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성폭행 시도' 자랑, 공화당 의원들 "후보 사퇴해야"

워싱턴|손제민 특파원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8일(현지시간) 선거본부가 설치된 뉴욕의 트럼프타워를 나서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뉴욕 | AFP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8일(현지시간) 선거본부가 설치된 뉴욕의 트럼프타워를 나서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뉴욕 |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가 성폭행 시도를 자랑하는 동영상이 7일 폭로된 뒤 공화당 정치인들이 속속 지지 철회를 선언했다. 부통령 후보마저 트럼프를 비난하는 진풍경까지 나오는 등 트럼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8일(현지시간) 물러날 가능성은 ‘제로’라며 대선후보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문제의 동영상은 트럼프가 2005년 연예매체인 액세스할리우드에 카메오로 출연하기 위해 진행자 빌리 부시와 버스로 이동하면서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트럼프는 부시에게 과거 자신이 기혼 여성을 유혹하려 한 경험담을 설명하면서 “성관계를 가지려고 엄청나게 세게 다가갔는데 거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며 키득거리는 내용이다. 녹화장에 도착해서는 여배우 아리안 저커를 보고 “혹시 키스할 경우에 대비해 (입냄새 제거용 사탕) ‘틱택’을 좀 써야겠다”며 “나는 자동으로 미인한테 끌린다. 그냥 바로 키스를 하게 된다. 마치 자석과 같다. 그냥 키스한다. 기다릴 수가 없다. 당신이 유명인이면 그들은 그냥 하게 내버려둔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이전과 차원이 다른 막말
트럼프는 전에도 폭스뉴스 여성 앵커를 ‘빔보(bimbo·예쁘지만 지적이지 않은 여자)’라고 부르고 공화당 경선 경쟁자인 칼리 피오리나의 외모를 비하했다. 최근 1차 TV토론 뒤에는 미스유니버스를 ‘가사도우미’, ‘돼지’로 불렀다. 11년 전의 동영상도 여성에 대한 숱한 막말과 이어져 있지만 성폭행을 시도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간의 발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때문에 여러 공화당 정치인들이 역겨움을 표하며 사퇴를 요구하거나 지지 철회를 선언하고 있다.

현재까지 마이크 리(유타), 마크 커크(일리노이), 마이크 코프먼(콜로라도) 하원의원과 벤 새스 상원의원(네브래스카) 등이 대선후보 사퇴를 공개 촉구했다. 제이슨 샤페츠(유타), 마사 로비(앨라배마), 크레슨트 하디(네바다) 하원의원과 게리 허버트 유타 주지사 등은 트럼프 지지를 철회했다.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도 “나는 트럼프가 우리 당의 당규에 따라 과반 이상의 대의원을 확보했다는 사실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을 비하하고 성폭행을 자랑하는 발언으로 마무리된 그의 행동은 조건부 지지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공화당 권력서열 3위인 존 튠 상원의원(사우스다코타)은 트위터 글에서 트럼프가 대선 후보 자리를 부통령 후보 마이크 펜스에게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혼돈에 빠진 공화당
펜스를 포함한 공화당 지도부도 트럼프 발언을 비판했지만 후보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펜스는 8일 성명을 내고 트럼프의 동영상에 “묘사된 말들과 행동들에 불쾌함을 느낀다”며 “나는 그의 말들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들을 옹호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가 9일 힐러리 클린턴과의 2차 TV토론을 “진심을 보여줄 기회로 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스스로 소명할 기회를 한 번 더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펜스는 파장을 의식한 듯 당내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의 위스콘신 공동유세를 취소했다. 라이언 의장은 트럼프 발언이 “메스껍다”고 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성명에서 “트럼프는 여성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여성에 대한 존중이 눈곱만치도 없는 발언들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가 후보 교체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관련 규정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RNC가 ‘대선승리 홍보 우편’ 발송업자에게 모든 작업을 일시 중단할 것도 지시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공화당 규정상 대선후보가 자진 사퇴하거나 죽지 않는 한 당 지도부가 강제로 후보를 교체할 수는 없다. 공화당이 반드시 트럼프를 사퇴시키겠다고 마음 먹으면 이 규정을 바꾸면 가능하기는 하지만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했던 유권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동안 숱한 막말과 스캔들에도 트럼프에 대해 관대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댔던 유권자들이 이번 발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이번 건은 11월 8일 대선과 함께 치러질 연방 상·하원 선거, 주지사 선거, 주 의회 선거에까지 미칠 수 있어 공화당 내에서 사퇴론이 계속 커질 전망이다.

■트럼프 “발언 후회하나 사퇴는 없다”
트럼프 본인은 당시 발언을 “후회한다”고 했지만 결코 대선후보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나는 스스로 완벽한 사람이라고 한번도 말한 적이 없다”라며 “나는 후회하는 말과 행동을 한 적이 있고, 오늘 공개된 10년도 더 된 그 발언도 그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아는 어느 누구도 이 말들이 지금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안다. 내가 그렇게 말했고, 잘못된 것이었다.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해지자. 우리는 현실세계 속에 살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이슈들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8년 전에 비해 덜 안전하고, 워싱턴 정치는 완전히 망가졌다. 힐러리 클린턴과 그 부류의 사람들이 이 나라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리석은 말을 했을 뿐이지만 나의 말과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는 큰 차이가 있다. 빌 클린턴은 실제로 여성들을 학대했고 힐러리는 그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공격하고 겁을 줬다. 우리는 향후 며칠간 이에 대해 좀더 논의할 것이다. 일요일 토론에서 보자”고 말했다. 이는 사과라기보다는 클린턴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을 할 것이라는 위협으로 여겨진다.

트럼프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나는 인생에서 물러서본 적이 없다”면서 “대선 레이스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지금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는 “내가 사퇴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단언했다. 트럼프의 부인 멜라니아는 남편의 말을 “용납 못할 발언”이라 규정하면서도 “그 발언이 지금 내가 아는 그 남자를 대변하지는 않는다”며 “국민이 그의 사과를 받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9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치러질 클린턴과 트럼프의 2차 TV토론회는 1차 때와 달리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열릴 예정이다. 공동 진행자인 CNN방송의 앤더슨 쿠퍼, ABC방송의 마사 래디츠가 절반의 질문을 하고, 일반 청중들이 나머지 절반의 질문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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