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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클래식

어톤먼트

조 라이트 감독

1935년 여름, 영국 탈리스 가문의 대저택.

이 집안의 둘째 딸인 13살의 문학소녀 브라이오니는 가정부의 아들 로비를 짝사랑하고 있다. 로비는 비록 미천한 가정 출신이지만 탁월한 명석함으로 브라이오니 아버지의 재정적인 후원으로 캠브리지 대학까지 들어간 재원이다. 브라이오니는 로비를 좋아하지만 정작 로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바로 브라이오니의 언니 세실리아이다.

어느 날, 브라이오니는 로비로부터 세실리아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신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언니에게 건네주기에 앞서 먼저 편지를 읽은 브라이오니는 13살 소녀가 받아들이기 힘든 낯 뜨거운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그날 밤 브라이오니는 서재에서 세실리아와 로비가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다.

음악리스트
No. 아티스트 & 연주  
1 푸치니 - [라 보엠] 중 [오! 아름다운 아가씨]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그날 밤, 그 집에 머물고 있던 쌍둥이 사촌 형제가 쪽지를 써놓고 가출한 사건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모두 형제를 찾아 나선 동안, 브라이오니는 어둠 속에서 사촌 언니 롤라가 어떤 남자로부터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남자는 황급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롤라는 상대가 누군지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브라이오니는 그 자리에서 그가 로비라고 말한다. 로비가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느꼈던 질투심과 절망, 상실감을 이런 식으로 표출한 것이다.

속죄와 참회의 드라마, 영화 [어톤먼트] <제공: 네이버 영화>작품 정보 보러가기

그 후 경찰이 오고, 브라이오니는 어머니와 경찰 앞에서 범인이 로비라고 단호하게 증언한다. 로비는 무죄를 주장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변호해주지 않는다. 결국 그는 성폭행범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가게 된다.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해 자기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던 13살 소녀의 거짓말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로비가 복역하고 있는 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로비는 복역과 참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제안을 받고 전쟁에 참여한다. 한편 동생의 거짓말로 로비와 헤어지게 된 세실리아는 집에서 나와 간호사로 일하며 로비와 만날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두 사람이 만난다. 이 자리에서 세실리아는 바닷가에 있는 하얀 별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전쟁이 끝나면 함께 가자고 한다. 로비를 이 말에 희망을 갖고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 세실리아에게 돌아갈 날만 기다린다.

한편 그로부터 5년 후, 이제 18살이 된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철없던 시절에 했던 거짓말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고 괴로워한다. 언니 세실리아처럼 전쟁 중에 간호사로 일하게 된 브라이오니는 수소문 끝에 세실리아를 찾아간다. 바로 그 집에서 그녀는 로비를 만난다. 로비는 자기가 13살 때 너무 어려서 못할 짓을 했다는 브라이오니의 말에 이렇게 퍼붓는다.

1935년 어느 여름날, 13세살의 소녀 브라이오니의 거짓말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제공: 네이버 영화>

“사리분별을 하려면 도대체 몇 살을 먹어야 하는 건데? 지금 몇 살이지? 18살이 되니까 비로소 네 거짓말을 고백할 수 있다구? 길 가에 버려져 죽음을 기다리는 18살짜리 군인도 있어. 5년 전엔 진실 따윈 중요하지 않았잖아? 내가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너와 네 가족 모두에게 난 그저 하인에 불과한 존재였어. 널 필두로 모두 합심해서 날 늑대 소굴로 던져 넣었잖아.”

로비가 이렇게 퍼붓는 동안, 브라이오니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 후 시간이 훌쩍 흘러 1999년 런던. 77살의 노작가 브라이오니가 자신의 21번째 소설이자 마지막 소설인 [속죄Atonement]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브라이오니는 소설이 자기가 겪었던 일을 그대로, 등장인물들의 실명까지 그대로 써서 그렸지만 1940년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 허구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브라이오니는 용기가 없어서 1940년 세실리아를 찾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만약 용기가 있었어도 이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로비는 1940년 6월 후송 작전의 마지막 날 브레이 듄스에서 패혈증으로 죽었고, 세실리아는 같은 해 10월 발햄 지하철에 투하된 폭탄에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못했다. 1935년 여름, 그 비극적인 사건으로 탈리스의 대저택에서 로비가 경찰에 끌려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브라이오니는 도저히 그대로 소설을 끝낼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두 사람이 그토록 원했던 삶, 당연히 누렸을 행복을 빼앗아간 사람으로서 죄책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소설을 통해서나마 로비와 세실리아가 잃은 것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게 해주었다. 이것이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로서 자기가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친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행복을 선물한 것이다. 어린 시절 철없이 했던 거짓말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어느새 노년이 된 브라이오니는 속죄의 의미로 소설을 쓴다. <제공: 네이버 영화>

이언 맥큐언의 소설 [속죄]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한 여자의 60년에 걸친 후회와 속죄를 그리고 있다. 줄거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1935년 어느 여름날의 탈리스 저택, 1940년 전후의 전쟁 그리고 1999년, 말년을 맞은 소설가 브라이오니의 고백이다. 풋풋한 청춘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해 전쟁의 참혹함을 거쳐 황혼의 속죄와 회환으로 끝난다.

찬란했던 1935년의 어느 여름날, 로비는 세실리아에게 편지를 보낸다. 어린 시절부터 세실리아를 보아온 로비. 그녀를 남몰래 연모하고 있지만 섣불리 그 감정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세실리아와 로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 즉, 주인의 딸과 가정부의 아들이라는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세실리아를 보면서 로비는 온갖 상상을 다 한다. 한창 혈기왕성한 20대의 청년이니 무슨 상상인들 못하겠는가. 그 나이의 젊은 남자가 플라토닉 러브를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편지에서 로비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은밀한 욕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자기 혼자 몰래 써본 편지일 뿐 그 후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고 누가 보아도 무방한 정중한 내용의 편지를 쓴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만 실수로 음탕한 내용의 편지를 봉투에 넣은 것이다. 편지를 건네준 직후 그 사실을 알았지만, 편지는 이미 브라이오니를 거쳐 세실리아에게 건너간 후였다. 당황한 로비는 서둘러 세실리아를 찾아간다. 하지만 세실리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맞는다. 세실리아 역시 로비를 사랑하고 있었고, 비록 음탕한 내용이지만 편지를 보고 로비의 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즉시 서재로 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푸치니의 [오! 사랑스런 아가씨]가 흐른다. <제공: 네이버 영화>

로비는 세실리아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음악을 틀어 놓는다. 푸치니의 [라 보엠] 1막에 나오는 미미와 로돌프의 이중창 [오! 사랑스런 아가씨]이다. [라 보엠]은 푸치니의 네 번째 오페라로 프랑스 시인 앙리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라 보엠]의 '보엠'은 보헤미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집시들을 보통 ‘보엠’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는 진짜 집시가 아니라 보헤미안 기질을 가진 사람 즉, 일반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라 보엠]에는 네 사람의 보헤미안이 나온다. 주인공인 시인 로돌프, 그의 친구인 화가 마르첼로와 음악가 쇼나르, 철학자 콜리네인데, 이들은 파리의 허름한 다락방에서 함께 살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 로돌프가 혼자 원고를 정리하고 있다. 이때 옆 방에 사는 처녀 미미가 촛불을 빌려달라며 찾아온다. 이때 로돌프는 미미의 청순한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런데 촛불을 붙이고 로돌프의 방을 나갔던 미미가 열쇠를 떨어뜨렸다며 다시 찾아온다. 미미가 다시 방에 들어서는 순간 바람이 불어 미미의 촛불이 꺼진다. 그러자 로돌프는 얼른 자기 촛불을 꺼버린다.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으며 열쇠를 찾는다. 그러다가 미미의 손과 닿게 되는데, 이때 부르는 아리아가 [그대의 찬 손]이다. 로돌프의 노래가 끝나자 이번에는 미미가 자신을 소개하는 [내 이름은 미미]를 부른다. 촛불이 꺼져 어두운 방에 달빛이 흘러 들어온다. 어느덧 사랑을 느낀 두 사람은 [오! 사랑스런 아가씨! O soave fanciulla]를 부른다. 영화에서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보내는 편지를 쓸 때 틀어놓았던 음악이다.

아름다운 아가씨.
그대의 아름다운 얼굴에
달빛이 내려 앉고 있군요.
당신에게서 나는 꿈을 발견했고
영원히 그 꿈을 꾸고 싶네요.
사랑만이 내게 명령하리
내 영혼은 이미
달콤한 열정으로 충만해 있네.
오! 그대 아름다운 말이
내 마음을 흔드네.
사랑의 입맞춤으로 떨고 있네.

로비는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세실리아. 나의 지각없고 서투른 행동을 편지로 사과하고 싶어.”

여기까지 써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지 편지를 구겨 버린다. 그리고 음반에 바늘을 올려놓는다. 스피커에서 미미와 로돌프가 부르는 [오! 사랑스런 아가씨]가 흘러나온다. 음악을 들으며 로비는 심기일전에서 다시 편지를 쓴다. 하지만 또 다시 편지를 구겨버린다. 그 순간 음악도 멈춘다. 로비는 다시 음반에 바늘을 올려놓는다.

“내가 이상하게 보이는 것을 용서해 줘.”

여기까지 쓰고 로비는 다시 편지 쓰기를 멈춘다. 그리고 담배를 피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결심한 듯 다시 타이프 라이터 앞에 앉는다. 그리고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은밀한 욕망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지를 쓴다. 그 순간 사랑의 이중창도 절정에 이른다.

로비가 로돌프와 미미의 이중창을 듣고 심기일전해서 세실리아를 향한 육체적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 편지를 쓴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이 장면은 로비의 마음 속에 세실리아를 향한 풋풋한 순정과 남자로서의 동물적 욕망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이전까지 그가 쓴 편지는 ‘짐짓 순진함을 가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내용이 겉도는 것 같고, 쓰고 나서도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갈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고, 안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다. 더구나 로비와 같이 한창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미미와 로돌프의 이중창이 내면에 숨겨져 있던 로비의 욕망에 불을 지른 것이 아닐까. [라 보엠]의 1막은 가난한 연인들의 소박한 사랑을 그린 것이지만, 사실 음악은 그렇게 소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 속에 절절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열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사랑을 확인한 로돌프와 미미는 달빛이 비치는 허름한 다락방에서 사랑의 이중창을 부른다. 두 사람의 노래는 후반부에 가서 클라이막스에 이르는데, 극적으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클라이막스가 듣는 사람의 감정을 고양시킨다. 그 극적인 강렬함이 로비로 하여금 무모한 용기를 내게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식으로나마 그 동안 억제해 오던 자신의 열망을 표현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영화는 로비와 세실리아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전에 약속했던 하얀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것은 이언 맥큐언의 원작에는 없는 것이다. 소설 속의 브라이오니가 로비와 세실리아를 만나게 해주었던 것처럼, 영화도 마지막에 두 사람을 해변가에서 행복하게 만나도록 한다. 후반부의 이야기는 모두 허구라는 브라이오니의 고백을 듣고 절망했을 관객을 위한 배려이다. 브라이오니가 소설을 통해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그들이 마땅히 누렸어야 했을 행복을 선물한 것처럼, 조 라이트 감독 역시 관객으로서 당연히 누리고 싶어 하는 해피엔딩의 행복을 선물한 것이다.

로비와 세실리아는 꿈에도 그리던 바닷가의 하얀 집으로 들어간다. 그것이 허구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 아득하게 높은 음으로 아련하게 끝나는 로돌프와 미미의 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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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 어톤먼트 (2007)이미지
    어톤먼트 (2007)
    감독
    조 라이트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제임스 맥어보이 …

발행일

발행일 : 2013. 01. 10.

출처

제공처 정보

  • 진회숙 출판편집인,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 음원제공 소니뮤직 http://www.sonymusic.com/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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