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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원주의 문화재나 축제 조사
비공개 조회수 16,882 작성일2014.01.19

제가 방학숙제에 원주의 문화재나 축제를 조사하는게 있는데

원주의 문화재 와 원주의 축제 좀 알려주세요

 

되도록 자세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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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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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의 문화재)

 

1.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


종 목  국보  제59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74-2 
시 대 고려시대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70)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현묘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현묘탑은 현재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부릅뜬 눈은 험상궂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고려 선종2년(1085)에 세워진 작품으로, 거북등의 조각수법과 머릿돌의 모양이 새로운 것이 특징이다. 비앞면 가장자리에 덩굴무늬를 새기고, 양 옆면에 정교한 조각을 한 치밀함이 돋보여 형태와 조각이 잘 어울리는 고려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2.거돈사지 원공국사 탑비


종 목  보물  제78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44 
시 대 고려시대


거돈사터에서 동쪽으로 약 110m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는 탑비로, 고려시대의 유명한 스님인 원공국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원공국사(930∼1018)의 법명은 지종이고, 세속에서 쓰던 성은 이씨인데, 비문에는 그의 생애와 행적, 그의 덕을 기리는 송덕문이 담겨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비몸이 작고 머릿돌이 큰 것이 특징적이다. 거북의 머리는 괴수 모양의 험한 인상을 한 용의 머리모양이다. 등에 새긴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우며, 육각형안에는 卍모양과 연꽃무늬를 돋을새김하였다. 머릿돌에는 구름속을 요동치는 용이 불꽃에 쌓인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매우 사실적이고 화려하다.

 

고려 현종 16년(1025)에 세운 것으로, 당시 ‘해동공자’로 불리던 대학자 최충이 글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새긴 글씨는 해서체인데, 중국 구양순의 서법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는 고려시대의 여러 비에 새긴 글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것으로 중국에 비교해서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한편 이 비에는 머릿돌을 옮기려 할 때 수십 명의 장정들이 매달려도 끄떡않던 돌을 농가에서 빌려온 소 한 마리가 옮겼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3.흥법사지 진공대사 탑비


종 목  보물  제463호 
지 정 일 1968.07.05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 
시 대 고려시대


흥법사터에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진공대사(869∼940)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비문이 새겨진 몸돌은 깨어진 채 경복궁으로 옮겨놓아 이 곳에는 비의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진공대사는 장순선사 밑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당나라에서 수도하고 공양왕 때 귀국한 후 왕의 스승이 되었다. 고려 건국 후에도 태조가 그의 설법에 감화하여 스승으로 머물기를 원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소백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 태조 23년에 입적하니 태조가 손수 비문을 짓고, 최광윤이 당나라 태종의 글씨를 모아 비를 세웠다.

비를 이고 있었던 돌거북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에 가까운 머리를 하고 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네 발로 바닥을 힘차게 딛고 있다. 목은 짧고 등껍질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운데 그 안에는 만(卍)자 무늬와 연꽃이 새겨져 있다.

 

머릿돌은 앞면 중앙에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그 주위에는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을 조각하였다. 용 두 마리가 서로 무섭게 노려보고 다른 두 마리는 양 귀퉁이에서 옆을 쳐다보고 있다. 뒷면에도 네 마리의 용이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데, 웅장한 기운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게 조각되어 당시의 높은 예술수준이 엿보인다.

 

경복궁에 있는 비의 몸돌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깨져있어 부분적으로 비문을 알아보기가 힘든 상태이나, 대체로 대사의 생애와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4.흥법사지 삼층석탑


종 목  보물  제464호 
지 정 일 1968.07.05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 
시 대 고려시대


흥법사터라고 전하는 밭 가운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흥법사는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지던 거대한 사찰로, 원래 탑 외에도 전흥법사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흥법사진공대사탑부석관(보물 제365호) 등이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강제로 반출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탑은 기단을 2단으로 두고, 그 위로 기와집 모습을 본뜬 듯한 탑신을 3층으로 쌓아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이 3개씩 새겨져 있는데, 꽃모양처럼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위층 기단의 윗면은 경사져 있고, 보기 드물게 중앙에는 1층 몸돌을 괴기 위한 받침을 3단으로 조각하였다.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시고 있는 탑신은 기단에 비해 너무 작은 모습이다.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겨놓았으며, 1층 몸돌에는 네모난 문비가 새겨져 있고 문비 안에는 마멸이 심한 문고리 장식이 남아있다. 지붕돌은 두꺼워 보이고 경사가 가파르며, 아래받침은 얇게 4단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파손된 부분이 많다. 지붕돌의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쪽 가에서 살짝 위로 들려있어 고려시대 석탑임을 잘 드러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머리장식을 받치기 위한 노반만 남아 있으나 그 마저도 많이 손상되어 있는 상태이다.

 

기단과 탑신의 불균형이 눈에 띄며, 돌의 구성이나 조각수법이 소박한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4.거돈사지 삼층석탑


종 목  보물  제750호 
지 정 일 1983.12.27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88 
시 대 신라


거돈사 옛 절터의 금당터 앞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긴 형태로, 기단을 이루는 밑돌·가운데돌·맨윗돌이 각각 4매로 이루어진 특징이 보인다. 위층 기단은 남·북쪽에 무늬없는 긴 돌만 세우고 동·서면에는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긴 돌을 끼워 맞춘 방식이다. 즉, 남·북쪽에서 보았을 때 동·서면에 세운 석재의 두께가 자연스럽게 기둥 모양으로 보이도록 한 것이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하였다. 5단의 밑받침을 둔 지붕돌은 두꺼우면서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곡선을 이루고 있다. 처마는 직선을 이루는데 끝부분에서의 들림이 경쾌하여 통일신라 양식임을 알 수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고, 그 위에 놓여진 연꽃 모양의 보주는 최근에 얹어 놓은 것이다.

 

탑의 조성연대는 2단을 이루는 기단구조와 기둥 모양의 새김, 5단의 지붕돌 받침 등의 수법으로 보아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 터에 있는 민가 우물가에는 탑 옆에서 옮겨왔다는 배례석(탑 앞에 놓여 예불을 드릴 때 향을 피우던 곳)이 놓여 있다.
   


5.거돈사지


종 목  사적  제168호 
지 정 일 1968.12.19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89 
시 대 신라


한계산 기슭의 작은 골짜기를 끼고 펼쳐진 곳에 있는 절터이다.

 

발굴조사 결과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처음 지어져 고려 초기에 확장·보수되어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중문터, 탑, 금당터, 강당터, 승방터, 회랑 등이 확인되었는데, 금당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2층 건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문지 북쪽의 3층석탑(보물 제750호)은 처음 세워질 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탑의 동쪽에는 원공국사 지조(930∼1018)를 위한 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제78호)가 있는데, 1025년 최충이 문장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 탑비와 함께 원공국사승묘탑(보물 제190호)이라 불리는 부도가 있었는데 현재는 경복궁 뜰 안에 옮겨 놓았다. 거돈사는 고려 초기 불교계의 중심이었던 법안종의 주요 사찰이었지만, 고려 중기 천태종이 유행하면서 천태종 사찰로 흡수되었다.

 

거돈사는 신라말 고려초의 절터로서 보기 드문 일탑식 가람으로 주목할 만한 곳이다. 
  


6.강원감영


종 목  사적  제439호 
지 정 일 2002.03.09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일산동 54-1 
시 대 조선시대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의 26개 부, 목, 군, 현을 관할하던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조선 태조 4년(1395)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됨에 따라 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 업무를 수행했던 곳이다.

 

감영의 규모는 선화당(정청)을 비롯하여 재은당(내아), 포정루(정문), 4대문, 객사 및 부속건물 등 31동 건물이 있었으나 원주시 청사, 재향군인회관 등이 생기면서 그 모습을 잃어 버려 현재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2000년 발굴조사 결과 중삼문터, 내삼문터, 공방고, 책방터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포정루에서 중삼문터와 내삼문터를 거쳐 선화당으로 이어지는 보도, 선화당을 중심으로 하여 외곽으로 둘러쳐진 담장터, 행각터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선화당 뒤편에 있는 연못터인 방지의 호안석축 등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다.

 

강원감영지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 당시의 건물이 원래의 위치에 잘 남아 있고, 중삼문, 내삼문, 공방고터, 책방고, 보도, 담장, 행각 등이 있던 흔적과 같은 관련 유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또한 강원감영 이전의 원주목 관아의 건물터 등이 그 아래층에 그대로 잘 남아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관아 건물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7.영원산성


종 목  사적  제447호 
지 정 일 2003.06.02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산50-2외 1필 
시 대 신라


영원산성은 원주의 치악산(해발 1,288m)에 위치한 돌로 쌓은 산성이다.

 

이 산성은 축조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말 가장 큰 지방세력이었던 북원의 양길·궁예와 관련되어 있는 사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고려 충렬왕 17년(1291) 원충갑이 지역의 방위군과 합단의 침략군을 통쾌히 무찌른 곳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목사 김제갑의 지휘 아래 원주 일대의 주민들이 끝까지 항전하다가 함락되어 수많은 장졸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 후 이 산성은 한강 상류의 요진으로 한동안 경영되다가 폐허가 되었다.

 

이 성의 전체적인 평면은 삼각형에 가까운 불규칙한 부정타원형으로, 성벽의 총 연장은 약 2.4㎞이며, 다듬지 않은 돌덩이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모습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동북 모서리에서 보다 높은 산봉우리를 이어서 꼬리처럼 된 용도를 만들었는데, 이 곳은 다른 지역과의 연락에 유리한 곳일 뿐만 아니라, 남대령 방면에서 능선을 타고 접근하는 적을 쉽사리 관찰하고 공격할 수 있는 곳이다. 한편 능선상에 성벽이 꺾어지는 곳은 능선을 타고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곡성을 마련하였는데, 동남쪽 성벽에 4곳, 북쪽 성벽에 4곳, 서쪽 성벽에 4곳이 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영원성은 석축성으로 둘레 3,749척, 성내에 우물 1개, 샘이 5곳 있었으나, 지금은 폐하였다’고 한다. 지금 성안에는 남·북·서문터와 성안의 물이 배수되는 수구가 남아 있는데, 북문의 동쪽에는 치성을 설치하여 방어력을 높이고 있다. 또한 성안에는 여러 곳에서 건물터가 확인되었으며, 세 곳에 숯가마가 남아 있다. 수습된 유물들은 고려·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도자기와 기와류 등으로 그 종류와 수량은 많지 않다.

 

이 산성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체성과 여장이 확실히 구분되면서도 성의 외벽에서는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며, 또한 여장에 사혈이 없다는 점이다. 아울러 축성의 형식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산성 축조방식에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산성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 준다. 즉, 위치의 선정, 용도 시설의 활용, 여장의 완전한 잔존, 성문과 치성의 구조 등에서 고려시대 산성의 특징을 가장 잘 알 수 있다.

 

원주 영원산성은 학술적으로는 중세 산성의 특징(여장, 치성, 성문 등)을 잘 보여주는 산성이며, 역사적으로는 고려·조선시대를 걸쳐 전란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귀중한 유적이다.
   


8.법천사지


종 목  사적  제466호 
지 정 일 2005.08.31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629 외 
시 대 통일신라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등 문헌에 전하는 법천사는 신라말에 산지 가람으로 세워져 고려시대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중창된 사찰이다. 특히 화엄종과 더불어 고려시대 양대 종단이었던 법상종의 고승 정현이 주지로 있어 법상종 사찰로 번성하였으며, 국사였던 지광국사 해린이 왕실의 비호하에 법천사로 은퇴하면서 크게 융성하였다가 조선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법천사에는 우리나라 묘탑 가운데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과 탑비(국보 제59호)가 문종에 의해 세워졌는데, 그 중 탑은 일제에 의해 경복궁으로 옮겨져 있으며, 법천사지에는 탑비를 비롯하여 지광국사현묘탑지와 부도전지,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다.

 

2001년부터 2004년에 걸쳐 실시한 4차례의 시·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건물지 19동과 우물지 3개소, 석축 및 담장유구, 계단지를 비롯하여 금동불입상, 연화대석, 각종 기와류 및 자기류 등의 유물이 확인되어 우리나라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9.포정루 및 선화당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일산동 54-1 
시 대 조선시대


조선 태조 4년(1395) 원주에 설치된 강원감영은 강원감사의 집무처로 70여 칸의 규모였다. 임진왜란(1592) 때 부서져 다시 건물을 세웠으나 한국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현재는 관찰사 집무처였던 선화당과 정문인 문루만 남아있다. 문루에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강원감영문루’라는 현판이 달려있었으나 『여지도서』등의 문헌을 근거로 하여 1991년에 ‘포정루’로 고쳐 달았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누각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하고 있는 팔작지붕이다. 1층 가운데 칸에는 2짝의 널문을 달았다. 2층은 주위를 난간으로 돌려 사방을 개방하였고 천장은 뼈대가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감영의 자리에 군청이 들어섰지만 선화당은 그대로 남아있다. 임진왜란 이후 1667년에 다시 지은 선화당은 앞면 7칸·옆면 4칸의 1층 건물로 문루와 같은 팔작지붕인 평범한 관아 건물이다. 대청쪽과 앞면, 오른쪽 등은 특이하게 띠살문으로 처리하였다.

 

포정루 및 선화당은 조선시대 감영의 형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10.일산동 석불좌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봉산동 836-1 원주시립박물관 
시 대 시대미상


원래 원주시 중앙동의 폐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남산 추월대로 이전하였고 다시 1962년 5월에 강원감영터로 이전하였다가 2000년 봉산동 시립박물관 야외로 이전 전시하고 있다. 이 석불은 5층석탑을 중심으로 좌우에 똑같은 모습으로 안치되어 있다.

 

이 2구의 불상은 머리 부분이 없어져 새로 보수한 것이어서 원래의 모습은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체구는 단정한 편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얇아서 신체의 윤곽이 잘 나타나 있으며, 평행옷주름은 다소 도식화되었다. 깨진 두 손은 가슴에 모은 상태로 보아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쥐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손모양으로 보아 아마도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8각대좌로, 상대에는 연꽃을 2중으로 조각하였고, 중대에는 각면에 모서리 기둥을 새기고 그 안에 보살상을 새겼다. 하대에도 연꽃잎을 새겼으며, 그 아래에는 사자와 모란 등을 장식한 8각 기둥모양의 큰 돌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불신만으로도 조각수법이 뛰어남을 알 수 있는 이 석불들은 단정한 체구, 세련된 형태, 평행옷주름 등에서 신라말의 비로자나불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적어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11.일산동 오층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봉산동 836-1 원주시립박물관 
시 대  고려시대


원래 원주시 중앙동의 폐사지에 있던 것을 1962년 5월에 강원감영터로 이전하였다가 2000년 봉산동 시립박물관 야외로 이전 전시하고 있다.

 

탑의 형태는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전체가 큼직한 돌로 이루어진 기단은 네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탑신의 각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떠 새겼다. 위로 오를수록 서서히 줄어드는 비율이 단아하며, 형태도 정돈되어 있다. 지붕돌은 얇은 편이고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인데, 안타깝게도 파손된 부분이 많다.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12.상원사지 석탑 및 광배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

지 정 일 1971.12.16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1060 
시 대 통일신라 후기~고려시대


상원사는 치악산 중턱인 해발 1,100m에 자리잡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절이다. 신라 때 무착선사가 창건했다고 하며, 꿩이 이 절의 종을 울려서 스님을 살려 은혜를 갚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절내의 대웅전 앞에 동서로 나란히 서 있는 이 두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크기와 형식에 있어 서로 비슷하다. 아래 ·위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은 1층 몸돌이 큰 편이나, 2층부터는 높이가 많이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모두 1단으로 이루어졌으며,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둥근 연꽃봉오리모양의 독특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지붕돌 받침이 간략화된 모습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동쪽 탑 앞에는 석불의 것으로 보이는 광배와 대좌가 놓여 있다. 광배는 불꽃무늬 테두리 안에 연꽃과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는데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대좌의 형태는 8각형이며, 한 면의 일부가 조금 깨졌다. 불상은 남아있지 않아 그 모습을 알 수 없으나, 광배와 대좌의 조각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고려전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13.용운사지 석조 비로자나불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2호

지 정 일 1973.07.31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402-1 
시 대  고려시대


이곳은 불상 주위에 용운사라고 적힌 기와조각들이 주변에서 발견되어 예전에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은 광배만 없어졌을 뿐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통통한 얼굴은 자연스럽게 미소짓고 있는 현실적인 모습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주름은 계단식으로 도식화되고 구불구불한 선은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상(보물 제995호)등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특징을 계승하여 만들어진 고려 초기 불상의 특징이 보인다. 손모양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3단으로 된 사각형인데, 큼직한 연꽃무늬와 안상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비로자나불의 특징을 계승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만든 고려 초기의 불상이다.

  


14.용운사지 삼층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지 정 일 1973.07.31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호저면 용곡리 402-1 
시 대 고려시대


용운사터에 석불과 나란히 서있는 고려시대 3층 석탑이다. 탑 주변에서 ‘용운사’라 새긴 기와가 발견되어 절 이름을 알게 되었다.

 

탑은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 맨 윗돌 위에는 연꽃을 두른 두툼한 괴임돌을 두어 탑신의 1층 몸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독특한 장식 수법이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낙수면의 경사는 느리고,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받침) 위로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륜(바퀴모양의 장식)이 차례로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기단부 맨윗돌이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기단 윗부분에 아름다운 연꽃을 장식한 굄돌을 두고, 지붕돌 밑면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15.봉산동 당간지주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9호

지 정 일 1976.06.17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봉산동 1146-1 
시 대 고려시대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는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다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시켜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원주시 봉산동 내천 옆에 자리한 이 당간지주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내에 서 있던 것이라 한다.

 

기단부가 땅에 묻혀 있어 그 모양을 알 수 없으며, 좌우 두 기둥과 기둥사이의 당간받침돌만이 남아있다. 자연돌로 만든 당간받침돌은 양끝을 기둥밑부분이 들어갈 수 있도록 파낸 후 기둥을 끼웠고, 그 윗면에는 가운데에 동그랗게 테를 돌린 후 깃대를 끼워 세울수 있도록 구멍을 파 놓았다. 양 기둥은 직사각형이나 위로 오를수록 차츰 좁아져 맨끝은 뾰족하게 모아진 형태이다.

 

각 부분에서 날카로운 부분을 다듬어 부드러운 모습을 나타내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세워진 시기는 대체적으로 정교한 꾸밈이 없었던 고려시대로 여겨진다. 1910년 ‘한일합방’당시 기둥 한쪽이 파손되어 1980년 4월 복원해 놓았다.
   


16.태장동 왕녀 복란 태실비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6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태장동 1266-11 
시 대  조선시대 


태실비는 태실(왕이나 왕실자손의 태를 모셔두는 돌로 만든 방) 옆에 세우는 비로, 모셔진 태의 주인공을 알려준다. 이 비는 조선 성종 17년(1486)에 태어난 왕녀 복란의 태실비이다.

 

비는 사각형의 비받침과 비몸, 머릿돌이 한돌로 되어 있다. 머릿돌은 연꽃잎을 씌운 것처럼 조각하였고 꼭대기에는 보주(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를 조각하여 머리장식을 하였다.

 

1992년 한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 시 비석 뒤 3m 지점에서 태를 담은 돌함을 따로 발견하였다. 이 마을은 태가 묻혀있다 하여 ‘태장정’으로 불리다가 1955년 ‘태장동’으로 바뀌었다. 

  


17.봉산동 석조 보살입상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7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봉산동 산6-1 
시 대  고려시ㅣ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에 있는 사람키 만한 석조보살 입상이다.

 

머리에는 관(冠)을 쓰고 있으며, 풍만한 얼굴에 눈·코·입은 작게 표현되어 있지만 미소를 띠고 있어 친근한 인상이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대고 있으며, 신체에 비해 팔은 가늘고 손이 작아서 불균형한 모습이다.

 

상체의 옷은 양복처럼 보이고, 큰 체구에 구름무늬 같은 하체의 옷주름이나 머리에 쓴 관 모양이 일반적인 보살과 거리가 먼 특이한 형태이다.

 

친근한 인상과 옷이나 신체 등 형식적인 세부표현에서 고려 보살상의 특징과 지방색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으로, 이 지방의 불상양식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18.비두리 귀부 및 이수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0호

지 정 일 1982.11.03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문막읍 비두리 산31 
시 대 시대미상


비두리 마을에 놓여 있는 비로, 원래는 후용리 마을의 용바위골에 있던 것을 인근에 법당을 세우면서 옮겨갔다가, 비두리 마을 주민의 건의에 따라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비는 바닥돌 위로 거북받침을 두었고, 그 위로 비몸이 사라진 채 머릿돌만 놓여 있다. 거북받침은 머리가 뒤로 바짝 돌려져 비를 바라다 보는 형상이며, 등에는 2중의 육각무늬가 가득 차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거니는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는데, 얼굴을 마주보고 몸은 서로 뒤엉킨 모습으로 요동치는 용의 움직임이 힘차다.

 

비몸이 사라져 비을 세운 시기나 그 주인공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섬세하고 사실적인 조각솜씨가 돋보이며, 특히 뒤로 돌려져 등에 붙어 있는 거북머리는 매우 독특한 발상이다.

  

 

19.김두한 가옥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86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문막읍 건등리 852-4 
시 대  조선시대


원주목사와 남원목사를 지낸 김탄행(1714∼1774)의 묘를 관리하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약 240여 년 전에 처음 지었다고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으며, 1936년에 크게 보수하였다고 한다.

 

ㄱ자형의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되어 ㄷ자형을 이루고, 사랑채 끝에 대문과 헛간 등이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안방과 웃방이 부엌에 접하여 있고 그 옆으로 대청과 건넌방이 있으며, 지붕 옆면은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사랑채는 3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앞면 3칸의 규모로 지었으며, 왼쪽 1칸은 마루방·오른쪽 2칸은 방으로 되어 있다. 마루방 뒤쪽에는 사방 1칸의 온돌방을 두었는데, 이 뒤쪽으로 안채의 부엌과 닿아있다.

사랑채 옆은 대문으로 여기에 이어져 헛간·창고방들이 ㄴ자로 연결되어 있다. 대문에서 헛간부분은 사랑채보다 현저히 낮게 구성되어 지붕선도 층단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이용하는 공간이 구분되어 전체의 가옥형태를 이루는데, 이 집은 사랑채의 주요공간이 안채의 부엌 앞쪽에 닿아 있는 특이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20.보문사 청 석탑


종 목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지 정 일 1985.09.13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행구동 산105 
시 대 고려시대


보문사터로 알려진 곳에 지금의 절을 새로 지을 때 중 땅속에서 발견된 탑으로, 점판암(벼루를 만들던 돌)으로 이루어진 청석탑이다.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구조인데, 기단과 탑신의 모습이 비슷하여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현재는 이 탑을 보호하기 위해 탑의 아래에 화강암의 높고 널찍한 2층의 단을 마련해 놓았다. 아래·위층 기단은 윗면에 연꽃을 새겨놓았고,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불교문자인 범어를 새겼다. 현재 탑을 이루고 있는 전체가 모두 원래의 것은 아니고, 탑신의 2·3·4층의 몸돌과 5개의 지붕돌, 두 기단의 맨윗돌 외에는 최근에 새로 만들어 끼워놓은 것이다.

 

땅속에 오랫동안 묻혀있었던 탓인지 심하게 닳고 부서진 부분이 많으나, 고려시대의 청석탑 양식을 알려주는 귀중한 탑이다. 

 

 

21.학곡리 황장금표


종 목  강원도 기념물  제30호

지 정 일 1979.05.30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1061 
시 대 조선시대


치악산 내의 구룡사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 놓여 있는 것으로, 황장목의 보호를 위하여 일반인의 벌목을 금지하는 경계의 표시이다.

 

황장목은 나무의 안쪽색깔이 누렇고 몸이 단단한 질이 좋은 소나무로서 왕실에 올리는 특산물 중의 하나이며, 궁에서 신관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특히 치악산은 질이 좋은 소나무가 많을 뿐 아니라 관아가 가까이 있어 관리도 유리하였고, 한강의 상류에 자리하여 뗏목으로 한양까지의 운송이 편리하여 전국에 있는 60여 개소의 황장목 보호림 가운데에도 이름난 곳의 하나였다.

 

금표는 작은 바위의 한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황장금표’라는 글귀를 새긴 모습으로, 최근에 ‘금’자와 ‘표’자 사이의 윗부분에 ‘동’자가 새로이 발견되었다. 구룡사 입구에서 100여m 정도 내려가면 도로가의 흙속에 일부가 묻혀 있는 1기의 금표가 더 남아 있는데, ‘금표’의 글귀 윗부분에 ‘외’자가 보인다.

 

이렇듯 보호림 구역을 만들어 표시를 해놓는 제도는 조선시대 전기부터 생겨난 것으로, 강원도에는 이곳 외에도 인제, 영월, 양양 등에 있다. 

 

 

22.입석사 석탑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9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소초면 흥양리 산1 
시 대 고려시대


입석사에 있는 탑으로 무너져 있던 것을 세워 둔 것인데, 2기의 석탑 부재가 섞여 있는 듯 하다.

 

부재들은 두툼하고 네모난 연꽃받침이 2개, 얇은 연꽃받침이 1개, 각 면에 기둥 모양을 새긴 탑신의 몸돌이 3개, 네모난 판돌이 4개이다.

 

연꽃무늬 조각이나 탑신의 몸돌을 다듬은 솜씨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왕위에 오른 후 어린 시절의 스승 운곡 원천석을 자주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치악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며 나타나지 않으니, 그를 생각하며 이 탑을 세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온다.

 


23.법천사 당간지주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0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620 
시 대 통일신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깃발을 달게 되는데, 이 깃발을 거는 길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 쪽에서 지탱시켜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드물게 당간이 남아있는 예가 있으나, 대개는 두 지주만이 남아있다.

 

이 당간지주는 법천사 절터에 남아 있는 것으로,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와 함께 터를 지키고 있다. 기둥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으며,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고 있다. 기둥사이에는 당간을 꽂아두기 위한 받침돌을 둥글게 다듬어 마련해 놓았다. 두 기둥의 윗부분은 모서리를 깍아 둥글게 다듬어 놓았고,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파놓았다.

 

당간의 받침돌이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작품으로, 기둥 형태가 안정감이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측된다.

 

 

24.흥법사지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5호 
지 정 일 1984.06.02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외 7필지 
시 대 고려시대


흥법사는 『고려사』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신라 때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임진왜란 때 없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는 염거화상탑, 진공대사부도(보물 제365호), 진공대사탑비가 있었는데, 1931년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반출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현재는 흥법사지삼층석탑(보물 제464호), 진공대사탑비귀부및이수(보물 제463호)만이 남아있다.

 

 

25.원주향교


종 목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98호

지 정 일 1985.01.17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명륜동 255 
시 대 고려시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원주향교는 고려 인종(재위 1122∼1146) 때 처음 지었고, 조선 태종 2년(1402)에 다시 지었다. 이후 여러 차례 수리·복원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서무, 동재·서재, 외삼문, 수복실 등이다.

 

맨 뒤쪽 가운데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고, 그 양쪽에 동무·서무를 배치하였다. 대성전 앞쪽에는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을 두고, 명륜당 앞 양쪽에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를 배치하였다. 동재 옆에 수복실을, 명륜당 앞에 외삼문을 배치하였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원주의 축제)

 

1.섬강축제

 

* 지역별 강원도 원주

* 주최/주관기관 섬강축제위원회/지정면청년회

* 최초 개최년도 1997

* 개최기간 8월중

* 축제성격 관광특산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간현 국민관광지를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놀이문화 및 볼거리·편의를 제공하여, 섬강유역의 청정자연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알리고 지역향토 농산물 등을 홍보하기 위함.

 

▶ 지 역 특 성

· 원주간현관광지내에서 개최됨으로써 수려한 자연경관과 축제가 어우러짐

· 영동고속도로 문막인터체인지와 인접하여 접근이 용이하고, 관동별곡의 시작인 섬강이 흐른다.

 

▶ 축제행사종목

- 전통행사 : 섬강제

- 테마행사 : 암벽등반대회, 래프팅, 치어방류, 수중모터쇼, 맨손고기잡기대회

- 먹거리 : 조엄 밤고구마 맛자랑 멋자랑, 지역 특산물 먹기대회

- 기타 : 불꽃놀이, 연예인공연, 노래자랑

 

2.한지문화제

 

* 지역별 강원도 원주

* 주최/주관기관 원주한지문화제위원회/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 한지개발원

* 최초 개최년도 1999

* 개최기간 9월중

* 축제성격 관광특산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옛부터 원주의 닥나무는 중부내륙 지방의 알맞은 기후, 환경에서 육성되어 품질의 우수성이 뛰어나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통한지의 제작기술을 보존하고 사라져 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복원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함

 

▶ 지 역 특 성

· 중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영동선 등 사통팔달의 도시

· 옛부터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가 좋기로 유명하여 일찍이 한지 전통산업이 발달하였고, 현재까지 그 맥이 면면히 내려오는 전국의 몇 안되는 도시

 

▶ 축제행사종목

◦ 테마행사

- 전시 : 종이자료전, 한국의 전통등전, 제3회대한민국한지대전, 한지의상전,한지제작도구전

- 체험 : 한지뜨기, 재생종이뜨기, 한지공예만들기

- 시연 : 한지제작과정, 지승공예제작과정, 한지등제작과정

- 경연 : 한지공예품, 닥종이인형, 인테리어창문바르기

행사 : 한지패션쇼, 10m한지용 제작, 50m한지등터널제작

◦ 장터 : 한지제품할인판매장, 먹거리, 쉼터

◦ 기타 : 학술행사(한지)

 

3.회촌 달맞이축제

 

* 지역별 강원도 원주

* 주최/주관기관 회촌정월대보름달맞이축제위원회/원주매지농악보존회

* 최초 개최년도 1993

* 개최기간 2. 5

* 축제성격 전통민속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잊혀져 가는 민속명절의 복원으로 세시풍속을 통해 우리 것의 소중함을 배우고 지역문화를 계승하며 지역주민의 대화합의 장을 마련함으로서 지역문화축제의 기틀을 마련함.(전통 민속마을 육성의 기틀)

 

▶ 지 역 특 성

· 원주연세대학교 캠퍼스가 위치한 곳임

· 강원도와 충청도의 길목에 위치함

 

▶ 축제행사종목

- 전통행사 : 당산제

- 테마행사 : 소원지 쓰기, 연날리기, 쥐불놀이, 줄다리기, 윷점치기, 달?토끼 떡메치기, 전통민속놀이, 매지농악가락배우기, 전통민속놀이 경연대회(제기차기, 투호던지기, 윷놀이, 줄넘기), 매지농악, 터다지기, 횃불놀이, 달집태우기, 다리밟기

- 먹거리 : 토속음식 판매, 아이들을 위한 분식코너, 고구마·감자·밤구워먹기

- 기타 : 공연 한마당, 난장마당, 대동놀이, 짚풀공예전시, 한 살림 먹거리 전시판매

 

4.행구동 달맞이 축제

 

* 지역별 강원도 원주

* 주최/주관기관 행구동대보름맞이추진위원회 / 행구동영서농악회

* 최초 개최년도 2000

* 개최기간   2월 5일

* 축제성격 전통민속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잊혀져 가는 민속고유행사 계승발전과 한해의 풍년농사와 주민복지 및 행구동의 발전을 기원하며, 주민의 한마당 잔치를 실시하여 화합과 단결의 장 마련

 

▶ 지 역 특 성

- 원주시 배말나루터에서 개최됨으로 인하여 접근성이 뛰어나고 주차가 용이

 

▶ 축제행사종목

- 전통행사 : 풍년기원제례, 시민축원제

- 테마행사 : 사물놀이, 연날리기, 제기차기, 널뛰기, 찰떡만들기,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한량무 살풀이,

- 기타 : 민요, 굴렁쇠굴리기, 택견시범, 각설이타령, 경품추첨 및 시민화합 한마당

 

5.치악산 복사꽃 축제

 

* 지역별 강원도 원주

* 주최/주관기관 치악산복사꽃축제추진위원회 / 소초농업협동조합

* 최초 개최년도 1999

* 개최기간 4월중

* 축제성격 관광특산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 꿩의 전설이 깃든 치악산 기슭의 맑고 깨끗한 계곡사이에서 무르익는 전국 최고의 당도∙맛과 향을 자랑하는 치악산복숭아 품질의 우수성을 대외적으로 알려 농가 소득증대 기여하고,

◦ 지방화 시대에 맞는 지역이미지 제고를 위한 지역축제로 정착시켜 주민화합의 장 마련

▶ 지 역 특 성

· 소초면 복숭아 과수원과 수려한 계곡이 조화를 이뤄 만개한 복사꽃이 도원경을 연출함

· 치악산 국립공원과 영동고속도로와 인접

 

▶ 축제행사종목

- 전통행사 : 풍년기원독경, 풍년기원제

- 테마행사 : 복사꽃·복숭아사진촬영대회, 복사꽃길 함께 걷기, 복사꽃 그림전시회, 사생대회

- 먹거리 : 향토산품 판매, 먹거리 장터운영

- 기 타 : 페이스페인팅, 압화체험장 운영, 특공무술시범, 에어로빅 시범, 방

송악단연주, 맥주·잔치국수먹기대회, 예쁜엉덩이선발대회, 이벤트

 

6.장미축제

 

* 지역별 강원도 원주

* 주최/주관기관 장미축제위원회/단계동 청.장년회

* 최초 개최년도 1999

* 개최기간 5월중

* 축제성격 관광특산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시화인 장미를 주제로 장미꽃 만개시 개최되는 지역축제로 시화인 장미를 널리 알리고 단계동 상가의 활성화를 도모

 

▶ 지 역 특 성

· 원주시내에서 개최됨으로 접근성이 뛰어남

 

▶ 축제행사종목

- 전통행사 : 민속사물놀이

- 테마행사 : 장미페이스페인팅, 희귀장미전시회, 장미작품전시회, 장미

페이스 페인팅, 장미네일아트 및 헤나, 장미꽃 염색체험학습,

장미나눠주기, 장미꽃심기, 장미퍼포먼스, 꽃다발콘테스트

- 기타 : 사생대회, 도전!골든벨, 치어리더공연, 합창단공연, Rock공연,

군악대공연, 댄스경연대회

 

7.원주 감영제

 

* 지역별 강원도 원주

* 주최/주관기관 원주감영제위원회

* 최초 개최년도 1982

* 개최기간 10월중

* 축제성격 종합축제

 

▶ 축제의 유래 및 특성

1971년에 원주군도제에서 출발하여 30년동안 지속되어온 원주의 전통축제였던 원주치악제를 조선시대 지방행정의 중심이었던 강원감영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2005년부터 강원감영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축제를 결합한 강원감영제로 그 명칭을 변경.

 

▶ 지역특성

▫ 조선 500년간 강원도 감영이 있던 곳

▫ 국립공원인 치악산이 있고 예부터 중부내륙권의 주요거점 문화도시

 

▶ 축제행사종목

▫전통행사 : 동악제, 치악산 산신제, 산신대재, 관찰사 고유제,

강원감사 순력행사, 조선시대 무술시연, 향시재현,

휘호대회, 취타대 공연, 기로연회, 시보북치기, 수문병교대식

▫민속행사 : 민속경기 (팔씨름), 닭싸움, 투호, 널뛰기 등), 하평답교놀이,

관동800리, 철원 상노지경다지기, 매지농악

▫일반행사 : 인형극, 실버음악회, 장치기, 감영음악회, 풍악 그리고 난장

감영물품전시, 역대감사인물전, 조선시대 생활전

▫전통장터 : 주막, 풍물장터, 향토음식코너, 전통요리 등

 

201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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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정리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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