷에서 바보가 되는 겁니다. 이제는 기업 하는 사람들이 북측과 같이 손잡고 가야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이상 노무현)

⇨ 「남북경협 = 북한의 시혜」라는 인식을 노출하면서 인터넷 여론을 과신,
우리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경협 관련 북한의 입지를 강화


4 ㅣ 북한의 對外인식에 동조, 외교적 문제 야기 소지

✓ “분명히 얘기를 하는데… BDA 문제는 미국의 실책인데… 북측에 손가락질하고 북측보고 풀어라 하고,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 “뭐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인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절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저항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 “지난번에 일본대사가 이임하면서 찾아 왔길래… 당신들 요구가 뭐냐 물었더니 사람 돌려달라. 다 돌아갔잖냐 했더니 더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증거가 있냐 이랬더니. 하여튼 못믿겠다는 말만 하는 겁니다”(이상 노무현)

⇨ 북한의 명백한 불법행위로 인한 BDA 문제를 정당화시키고, 일본의 납치 문제 관련
北 주장을 대변하는 등 북한의 對外인식에 동조, 韓美日 공조 훼손

✓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 미국 제끼고… 얘기했음. 몇 번 말로 하니까 안된다 그래서 보고서를 써내라고 지시했습니다”

✓ “우리는 경수로 꼭 지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경수로 문제 뭐 그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협력할 것입니다”(이상 노무현)

⇨ 북한의 「AF」(94.10) 파기로 인한 ‘경수로 건설’ 중단과 관련 우리 측 단독으로 건설 가능성을 제시,
공개 시 우리와 美·日과의 갈등 유발 가능성

✓ “김 위원장께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문만 열어놓는다면 미국이 이에 상응한 관계개선 조치를 속도를 내서 취하도록 계속 재촉할 것입니다”

✓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남과 북이 주도해서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공표하게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이상 노무현)

⇨ 북핵문제 해결이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성급한 평화체제 논의를 先 제기

 

 



 

 

5 ㅣ 김정일에 대한 지나친 ‘저자세’로 국가 품위 손상

✓ “(김정일의 駐韓美軍 용인 발언에 대해) 좌우간 김 위원장 존경합니다. 민족을 위한 탁월한 말씀을…”(김대중)

✓ “위원장하고 김대중 대통령하고 6·15 때 악수 한 번 했는데, 남쪽 경제에 수조원, 수십조원 번 거거든요. 내가 분계선을 넘어선 사진으로 남측이 아마 수조원 벌었습니다”

✓ “(김정일이 訪韓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하자) 남측은 데모가 너무 자유로운 나라라서 모시기도 그렇게… 우리도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이상 노무현)

⇨ 국가원수로서 품격을 잃은 자세로 ‘김정일 눈치 보기·비위 맞추기’ 행태 및
‘김정일 訪韓 간청’ 등 국가 위신 실추

* 기타 ‘위원장님’ 호칭(3회. 노무현), 경박한 단어(“임기 마치고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할 수 있게…”
“일본하고도 아니꼬와도 문제를 풀고 가야 합니다” 등 노무현) 사용,
대통령 자신을 ‘저’(1회. 김대중)로 표현하는 등 국가원수로서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말 실수」도 빈번.

 

2. 「대화錄」 중 주요 현안에 대한 김정일의 언급 내용


※ 대부분 북한의 기존 입장 고수, 현안 관련 일부 전향적인 태도는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 희석 및 회담 주도를 위한 작위적인 발언으로 평가

 


 

 

 

 

[김필재 파일] '낮은단계 연방'? 국체변경 급진전

한국 모든 영역 진출한 종북세력, 누구누구? 

 

  • 최종편집 2013.03.16 15:38:24
  •  

     

    한국(韓國)사회 모든 영역에 진출한

    '종북(從北)세력' 해부

    從北세력, '낮은단계연방제' 통한 국체(國體)변경 가능성 높아

    金泌材

        
     


    ▲자유베트남은 민족주의자-평화주의자로 위장한 5만명의 간첩에 의해 패망했다. 사진은 1966년 5월 수도 사이공에서 열린 反戰시위 장면.


     

     


    1. 90년대 후반 간첩과 핵심 친북(親北)세력 4~5만 명으로 추정

     

    ■ 1997년 2월 <경향신문>은 대검 공안관계자의 발언을 인용, “정보기관이 파악한 북한에서 날아오는 전파나 北으로 가는 전파수로 미뤄 볼 때 대략 4만~5만 명의 간첩 및 親北세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대검 관계자는 황장엽 씨의 ‘간첩 5만 명 암약설’과 관련해 이 같이 밝히고 “이 5만 명은 고정간첩과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까지 포함한 숫자”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정간첩 1명당 10명의 부화뇌동자가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5만 명이라는 숫자는 이 같은 근거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90년대 중반 안기부는 국내 左翼(좌익)세력을 총 4만2천명으로 파악했다. 구체적으로 대학 등 학원가에 1만8천명, 노동계 1만 명, 재야·종교단체 5천5백 명, 교육·문화·언론계에 8천5백 명이었다. 이들 중 핵심세력은 1만2천명∼1만5천명, 적극 동조세력은 3만 명. 이념성향별로는 주사파 등 NL계는 2만7천명, 사노맹등 PD계는 1만5천명으로 보았다.

    2010년 5월20일 천안함의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발표하는 날 대한민국 국민의 30% 정도가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 30% 국민은 북한과 관련된 설문조사에서 항상 從北적인 태도를 보이며, 선거에서도 左派정당을 지지한다.



    2. 국내 從北세력의 기본 이념 노선

     

    ■ 국내 從北세력의 기본노선은 ‘민중민주주의’와 ‘주체사상’이다. ‘민중민주주의’는 북한의 對南적화 노선인 ‘인민민주주의’와 같은 의미이다. ‘인민민주주의’는 공산주의 前 단계에 나타나는 사회주의 과도기 정권이다. ‘인민민주주의’를 1980년대 중반부터 남한 내 從北운동권 세력들이 ‘민중민주주의로’ 바꾸어 불렀다. 그래서 운동권 세력이 자신들의 이념적 노선을 ‘인민민주주의’로 부르건 ‘민중민주주의’로 부르건 간에 최종 목표는 공산주의이다.

    ■ 從北세력은 북한의 주체사상에 입각해서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국보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국정원·기무사 등 공안기구 해체, 사상범 석방, 연방제 통일, 3대 부자세습 인정 등 북한 정권의 주장과 동일한 요구를 하고 있다. 따라서 從北세력은 자유민주주의와 反共을 國是(국시)로 하는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의 對南赤化노선을 추종하며, 국가의 左傾化(좌경화)를 구조화시켜 國體(국체)를 변경하려는 諸(제) 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3. 北대남공작 조직 225국과 남한 내 ‘從北지하당’ 계보

     

    ■ 북한은 대남적화 노선인 인민민주주의 혁명전략에 따라 대남공작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주요 대남공작 조직을 알아본다. 북한의 노동당 산하 對南 조직으로는 ‘통일전선부’, ‘대외연락부’(現 225국), ‘작전부’, ‘35호실’ 등 4개의 공작부서가 있었다. 그리고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 ‘국가안전보위부’ 등이 존재했다.

    2009년 ‘작전부’와 ‘35호실’을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과 통합해 ‘정찰총국’(신설)을 조직했으며 ‘대외연락부’는 노동당 내각 산하로 소속을 변경하면서 ‘225국’으로 조직명을 변경됐다. ‘225국’은 그동안 남한 내 지하당 구축을 주도해온 핵심조직이다.

    ■ 6·25전쟁 이후 남로당은 와해됐지만 그 잔존 세력은 북한 노동당의 지도성을 인정하는 ‘지하당’ 건설 사업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지하당의 핵심지도부는 공안당국의 적발로 그때그때 조직이 와해됐다. 그렇지만 이념적, 역사적 맥은 지금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을 보면 아래와 같다.

    ▲1964년:제1차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1967년:동백림(동베를린) 사건: 홍세화 現 진보신당 대표 연루
    ▲1968년: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 한명숙 前 민통당 대표 연루
    ▲1979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이학영 민통당 의원 연루

    ▲1992년: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이철우 민통당 당가 작사자 연루(북한 노동당 남한 현지 입당 당시 김일성에게 충성맹세)

    ▲1994년:구국전위 사건
    ▲1999년: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민혁당은 반국가단체, 통진당 이석기 의원 연루

    ▲2006년:일심회 사건: 통진당 김제남 당선자 연루, 판결문에 31번 김제남 언급

    ▲2011년:왕재산 간첩단 사건
    북한의 대남공작 기관 225국이 왕재산 조직에 2010년 7월부터 2011년 5월까지 5차례에 걸쳐 민노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 통합' 지령을 내렸다.

     


     


    4. 국내 從北세력의 계파별 혁명론

     

    ■ 국내 從北세력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북한을 추종하는 ‘NL주사파’(National Liberation),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는 ‘마르크스-레닌파’(PDR파: People's Democracy Revolution, NDR파: 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 ‘트로츠키파’(Trotsky) 등으로 分派(분파)되어 있다.

    먼저 NL주사파란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북한의 對南혁명론인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론을 수용했다. 한국 사회의 공산화 혁명을 성취하려는 세력을 말한다. NLPDR파, NL(민족해방)파, 주사파 등으로 불리는데 관변자료에 따르면 주사파가 국내 운동권의 9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활동 중인 대표적 조직으로는 舊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집행부와 이의 대체 조직인 6·15공동선언실천청년학생연대(청학연대), 범청학련(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남측본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및 親北통일전선체격인 한국진보연대, 민생민주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등이다.

    ■ PDR파는 ‘민중민주주의혁명파’라는 의미로 PDR론에 의해 남한을 사회주의화하려는 세력을 지징한다. 주로 학원계와 노동계, 문화예술계, 학계 등에 포진해 있다.

    ■ NDR파는 민족민주혁명에 의해 남한사회를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을 지칭한다. 트로츠키파는 러시아 공산혁명가인 트로츠키(Leon Trotsky)의 혁명노선(영구혁명론)에 입각해 남한 공산화혁명을 획책하는 국제 사회주의혁명 세력을 지칭한다.

    이처럼 다양한 종북-좌파세력 분파가 있지만 공통점은 국보법 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 통일이다. 결국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건설하자는 세력이다.  


     
    5. 左派성향 학생운동권 계보: 8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1.전민학련(전국민족학생연맹): 1981년 결성
    2.전학련(전국학생총연합): 1985년 결성
    3.삼민투위(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을 위한 투쟁위원회): 1985년 결성
    민통당 강기정-김경협 의원, 통진당 오병윤 의원 연루

    4.민민투(반제반군부반파쇼민족민주투쟁위원회): 1986년 결성
    5.구학련(구국학생연맹, <자민투>의  非공개 ‘주체사상’ 조직): 1986년 결성
    김기식 민통당 의원이 구학련 사건 연루자
    6.자민투(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  1986년 결성
    7.애학투련(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 1986년 결성
    8.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987년 결성
    민통당에만 8명(김태년, 박홍근, 이인영, 임수경, 오영식, 우상호, 정청래, 최재성)

    9.범청학련남측본부(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남측본부):1992년 결성
    10.한총련(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 1993년 결성: 통진당 김재연 의원
    11.한대련(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2005년 결성

     

    6. 從北세력 연대체: 한국진보연대를 중심으로

     

    ■ 從北세력은 현재 우리 사회 거의 전 영역에 진출해 있다. 시민단체로는 한국진보연대, 노동계-교육계로는 민노총과 전교조, 학생운동권 조직에는 한대련이 있다.

    한국진보연대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결성된 從北단체의 회의체다. 한국진보연대에는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노당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적단체 한총련, 범민련 남측본부 등 국내 유명 從北단체들이 거의 모두 참가해 있다. 노동계 단체로는 민노총이 참관단체로 한국진보연대에 들어가 있다.

    참고로 한국진보연대는 2007년 10월3일 광화문에서 개최한 간첩-빨치산 추모제(‘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를 개최했다. 2008년도에는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당시 광우병대책회의를 주도한 단체가 한국진보연대였다.

    한국진보연대의 전신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인데, 이 단체를 줄여서 전국연합이라 불렀다. 전국연합의 지역조직 중에 경기동부연합이 있었는데, 이 경기동부연합이 바로 통합진보당 당권파들이 주로 포진해 있는 조직이다. 그래서 전국연합의 주요 인사들은 그동안 민노당과 통합진보당의 상층조직을 장악해왔다.  

    ■ 한국진보연대 참관단체인 민노총은 국내최대 노동계 단체이다. 조합원 수만 80만 명에 달한다. 민노총은 불법-폭력 파업을 주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과거 2006년 발생한 대한민국 노사분규 가운데 민노총이 주도한 비율이 86%였다.

    민노총은 줄곧 국보법 폐지, 주한미군철수, 연방제통일을 투쟁의 기본노선으로 하고 있다. 민노총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도에 국고보조금을 76억 1천만 원을 받았다. 당시 노동부의 지원명목은 ‘노사협력지원사업의 일환’이었다고 되어 있다.

    ■ 민노당과 그 후신인 통합진보당은 이처럼 한국진보연대 등 從北시민단체, 그리고 국내최대 노동계 단체인 민노총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민노당은 舊(구)강령에서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라고 했던 당이다. 그래서 그런지 창당이후 각종 간첩 사건에 당직자들이 연루되어 왔다.

    과거 민노당이 2009년 작성한 문건을 보면 이당의 2017년 목표가 소위 진보집권을 통한 정권 창출이다. 통합진보당 사람들은 이게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2015년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기 때문이다. 종북세력의 한반도 적화의 타임라인은 미국과 북한의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 철수, 그 다음이 바로 연방제통일이다.

     


    ▲출처: 조갑제닷컴 발간 '종북백과사전'/金泌材


     

     


    7. 4.11총선 이후 국회 從北化 상태


    ■ 4.11총선 결과를 보면 국회의 종북화가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과거 각종 시국-공안사건 연루자들을 포함해서 利敵단체-反국가단체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대거 국회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 민통당의 경우 248명(지역구 210명, 비례대표 38명)의 총선 출마자 가운데 68명(27.4%)이 전과자였다. 이중 44명이 당선되어 민통당 당선자(비례대표 포함 총127명)의 34.6%가 전과자로 나타났다. 44명의 당선자 가운데 국보법과 집시법 위반자는 각각 20명이었다. 국보법과 집시법을 모두 위반한 당선자는 11명이었다. 반공법 위반자는 2명으로 한명숙 前 대표와 이학영(前 YMCA 사무총장) 당선자이다.

    ■ 통진당(진보당)은 75명(지역구 55명, 비례대표 20명)의 총선 출마자 가운데 40명(53.3%)이 전과자였다. 이들 가운데 8명이 당선되어 당선자(비례대표 포함 총13명)의 61.5%가 전과자로 나타났다. 전과전력이 있는 통진당 당선자 가운데 국보법 위반자는 4명(김재연, 노회찬, 오병윤, 이석기), 집시법 위반자는 5명(김미희, 김재연, 박원석, 오병윤, 정진후)이며, 국보법과 집시법을 모두 위반한 당선자는 2명(김재연, 오병윤)이었다.

    1. 1960년대: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 연루자: 한명숙(민통당)
    2. 1970년대: 남조선민족해방준비위원회 사건 연루자: 이학영(민통당), 이재오(새누리당)
    3. 1980년대: 利敵단체 삼민투위(三民鬪委) 연루자: 강기정·김경협(민통당), 오병윤(통진당)
    4. 구국학생연맹(구학연: 主思派 지하조직) 연루자: 김기식(민통당)
    5. 1990년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연루자: 이석기(통진당)
    6. 利敵단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신: 김재연(통진당)
    7. 1990년대: 남한사회주의자노동자동맹(사노맹, 反국가단체) 사건: 은수미(민통당)
    8. 1980년대: 利敵단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신: 김태년, 박홍근, 이인영, 임수경, 오영식, 우상호, 정청래, 최재성(민통당) (총18명)
    (2012-09-24 보도)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

     

     

     

     

    "개XX야, X새끼야. 재판장 X새끼 너 죽을 줄 알아"..나라꼴이 이 모양!

    판사에 돌진 "재판장 X새끼! 미국놈의 개야"

    북한 인민복 입고 나타난 노수희 소속 종북단체 범민련 패거리들의 난동!

     

    • 최종편집 2012.06.09 17:36:31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범민련 관계자들. ⓒ연합뉴스

     

     

     

    종북(從北)-반미(反美) 단체인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의 간부가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개XX, 너 죽을 줄 알라”며 욕설을 퍼붓고 재판부를 향해 돌진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505호 법정에서는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74) 의장과 이경원(46) 전 사무처장, 최은아(39) 선전위원장 3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렸다.

     

    - 재판부 선고 -

    ▲ 이규재, 징역 3년6개월과 자격정지 4년
    ▲ 이경원,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
    ▲ 최은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과 자격정지 2년6개월

     

    이들은 2003년부터 일본과 중국에 있는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지령을 받은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작년 12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최씨는 집유) 항소심 재판을 받아 왔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간의 이른바 '야권연대'를 성사시켰다는 이른바 시민사회대표들 속에 종북주의자 노수희가 당당히 서있는 모습.ⓒ 연합뉴스 ⓒ

     

     

    재판부는 이들에 대한 보석과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난동’이 시작됐다. 재판을 지켜보던 범민련 편집위원장인 최동진과 일부 관계자들이 재판장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삿대질을 하며 고성을 지른 것.

    “개XX야, X새끼야. 재판장 X새끼 너 죽을 줄 알아. 미국 놈의 개야.”

    최씨는 경위의 제지를 뿌리치며 재판부가 앉아 있는 법대(法臺) 쪽으로 돌진하기도 했다. 최씨가 욕설을 퍼붓는 동안 방청객 일부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계속해서 외쳤다.

     

    방청객 가운데는 간첩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7년을 복역하다 출소한 뒤 지난 2001년 “강압적인 전향은 무효”라고 선언한 장기수 김영식(79)씨도 있었다.

     

    그는 1959년 북한에서 간첩 안내원으로 선발돼 밀봉교육(간첩에게 하는 집중교육)을 받고 동해안으로 침투한 인물이다. 김씨가 재판부를 향해 “미국 놈의 개다”라고 외치는 장면도 목격됐다.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난동을 부린 범민련 간부와 회원들을 법정모욕죄로 사법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이 지난 5일 판문점을 방문해 북한 군 간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김정일 사망 100일을 맞아 무단 방북한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은 지난 5일 판문점을 방문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은 지난 4.11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양당연대 결성에 한 몫을 담당했었다.

     

    7일 조선중앙통신은 “(노수희가) 4일부터 7일까지 판문각, 정전협정 조인장 등을 참관하고 군사분계선 남측지역에 구축된 콘크리트 장벽을 봤다”고 전했다.

     

    통신이 공개한 사진 중에는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이 회색빛 인민복을 입고 왼쪽 가슴에 배지를 단 채 북한군 간부의 설명을 듣는 장면도 있었다.

    “(노수희는) 김일성 주석이 마지막으로 남긴 친필비를 주의 깊게 봤다. 6일에는 개성시 영통사를 방문해 고려태조 왕건왕릉과 영통사, 선죽교, 숭양서원 등 역사유적들을 참관하고 박연폭포의 광경을 부감(俯瞰·내려다봄)했다.”

     

     


    ▲노수희가 바친 화한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글이 보인다. ⓒ 연합뉴스 ⓒ

     

     

    통일부의 방북 승인 없이 북한에 간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은 지난 3월5일 김일성광장에 내걸린 대형 김정일 초상화 앞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쓴 조화를 바쳤다.

     

     

    다음날에는 김일성 생가인 평양 만경대를 찾아 방명록에 “국상(國喪) 중에도 반인륜적 만행을 자행한 이명박 정권 대신 사과하러 왔다”고 글을 남겼다.

     

    같은 날 평양 개선문에서는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님”이라는 가사의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중인 종북주의자 노수희가 북한 안내원의 손을 잡고 금강산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북측의 융숭한 접대에 아주 신이 난 모습이다.ⓒ
 
 
 
 
 
좌파였던 서경석 목사가 왜 지금 보수가 되었나?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크리스천투데이 DB

 

 

 

 

 

 

 

 

 

 

 

 

 

 

1.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나?  

 

안녕하세요. 저는 65세의 중늙은이 서경석 목사입니다.

저 같은 60대는 이러다가 나라가 종북좌파(북한추종세력)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까 하고 걱정합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저 같은 사람을 꼴통보수라고 말합니다. 자기들은 우파도 좌파도 아니고 이념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싫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나꼼수에 환호하고 결과적으로 나라가 좌파 손에 넘어가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그래서 왜 나이든 사람들이 이토록 나라를 걱정하는지를 제 이야기를 통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2. 대한민국에서 황당한 일이…
 
어떤 분이 제게 <미꾸라지 진짜 용된 나라 대한민국>이란 소책자를 주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우리나라가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SONY를 포함한 일본의 10대 전자회사가 낸 흑자를 다 합쳐도 삼성SDI가 낸 흑자보다 못하고 세계 TV판매의 1,2등은 삼성과 LG이고 인천국제공항도 6년 연속 세계최우수공항상을 받았고 삼성전자는 영업이익 17조원으로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를 넘어섰고 IT기업 중 세계1위가 되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사와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또 한국은 세계2위의 철강대국이고 세계10대 경제대국입니다. 아프리카 53개국의 연간 GDP가 6천억불인데 한국의 연간 GDP는 6천7백억불로 아프리카 전체보다 많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김정은으로 3대세습을 했고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금수산 궁전을 짓는 동안 3백만명이 굶어죽었고, 김정일 상중(喪中)에 탈북하면 3대를 멸족시키겠다고 협박하는,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작년 6월30일 수원지방법원 제410호법정에서 종북(從北)까페인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운영자인 황길경 피고는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으면서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를 외쳐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 작년 8월 20일 서울시청 앞에서 보수 대학생단체가 북한인권문제 다큐멘타리 영화 '김정일리아'를 상영하고 있었는데 좌파시위대 4천명이 서울광장으로 몰려와 전선을 끊어 이 영화의 관람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 종북좌파 정당인 통합진보당은 지금 원내교섭단체를 꿈꿀 만큼 세력이 강대해 졌습니다.
 
3. 왜 한국에서 종북좌파 세력이 강대한가?
 
이 이유를 알려면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87년 6월 민주화 대항쟁 당시 민주화를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학생세력이 대부분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세력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혹독한 군사독재 치하에서 민주화세력은 강고한 투쟁을 하기 위해 흑백논리로 무장해야 했는데 한국상황에 맞는 논리가 없었기 때문에 학생운동권은 이 논리를 맑스 레닌주의, 김일성 주체사상, 마오이즘 등에서 차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운동 안에서는 민중신학이라는 흑백논리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주체사상론(NL)이 맑스레닌주의(PD)보다 훨씬 더 유연했고 그 결과 NL파가 학생운동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민주화 대항쟁 때 한국을 민주화시킨 세력이 바로 이 종북(從北)좌파세력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종북좌파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도 아직 우리나라가 군사독재 시절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승리의 경험을 한 사람은 기(氣)가 셉니다. 이 세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각계로 진출하여 시민운동을 좌파로 만들고, 교사가 되어 전교조를 만들고, 노동자가 되어 민노총과 민노당을 만들고 기자가 되어 언론노련을 만들었으며 학계, 정관계, 법조계로 진출했습니다. 이들은 규모도 3-40만명이 되는 대한민국 최대의 세력입니다. 그리고 기회있을 때마다 반미(反美), 반한(反韓) 투쟁을 전개해 왔습니다. 미순이 효순이 촛불시위, 대통령 탄핵반대운동, 맥아더동상 철거사건, 평택 미군철수투쟁, 한미FTA 반대투쟁, 광우병 촛불시위, 제주도해군기지반대투쟁, 희망버스 등 대한민국을 흔드는 운동을 전부 주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민주통합당도 말 바꾸기를 하면서까지 이들의 영향권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6.25때 대한민국을 구해준 미국을 적대하고 6.25를 일으킨 북한의 대남공작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4. 나도 친북좌파였다.
 
제가 왜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하는가? 저도 젊은 시절 친북좌파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 2학년 때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CCC 경제복지회에 가입했는데 그곳에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남편인 박성준씨를 만나 그분으로부터 사회주의 비밀지도를 받았고 그 결과 사회주의를 신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통혁당사건이 터지면서 박성준 선배는 징역 15년형을 언도받았고 저는 잡혀갔다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훈계방면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유신체제와 싸우다가 민청학련사건으로 징역 20년형을 언도받았고, 산업선교 활동을 하다가 YH사건과 동일방직사건으로 두 번 더 노동자와 함께 감옥에 갔습니다. 이러한 민주화 투쟁 속에 있으면서도 제 사고의 틀은 여전히 사회주의였습니다.
 
1982년 저는 미국으로 유학 가서 88년까지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막 도착했을 때 교포사회에서는 북한방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을 일주일간 방문한 사람은 북한의 실상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가끔 아들 집에 한 달간 머물다 온 노인이 있었는데 이런 분들은 북한의 실상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계셨습니다. 제가 다닌 뉴욕 부르클린 한인교회에도 그런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한 밤중이면 아들과 단둘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아들로부터 북한의 진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할아버지가 제게 아들이 들려준 북한의 진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은 북한이 거짓으로 가득 찬 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서야 미망(迷妄)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더 이상 어두운 뒷골목에서 음모가(陰謀家)의 삶을 살지 않고 햇볕이 내리 쪼이는 개명천지(開明天地)에서 맑은 대기를 호흡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88년초에 귀국해서 운동권의 연구기관인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원장서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원에서 파악해보니 일반 학생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독학생운동까지 전부 김일성 주체사상파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독교단체의 성명서들도 전부 북한방송을 베낀 것이었습니다. 대학 캠퍼스를 가면 “미 제국주의자의 각을 뜨자”는 식의 충격적인 구호가 난무했습니다. 저는 처음 6개월간 후배들의 눈치만 살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내가 이들을 의식화시켜 진보운동을 하게 했기 때문에 지금 이들이 주사파가 된 데에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운동권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후배들에게 바른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기독교운동은 성경말씀에 기초해서 해야지, 주체사상론에 입각해서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후배 한 사람을 몰래 불러 사회주의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화근이 되어 후배들이 저를 개량주의자라고 비판하면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 직에서 내쫓는 운동을 했고 결국은 진보기독교 진영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새로 시작한 운동이 경실련이었습니다.
 
저는 경실련을 시작하면서 운동권의 운동방식을 전부 뒤집었습니다. 운동권이 사회주의를 지향할 때 경실련은 시장경제체제를 주장했습니다. 운동권이 비합법운동을 할 때 우리는 합법운동을 주장했습니다. 운동권이 민중운동을 하면 우리는 보통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민운동을 했습니다. 운동권이 계급투쟁을 할 때 우리는 사회적 공공선을 추구했습니다. 운동권이 기업을 적으로 돌릴 때 우리는 기업가와 노동자를 합쳐 생산자계층이라고 한다면 생산자 계층의 편에 서서 불로소득 계층을 비판했습니다. 경실련이 주장한 경제정의는 평등이 아니라 사람들이 균등한 기회를 누리며 공정하게 경쟁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실련의 노선은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경실련이 창립된지 5년이 지난 94년에는 경실련이 한국 사회운동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94년에는 남아있던 재야운동이 시민운동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출범한 단체가 <참여연대>입니다. 그 후부터 시민운동 안에서는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주도권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합니다. 경제정의, 시민참여, 분권, 지방자치와 같은 영역에서는 생각의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문제와 노동문제가 나오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참여연대는 무조건 북한편을 들고 노동자 편을 들었지만 경실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울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하면 참여연대는 노동자 편을 들었고 경실련은 왜 시민들의 발을 묶냐며 시민의 편에 섰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경실련은 과거 운동권과 단절하고 새출발을 했지만 참여연대는 과거 운동권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5. 낙선낙천운동은 좌파시민운동의 시작
 
그러다가 2000년 낙선낙천운동을 고비로 참여연대가 시민운동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가 주도한 낙선낙천운동은 경실련운동의 철학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경실련은 진리는 여론조사나 투표 등 다중의 여론으로 결정되면 안 되고 양식있는 지식인들의 이성적 토론으로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실련 상임집행위원회는 한 번도 표결로 의사를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낙선낙천운동은 국민의 지지가 높으니 이 운동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운동권이 민주집중제라 하여 민중이 투표로 한 결정은 전부 옳다고 주장했는데 낙선낙천운동은 이러한 옛날 생각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경실련식(式) 시민운동은 낙선낙천운동 이후 포퓰리즘적 운동으로 대치되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포퓰리즘이란 말이 낙선낙천운동 이후에 나오게 된 것도 전혀 우연이 아닙니다. 또 낙선낙천운동은 잘못된 선거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당장에는 인기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이후의 시민운동은 국민을 향해 법과 질서를 호소할 수 있는 도덕적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낙선낙천운동의 독선(獨善)이었습니다. 시민운동은 겸손해야 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진리도 자기가 결정하지 않고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해서 국민이 결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낙선낙천운동은 법위에 군림하고 스스로 판관(判官)이 되어 정의의 잣대를 마음대로 휘둘렀고 자기들이 정한 낙선자 명단은 무오(無誤)하다고 하여 일체의 수정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낙선낙천운동은 편향적인 특정정당 지지운동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시민운동은 그 후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시민운동이 권력화 되고 내부의 언로(言路)가 막혀 낙선낙천운동에 대한 비판이 일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시민운동 내에서 낙선운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저와 이석연변호사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낙선낙천운동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직 취임을 거부당했습니다.
 
한국역사에서 낙선낙천운동처럼 크게 홍보가 된 시민운동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달 내내 모든 언론의 톱뉴스였으니 말입니다. 어떤 시민운동가는 묘비에 낙선낙천운동을 했던 사람이라고 쓰겠다고 말할 정도로 대성공한 운동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운동은 시민운동의 묘혈을 판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 이후 시민운동은 완전히 좌편향으로 갔고 그 결과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이 운동의 최대의 수혜자이지만 사실은 시민운동의 몰락의 책임을 져야할 사람입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국가보안법을 “아무런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교도소에 처넣어 피비린내 나는 고문으로 용공을 조작한 악랄한 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김용갑의원과 같은 사람을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낙선낙천운동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확산시켰습니다.
 
결국 민주화 대항쟁 때 학생세력이었던 386세대가 성장하면서 조성한 거대한 좌편향 흐름이 나중에는 경실련까지 삼키고 말았습니다. 저는 제가 창립한 경실련까지 포기하고 다시 좌파와 맞서는 운동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6. 친북좌파의 들러리가 된 좌파 시민운동
 
2002년말 미선이 효순이 촛불시위를 계기로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좌파 시민운동의 성격이 굳어집니다. 그 전에는 시민운동이 그렇게까지 좌파적이지 않았습니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은 단순한 교통사고입니다. 장갑차가 미선이와 효순이를 보지 못하고 치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총련, 민노총 등 친북좌파들은 이 사건을 성조기를 불태우는 반미운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당시 시민운동 지도자였던 박원순 변호사나 최열 사무총장은 처음부터 친북좌파는 아닙니다. 그래서 두 분은 한총련과 민노총을 비판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북좌파와 손을 잡고 반미운동을 전면에서 이끌었습니다.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종북좌파의 파도 앞에 결연히 맞서는 대신 그 파도 위에 올라탔습니다. 그 결과로 한국의 시민운동 주류는 종북좌파의 앞잡이가 되었고 세상사람들이 반미친북세력을 규탄할 때 시민운동도 함께 질타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박원순변호사나 최열총장이 김지하 선배처럼 이들을 비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가 미군의 단순한 교통사고를 가지고 도심을 무법천지로 만드는 시위를 합니까? 만일 우리나라가 아프리카의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내전(內戰)에 참전해서 5만명의 우리 젊은이가 목숨을 바쳤는데 그 나라에서 태극기를 불태우며 반한(反韓)시위를 했다면 우리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후 좌파 시민단체들은 종북좌파와 한통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이라크 추가파병을 반대하고,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했습니다.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이 우호적이었고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형편없이 가혹했습니다.
 
7. 맥아더동상 철거시도 사건과 평택 미군철수 시위
 
2005년 9월의 맥아더동상 철거시도 사건도 큰 획을 그은 중대사건입니다.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 전에는 우리국민이 우리나라에 친북좌파세력이 광범위하게 존재함을 몰랐습니다. 공산권이 망하고 북한도 비참한 상황 속에 있는데 한국에 어떻게 친북좌파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북좌파는 극우세력이 진보세력을 메카시즘적으로 공격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며 수천명이 모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없었으면 한반도가 김일성에 의해 통일되었을텐데 안타깝게도 분단되어 통탄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철거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 종북(從北)좌파 세력이 자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입니다.
 
저는 이들이 누구인지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전교조, 전농, 민노총, 민노당, 범민련, 한총련, 민중연대, 통일연대, 그리고 나중에 진보연대였습니다. 숫자도 3-40만명이 됩니다. 학생운동의 주사파가 나중에 교사가 되어 전교조를 종북좌파로 만들고 민노총을 종북좌파로 만들고 종북좌파 정당인 민노당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구(舊)좌파처럼 사회주의혁명까지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계급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세계화를 반대하고 반미친북의 입장에 서서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하고 미군철수를 주장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저는 박원순, 최열, 한완상 등 모든 시민단체 지도자들에게 메일을 보내어 맥아더동상 철거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답변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절감했습니다. 다음에는 나는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저도 한 달을 고민했습니다. 내가 종북(從北)좌파를 반대하면 틀림없이 후배들이 나를 보고 꼴통보수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수모를 감수하더라도 할 말을 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부터 저는 길거리에 나가 “친북좌파 척결이 시대정신이다”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그 다음부터 후배들이 저를 변절자, 꼴통보수라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좌파들이 평택 미군기지 철수를 주장하며 비무장 군인을 죽창으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평택까지 내려가서 규탄집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데모에 온 사람들은 거의 다 군복을 입은 재향군인 할아버지들이었습니다. 저는 전에는 군복입고 집회에 오는 재향군인들은 극우라고 생각하여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평택에서는 그분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친북좌파를 척결해야 한다고 말하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꼴통보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했다고 제가 꼴통보수가 된다면 저는 이제부터 당당하게 말하려고 합니다. 보수는 좋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자랑스런 보수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이명박 후보가 압승했는가? 그 이유는 맥아더동상 철거사건과 평택 미군철수시위 때문입니다. 친북좌파에 대한 공포심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친북좌파가 설치는 꼴을 봐야 하는데 그 꼴을 어떻게 보나 하는 생각에서 BBK 의혹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이명박 후보에게 묻지마 투표를 했습니다.
 
8.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광우병 촛불시위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진보진영은 종북좌파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는 영원히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변화를 시작한 곳이 민노당이었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같은 이들이 민노당 주류를 종북(從北)주의라고 비판하고 더 이상 그들과 당을 같이 할 수 없다며 뛰쳐나와 진보신당을 만들었습니다. 만일 그때의 분위기가 계속되었더라면 우리나라에서 종북좌파가 청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광우병 촛불시위가 터졌습니다. 이 촛불시위는 종북좌파들의 작품입니다. 강기갑, 천영세, 박석운, 오종렬, 한상렬 등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을 주동한 사람들이 그대로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동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 붉은악마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이 촛불시위가 성공하는 바람에 코너에 몰렸던 종북좌파 세력이 다시 진보세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좌파 시민단체들이 다시 종북좌파의 둘러리를 서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건입니다.
 
저는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조선족동포를 위해 단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한국에 온지 17년이나 된 조선족들을 추방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단식 25일째가 되어서야 법무부가 내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그 다음날로 청계광장에 나가 광우병 촛불시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매일 두 시간씩 두주일 동안 했습니다. 1인 시위를 하는 나에게 모멸감을 주기 위해 좌파들의 온갖 훼방을 놓았습니다. 호루라기를 계속 불어대는 사람,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 내가 연설을 할 때마다 내 앞에서 연설하는 사람, 나보고 변절자라고 소리치는 사람, 친일파라고 소리치는 사람..... 벼라 별 사람이 다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저를 보호하기 위해 서울조선족교회 교인 30명이 매일 저를 둘러쌌습니다. 이 기간 동안 모금을 했는데 삽시간에 수천만원이 걷혀 그 돈으로 아르바이트를 써서 서명운동을 했고 그 서명운동에 호응해서 1만명의 목사님들이 광우병 촛불시위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촛불시위는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변절자가 아닙니다. 변절은 좌파들이 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군사독재와 싸워 우리나라를 민주화시켰으면 그 다음에는 북한 세습독재와 싸워 북한을 민주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인권을 말하면 사람들이 꼴통보수라고 하고 변절자라고 합니다. 또 나는 친일파도 아닙니다.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중국으로 망명하셔서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국민훈장 애국장을 받으셨고 지금 두 분 다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에 모셔져 있습니다.
 
9. 청산되어야 할 종북좌파 세력
 
우리 역사에는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대로 있어도 세력으로서의 친일파는 청산되었습니다. 세력으로서의 군사독재세력도 청산되었습니다. 세번째로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 종북좌파입니다. 대표적인 종북좌파가 민노당(지금의 통합진보당)과 전교조입니다. 민노당이 김정일 추종세력이었기 때문에 민노당 핵심당원들이 일심회, 왕재산사건과 같은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도 민노당은 관련자 출당이나 대국민사과와 같은 조치를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민노당은 태극기에 대한 경례도 애국가도 절대로 부르지 않는 정당입니다. 다만 유시민씨 측과 합당하면서 태극기에 대한 경례는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애국가는 절대로 부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종북좌파는 낡은 보수세력이지, 진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합리적인 진보는 손학규, 김진표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손학규나 김진표도 종북좌파와의 연대를 끊어야 합니다. 만일 민주통합당이 종북좌파와의 연대를 끊는다면 저는 즉각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정치적 중립을 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이 종북좌파와 연대하는 한 나는 새누리당에 표를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재연/북한이 무력도발해도 맞불 놓으면 안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6/05/2012060501089.html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006128076&cp=nv

북한이 우리를 때려도, 우리는 북한을 때리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김재연

 

즉, 북한은 우리를 공격해도 되지만 우리는 북한을 공격하면 안된다는 이상한 궤변으로 북한정권 옹호

 

 













 


2013.03.22.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