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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4. 2016

성숙한 사랑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틀린 음정》


《틀린 음정》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는 절대 첫눈에 반하는 일이 없다. 맑은 눈으로 물의 깊이와 성질을 완전히 조사할 때까지는 도약을 유보한다. 부모 노릇, 정치, 예술, 과학, 부엌에 비치할 적당한 간식에 관하여 철저하게 의견 교환을 한 뒤에라야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할 준비가 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상대를 진정으로 알 때에만 사랑이 자라날 기회가 주어진다.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75p)




성숙한 사랑의 존재


이 말이 모두 맞다고 하자. 여기에 의문이 생긴다.


‘상대를 진정으로 아는 것이 가능한가?’

'나조차 나를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데, 상대가 과연 나를 진정으로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다. ‘난 아니야.’ 라고 하는 사람도 분명있다.


하지만 TV에 인기를 끄는 드라마, 수많은 관객들이 몰려드는 영화, 베스트셀러가 된 로맨스 소설. 그 안에 등장하는 커플들은 언제나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시작한다. 주인공에게 오랜 시간 곁을 지켜온 이성친구가 한 둘 있더라도 언제나 이루어지는 상대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어떤 누군가이다.


사람이 어떠한 것에 호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공감’이다. 명장면이라 자주 회자되는 장면이나, 좋은 가사라고 이야기하는 노래가사가 많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남 이야기 같지 않아서.’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미성숙한, 성숙하지 못한 사랑에 더욱 많은 공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 또한 그러하다.





생각해본다.


처음부터 성숙한 사랑이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영원히 배워야 하고 자라야 하는, 미성숙한 사람이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예전부터 생각했다.


운명의 상대란 처음부터 꼭 맞는 사람이 아니라고.

서로간의 간극을 애정이라는 접착제로 조금씩 메꾸어 나갈 의지가 있는 사람이 바로 운명의 상대라고.

접착제가 주는 끈적임이 비록 불편함을 일으키더라도,

‘그래 이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이 정도쯤이야.’라 생각할 수 있는 상대가 바로 운명의 상대라고 말이다.



조심스레 결론 내려 본다.



'숙(熟)이란 부족함에서 출발하여 서서히 채워나가는 과정이며, 따라서 성숙(成熟)하기 위해서는 미숙(未熟)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성숙한 사랑이란 없으며, 성숙한 사랑은 서로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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