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톡톡

시인 이병률 '사랑과 성숙'

황경상 기자 이윤정 기자

경향신문 심리톡톡 시즌2 ‘사랑에 관하여’ 6월 강연은 잘 벼른 사랑의 언어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이병률 시인과 함께 ‘사랑과 성숙’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등의 베스트셀러 여행 산문집을 낸 그는 “사랑과 여행은 닮아있다. 끝나고 난 뒤에야 다음에 좀 더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면서 “20대에 여행만큼이나 사랑의 경험을 하는 것은 이후 삶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29일 저녁 서울 중구 경향신문 여적향에서 진행된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오늘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사랑을 느꼈고, 사랑을 했고, 결국 글로 쓸 수밖에 없었던 숨길 수 없었던 이야기. 그래서 썼던 글들, 짧은 글들을 들려드릴게요. 곧 나올 제 세 번째 여행책에 실은 글도 읽어드릴게요.

오늘 강연의 화두는 동화 <고래가 보고싶거든> (문학동네 / 글 줄리 폴리아노, 그림 에린 E 스테드)입니다.

[심리톡톡] 시인 이병률 '사랑과 성숙'

“고래가 보고 싶니?

그렇다면 창문이 있어야 해.

그리고 바다도.

시간도 있어야 해.

바라보고

기다리고.

“저게 고래가 아닐까?” 생각할 시간.

(중략)

고래가 정말 보고 싶니?

그렇다면 바다에서 눈을 떼지 마.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거야.“

■ 사랑과 여행은 닮았다

이 동화책을 선물 받았을 때 제가 쓴 글만 같았습니다. 이해가 그만큼 잘 됐고, 제가 쓰고 싶었던 글의 패턴이 녹아있었거든요. 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전해줘야겠다. 몇 년째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직접 사서 준 적은 없네요.

이유는, 고래를 기다리고 고래를 만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사랑을 기다리며 사랑으로 가는 먼 여정을 가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간절하지 않다면 사랑이 와도 그걸 알지 못해요. 매일 보이는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건강하지 않다면 모르는 채 그 사람을 떠나보낼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사랑을 잘 기다리는 사람은 굉장히 외로운 상태인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봤을 때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인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봤을 때 실망하지 않을 상태이어야 하죠.

저는 좋은 글을 읽고, 여행을 다녀오는 모든 과정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요. 저에게 사랑은 ‘어떤 장면’이에요. 단순한 사진 한 장이 아니라 풍부한 음악성과 구체적인 냄새, 인간적인 온기를 갖고 있고, 이 모든 것이 ‘뇌리에 스치는’ 어떤 장면을 이루게 되죠. 모든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장면’이어야 합니다. 더 이상 볼 수 없고, 슬픔 속에 헤어졌다 할지라도 그 ‘어떤 장면’을 떠올리면 힘이 나고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지죠. 그러므로 좋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안좋은 기억을 갖고 헤어졌다고 하더라도 사랑했던 그 장면만큼은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하면서 행복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요.

저는 사랑을 할 때 글이 잘 써져요. 여러분은 사랑을 할 때 일이 잘 되나요? 쉽게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나요? 사랑을 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보냅니다, 그래서 저는 뭔가를 써요. 말이 되거나 되지 않거나는 중요하지 않죠. 어느 순간 정리가 되면서 에세이나 시로 승화됩니다.

어렸을 때 좋은 감정을 편지로 많이 썼어요. 편지를 쓰려면 좋은 책도 읽어야겠고 좋은 문장을 슬쩍슬쩍 옮겨야 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상상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단어의 때깔이 달라져요. 결국 좋은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 순간순간을 지나면서 작가로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사랑의 정의에 대해 쓴 제 미공개 글을 읽어드릴게요. (‘사랑은 그런 것’,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

“홀로 잠들어있는 나를 덮어주는 그림자가 가만히 그림자 하나를 데리고 와서 옆에 누인 다음 그 둘을 혼곤히 잠들게 하는 것은 사랑이 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문득 길을 가다 만나는 찐빵 가게에서 솥 바깥으로 치솟는 훈김 같은 것. 사랑은 그런 것. 호기롭게 사두었다가 오 년이 되어도 읽지 못하는 두꺼운 책의 무거운 내음 같은, 사랑은 그런 것. 여행지에서 마음에 들어 샀지만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입을 수 없는 옷의 문양 같은 것. 머쓱한 오해로 모든 것이 늦어버려 아물어지지 않는 상태인 것, 실은 미안하지만 동시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돌의 입자처럼 촘촘하지만 실은 헐거운 망사에 불과한 것. 사랑은 그런 것. 백년 동안을 조금씩 닳고 살았던 돌이 한 순간 벼락을 맞아 조각이 돼버리는 그런 것. 시들어버릴까 걱정하지만 시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시들게 두는 것. 또 선거철에 거리의 공기와 소음만큼이나 어질어질한 것. 흙 위에 놀이를 하다 그려놓은 선들이 남아 있는 저녁의 나머지인 것.”

이병률 시인이 지난 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북카페에서 청중을 대상으로 ‘사랑과 성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병률 시인이 지난 2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북카페에서 청중을 대상으로 ‘사랑과 성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우리는 이런 저런 사랑에 대한 정의를 통해서 고개를 끄떡끄떡 하며 살아요.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랑의 정의가 다 맞아요. 누가 A라고 정의를 내리면 아 맞아. B, C, D 세포 분열을 해서 정의를 해도 어느 순간을 대입할수록 다 맞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사랑은 참 여러 색이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달라서 굉장히 특별한 사람일수도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내가 계절과 시기에 따라 계속 여러 사태로 변화하기 때문에 사랑이 여러 가지 색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 생을 살더라도 사랑의 맛을 다 알고 갈 수는 없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저는 사랑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왜 결국 우리를 혼자이게 하는가. 사랑의 결론을 결혼이라 하지만. 저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혼자’에 관해 많이 생각해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오지만 이상하게 우리는 혼자에요. 물론 우리가 가족의 보호를 받으며 일정 기간 성장하지만요. 성장기를 지나 내가 ‘나’라는 자아를 인식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면서 우리는 사춘기에 접어듭니다.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서 사실은 혼자 있기 싫어하죠. 사랑을 하고 싶어서 몸 전체가 뜨겁게 끓어 넘칩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잘 넘기느냐에 따라 사랑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가 결정되죠. 20살 전후. 그때는 아직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태에요.

사랑과 여행이 닮은 측면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것은 꼭 이십대에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는 점이다. 이십대에 사랑을 해보지 않으면 골조가 약한 상태에서 집을 짓는 것처럼 불안한 그 이후를 보내게 될 것이며 살면서 안개를 맞닥뜨리는 일이 잦게 된다. 여행도 마찬가지. 이십대에 혼자 여행을 해보지 않는다면 삼십대에는 자주 허물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 닮은 것은, 사랑도 여행도 하고 나면 서투르게나마 내가 누구인지 보인다는 것이다.

한번 빠지게 되면 중독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닮았다.

또 사랑을 하거나 여행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많은 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소중한 것을 남기고 간직하고 싶어하는 자연스런 욕구가 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듯 사랑의 대상과 사랑의 순간을 찍는 일이나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순간순간들을 담는 일, 그 둘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며 그 욕구 또한 강렬해지는 것, 그 또한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점이다. 그리고 왜 물질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져야 하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사랑과 여행이 닮은 또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 번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것이다.“

첫 여행과 첫사랑은 20대에 첫 단추를 끼워야 합니다. 그 때 사랑을 해보지 않으면 제가 단언하건대 30대에 굉장히 영혼이 가난해집니다. 사람을 만나는 법, 사람을 통해서 상처를 안는 법, 사람과 함께해서 피투성이가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랑을 통해서 가능하지요. 그런 일련의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아픈 것도 제대로 보게 되고요. 내가 아파야 아픈 사람을 헤아릴 수 있으니까요.

첫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20대에 내가 치열하게 혼자 여행해보지 않으면, 순례자의 맛을 보지 않는다면, 30대에 패키지 여행을 다니시게 될 수 있어요. 20대에 해 보지 않아서 그런 거죠. 그러나 20대에 내가, 고래를 보기 위해서 배를 탄 적이 있다면, 고래를 놓친 적도 있다면, 30대에는 분명 다른 식으로 여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20대이신 분들은 그래, 한 번 해보자, 사랑이 안 찾아오지만 한 번 해 보자. 여행이 좀 두렵지만 한 번 해 보자, 결심해보는 건 어떨까요. 삶과 정면승부를 하는 겁니다.

저의 에세이집 <끌림>에는 ‘거북이 한 마리’에 관한 글이 있죠. 중국 북경에 여행을 가서 어느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됐을 때 겪은 이야기를 담았어요. 집 주인이 집에 굉장히 자주 와서 거북이랑 대화를 나누곤 했어요. 처음엔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거북이를 대상으로는 누군가를 상실하거나 감정이 꺾이게 되지 않겠구나 싶었어요. 거북이는 적당히 의존적이고, 현관문을 열고 나갈 일도 없고, 창문 열고 자살할 일도 없잖아요.

■ ‘사랑의 장면’이 나를 살게 한다

저는 어떤 면에서는 소극적이고, 낯을 가리고, 먼저 말을 붙이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사랑을 할 때에는 어느 정도 적극적이 됩니다. 시간의 냄새, 그 사람의 냄새를 계속 맡으려고 애쓰게 되고, 말하자면 육감을 다 사용해서 살려고 하는 그런 상태가 되지요. 그러다보니 모든 일들이 다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는 방송 작가로 17년쯤 일했습니다. 매일같이 방송원고를 썼어요. 토 나올 정도로 힘든 일이었어요. 쉬는 날도 있지만, 그 전에 쉬는 날 원고까지 두 배를 써서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오랜 시간동안 제가 사랑을 했던 순간들, 누군가를 흠모했던 순간순간은 원고가 너무 잘 써졌어요. 하루 일이 1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가서도 그 사람을 생각하면 힘이 났지요. 사랑을 해서 썼던 원고들은 반응이 좋았어요. 예를 들어 신해철, 유희열, 이소라씨가 제 원고를 읽을 때 그들은 알아요. 이 사람이 사랑에 빠졌구나.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줘야지. 그러면 청취자들의 반응도 달라집니다. 댓글 수가 늘어나죠. 제 자랑하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라, 그것이 사랑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어요. 눈빛이 다르고, 광채가 나고, 기분이 좋아서 어딜 가도 지갑을 엽니다. 덜 보여야 하는 것, 가려야 하는 것, 지워서 보여줘야 하는 것이 일체 없어집니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중독돼서였겠죠.

사랑에 빠져서 동물적인 상태에 놓여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글로 쓴 적이 있어요. 두 번째 여행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 있는 ‘사랑의 냄새’라는 글입니다.

“나는 양파볶는 냄새에 약하다. 양파를 볶다가 운 적도 있으니 말 다했다. 물론 매워서는 아니다. 하지만 양파 이야기부터 꺼낼 수는 없는 일. 양파는 아껴야 하니 이야기를 조금 미루도록 하자.

오지를 제외하곤 빵집이 없는 동네는 없었다. 빵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유난히 빵집에 집착한다. 빵집이 있는 동네라면 무작정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지내는 동안 빵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데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곳일 때 빵집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로인가. 흐린 날의 빵 굽는 향은 멀리 간다. 그 향을 맡은 공사장의 인부들도, 성당의 신부님도 하는 일 없이 기뻐지거나 괜히 빗방울이라도 후두둑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빵이 너무 커서 가슴팍에 안고 먹어야 하는 그루지아의 화덕 빵이나, 빵굽는 냄새가 맡아지면 킁킁대며 빵집을 찾아야 하는 시리아의 골목 빵집, 맛이 얼마나 좋으면 한입을 베어 물고 걷다가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가 먹을 수 없는 양의 크루아상을 사게 되는 파리의 빵가게. 세상의 빵 냄새에 홀려 동물이 되는 것이 나는 좋다. (중략)

하지만 냄새 중의 냄새는 양파볶는 냄새 아닐까. 냄새의 왕. 양파볶는 냄새는 세상의 모든 냄새를 담고 있다. 어둠과 그늘, 절벽의 햇살, 꽃잎이 짓이기며 빨아대는 습기, 간절한 한 사람의 안부, 그 모든 것을 담았다. 허기에 지쳐 집에 돌아오면 뭘 먹을 것인지 정하지도 않았으면서 양파를 볶던 때가 있었다. 먼 곳에서 긴 시간을 처절하게 살 때였다. 양파를 볶다가 소시지를 넣어 뒤적거리거나, 양파를 볶다가 물을 붓고 스파게티 면을 끓이기도 했다. 양파를 볶다가 부자가 되어야겠단 생각도 했고 양파를 볶다가 불을 끄고 시를 읽은 적도 있다. 그러면 채우는 느낌과 바닥을 내는 느낌이 내 몸에 동시에 배어들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양파의 그것에는 그리운 냄새가 있다. 절절한 곡예가 있다. 그래서 집에 양파 남은 게 있느냐 없느냐는 나에게 또 여행 갈 계획이 있느냐 없느냐와 통한다. 사랑을 잃고 양파를 볶다가 그렇게 짐을 싼 적이 있다.“

저는 사랑을 잃으면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조금 초라하게 쓰레기처럼 일본 테시마 섬에 흘러들어서 그림이 걸려있지 않은 어떤 갤러리를 보았습니다.

테시마 아트뮤지엄. 사진출처: desingboom.com

테시마 아트뮤지엄. 사진출처: desingboom.com

근데 저는 사랑을 잃고 떠났기 때문에 사랑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상태에 따라서 그것이 보여질 수밖에 없죠. 나의 상태에 따라서 그 사랑이 지속되기도 하고 그 사랑이 중단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갤러리에서 굉장한 생명력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실패한 게 아니라, 나는 이 굴곡을 통해서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난 것이다 하는 결론을 얻었죠.

저는 곧 출간 예정인 <내 옆에 있는 사람>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 사람의 정신의 건강한 상태, 그리고 내 정신의 건강한 상태가 일치했을 때 그 사람에게 끌린다고요. 나는 왜 저런 사람에게 끌리지가 아니라, 나는 저렇기 때문에 저 사람에게 끌린다는 겁니다. 거기서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고 비슷한 온도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죠. 격차가 큰데 내가 온도를 끌어올리고 낮춰서 온도를 맞추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 사람을 찾는데,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만나고 끌릴 수밖에 없어요.

똑같기 때문에 끌리고 손을 내밀고, 심장이 뛰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정신적 건강도가 1부터 10까지 있다고 할 때 3이 나쁜 것도 아니고 7이 좋은 것도 아니고 10이 만점도 아니에요. 사랑은 수학공식을 통해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가 그 사람의 정도를 평가하기도, 어떤 숫자로 환산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비슷한 상태라는 것이죠.

■ 질의 응답

질문1 )현대 사회에서 조건 없는 사랑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답) 조건 없는 사랑도 있죠. 저는 조건 없이 사랑에 한발 한발 들어갑니다. 순수한 것일수록 유아적인 상태에 놓인 감정일수록. 어떻게든 익어갈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질문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볼게요. 제가 워낙 때가 많이 묻어 있기 때문에 (웃음).

질문2) 저는 60대이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뒀어요. 딸이 내일 모레 결혼을 하는데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을 시인께서 정리해주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답) 마음을 정하고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슬라이딩 중이신거 같은데. 제가 무슨 말을 해드릴 수 있겠어요.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자꾸 새로워지고 자신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일상이라는 것이 제일 무서운 것은 같이 있는 것을 뭉뚝하게 만들어버리는 습관입니다. 조금씩 새로워지고,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는 게 필요하죠.

질문3) 지난해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어요. 서울광장에 갔는데 노란 리본에 ‘사랑은 했는데 차마 이별을 못했다’는 글귀를 봤어요. 또 함민복 시인은 ’슬퍼서 숨을 못 쉬겠다‘고 했고요. 많은 문인들이 세월호에 대해 글을 남기고 있잖아요. ’세월호를 어떻게 정리해서 기억을 해야 할 것인가‘ 간단하게 말씀해주신다면요.

답) 세월호 1년을 어떻게 지냈고. 어떤 의미로 기억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바뀐 것이 많아요. 사람 만나는 횟수가 굉장히 줄었고. 술을 마시지 않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그것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드리지 못해요. 말씀드리는 순간. 장식적인 뭔가가 나올 거고. 현재 시인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 입장에서 생일시를 쓰고 있어요. 저하고 몇 명이 시작이 돼서 하고 있어요. 작게나마 ‘시의 운동’ ‘시의 역할’ 같은 게 되겠죠.

단원고 학생들이 돌아오지 못한 생일날 그 친구들을 기억합니다. 기일이라 생각할 날이 없잖아요. 그 날은 너무나 덩어리가 커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의 생일에 가족들, 친구들, 선생들이 모여서 가져오는 음식 나누고. 시인들은 생일시를 써서 참석을 하는 거죠. 생일시를 쓰면 어떤 관점으로 쓸지 고민했지만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지만요. 그 아이를 다독이는 엄마의 입장. 살아남은 자의 희망을 말하기 보다는 살아남은 자의 무거운 것을 다독이는 것이 희망이 아니지 않을까 해요.

더 젊은 시인들이 참여해서 시를 쓰고 있고요. (그런 얘기를 쓰면 안 되겠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 아빠 그리고 사람들. 저희는 너무나 잘 있습니다”라고 썼어요. 왜냐하면 어떤 희생을 통해서 남아있는 사람들의 고통, 절망은 더 크죠. 그 친구들을 잊자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의 고통도 어떤 식으로든 치유를 받아야 겠으니까. 그런 시를 썼었네요. 3월쯤에요.

질문4) 두번째 산문집에서 ‘내 앞에 없는 사람처럼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글이 있어요.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오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요.

답) 그 무렵에 그런 사랑을 했었어요. 그 사람의 확인이 돌아오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 사랑을 했었어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람이 없어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랑. 그런 사랑이 있더라고요.

저는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마취 요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를 편한 상태로 몰아가는 것도 사랑에 있어서 중요해요. 그것이 이해가 아닌 ‘오해’라고 볼 수도 있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아니라 ‘오해’기 때문에. 이 오해가 끝나면 사랑의 감정이 식을 수 있죠.

이병률 시인이 지난 29일 경향신문 ‘심리톡톡-사랑에 관하여’ 강연에서 독자들과 사랑과 성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병률 시인이 지난 29일 경향신문 ‘심리톡톡-사랑에 관하여’ 강연에서 독자들과 사랑과 성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질문5) 처음에 읽어주신 고래 동화가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옆에 있는 것을 무시하고 고래만 기다리라는 게 좀 이해가 안 가거든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무작정 기다리고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답) 사랑을 아직 안해보신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랑 한 번으로 ‘업그레이드’되실 수 있겠어요.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고래 동화를 그렇게 읽을 수는 없거든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이 여행도 다녀 보시고, 혼자 있는 시간도 가져 보세요. 그것이 나의 간절한 상태를 굉장히 잘 만들어줍니다. 혼자있는 시간은 굉장히 불편하고 나쁜 시간일 것 같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각하면 남이 나를 알아봐줍니다. 다른 비슷비슷한 사람이 말을 걸거나, 커피를 마시자고 하거나, 같이 살자고 하거나 그런 말을 걸어오는 겁니다. 사랑만 하려고 하지 마시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관찰해보시고, 그러다보면 자신이 형성돼 갑니다. 곧 좋은 일이 있으실 거에요.

질문6) 여행지에서 마지막 떠나온 날에 느끼시는 감정이 궁금합니다.

답) 떠나올 때 감정은, 정말 돈이 없어서 돌아온 적도 있고, 도둑맞아서 돌아온 적도 있어요. 확실히 끌려오는 기분 같은 것들이 조금 있죠. 왜 그렇게 나는 오래 살 운명이 안 되고, 자기장에 의해서 끌려올 수밖에 없는가 하는 힘겨움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그런 순환의 고리들이 잘 돌아와야 잘 떠날 수 있는 것과 연결돼 있습니다. 토 나오는 시간을 잘 견딜 수 있고, 좋은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 잘 견딜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떠나는 것과 연결돼 있어요. 떠나면서 이것 때문에 떠나지만, 또 사람이 싫어서 떠났다가 또 돌아오고, 그 조그만 순환고리 안에 있는 것이죠.

질문7) 행복하세요?

답) 저는 매 순간 행복합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가끔 자문합니다. 잠 못자도 재밌고, 힘겨운 상황이 되어도 재밌고, 누가 날 오해해도 재밌습니다. 타인의 험담도 제게는 행복이에요. 행복이다. 넋놓고 사는 게 아니라 그런 것들이 바늘 끝으로 제 손끝을 콕콕 찔러주는 것같아요. 그런 순간순간이 행복합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심리톡톡] 시인 이병률 '사랑과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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