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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줄거리
nhh0**** 조회수 25,673 작성일2007.05.31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줄거리좀 알려 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복사해 와도 좋으니까 어쨌든 토요일 오후 3시까지만 답변 올려주세요~~

 

제발 절 살려주세요~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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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소설 - 박경리 '시장과 전장'


1964년 12월에 나온 박경리(朴景利)의 장편 『시장과 전장』은 전쟁과 이데올로기, 민중 등에 대해 60년대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객관적이며 진보적인 기록과 해석을 남긴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50년대의 반공소설류에서 크게 벗어난 구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1960년에 발표된 최인훈의 『광장』에 이어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소설 『시장과 전장』은 하기훈이라는 인물에 많은 비중을 쏟고 있다. 전형적인 코뮤니스트로 설정돼 있는 하기훈은 얼핏 보기에 이중성을 지닌 복잡한 인간형 같기도 하지만 작중 인물 중 누구보다도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때로는 '인간적인 코뮤니스트'로 부각되기도 한다.


  하기훈의 사고와 행동은 코뮤니즘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분명히 그러하다. 그러나 때로는 그는 그 틀에서 벗어난다. 이가화와의 관계, 동생 하기석과 제수 지영이, 나이어린 조카들을 대할 때, 소년병을 트럭에 태워줄 때, 눈먼 소녀에의 다정함 등에서 하기훈은 고정관념 속의 코뮤니스트에서 벗어난다. '인간 하기훈'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기본이 과연 어느 것인지 혼돈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시장과 전장』이 출간된 지 5개월쯤 뒤에 백낙청은 『신동아』1965년 4월호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하기훈을 모순투성이의 인물로 평가하며 그 원인을 "작가 자신의 일관된 구상과 지적 파악이 모자라는 데 있지 않은가 싶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코뮤니스트라면 행동과 사고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다분히 고정관념적인 시고방식을 토대로 하기훈을 평가했다.

박경리는 한달후인 『신동아』1965년 5월호를 통해 즉각 작자로서의 반론을 내놓는다.

"기훈은 언어나 동작으로 정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밝힌 일은 마지막까지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공산주의 조직 밑에서 철저히 훈련받은 인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냉소한다거나 회의한다거나 모순에 빠졌다는 것을 그의 언동을 통해서는 알 수 없게 되어 있고,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있어서 산사람이 가화에게 총을 쏘자 기훈도 산사람을 쏘아 죽이는, 바로 그 직전까지만 해도 기훈은 충실한 공산주의자로 되어있다".

박경리의 이 말은 '코뮤니스트 하기훈'과 '인간 하기훈'을 구분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코뮤니스트에게 인간의 얼굴을 갖게 한 것을 모순투성이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은 탓이라고 백낙청을 공박한 것이다.


  이 작품은 6.25를 불러온 이념대립-그 중의 한 축인 코뮤니즘의 맹목성을 파헤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여기서 코뮤니스트에 대칭되는 사상으로 작가는 자본주의도 아닌, 기독사상도, 민족주의도 아닌 아나키즘을 등장시키고 있다. 코뮤니스트 하기훈과 대립되는 아나키스트가 석산선생이다. 한때 제자와 스승 사이였던 두 사람은 만주에서의 동고동락을 비롯, 6.25 직전까지 부자지간처럼 서로 스스럼 없이 지내는 사이를 유지한다. 함께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어 기훈은 코뮤니스트의 길로, 석산은 아나키스트의 길로 방향을 달리 했지만 사제지간의 정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사상적 충돌에서는 양쪽이 전혀 물러서지 않는다.


  아나키스트 석산 선생은 부르주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맹점을 지적하면서, 제3의 세력으로서의 아나키즘의 필연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하기훈에겐 이미 설득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석산 선생은 마르크스와 아나키스트 바쿠닌을 대비하면서 또 다른 하나의 권력에 불과할 뿐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비난한다. 그는 아나키즘의 이상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하기훈은 이를 비웃으면서도 석산 선생을 미워할 수가 없다. '환상에 허우적거리는 이 늙은이를' 그는 사랑하고 있다. 6·25가 터진 직후 인민군이 점령한 서울에서 석산 선생은 그들에게 잡혀온 몸으로 하기훈과 다시 또 대면한다. 여기서 하기훈은 석산 선생에게 인민 공화국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지만 석산은 완강히 이를 거절한다. 인민재판에 붙이라면서 아나키스트로서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끝내 기훈이 "어릿광대같은 말씀을 그만해 두시지요"라고 말하자 석산은 발끈한다.

"어릿광대라구? 이놈아, 난 어릿광대라도 인간된 편이 낫다. 북소리에 잠이 깨어 일터로 나가고 북소리에 잠자리로 들어가는 인간 기계보담은."


  아나키즘은 그 성질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모두 대립되고 있지만, 개성과 자유를 고조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시즘과 더욱 극단적인 충돌을 보이고 있다. '봉건체제의 붕괴'라는 목표 아래 마르크스와 바쿠닌은 한때 뜻을 같이 했다. 그러나 그후 마르크시즘의 권위주의적 색채가 노골화하면서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시스트간의 논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소설 속의 석산과 기훈의 논쟁은 바쿠닌과 마르크스의 대리전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시장과 전장』에서 철저히 훈련된 코뮤니스트 하기훈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이와 대립되는 사상으로 아니키즘을 설정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작가 박경리는 석산 선생이 하기훈의 모순과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방법으로 6·25 자체의 모순과 허점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임헌영이 그의 평론집 『분단시대의 문학』 (태학사, 1992)에서 소설 『시장과 전장』에 나오는 제3의 세력을 민족주의로, 석산 선생을 민족주의자로 규정한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의 어디에도 민족주의나 민족주의자는 나오지 않는다.



박경리의 삶과 문학  


 박경리의 문학적 삶에는 고통과 즐거움이 같이 있다. 박경리의 경우 이 희비의 편차가 어느 작가보다도 크다. 박경리는 종종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만큼 작가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양과 질은 무한하고도 질겼다. 불행한 출생, 남편과 아들을 잃는 슬픔, 그리고 암 선고 등의 여러 불행이 그의 삶 주변을 집요하게 서성거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고통을 딛고 작가가 뿜어낸 소설적 향기는 짙은 것이었다. 박경리의 『불신시대』, 『전장』, 『토지』 등이 없는 한국 소설사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문학사적 위치는 지고하다.


따라서 박경리가 올라선 자리까지 따라 올라가는 것은 벅찬 일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박경리가 현재 올라선 자리는 높은 곳에 있고, 또한 그곳에 이르는 통로는 험난한 길로만 채워져 있다. 이제 그 길을 가야한다.


1. 불합리한 출생과 회의주의


작가 박경리는 1927년 10월 28일 경남 충무 출생이다. 그의 출생은 불행했다. 아니, 태어나기 이전부터 잠재했던 불행의 자장 안으로 흘러들었다. 아버지는 열네 살 때에 네 살 연상의 어머니와 결혼했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한 결혼이나, 둘 사이의 애정은 그리 깊지 않은 듯하다. 또한 작가의 아버지는 유랑 생활을 자주 했고, 또 이곳저곳에 가정을 꾸렸다. 그러니까 작가는 아버지는 있으되,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한 셈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출생이 불합리했다고 표현한다.

나의 출생은 불합리했다. 이 허무한 세상에 왜 내가 태어났으랴 하는 따위의 뜻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부모들의 관계에서 온 나의 견해였다.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어머니에 대하여 타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적의에 찬 감정으로 일관했다. 어찌하여 사랑하지도 않고 그렇게 미워한 여인에게 나를 낳게 했는가 싶다. 어머니는 말하기를 산신에게 빌어 꿈에 흰 용을 보고 너를 낳았으니 비록 여자일망정 너는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나는 그 이야기를 시시하게 들었을 뿐만 아니라 산신에게, 증오하고 학대하던 남자의 자식을 낳게 해주십사고 애원을 한 어머니를 경멸했었다. 그것은 사랑의 강요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그러한 모습은 내게다가 결코 남성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리라는 굳은 신념을 못 박아주고야 말았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경멸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런 극단적인 감정 속에서 고독을 만들었고, 책과 더불어 공상의 세계를 쌓았다. -「반향 정신의 소산」, 현대문학사 편, 『창작실기론』, 어문학, 1962, p.369


한마디로 고독했고, 이 고독은 작가를 조숙하게 만들었다. 사랑과 기쁨, 그리고 미래에의 꿈 대신에 증오와 경멸, 절망을 맛보아야 했다. 작가는 어린 나이에, 그것도 무의식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경멸한 셈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성미가 불칼 같았고, 조금은 낭만적이며 우승컵 같은 것도 받은 운동선수의 경력, 그리고 미식가이며 의복에 까다로우며, 아무도 꺾을 수 없는 강한 기상을 지니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이처럼 주변사람들로부터는 호인이라는 별칭을 들었을 법한 인물을 어린 작가는 증오했다. 조금은 극단적이지만 어머니 또한 당시의 여인네들이 살았던 삶의 모습일 터이다. 그러나 작가는 어머니를 경멸했다. 연민의 정이야 나중에 생기지 않았겠는가. 이런 상태에서는 당연히 기존의 관습, 교훈, 가치관 등이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할 터이다. 작가 박경리는 어린 나이에, 선이라는 담론에 담겨진 악의 모습을, 화려함 속에 깃들여진 어두움을 자연스러움 속의 부조화를, 제의 속에 가녀린 희생양을 보아버렸던 것이다.


기존의 질서 전부를 위악적인 것으로 규정할 만큼 반항 정신이 강했던 박경리의 관심은 자연 문학적인 것으로 돌려진다. 기존의 권위주의적 형식으로 자신의 운명을 담론화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험난한 운명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어떤 것이 필요했고, 또한 그 운명을 풀어 낼 수 있는 내적 설득의 담론이 절실했다. 그 때문에 박경리는 <평범하고 공부를 못했던 아이>였고, 대신에 야욕스러운 <독서>와 <시를 쓰는 일>에 매달렸다. <아궁이며, 이불 속이며 노트를 감추어 가면서 매일 매일 일기같이 시를 썼고> 그것은 <묶여 있다는 의식이 종이에 소리없이 폭발>한 것이었다. <시는 위안>이었으며,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여 살아 남았고,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준 버팀목이었다.


박경리는 성장의 체험을 통하여, 자기 의식을 소유하지 않은 삶은 허망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세상의 인습에 얽매여 산다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것, 한 인간의 선택과 결단의 결과로 자신의 삶이 꾸려지지 않은 경우,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행복감마저도 불행일 뿐이라는 것, 이것은 남편을 붙잡아 두려한 어머니가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이는 사랑을 구걸한 어머니와 어머니에게 혹단한 채찍을 내렸던 아버지에 대한 반감에서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랑의 본질이란 <자기자신의 의식을 포기하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의 다른 자아 속에서 스스로를 망각하고 동시에 이러한 소멸과 망각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획득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후에 간단히 언급하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한 자기 의식은 자리 할 틈이 없었다.

자기 의식이 원하지 않더라도 어떤 사회적 격변에 몸 닫지 않는 경우, 그것은 곧 고독이었고 불행이었으며 죽음이었다. 때문에 자기 의식에 강렬한 열망은 사회로 향하지 않고, 대신에 사랑으로 향한다. 때문에 박경리의 소설에는 낭만적 사랑과 좌절을 다룬 소설이 많다. 『가을에 온 여인』,『노을 진 들녘』, 『영원한 반려』, 『단층』, 『성녀와 마녀』등이 직접 이 문제를 다룬 소설이거니와 , 이외의 다른 소설에도 이 주제는 반드시 끼여 있다.


이 낭만적 사랑에의 열정은 여성억압적 현실에도 눈돌리게 한다. 작가는 여성인 어머니를 억압하는 남성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억압-피억압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한 인간의 운명을 불행한 것으로 만드는지를 확인했고, 이를 계기로 남성에 의한 여성지배구조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박경리는 아주 일찍부터 여성문제를 다루는 작가가 될 수 있었고, 이러한 관심은 그의 초기작「전도」에서부터『표류도』, 『김약국의 딸들』, 『파시』등의 성과로 산출된다.


그리고 성장기의 체험은 작가의 인식구조를 회의주의자의 그것으로 결정짓는다. 작가는 일찍부터 한 인간에 대한 기대와 배반을 맛보았다. 또는 웃음 속에 감추어진 악마의 형상을, 권위 속에 비어 있는 자기기만의 얼굴을 경험했다. 이것은 작가를 회의주의자로 만든다. 성장기의 경험내용으로 인해 어떤 삶이 더 진정한 삶인가, 어느 것이 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인가,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까운가라는 질문을 화두처럼 달고 다녔다. 박경리의 한 대상 혹은 인물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는 지나치리만큼 섬세하다.


박경리의 성장기는 이처럼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마감된다. 1945년 진주여고를 졸업한다. <여자가 공불 하면 뭣하나>라며 학비를 대주지 않은 아버지에 반발해 1년간을 집에서 쉬었고, 그리고 여고 시절을 마쳤다. 이런 박경리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눈앞에서 벌어졌고, 작가의 모든 것을 휩쓸며 지나갔다. 불합리한 출생은 비극적인 생애의 서막에 불과했던 것이다.


2. 전쟁의 상처, 혹은 불가해한 질서의 발견


1950년, 한반도에는 폭풍우가 질러간다. 수많은 사람이 이유도 모른 채 죽었으며, 단란했던 가족공동체는 부스러져버렸다. 박경리 역시 이 폭풍우에 휩쓸렸다. 그것도 잔혹하게. 박경리는 전쟁 중에 남편을 잃고, 또 전쟁 직후에는 아들을 잃는다. 역사적 부침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만큼 이 폭풍우는 예측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고, 갑작스레 이 폭풍우에 휩쓸렸으니 이 잇단 고통은 더욱 충격적이었으리라. 이 잇단 고통은 불합리한 출생으로 생겨난 비극적 인식을 더욱 고착시켜 놓는다. 이 세상에 선이란 존재하지 않고, 결국 <악이 승리한다는 절망>을 경험한다. 그리고 거역할 수 없는 운명 또는 숙명을 생각해야 했다.


박경리는 이처럼 한국전쟁에서 맛볼 수 있는 개인적인 비극을 모두 맛보았다. 그러나 이후 그의 소설을 풍부하게 하는 여러 요인이 또한 한국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얻어졌으니, 이 때문에 흔히 소설가를 <저주받은 영혼>이라 표현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전쟁은 <불합리한 출생>과 더불어 박경리 문학의 질을 결정지은 값진(?) 경험내용에 속한다. 전쟁을 경험하면서, 불합리한 출생으로 인해 항상 내부로만 움츠러들던 작가의 시선이 외부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이란 각 개인의 삶과 사회.역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음을 절실하게 실감시켜준다.


전쟁의 순간만큼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고립된<나>의 삶이란 없다. 저 넓은 세상에서 모세관처럼작은 자리를 차지하는 개인의 삶이 결국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사회적 운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작가는 전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출생의 불합리함으로 인해 세상의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를 고집하던 작가도 하는 수 없이 동질집단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와 같은 삶의 표정을 여러 사람에게서 발견하고, 불합리한 출생마저도 그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 전쟁에 대해 생생한 현장감과 더불어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는 객관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고, 각각의 이념이 지닌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3. 삶의 고통과 소설의 향기


1955년 8월, 박경리는 등단한다. 등단작은 「계산」(『현대문학』, 55.8). 추천이 완료된 것은 다음해인 1956년이었다. 박경리는 「흑흑백백」(『현대문학』,56.8)으로 드디어 작가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박경리에게 문학과 삶은 쌍두아가 된다. 박경리의 삶은 이때부터 소설쓰기 그것만으로 채워진다. 정릉과 원주에 칩거하면서 오직 글쓰기로 사회적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박경리의 초기작은 주로 단편이고, 작가가 살아온 삶의 내력이 많이 담겨져 있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성이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딸이 작중화자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많다. 작가는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당대를 읽어낸다. 그리하여 「불신시대」,「암흑시대」라는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자신의 비극적 조건은 단지 작가 개인의 운명 때문만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의 구조 때문임을 밝혀 낸다. 순진한 영혼을 지닌 화자가 있다. 거듭되는 비극을 겪었지만, 그 비극에 좌절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사회는 더욱 더 그의 삶을 벼랑으로 밀어넣는다. 화자의 삶을 비극적인 것으로 몰아가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전쟁의 상흔(「불신시대」,「영주와 고양이」,『표류도』) 여성억압적 현실이나 불길한 욕망에 휩싸여 사는 남성들(「전도」,「사랑섬 할머니」,『표류도』)은 화자의 삶을 비극적인 것으로 만드는 조건들이다. 즉, 작가의 삶을 소설의 몸체로 삼고 있되, 그것을 삶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데 충분히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작중화자들은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꿈과 낭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번번이 질기디 질긴 허위와 이기에 그 꿈은 좌절한다. 이 꿈은 낭만적 사랑에의 동경으로 나타나기도 하고(『표류도』), 또는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4. 4.19와 시선의 확대


4.19는 박경리의 문학에 하나의 중요한 전기를 제공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창작의 중심이 단편에서 장편으로 옮겨졌으며, 작가 박경리를 연상시키는 작중화자가 소설 속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외형적인 사실에서 박경리 소설에 나타난 변화의 폭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감각의 개인은 그 불행의 시원을 보다 넓고 깊은 곳에서 찾으려 했고 그 불행을 넘어서려는 행동 또한 치열하고 분주해졌다. 자신을 불행하게 했던 악한 존재를 결국은 응징하며(『노을진 들녘』),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경찰서에 끌려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내 마음은 호수』).


박경리에게 4.19는 한마디로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안일에 빠진 자기 혹은 추악한 (천진한 청소년에 비추어 볼 때 그러했을 것이다) 자신을 선명하게 비추는 아름다움이다. 박경리는 개인의 불행한 운명에만 떨지 않았던가. 아니면, 개인적인 반항심만 키워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4.19세대들은 <우리>였고, <힘을 합했>고, 또 <나라를 아끼>고 <진리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가능성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하나 되는 황홀경을, 비록 잠시지만, 일구어냈다.


이 뼈저린 책임감이 박경리를 새로운 소설세계로 이끈다. <나>가 아니라 <우리>가, <나>를 아끼는 마음이 아니라 <나라>를 아끼는 마음으로 그의 소설세계는 나아가는 것이다. 박경리는 4.19를 통해 비로소 고통의 뿌리를 찾는다. 개인적 고통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을 찾자, 보다 분명한 자기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삶이란 어떤 개인이 먼저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같이 도달할 때라야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확인한다.

5. 비극성에서 한으로


드디어 1969년 8월부터 『토지』라는 우리 민족 문화를 응집, 축성한 말의 탑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 소재들은 1897년 추석부터 1945년 8월 18일까지 한반도와 그 속에 살거나 살다가 쫓겨난 사람들의 생애에서 골라진 문화 내용들이다. 그리고 그 말의 탑쌓기는 1994년 8월에 26년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토지』는 일단 소설 자체가 지니는 의미가 남다르다. 한 작품을 26년 동안 연재한 경우가 한국소설사에서는 존재하지 않거니와, 초기의 몇몇 문제적인 작품을 쓰고는 소설사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이 무슨 철칙처럼 지켜지는 한국소설의 관행에서 박경리의 치열함은 단연 이채를 띤다. 게다가 작가는 『토지』연재를 시작하고 암 선고를 받지 않았었던가. 떨어진 적이 없었던 삶과 문학을 『토지』로 기필코 완성하겠다는 의지로 모든 고난을 이겨낸 셈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할 수 도 있으리라. 『토지』가 씌어진 만큼 한국소설사에는 의미 있는 전통이 만들어졌다고.


그러나『토지』의 문제성은 여기에만 있지는 않다. 『토지』의 정작 중요한 점은, 소설 그 자체에 있다. 『토지』는, <가족이라는 혈연 단위와 그 확대를 역사적인 시대의 교체와 맞물리도록 고안함으로써, 조선 말기 이후 한국사회의 근대화라는 격변기를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들의 창조에 성공하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그리고<서부 경남 방언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과 풍속을 탁월하게 재현한 점, 심리의 미묘한 곡절을 섬세하게 추적하는 비상한 능력에 힘입은 심오한 인간통찰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는 점, 군더더기 없는 정갈하고 담백한 문체를 정립함으로써 부황한 수사와 말장난이 뒤범벅된 박래의 문체를 구축할 수 있는 전범을 마련하였다는 점 등『토지』의 탁월한 성취>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토지』는 『객주』와 『장길산』을 가능하게 하는 한 초석이 되었다는 점까지 부언하면, 『토지』의 문학사적 의의가 여느 작품과는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토지』는 작가 박경리의 삶의 종합이자 문학의 종합이다. 『시장과 전장』등 현대, 도시를 다룬 계열과 『김약국의 딸들』등 초기 근대와 농촌 공동체를 다룬 계열의 소설이 합쳐지는 지점이다. 이를 통해 『토지』는 <한>이라는 정서에 몰두한다. 즉 훼손된 것까지를 감싸 안는 순백의 삶으로 한국 여인네의 <한>을 찾은 것이다. <한>은 위대한 모성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지아비를 위해 아들을 위해 끝내 좌절하지 않았던 여인네들의 한을, 그는 이 훼손된 시대에 반드시 회복해야 할 인간적 덕목으로 설정한다.


200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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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나라말 카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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