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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모차르트에 대하여
비공개 조회수 1,098 작성일2006.10.12

님들 저 숙제좀 도와주여...   제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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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 답변
1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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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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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여? 제가좀 모차르트를 알거든여 근데 조금일꺼같네여

 

이름 (본명):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출생:1756년 1월 27일

출생지 : 오스트리아.

작곡한 곡 (대표작품) :피가로의 결혼(1786),돈조반니 (1787),마적(1791)

 

요제프 하이든과 더불어 18세기 빈 고전주의악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36년간의 짧은 생애에 여러 양식에 걸쳐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잘츠부르크 대주교 궁정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 의해 천재교육을 받았고 이미 5세 때 소곡을 작곡하였다. 6세 경부터 3년이 넘는 연주 여행을 하였고, 이후 많은 연주 여행을 하여 짧은 35년의 생애 중 10년 남짓을 여행으로 보냈다. 이러한 연주여행은 유럽 각지에서 독자적으로 전개되고 있던 음악을 흡수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으며 그의 음악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마지막 작품 레퀴엠을 작곡하던 중 건강이 쇠약해져 1791년 11월 20일
병상에 눕게 되고 12월 5일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다음날 이루어졌으며 사망 원인은 병사설과 독살설 등 명확하게 밝혀진바 없다. 한편 그의 아내 콘스탄체는 1809년 덴마크의 외교관 G.N.니센과 재혼하여 이 부부에 의하여 모차르트의 악보와 편지류가 정리되었고, 니센은 그의 관한
전기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의 유작 레퀴엠은 제자인 쥐스마이어에 의해 완성되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고귀한 기품을 지니고 있으며 단정하고 아름다워 동심에
가득찬 유희와 색채,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창작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음악을 궁정음악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그의 음악의 특징은 단정한 스타일, 맑은 하모니, 간결한 수법을 들 수 있다.
"멜로디는 음악의 에센스"라고 그 자신이 말했듯이 그의 선율은 아름답고
풍부하였으나 때론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듯 저변에는 가는 애수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은도움되길 바래여  (오늘하루도 행복하세여)^*^

200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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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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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931****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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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에 대하여

 

 

이름: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출생:1756년 1월 27일

출생지 : 오스트리아.

별명:음악의 신동

 

모차르트에 대해서

1756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출생.


아버지 레오폴트는 궁정 악단의 바이올린 주자로, 바이올린 교본도 출판함


1760년 4세 아버지가 피아노 공부를 허락함


1761년 5세 처음으로 곡을 작곡함


1762년 6세 뮌헨에서 연주함 누나와 함께 천재남매라고 불림


1763년 7세 빈, 파리 베르사유 궁전 등지에서 연주와 작곡 활동을함


1764년 8세 런던에서 크리스티안 바흐로부터 음악에 대해 배움


1768년 12세 짤막한 오페라를 작곡하여 상연


1769년 13세 잘츠부르크의 궁정 음악가가 됨


아버지와 이탈리아로 여행


1770년 14세 로마 교황으로부터 훈장을 받음


1771년 15세 베로나의 아카데미 회원에 추대됨

.
오페라 초연 대성공. 3월,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아버지와 함께 여행


1775년 19세 뮌헨과 잘츠부르크에서 오페라를 공연


1777년 21세 어머니와 함께 파리에 감. 만하임에서 좋은 친구들을 사귐


베버 씨의 딸 알로이지아와 알게 됨


1778년 22세 7월에 어머니 사망


혼자 만하임으로 돌아옴


1779년 23세 궁정의 오르간 주자가 됨


1781년 25세 새로 작곡한 오페라를 뮌헨에서 처음 공연


잘츠부르크 대주교에게 항의하고 궁정 오르간 주자 자리를 내놓게 됨


1782년 26세 8월, 알로이지아의 동생인 콘스탄체와 결혼하고 프리하로 여행


1785년 29세 시카네더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대본 작가 다 폰테를 소게받음


1786년 30세 다 폰테의 대본으로 작곡한 오페라<피가로의 결혼>이 빈에서 초연


1787년 31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프라하로 옮겨서 상연하여 대성공을 거둠


5월, 갑자기 아버지 사망베토벤 찾아옴


1788년 32세 3개의 교향곡을 연속으로 작곡했지만 연주되지 못함


1790년 34세 겨울, 병 때문에 영국으로 가는 것을 단념 하게 됨


1791년 35세 7월에 막내아들 출생, 9월에 독일말로 작곡한 오페라를 초연


11월에 병이 악화되어 12월 5일에 세상을 떠남

 

(출처 : '모차르트에 대하여' - 네이버 지식iN)


2006.10.17.

  • 출처

    (출처 : '모차르트에 대하여'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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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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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s****
초수
예체능, 실과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이름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본명 : Wolfgang Amadeus Mozart)
출생 : 1756년 1월 27일
사망 : 1791년 12월 5일
출생지 : 오스트리아
수상 : 궁정 실내작곡가
작품 : 작곡 '마적',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2006.10.17.

  •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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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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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힛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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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맞는건알지만 ㄱ그래도소개는해드릴게여 ㅋㅋㅋ

음.. 우선 뮤지컬 소개해드릴께요 ~~

전 뮤지컬너무좋아해서 요번에 갈거거든여 ~~

달고나 랑 듀엣 이라고  뮤지컬있는데 ~둘다  12월달에 한다하네요 ~

전 두개다 보러갈거구여 ~~

달고나는 충무로극장에서하구여 ~

듀엣이라는건 신시뮤지컬극장에서 한다고하네여 ㅋㅋ

저도갈라고 할인되는 싸이트알아봤거든여 ~??

씨즐에서 달고나 25% 할인되구여

듀엣이라는건 40% 할인된다고 그러네여 ㅋㅋㅋ

가서 확인해보시구여 ~좋은공연 많이있으니까

 좋은 공연 많이보시구

좋은 정보가 되셨길바래여 ~^^

200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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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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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답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잘츠부르크 출생.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나타내어 4세 때 건반 지도를 받고 5세 때 소곡(小曲)을 작곡하였다.
아버지는 그의 뛰어난 재능을 각지의 궁정에 알리기 위 하여 아들이 6세 되던 해부터 여행을 계획하여 1762년 7월 바이에른 선거후의 궁정이 있는 뮌 헨에 가서 연주하고, 이어 빈으로 가서 여황제 마리아 테레사 앞에서 연주하는 등 많은 일화가 있다.
그의 작곡가로서의 활동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준 것은 서유럽을 거의 일주하다시피 한 여행(1763∼66)이었다. 여행에서는 파리에서 알게 된 J.쇼베르트(1720?∼67), 런던에서 알게 된 J.C.바흐(J.S.바흐의 막내아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 파리에서는 바이올린소나타를, 런던에서는 최초의 교향곡(제1번 En장조) 등을 작곡했는데, 이 교향곡은 8세 때의 작품이었다.
두번째로 빈을 다녀온 후, 69~73년에는 3번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는데 그 동안 교황으로부터 황금박차(拍車)훈장을 받고, 볼로냐의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카의 입회시험(入會試驗)에 뛰어난 성적으로 합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볼로냐에서 마르티니로부터 음악이론·작곡을 배운 일과 이탈리아의 기악·성악에 직접 접한 일 등은 그 후의 교향곡·오페라·교회음악 창작 에 풍부한 자극이 되었다.
그는 이때 10대 소년으로 오페라의 작곡 의뢰를 받고 밀라노에서 작 곡한 오폐라를 상연(1770)하였는데, 제2회(71)와 제3회(72∼73)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 곳에서 오페라를 작곡 상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후 77년까지는 주로 잘츠부르크에 머물면서 미사곡 과 사교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하였으나, 차차 그 직무에 불만을 갖기 시작하여 77년 가을부터 79년까지 어머니와 함께 다른 궁정에 취직하기 위하여 만하임·파리를 여행하였다.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음악면에서는 만하임악파와 접촉하는 등 수확이 컸고 이때 《파리교향곡》 (1778) 외에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또한 만하임에서의 아로이지아 베버와의 사랑, 파리에서 의 어머니의 죽음 등 인생의 경험도 많이 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궁정음악가로서의 활동 을 계속하였으나, 80년 말 뮌헨궁정으로부터 의뢰받은 오페라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의 상연을 위하여 잘츠부르크를 떠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때까지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대주교 히에로니무스와의 불화가 표면화하여,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반대와 사표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빈에서 살기로 결심, 그의 인생의 후반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빈에서는 처음 작곡·연주(피아 노)·교육활동을 하였으며, 오페라 《후궁(後宮)으로부터의 도주》(82)와 《하프나교향곡》(82), 피아노협주곡 등을 작곡하였고 82년 8월에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하였다.
그가 빈에 머무는 동안에 작곡한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은 하이든의 것과 함께 고전파시대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는 작품이 되었다.
하이든과는 85년경에 직접 알게 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빈시대의 후반에 접어들자 모차르트의 작 품세계는 한층 무르익었으나, 그 반면 빈의 청중들의 기호로부터는 차차 멀어져, 생활은 어려 워지고 친구들로부터 빌린 빚도 많아졌다.
86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그러한 상황이 눈에 띄게 나타났는데 《피가로의 결혼》(86)이나 《돈 조반니》(87) 등의 오페라는 이 시기의 걸작들이다.
후자가 초연(初演)된 해 4월 베토벤이 찾아왔고 5월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구르크의 뒤를 이어 궁정실내작곡가의 칭호를 받았으나, 이것은 이름뿐이고 경제적으로는 그다 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이듬해에는 닥쳐오는 경제적인 궁핍 속에서 이른바 3대교향곡 《제 39번 E장조》 《제40번 G단조》 《제41번 C장조:주피터교향곡》을 작곡하였다.
그 후에도 모 차르트는 몇 차례 여행을 하였다.
89년의 베를린 여행에서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 름 2세를 알현하여 작곡의뢰를 받았다.
이듬해 초에는 오페라 부파 《코시 판 투테》를 완성하고, 가을에는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이 거행되는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대관식협주곡》 등을 포함한 연주회를 열었으나 빚은 늘어날 뿐이었고 91년 8월 의뢰받은 오페라 《티투스제(帝)의 인자(仁慈)》의 상연을 위하여 프라하로 여행하였으나 이 때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9월에는 징그슈필의 대작 《마적(魔笛)》을 완성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레퀴엠》을 미완성 인 채 남겨 두고 12월 5일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는 빈시의 성마르크스묘지에 있다.
36세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생애였으나, 어려서부터 창작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남긴 작품은 성악·기악의 모든 영역에 걸쳐 다채롭다.
그의 공적은 하이든과 함께 빈고전파의 양식을 확립한 데 있으며, 그를 앞섰던 이른바 전고전파(前古典派)의 여러 양식을 한몸에 흡수, 하이든 과도 뚜렷이 구별되는 개성적인 예술을 이룩하였다.

200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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