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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한국최초의 여성서양화가
저의 롤모델은 나혜석입니다.
그녀는 한국최초의 여성서양화가였을뿐만아니라 "여성도 사람이다" 를 외쳤던 일제강점기때의
여성운동가였다.
그녀는 1896년에 부유한집안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유명한 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신문에도 실렸다.
그리고, 1913년 18세의 나이로 서양화를 배우러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일본에서 첫사랑이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나혜석은 3.1운동에 가담했다가 5개월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러다 1920년 출세한 외교관 김우영의 열렬한 구애로 조건을 걸고 결혼을 했다.
나혜석의 결혼요구조건
1. 평생토록 지금처럼 이렇게 나를 사랑해달라.
2. 내가 그림그리는 것을 방해하지말라.
3. 당신의 어머니와 우리는 따로살게해달라.
4. 나의 죽은옛애인의 묘지에 비석을 세워달라.
나혜석과 김우영은 예배당에서 당시 조선을 떠들썩하게 한 최초의 서양식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1921년 조선여성최초로 개인전을 열고 성공적으로 마친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만주로 이주한 후, 외교관이라는 남편의 직위를 이용해서 만주에서 활동했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다.
그리고 조선여성최초로 남편을 따라 세계여행도 했다.
이렇게 화려하게 살았던 나혜석도 결국은 남편과 파리에서 이혼하고 잡지에 조선의 남녀차별에 대한 글을 실었다가 냉대와 멸시를 받다가 50세의 나이로 죽고는 지금은 묘지도 불분명하다고 한다.
그녀가 이혼한후 다시 파리로 돌아갔으면 잘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식들을 위해 조선으로 돌아왔다가 냉대와 멸시를 받다가 죽었다.
나도 나혜석처럼 미술을 좋아하고
비록 나혜석은 삶을 불행하게 끝마쳤지만 여성최초로 많은 일을 이루었고,
나라를 위해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했다.
그리고 현재수원에는 나혜석 동상이 있는 나혜석 거리도 있다.
그당시에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않고 옳은것을 계속 주장하고 추진했던 나혜석은 지금은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나는 나혜석의 그런점을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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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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