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BTS 지민의 원폭 티셔츠 단상.
얼마전 BTS의 티셔츠가 화제가 되었죠. 원폭과 광복 사진이 조합된 이미지입니다. 이제는 조금 더 나은 생각을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원폭이 우리를 구원해준 절대무기인가 논쟁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히로시마에는 군수공장이 있었고, 많은 조선인들은 군수공장에 징용으로 끌려 갑니다. 그러면 조선인 피해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그 규모가 얼마나 될 것인가. 그게 자료마다 다 다릅니다.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전시 말기의 혼란한 상황에서 행정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던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원폭의 무서움은 즉사하지 않아도 피폭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지요. 넉달 사이 죽은 사망자는 9만에서 16만 명 선이라고 합니다. 조선인은 히로시마에서만 5만 명이 피폭되어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야구선수 장훈씨의 누나도 이때 사망했고, 얼짱 왕자로 유명한 이우도 이때 사망했습니다.
이 사망자 수 집계는 신뢰성이 높지 않습니다. 호별 방문을 해서 측정한 것이 아니라, 들판에 소떼들 세듯 어림으로 추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로시마에 살고 있는 조선인 집계도 추정이고, 원폭 피해도 추정입니다. 예를 들어 폭심지에서 3킬로에서 5킬 범위내에 살면 추정 사망률이 1.9%나옵니다. 여기에 조선인 추정 인구를 곱해, 3-5킬로내 희생자수를 집계합니다. 당연히 추정치보다 훨씬 많은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원폭피해자' 이 다섯 글자가 있으면 그 중 한 자는 조선인 피해자라는 말입니다. 피폭된 조선인들은 살아남아도 힘든 삶을 지탱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원폭 피해자들은 1978년에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피폭자 수첩을 받습니다. 1990년에나 인도적 차원의 보상을 받습니다. 지원금 수준은 참 신산합니다. 그 사이 출생한 원폭 피해자 2세, 3세중에는 원폭 후유증을 이어받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픈 이유도 모르고 고생하다 돌아가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김형률 씨도 그런 분중 한 명이었습니다. 어머니가 10살 때 히로시마에 있었다는 이유로 1970년에 태어난 그가 천형을 이어받아 면역 글로블린 결핍으로 고생하다 짧은 삶을 마쳤습니다. 짐작하다시피 그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보상하는 곳은 없습니다. 2005년의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하는 일본인도 많습니다. 열흘 전 하토야마 일본 전 총리가 원폭 피해자들이 모여사는 합천에 왔습니다. 피해자를 만나 무릎 꿇고, 위령각에 참배를 하고 갔습니다.
원폭 투하는 여전히 정의로운 응징이나, 광복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긍정의 이미지로 기억하려면 피해자에게 눈을 감아야 합니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일본보다 더 나은 것도 많고, 일본을 약 올릴 정치적으로 올바른 수단이 많아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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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