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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귀신을 쫓는 사나이 처용은 누구인가?
1201**** 조회수 5,342 작성일2011.04.03
역사 스폐설 귀신을 쫓는사나이 처용을누구인가? 줄거리하고 소감문 좀 적어 주세여 내공 30이여 빨리 부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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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1****
바람신
세금 정책, 제도 69위, 외국 신화, 전설 6위, 소득세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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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화와 전설/설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비록, 짧은 지식이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용(處容)

 나라가 태평을 누리자 헌강왕이 879년(헌강왕 5년)에 개운포(開雲浦): 지금의 울산) 바닷가로 놀이를 나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덮이면서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졌다. 갑작스런 변괴에 왕이 놀라 좌중에 물어보니 일관(日官)이 말하되 "이것은 동해용의 짓이므로 좋은 일을 행하여 풀어야합니다"고 하였다. 왕이 용을 위하여 절을 짓도록 명한 즉, 바로 어두운 구름은 걷히고(이로부터 이곳을 개운포라 하였다), 동해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으며 그 중 하나가 왕을 따라오니, 곧 그가 처용이었다. 왕을 따라온 처용은 달밤이면 거리에 나와 가무(歌舞)를 하였다 하며 왕은 그를 미녀와 짝지어주고 급간(級干) 벼슬을 주었다.

 

 아름다운 처용의 아내를 역신(疫神)이 사랑하여 범하려 함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에 역신이 사죄하고 처용의 모습을 보면 얼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사람들은 처용을 얼굴을 그려 대문에 붙임으로써 역신을 막았다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처용랑 망해사(處容郞望海寺)) 그리고 헌강왕이 세운 절 이름을 망해사(望海寺), 혹은 신방사(新房寺)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닐다가

  들어가 자리 보곤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고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

  앗은 걸 어찌하리

 

이 때 처용이 춘 춤이 악부(樂府)에 처용무(處容舞)라 전해지고 이 춤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재(呈才) 때와 구나의(驅儺儀) 뒤에 추는 향악(鄕樂)의 춤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를 처용희(處容戱)라고도 한다.

 한편, 설화에서는 처용을 동해 용왕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당시 울산 지방에 있었던 호족(豪族)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혹은 당시 신라에 내왕하던 아라비아 상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201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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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일연의 삼국유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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