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킹 신으면 1점, 교실에서 졸면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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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 신으면 1점, 교실에서 졸면 2점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8.11.1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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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내 모 일반고 학생규정에 반기든 학생들
“규정이 너무 억압적”vs “학생들의 의견 수렴했다”
학교 내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만든 그린마일리지 제도와 자치법정을 두고 일부 학교의 학생들이 “억압 장치에 불과하다”며 문제제기에 나섰다.

청주시내 한 일반고에서 벌어진 일이다. 학생 A군은 교복에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10월 말에 열린 학내 자치법정에 소환됐다. 벌점이 30점을 넘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판사, 변호사, 방청객, 배심원을 맡아 A군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다. 이날 소환된(?) 학생은 10명. 모두 수업태도와 복장 불량 등이 이유였다.

A군은 “수업시간에 졸거나 교복을 입었어도 넥타이나 조끼 등을 착용하지 않으면 벌점을 받는다.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고 벌점을 받았지만 기숙사생활을 하기 때문에 월요일에 챙기지 않으면 금요일까지 가져오기가 힘들다. 자치법정 규정에 이 내용은 빠져있는데 선도부에서 따로 벌점을 준다”라고 말했다.

이어 A군은 “요즘 선생님들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혼낼 때 따로 불려서 얘기한다. 학생들 앞에서 자치법정을 하는 것 자체가 인민재판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벌점 기준 자체도 모호하다. 졸았다고 벌점을 주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생리적인 현상이 아닌가. 어떤 선생님은 대놓고 잘 때, 어떤 선생님은 고개를 떨구어도 벌점을 준다. 왜 자치법정을 해야 하는 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라고 비판했다. A군은 교내봉사시간 6시간, 나의 다짐쓰기, 벌점 준 선생님과 산책하기 등의 ‘벌칙’을 받았다.

 

교장에게 호소문 쓰기도

 

같은 학교에 다니는 1학년 B양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교장선생님께 드리는 호소문을 작성했다. 학생 규정 자체가 학생들을 억압한다는 내용이었다.

B양은 “학교에서 정해준 날짜 이전에 스타킹을 신으면 벌점 1점을 받았다. 날씨가 자주 바뀌기도 하고 사람마다 느끼는 온도차도 있는데 일률적으로 정한 것이다. 화장도 마찬가지다. 선도부가 점심시간에 물티슈로 학생들 얼굴을 닦는다. 화장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 어떤 친구들은 아예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가지 않는다. 여자 아이들에게만 ‘검사’를 실시한다”라고 설명했다. B양은 또한 “규정을 만든 것 자체가 선생님들이 학생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화장은 일부 학생들이 하는 것인데 그게 물티슈로 얼굴을 닦일 만큼 이상한 행동인지 모르겠다. 과하지 않으면 허용하면 좋겠다. 나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스타킹의 경우 학교 측은 최근 벌점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학교 교감은 이에 대해 “학생지도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중학교 때 자유롭게 생활했던 친구들에겐 학생 규정이 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학생 규정을 올해 재개정하면서 학생, 교사,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화장의 경우도 학부모 입장에선 강력한 제제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해명했다.

이 학교는 올해 학생 규정 재개정 위원회를 소집하고 4개월 간 규정 수정 작업을 했다. 하지만 학생 대표들만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다보니 대다수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미미했다.

교감은 “수능이 끝난 후 학생 규정 및 자치법정에 대한 재논의를 할 예정이다. 자치법정은 학년 초에 이미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갑자기 중단하기가 어렵다. 개선방향을 찾겠다”라고 답했다.

학생 규정에 대한 상벌제(그린마일리지 제도)가 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자치법정이 열리게 된다. 그린마일리지제란 2010년 3월부터 시행된 학생 상벌점제로, 교내에서 학생에 대한 체벌을 근절하기 위해 잘못된 행동을 한 학생에게 벌점 부여 및 상담과 순화교육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또 칭찬받을 행동을 한 학생에게는 상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린마일리지 제도로 인해 적잖은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일반고 교사 모 씨는 “그린마일리지 제도가 교사들과 일부 선도부 학생의 권위를 내세우는 장치로 악용될 수 있다. 학생 자치법정 또한 제도는 좋지만 실제 실행과정에서 학생들이 상처를 받는다. 정작 학교 폭력에 연루되거나 문제가 심각한 학생들은 아예 소환대상도 아니다. 사소한 벌점들이 쌓여 자치법정에 회부되더라도 문제아로 친구들에게 인식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린마일리지 딜레마

 

그린마일리지 제도 및 자치법정 운영은 학교 구성원들의 선택사항이다. 행복씨앗학교인 서원고의 경우 모든 구성원들이 학생규정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기존의 학생규정을 놓고 아이들 스스로 안을 정하고 이후 투표하는 방식으로 최종안을 결정했다. 그린마일리지 제도 및 자치법정 또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존속시키기로 했다.

최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중‧고교 학생들에게 ‘두발자유화’를 선언했다. 파마와 염색까지 다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서울시 학교 85%가 두발자율화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안하는 학교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일반고 교사 모 씨는 “두발자유화는 선언했지만 화장에 대한 규정은 따로 내려오지 않았다. 학교가 알아서 정하라고 했다. 여고생들은 화장에 민감하다. 일부 학부모들은 아예 립스틱을 아이랑 같이 사러 다닌다. 선배교사들은 학생규정을 강화시키면 몇 개월 안에 학교 분위기가 잡힌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학생지도를 하다보면 불필요한 갈등과 잡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를 무조건 방치하기도 어렵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자치법정에 대해서도 교사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중학교 교사 모 씨는 “자치법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 원래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했던 프로그램인데 일반 학교로 전면 도입됐다. 자치법정을 통해 오히려 친구들 간에 감정만 상할 수 있다. 학생들의 역량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은 역효과만 낼 수 있다. 그린마일리지든, 자치법정이든 학교 구성원들 특히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학생 인권이 강조되는 시대이다 보니 자꾸만 이러한 문제가 학교 내에서 불거질 수밖에 없다. 학교의 변화도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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