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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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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짐승의 뿔·뼈·이빨이나 단단한 나무로 만든 놀이도구.
신라시대 주사위

신라시대 주사위

중국에서는 사이쯔[骰子]라 하고, 유럽에서는 다이스라고 한다. 정육면체로서 각 면에는 1∼6까지의 구멍점이 있으며 한 면의 가로·세로는 각 1cm가 보통이나, 여러 가지의 크기가 있다. 재료는 상아를 최고로 치고, 사슴뿔이 그 다음이다. 1(주사위 본문 이미지 1)의 대면(對面)이 6(주사위 본문 이미지 2), 2(주사위 본문 이미지 3)의 대면이 5(주사위 본문 이미지 4), 3(주사위 본문 이미지 5)의 대면은 4(주사위 본문 이미지 6)이며, 대면끼리의 합계가 7이 되도록 되어 있다.

주사위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이집트에는 이미 왕조시대(BC 3400∼BC 1150)에 현재의 것과 똑같은 것(상아·골제)이 있었고 이것이 그리스, 로마, 지중해 연안지방으로 전래되었다. BC 49년에 J.카이사르가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선언하고서 루비콘강(江)을 건너 로마로 진격했다는 고사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후일 유럽에서는 17세기경부터 매우 복잡한 다이스게임이 보급되었으며, 이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 퍼졌다. 인도에서도 인더스 문명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사위가 발견되었는데, 1의 대면 2, 3의 대면이 4, 5의 대면이 6으로 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육각기둥 모양의 나무조각의 각면에 문자를 새겨 이것을 굴려 신의(神意)를 점쳤다. 수(隋)·당(唐) 나라 때에는 현재의 것과 같은 주사위를 사용한 '쌍륙(雙六)'이라는 놀이가 있었고, 현종양귀비와 둘이서 주사위를 써서 쌍륙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이런 놀이가 있었다고는 하나, 놀이방식은 알 수가 없고, 조선 전기에 여성들이 주사위를 던져 숫자맞히기 등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1525년(중종 20) 형조판서를 지낸 조계상(曺繼商)이 승지를 지낸 이세정(李世貞)과 친교를 맺어 자주 만났는데, 그들은 이따금 쌍륙을 즐겼다고 하며, 한번 시작하면 주식(酒食)을 나누면서 밤늦게까지 놀았다고 한다.

정확하게 만들어진 등질(等質)의 주사위는 6개의 면이 고루 나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주사위를 던졌을 때 각 면이 나올 확률은 1/6이 되어야 제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러 차례 던졌을 때 어느 면이 나오는가 하는 것은 전혀 우연이지만, 되풀이하여 던지면 거기에는 어떤 규칙성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참조항목

다이스, 쌍륙,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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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주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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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oop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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