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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작품요약좀 찾아주세요..
spdl**** 조회수 8,618 작성일2004.10.20
문학 작품 요약 좀 찾아주세요..


주제랑 작품에 관한 생각해 볼점 알아야 할점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
이런거 나와있는 작품요약이요..

ebs고품격 문학특강에 있는 작품들인데요...
수능이 28일 남은 이시점에서 강의를 다 들을 수도 없고
제가 일일이 서핑하여 찾을 시간이 없어요..
도와주세요..

대신 제가 가진 내공 모두 나누어 드립니다..

소설문학 04 호질 .....51
소설문학 05 옥단춘전 .....54
소설문학 06 임진록 .....57

이렇게 3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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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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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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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
고수
국어, 한문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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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박지원(열하일기 궐내정사(17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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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 밤이 들자 대호(大虎)가 부하들을 소집하고 저녁거리를 의논하고 마을로 내려올 때 정지읍에 사는 도학 높은 북곽 선생이 이웃의 동리자라는 청상 과부 집에서 밀회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동리자와 아들 다섯이 고명한 선생이 그럴 리가 없고 여우가 둔갑한 것이라 하여 몽둥이를 들고 들어갔다. 선생이 겨우 나와 보니 대호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어 목숩을 비니 대호는 선생의 위선적인 생활을 크게 꾸짖고 가 버렸다. 날이 샌 후 농부들이 그를 발견하고 수근거리며 놀라 물으니 북곽 선생은 그 때야 고개를 들고 호랑이가 가 버린 줄 알고 달아나 버렸다.





●호질의 주제

박지원은 이 작품의 뒤에 붙인 논평에서, 만주족의 압제에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중국 인사들의 비열상을 풍자한 것이라 하였으나, 조선 후기의 사정에 비추어 두 가지 면에서 주제를 설정할 수 있다. 하나는 북곽선생으로 대표되는 유학자들의 위선을 비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리자로 대표되는 정절 부인의 가식적인 행동을 폭로한 것이다. 특히 호랑이가 유학자의 위선을 공격하면서 북곽 선생을 꾸짖는 것은 유학자 일반의 독선적 인간관을 풍자한 것이다.


▶갈래 : 풍자소설, 사회비판소설, 한문소설, 고전소설


▶연대 : 정조 때(18세기 후반)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정나라 어느 고을


▶성격 : 우화적, 비판적, 풍자적


▶주제 : 양반의 위선과 가식을 비판(북곽선생). 유교적 정절에 대한 비판(동리자).




▶북곽선생: 위선적이고 아첨을 잘하는 인물


▶동리자: 열녀라는 칭호까지 받았으나, 북곽선생과 밀회하고 각기 성이 다른 다섯 명의 자식이 있는 위선적인 인물.



이 작품은 박지원의 문집중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수록되어 전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심적인 내용은, 도덕과 학문이 높다고 소문이 자자한 주인공 북곽선생이 기실은 여우와도 같은 교활한 인간이요, 온 몸을 똥으로 칠한 더러운 인간이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위선을 버리지 않는 염치없는 인간임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그러한 요소를 유감없이 드러내어 보여주는 풍자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유학자의 위선과 탐욕과 아부의 비인간적 모습을 호랑이라는 짐승의 입을 빌어 나무라게 함으로써 그러한 인간상이란 결국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부각시킨 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혹심한 자기 계층에 대한 비판이 궁극적으로 양반 사회를 부정하기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는 점이 그의 선구자 의식이 가지는 한계가 있다.


<추가>


이 작품은 박지원이 지은 <열하일기(熱河日記)>의 "관내정사(關內程史)" 속에 수록되어 있는 한문 소설로서 양반 계급의 허위적인 도덕관을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박지원의 대표작이다. 기문(奇文)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인데, 위선적 인물을 대표하는 북곽과 동리자를 내세워 당시의 양반 계급, 즉 선비(실은 선비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부패한 도덕 관념을 풍자하여 비판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등장 인물인 북곽 선생은 도학(道學)이 높고 인격이 고매(高邁)하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었으며, 동리자는 수절 과부로 절행(節行)이 뛰어나 천자가 칭찬하고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동리자에겐 성이 다른 아이들이 다섯이나 있었으니, 그녀는 실은 음부(淫婦)였다. 또 북곽 선생은 이런 동리자와 밤에 밀회를 가졌으니, 그 역시 위선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북곽 선생은 아이들에게 여우로 몰려 곤욕을 당하고, 다시 똥구덩이에 빠졌다가 호랑이에게 질책을 당하고, 마지막으로 새벽에 만난 농부 앞에서 또 위선적인 행동을 한다. 이처럼 이 작품은 도덕이 높다고 소문난 북곽 선생이 결국은 여우 같은 인간이요, 온 몸에 똥을 칠한 더러운 인간이요, 끝까지 위선을 버리지 못한 파렴치한 인간이라는 것을 고발, 풍자하고 있다. 또한 그 정절로써 천자와 제후들에게까지 우러름을 받는 과부의 다섯 아들이 모두 성이 다르다고 비꼰 것은 겉모습, 혹은 세상의 평판만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없음을 통렬하게 풍자한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유학자의 위선과 아첨, 인간의 탐욕스러움을 호랑이라는 동물의 입을 빌려 질책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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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곽선생과 동리자의 이중성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명망을 얻은 북곽선생과, 현숙함으로 이름난 미모의 수절 과부 동리자가 사실은 위선자들이었다는 점을 눈여겨 읽는다.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거기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호랑이라는 존재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짐승이다. 이런 호랑이를 북곽선생으로 대표되는 유학자와 비교, 대조시키고 있다는 점을 읽어내야 한다. 호랑이는 한두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만 교활한 유학자의 폐해는 어느 만큼일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작풍-연암의 소설 세계

연암소설이 지닌 특징을 몇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재를 현실 생활에서 취했다는 점이다. 그 현실은 당시 자신이 속했던 양반 계층 뿐만아니라 하류계층도 포함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둘째, 간결한 문장으로 등장인물의 내면심리를 사실적으로 적어나갔다..

셋째, 근대적 성격을 지닌 소설, 그리고 고전 소설로는 드물게 단편의 소설을 지었다는 점이다.

주제-유학자의 위선과 가식에 대한 풍자와 비판




▲관련한자성어-실사구시(實事求是), 교언영색(巧言令色)




<전략>


정(鄭)나라 어느 고을에 벼슬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학자가 살았으니 북곽 선생(北郭先生)이었다. 그는 나이 40에 손수 교정(校正)해 낸 책이 만 권이었고, 또 육경(六經)의 뜻을 부연해서 다시 저술한 책이 일만 오천 권이었다. 천자(天子)가 그의 행의(行義)를 가상히 여기고 제후(諸侯)가 그 명망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 고장 동쪽에는 동리자(東里子)라는 미모의 과부가 있었다. 천자가 그 절개를 가상히 여기고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여, 그 마을의 둘레를 봉(封)해서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고 정표(旌表)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동리자가 수절을 잘 하는 부인이라 했는데, 실은 슬하의 다섯 아들이 저마다 성을 달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다섯 놈의 아들들이 서로 지껄이기를,

"강 건너 마을에서 닭이 울고 강 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어찌도 그리 북곽 선생의 목청을 닮았을까."

하고 다섯 놈이 차례로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동리자가 북곽 선생에게,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삽는데, 오늘 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

하고 간청하매, 북곽 선생은 옷깃을 바로 잡고 점잖게 앉아서 시(詩)를 읊는 것이 아닌가.



鴛鴦在屛(원앙재병) 원앙새는 병풍에 그려 있고,

耿耿流螢(경경유형) 반딧불이 흐르는데 잠 못 이뤄

維 維錡(유심유기) 저기 저 가마솥 세발 솥은

云維之型(운수지형)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나.

興也(흥야) 흥야랴



다섯 놈이 서로 소곤대기를,

"북곽 선생과 같은 점잖은 어른이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가 있겠나?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져서 여우 구멍이 생겼대. 여우란 놈은 천 년을 묵으면 사람 모양으로 둔갑할 수 있대. 저건 틀림없이 그 여우란 놈이 북곽 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다."

하고 함께 의논했다.

"들으니 여우의 갓을 얻으면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여우의 신발을 얻으면 대낮에 그림자를 감출 수 있고, 여우의 꼬리를 얻으면 애교를 잘 부려서 남의 꾐을 받을 수 있다더라. 우리 저 놈의 여우를 때려 잡아서 나눠 갖도록 하자."

다섯 놈들이 방을 둘러싸고 우루루 쳐들어 갔다. 북곽 선생은 크게 당황하여 도망쳤다.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겁이 나서 모가지를 두 다리 사이로 들이박고 귀신처럼 춤추고 낄낄거리며 문을 나가서 내닫다가 그만 들판의 구덩이 속에 빠져 버렸다. 그 구덩이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기어올라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뜻밖에 범이 길목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범은 북곽 선생을 보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하며 코를 싸쥐고 외면을 했다.

"어허, 유자(儒者)여! 더럽다."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범 앞으로 기어 가서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우러러 아뢴다.

"호랑님의 덕은 지극하시지요. 대인(大人)은 그 변화를 본받고, 제왕(帝王)은 그 걸음을 배우며, 자식된 자는 그 효성을 본받고,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하며, 거룩하신 이름은 신령스런 용(龍)의 짝이 되는지라, 풍운이 조화를 부리시매 하토(下土)의 천신(賤臣)은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나이다."

범은 북곽 선생을 여지없이 꾸짖었다.

"내 앞에 가까이 오지 말아라. 내 듣건대 유(儒)는 유(諛)라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 천하의 악명을 죄다 나에게 덮어씌우더니, 이제 사정이 급해지자 면전에서 아첨을 떠니 누가 곧이듣겠느냐? 천하의 원리는 하나뿐이다. 범의 본성(本性)이 악한 것이라면 인간의 본성도 악할 것이요, 인간의 본성이 선(善)한 것이라면 범의 본성도 선할 것이다. 너희들의 떠드는 천 소리 만 소리는 오륜(五倫)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고, 경계하고 권면하는 말은 내내 사강(四綱)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도회지에 코 베이고, 발꿈치 짤리고, 얼굴에다 자자(刺字)질하고 다니는 것들은 다 오륜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아니냐? 포승줄과 먹실, 도끼, 톱 같은 형구(刑具)를 매일 쓰기에 바빠 겨를이 나지 않는데도 죄악을 중지시키지 못하는구나. 범의 세계에서는 원래 그런 형벌이 없으니 이로 보면 범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보다 어질지 않느냐? 범은 초목을 먹지 않고,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고, 술 같은 좋지 못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순종 굴복하는 하찮은 것들을 차마 잡아먹지 않는다. 산에 들어가면 노루나 사슴 따위를 사냥하고, 들로 나가면 말이나 소를 잡아먹되 먹기 위해 비굴해진다거나 음식 따위로 다투는 일이 없다. 범의 도리가 어찌 광명 정대(光明正大)하지 않은가. 범이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을 때는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다가, 말이나 소를 잡아먹을 때는 사람들이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노루나 사슴은 은공이 없고 소나 말은 유공(有功)하기 때문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들은 소나 말들이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와 따르고 충성하는 정성을 다 저버리고 날마다 푸줏간을 채워 뿔과 갈기도 남기지 않고, 다시 우리의 노루와 사슴을 침노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도 들에도 먹을 것이 없게 만든단 말이냐? 하늘이 정사를 공평하게 한다면 너희가 죽어서 나의 밥이 되어야 하겠느냐, 그렇지 말아야 할 것이겠느냐? 대체 제 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생(生)을 빼앗고 물(物)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하나니, 너희가 밤낮으로 쏘다니며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노략질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심한 놈은 돈을 불러 형님이라 부르고, 장수가 되기 위해서 제 아내를 살해하였은즉 다시 윤리 도덕을 논할 수도 없다. 뿐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먹고, 누에에게서 옷을 빼앗아 입고, 벌을 막고 꿀을 따며, 심한 놈은 개미 새끼를 젖담아서 조상에게 바치니 잔인 무도한 것이 무엇이 너희보다 더 하겠느냐? 너희가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적에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하늘의 소명(所命)으로 보자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같이 만물 중의 하나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仁)으로 논하자면 범과 메뚜기·누에·벌·개미 및 사람이 다같이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서로 해칠 수 없는 것이다. 그 선악을 분별해 보자면 벌과 개미의 집을 공공연히 노략질하는 것은 홀로 천지간의 거대한 도둑이 되지 않겠는가?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약탈하는 것은 홀로 인의(仁義)의 대적(大賊)이 아니겠는가? 범이 일찍이 표범을 안 잡아먹는 것은 동류를 차마 그럴 수 없어서이다. 그런데 범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으며,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서로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고, 전해에는 산동(山東)에 홍수가 나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야 춘추(春秋) 시대 같은 때가 있었을까? 춘추 시대에 공덕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열에 일곱이었고,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이 열에 셋이었는데, 그래서 흘린 피가 천 리에 물들었고, 버려진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더니라. 범의 세계는 큰 물과 가뭄의 걱정을 모르기 때문에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원수도 공덕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누구를 미워하지 않으며, 운명을 알아서 따르기 때문에 무(巫)와 의(醫)의 간사에 속지 않고, 타고난 그대로 천성을 다하기 때문에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으니, 이것이 곧 범이 예성(睿聖)한 것이다. 우리 몸의 얼룩 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족히 문채(文彩)를 천하에 자랑할 수 있으며,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리지 않고 다만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무용(武勇)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 종이(宗彛)와 유준( 尊)은 효(孝)를 천하에 넓힌 것이며, 하루 한 번 사냥을 해서 까마귀나 솔개·청마구리·개미 따위에게까지 대궁을 남겨 주니 그 인(仁)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고, 굶주린 자를 잡아먹지 않고, 병든 자를 잡아먹지 않고, 상복(喪服) 입은 자를 잡아먹지 않으니 그 의로운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다, 너희들의 먹이를 얻는 것이여! 덫이나 함정을 놓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새 그물·노루 망(網)·큰 그물·고기 그물·수레 그물·삼태 그물 따위의 온갖 그물을 만들어 냈으니, 처음 그것을 만들어 낸 놈이야말로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그 위에 또 가지각색의 창이며 칼 등속에다 화포(火砲)란 것이 있어서, 이것을 한번 터뜨리면 소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천지에 불꽃을 쏟아 벼락치는 것보다 무섭다. 그래도 아직 잔학(殘虐)을 부린 것이 부족하여, 이에 부드러운 털을 쪽 빨아서 아교에 붙여 붓이라는 뾰족한 물건을 만들어 냈으니, 그 모양은 대추씨 같고 길이는 한 치도 못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오징어의 시커먼 물에 적셔서 종횡으로 치고 찔러 대는데, 구불텅한 것은 세모창 같고, 예리한 것은 칼날 같고, 두 갈래 길이 진 것은 가시창 같고, 곧은 것은 화살 같고, 팽팽한 것은 활 같아서, 이 병기(兵器)를 한번 휘두르면 온갖 귀신이 밤에 곡(哭)을 한다. 서로 잔혹하게 잡아먹기를 너희들보다 심히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북곽 선생은 자리를 옮겨 부복(俯伏)해서 머리를 새삼 조아리고 아뢰었다.

"맹자(孟子)에 일렀으되 '비록 악인(惡人)이라도 목욕 재계(齋戒)하면 상제(上帝)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하토의 천신은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니다."

북곽 선생이 숨을 죽이고 명령을 기다렸으나 오랫동안 아무 동정이 없기에 참으로 황공해서 절하고 조아리다가 머리를 들어 우러러보니, 이미 먼동이 터 주위가 밝아오는데 범은 간 곳이 없었다. 그 때 새벽 일찍 밭 갈러 나온 농부가 있었다.

"선생님, 이른 새벽에 들판에서 무슨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북곽 선생은 엄숙히 말했다.

"성현(聖賢)의 말씀에 '하늘이 높다 해도 머리를 아니 굽힐 수 없고, 땅이 두텁다 해도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하셨느니라."

<'연암외전(燕巖外傳)', 이우성·임형택 역>


출처 : 이문수 국어사랑



임진록(壬辰錄)-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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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16년 평안도 삭주(朔州)에 사는 최위공(崔衛公)이라는 선비가 살았는데, 마흔이 넘도록 자녀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부인이 관운장이 천제의 명으로 아들을 부인에게 드린다는 꿈을 꾼 후로 아들을 낳았다.


이가 곧 후일 영의정(領議政)이 되는 최일경(崔日景)이다. 최일경은 영민하여 16세에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냈고, 19세이 이르러는 우의정(右議政)이 되었다.

어느 날 국왕은 동방으로부터 한 계집이 머리를 산발하고 자루를 이고 울며 들어와 대궐의 계단에 내려놓자, 팔도에 불이 나고 민심이 흉흉해지는 꿈을 꾸었다. 이에 신하들을 불러 해몽하도록 하였는데, 최일경은 왜군이 침입하리라는 계시라고 풀이하였다. 그러나 왕은 태평성대에 민심을 어지럽히는 말이라고 화를 내며 최일경을 귀양 보냈다.


왕이 최일경의 해몽을 무시하고 안일하게 보냈는데, 임진년 4월 28일을 기하여 왜적은 수십만 대군으로 우리나라를 침입하였다.


이 때 평안도 삭주에 있던 20살의 이순신(李舜臣)이 국난을 예견하고 미리 거북선을 만들어 놓았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전주로 내려가 전라감사와 합세하여 왜군을 맞아 싸우다가 왜장 마홍(馬紅)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왜군의 일부는 제주도로 상류한다. 이 때 그곳에 살던 역사(力士) 강홍립(姜弘立)은 제주목사를 독려하여 왜군과 싸우게 하고,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출전하여 왜군을 격파하였다. 그리고 서울로 떠났다.


한편 조정에서는 선전관(宣傳官) 최충남(崔忠男)을 출전시켰으나 대패하고, 최충남은 전사하고 말았다. 이 사이에 왜군은 서울로 쳐들어 왔다. 선조는 할 수 없이 피난을 하려 하였으나, 말고삐를 잡을 사람이 없었다. 마침 평안도 사는 17세의 김도경(金道景)이라는 소년이 자청하여 말고삐를 잡고 의주(義州)까지 모시고 갔다.


왜군은 평양(平壤)을 점령하고 적장 소섭(小攝)은 기생 월선(月仙)으로 애첩을 삼고 논다. 이 때 최일경은 유배지에서 의주로 와 왕을 만나고 평안도 용강(龍岡)에서 사는 김응서 장군을 추천하였다. 이 사이에 강홍립 장군도 의주로 왔다. 선조는 최일경을 불러 상의 하고,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할 사신을 보내기로 하였는데, 유성룡(柳成龍)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적장 청정(淸正)이 도성을 점령하려는데 관운장이 나타나서 청정의 횡포를 꾸짖었다. 이에 청정은 도성을 포기하고 강원도로 갔다. 이 때 함경도 곡산에 사는 김덕령(金德齡)은 부친 상중(喪中)이었는데, 청정의 진중으로 날아 들어가 그를 꾸짖고, 도술로 혼내주었다.


이 무렵 청정은 누이의 편지를 받는데, 천기가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최일경은 김응서 장군을 시켜 소섭의 애첩이 되어 있는 월선을 설득하여 소섭을 암살하게 하였다.


그 사이에 명나라로 구원을 요청하러 간 유성룡은 남경(南京)으로 가서 청병(請兵)하였다. 그러나 명나라는 농번기임을 지적하며 출병을 거절하였다. 유성룡은 할 수 없이 귀국하였다. 그러나 명의 황제의 꿈 속에 관운장이 나타나 황제가 천상에서 살 때의 동생이 지금의 조선왕이니 구원해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명 황제는 이여송 장군을 불러 조선을 구하라 하였다.


황제의 명으로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에 이른 이여송은 물이 많아 건널 수 없다고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유성룡이 밤 사이에 다리를 놓아 줄 터이니 돌아가지 말라 하고, 도술을 부려 강을 육지로 만들어 놓았다. 이여송은 또 용탕(龍湯)이 먹고 싶다고 트집을 잡자, 유성룡은 항아리에 물을 담아 놓고 낚시로 용을 낚은 뒤에 용탕을 끓여 바쳤다. 또 이여송이 산호로 만든 젓가락이 있어야 먹을 수 있다고 하자, 유성룡은 소매 속에서 꺼내 주었다. 이러한 유성룡의 재주를 보고 감탄한 이여송은 강을 건너 의주로 왔다.


의주로 와서 선조를 만난 이여송은 선조의 관상이 왕의 자질이 없으므로 도와주어도 효과가 없다며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자 최일경은 왕으로 하여금 독 속에 들어가서 큰 소리로 통곡하게 하였다. 이여송이 곡소리를 듣고는 관상은 왕의 상이 아니지만, 곡하는 소리는 왕의 소리라며 비로소 출전할 마음을 먹었다.


왜적과 결전을 벌릴 때, 조선의 명장들이 다 모였다. 김응서, 강홍립 등을 비롯하여 강원도 삼척의 백설남, 경기도 광주의 유응서, 황해도 영흥의 김의경 등이 그들이다. 이여송은 김응서로 좌선봉, 송윤을 좌습장(左習將), 한태익으로 우습장, 동생 이여백(李如栢)을 중군장(中軍將)으로 하여 대전하게 하였다. 먼저 김응서가 출전하여 왜장 3명을 베었다. 왜군에서 청정이 출전하자 김응서와 강홍립이 나갔으나 패배하였다.


그러자 이여송이 출전하여 청정과 싸웠으나 승부를 내지 못하던 차에, 갑자기 관운장이 나타나 청정을 꾸짖고 이 틈을 타서 이여송이 청정의 머리를 베었다. 대장을 잃은 왜군은 대패하여 남으로 후퇴하였다. 이후로 왜군은 더 이상 싸우지 못하고 본국으로 회군(回軍)하였다.


왜군이 회군하자 선조는 서울로 돌아오고, 최일경은 영의정이 되었다가 죽었다. 그 즈음 김순달(金順達)이라는 간신이 김덕령을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죄로 고발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김덕령을 잡아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목을 베면 칼이 부러지고, 활을 쏘면 화살이 부러져 도저히 죽일 수가 없었다. 김덕령은 임금의 명을 어찌할 수가 없어서 '孝子忠臣金德齡'이라는 비문을 세워 주면 죽겠다고 하고는 다리 사이에 있는 비늘을 떼어내고 그곳을 칼로 치라하고는 죽었다.


왜군이 회군하자 이여송은 팔도를 다니며 산천의 혈맥을 찔렀다. 우리 나라에 명자이 많이 나올 것을 시기해서 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한 노인이 소를 타고 이여송의 앞으로 지나갔다. 자신의 앞에서도 소에서 내리지 않는 것에 화가 난 이여송은 노인을 잡아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잡으려 하여도 잡히지 않았다. 이여송은 그 노인을 따라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그 노인은 자신을 찾기 위해 헤매는 이여송을 초가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노인은 자신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는데, 모두가 불행하니 죽여달라고 하였다. 이에 이여송은 그 중의 한 아들을 죽이려 했으나 오히려 그 아들에게 죽을 뻔하였다. 그러자 노인은 이여송의 행동을 꾸짖고 빨리 제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여송은 노인에게 혼이 나서 명나라로 돌아갔다.


조정에서는 김응서와 강홍립 두 장군으로 하여금 왜국을 쳐서 항복을 받아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봉장군이었던 강홍립의 작전이 실패하여 대패하였다. 군사를 잃은 김응서와 강홍립은 기회를 엿보기 위해 적의 도읍으로 들어갔다.


왜장들이 두 장군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뛰어난 검술로 무수한 적장들의 목을 베었다. 그 모습을 보고 왜왕은 할 수 없이 화친을 제안했다. 강홍립은 왜왕의 청을 받아들여 왜왕의 부마(駙馬)가 되었으나 김응서는 끝내 왜왕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강홍립에게 절개를 지키라고 하였으나 듣지 않자, 먼저 강홍립을 죽이고 자살하였다. 김응서가 자살을 하자 그의 말이 주인의 머리를 물고 조선으로 돌아와서 김응서의 부인 앞에 갖다 놓았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김응서의 절의(節義)를 칭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13년이 지난 뒤에 평안도 안락사(安樂寺)에 사는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상경하여 왕을 만나서, 왜구의 재침을 막을 방안을 말하였다. 그리하여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당(泗溟堂) 유정(惟政)을 왜국에 보내어 강화(講和)하게 하였다.


사명당이 생불(生佛)이라는 소문을 듣고 왜왕은 백 가지 방법으로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다 실패하였다. 왜왕은 하는 수 없이 부자지국(父子之國)을 맺는 항복 문서를 올렸다. 이에 사명당은 1년에 인피(人皮) 3백장, 동전(銅錢) 3천근, 목탄(木炭) 3천근 등을 조공한다는 약속을 받고 무사히 돌아왔다.





▶연대 : 조선조 후기(임난 이후 인조 때로 추정)


▶형식 : 소설(국문소설)


▶성격 : 군담소설, 전쟁소설, 역사소설


▶표현 : 문어체, 역어체, 도술적인 표현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짜임 : 설화의 피카레스크식 구성


▶제재 :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


▶주제 : 민족적 자부심 고취. 민족적 응전 의지




<임진록>은 조선조 성조 때의 임진왜란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전쟁소설이다. 전쟁소설은 민족의 사기를 북돋아 주어 용기있는 정신선양을 목적으로 쓰여지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다. <임진록>은 작가와 연대를 알 수 없는 작품인데 인조 말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러 가지 판본이 유포되고 있다. 정사적인 입장에서 쓴 유성룡의 <징비록> 신정의 <임진록>, 안방준의 <임진록>, 작고한 서지학자 백순재본 <흑룡일기>등 여러 종류의 국문본이 모두 한계열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이것은 마치 중국의 <삼국지연의>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 약간의 영웅적인 과장을 가미한 작품으로 현실로는 아군이 패했지만 작품속에서는 승승장구하는 내용으로 묘사되고 있다. 실지로 <삼국지연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작품 내용은 이충무공, 조중봉,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이 혁명한 공훈과 그들의 교묘한 전략이 잘 묘사되고 있다.

한글본과 한문본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색적인 흥미를 풍긴다. 즉 한글본은 전쟁에 패배한 우리 민족의 정신적 사기를 양양하는 것을 문학적 특질로 볼 수 있는데 반하여, 한문본은 그 내용상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한문본은 이여송이란 중국의 장수를 주인공으로 하여 사대주의적 색채가 농후하게 나타난다. 어쨋든 일제치하에서는 이러한 책들은 금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추가 이해와 감상>


작가,연대 미상의 영웅소설, 군담 소설이다. 한문본과 국문본을 합쳐서 삼십여 종의 이본이 전한다. 임진왜란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작품으로 당시의 국제 정세 및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 전쟁의 발생과정과 전쟁 중에 활약한 장수들의 활약상이 작품의 주된 내용을 이룬다. 전쟁 승리의 과정을 한두 명의 영웅에 의한 승리로 그리지 않고, 수많은 의병장. 명장들을 순차적으로 등장시키면서 그들이 나라의 도처에서 애국적 민중의 힘을 바탕으로 싸워 나가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임진왜란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과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 등 몇가지를 빼고는 우리가 실제로 참패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우리가 크게 승리한 것으로 허구화해 놓았다. 패전의 역사를 허구의 세계에서나마 승전의 역사로 꾸며 놓음으로써 정신적 보상을 얻으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신 전락을 체험했던 민중들이나 그 의식을 계승한 후손들이 외적의 침략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여 민족과 강토를 수호해 온 민족 정기를 고취시키려는 목적과 당파싸움으로 내분을 일으켜 외적의 침략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만 집권층을 비판하려는 의도,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러한 뼈아픈 전란을 겪지 말 것을 다짐하는 분노와 자성(自省)의 목소리 등도 두루 담고 있다.

임진왜란 중 민중들이 겪은 체험은 단편적인 이야기로 구전되는데 처음에는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까운 내용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내용이 과장되거나 허구적 요소가 가미되어 설화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일본의 침략상은 악랄하게 그려지며 이에 맞서 싸우는 우리측 장수들은 영웅화되는 등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직,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이러한 설화들을 묶어서 기록했지만 대개 한문으로 되어 있어 서민들이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나중에 국문으로 번역하면서 소설의 체계를 갖추고 태어난 것이 '임진록'이다. 특히 국문본에는 이순신, 조현, 곽재우, 김덕령, 김응서, 강흥립, 사명당 등 민족적 영웅들의 활약상이 한문본에 비해 비교적 잘 드러나 있는데, 이로 볼 때 당시 민중들이 민족적 영웅을 얼마나 갈망했는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임진록'의 이본들은 내용에 따라 크게 세 계열로 구분할 수 있다.

①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계열로서 이순신, 권율, 송상현, 신립, 이여송 같은 인물의 활동을 사실대로 기록할 것

② 허구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서 실존인물이 아닌 최일영이나 관운장 등을 내세워 전개시켜 나가는 것

③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내용을 결합시킨 계열로서 위의 두 계열을 조합한 것이다.

'임진록'의 내용은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 는 다른 소설과는 달리 여러 인물들의 일화들을 순차적으로 엮은 단편집의 성격을 띠며, 내용은 다음과 같이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의 국내외 사정과 왜의 침략 기도

② 나라를 지키려는 민중들은 결사 항전하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왕조와 양반 계급은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가기에만 급급함

③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육지와 바다에서 왜적에게 패배를 안겨주면서 마침내 전쟁의승리를 이룩하는 과정

④ 전후 수습 과정으로 사명당이 왜에 건너가 항복을 받는 장면이다.

이 작품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물론 지배층에 대한 비판적 내용으로 인해 일제 강점기에는 금서가 되었으며, 대부분 불태워졌다. 비록 그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가다듬어진 소설이라곤 하기 어렵지만 역사상 전대미문의 참화를 겪고 난 후의 시대상황과 반일(反日), 반명(反明)사상과 같은 주체적 민족 정서를 다룬 작품으로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니며, 자기 비판과 반성의 문학으로서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군담소설에 그 의식이 이어져, '박씨부인전'과 함께 전쟁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18세기 이후 우리 민족의 현실에 대한 자각 의식과 역사 의식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임진록-한국대표 고전 소설-빛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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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문수 국어교실



<옥단춘전>

- 작자, 창작연대 미상 고대소설. 국문본.


* 줄거리 : 숙종대의 재상인 이정과 김정에게 각기 이혈룡, 김진희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함께 공부하면서 장차 서로 돕기를 약속했다. 김진희가 먼저 등과하여 평안 감사가 되었을 때 자기를 찾아온 이혈룡을 박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이려고 했다. 이 때 기생(옥단춘)은 뱃사공을 매수하여 이혈룡을 살리고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뒤에 이혈룡이 암행어사로 내려와 김진희의 악정(惡政)을 징계하고, 옥단춘과 반가이 재회한다.


* 구성상 <춘향전>, <오유란전>과 비슷함


출처 : EBS 교육자료(http://ipcp.edunet4u.net/~koreannote/4/4-옥단춘전.htm )

200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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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EBS 교육자료 + 이문수 국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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