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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안양시 자랑거리
비공개 조회수 3,194 작성일2018.11.07

안양시 자랑거리엔 뭐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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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신
2019 지역&플레이스 분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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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의 자랑거리로는 안양 8경이 있습니다. 

 

(안양시의 자랑거리 - 안양 8경)

 

제1경 관악산 망해암일몰 
 
망해암은 동안구 비산동 산19번지에 위치한 전통사찰로서, 봉은사말사지에 신라때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조선 영조때 신경준이 지은 가람고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며, 조선 순조3년(1803)에 정조대왕의 모친인 홍대비께서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망해암의 중심건물인 용화전에는 석조미륵불이 모셔져 있으며 보개를 쓰고 도톰한 코 와 입, 길게 늘어진 귓볼에 법의는 통견이며 굵은 U자형의 옷자락선이 조밀하게 표현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불상으로 당시의 시대적 유형을 살피는 자료로평가된다.

 

망해암이란 명칭은 암자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날씨가 맑은 날에 시계가 탁트인 관악산의 망해암에 올라 안양시가지와 서해일몰을 감상하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나다. 서해 너머로 붉게 물들어 가고 갈길을 재촉하는 도심의 차소리와 어우러져 회상속에 빠져들게 하는 곳, 반짝임을 잃은 붉은 태양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재빨리 날아가는 산새와 함께 어둠이 서서히 다가오는 낮과 밤의 공존을 숙연하게 느끼게 해주는 곳, 낙조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을 흠씬 느끼게 하는 광경이 연출되는 곳, 서해의 붉은 바다와 해가 진 후 어둠이 깔린 안양시내를 바라보는 야경은 다정한 사람과 손잡고 함께 거닐 산책로가 있는 망해암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이다.

  

 

제2경 삼막사 남녀근석 
 
삼막사는 1300여년전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삼막사의 근본이며 삼성산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삼막사에는 조선후기 건축양식인 망해루와 명부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자료 제60호)이 있으며 고려시대에 세워진 삼막사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과 조선 숙종때 건립된 사적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조선 후기의 삼막사 마애삼존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과 삼귀자, 감로정 등 다수의 비지정 문화재가 있어 삼막사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또한, 신기한 자연의 예술품인 남녀근석은 삼막사 칠성각 앞에 있으며, 1983년 9월19일 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풍화된 2개의 자연암석인데 그 모양이 남녀 성기의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남녀근석이라고 부르고 있다. 남근과 여근의 거리는 2m이며 남근의 높이는 1.5m, 여근의 높이는 1.1m이다. 속전에는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전부터 이 바위를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여 왔다고 한다. 이 바위를 만지면서 자식을 원하고, 출산과 일가의 번영, 무병 및 장수를 빌면 효험이 있다고 전하여, 4월 초파일과 칠월칠석날 등에는 경향 각지에 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이러한 성기숭배 사상은 다산 및 풍요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으로 선사시대부터 행해져 왔는 바,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동남아 지역과 일본에도 많이 산재하고 있다.

  

 

제3경 평촌 중앙공원 
 
중앙공원은 36,000평의 공간에 각종 조경수와 편의시설을 비롯하여 다목적운동장 등 체육시설을 구비하고 있으며, 특히 4계절 테마(봄정원, 여름정원, 가을정원, 겨울정원)를 부여하여 조성한 공원으로 4계절에 맞게 식재된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는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여 시민의 정서 함양과 쾌적한 도시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도심공원의 미래상을 조명하며 공원내 수경시설은 207m의 계류와 다양한 형태의 분수시설(상징분수, 스크린분수, 터널분수, 바닥분수)은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뿐 아니라 도심 속에 찌들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한결 더 청량하게 해준다

 

더불어 주위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그늘, 파고라, 산책로는 녹음 및 그늘을 제공하며 야간에 수경 시설의 조명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할 것이다. 또한, 공원과 연계하여 시민들의 동적인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 인라인스케이트장, X-게임장, 차 없는 거리가 있다.
 

차 없는 거리는 토요일 오후 다함께 참여할 수 있는 알뜰벼룩시장의 문화공간과, 가족과 연인끼리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전거도로 및 자신의 솜씨를 뽐내는 인라인매니아의 체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우레탄으로 조성된 1,000평의 전용 인라인스케이트장과 X-게임장은 가족 단위 및 청소년들의 생활체육 공간으로 자리잡았으며, 인근시의 주민들도 즐겨 찾고 있다.

 

나무,꽃,물을 동시에 감상하고 시민축제, 청소년들을 위한 젊음의 축제, 주부들을 위한 주부가요제 등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사시사철 이용하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중앙공원은 우리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안양의 명소이며 영원한 우리의 쉼터로 남을 것이다.

  

 

제4경 삼막천 만안교 
 
만안교는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제22대 정조(1776~1800 재위)가 억울하게 참화를 당한 생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 하러 갈 때, 참배행렬이 편히 건너도록 축조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화산으로 이장한 후, 자주 능을 참배하며 부친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한다.

 

당초의 참배행렬은 궁궐을 떠나 노량진, 과천, 수원을 경유하게 되어 있었으나, 그 노변에 사도세자의 처벌에 적극 참여한 김상로의 형 약로의 묘가 있으므로 불길하다 하여 시흥쪽으로 행로를 바꾸면서 이곳 안양천을 경유하게 되었다. 정조가 만안교를 지난 것은 7번째 능행부터이다. 이 다리는 처음에는 나무로 다리를 놓아 왕의 행렬이 지날 수 있도록 하였으나 경기관찰사 서용보에 의해 돌로 이를 대체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795년(정조 19)에 당시 경기관찰사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3개월의 공역 끝에 길이 31.2m, 너비 8m에 7개의 갑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을 깔아 축조하였다. 축조양식이 정교하여 조선후기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받고 있다.

 

원래 위치는 남쪽 200m 지점의 안양천에 있었으나 국도확장사업으로 1980년 8월에 이곳 만안구 석수2동의 삼막천으로 이전하였으며, 다리 앞에는 서유방이 글을 짓고 조윤형이 쓴 만안교비가 있어 이 다리의 연혁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안양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만안교 다리밟기가 펼쳐진다.
  
 

제5경 수리산 최경환성지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은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토마스 1821~1861)의 아버지이다. 충남 청양군 화성면이 고향으로 부인 이성례(마리아 1800~1840)와 담배촌(안양9동)에 정착, 교우촌을 이루고 천주신앙을 전파하던 중 1839년 천주교를 탄압하던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한양을 오가며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불안해하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 그 해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 온 포졸들에게 압송되었다.

 

이들은 배교하라는 고문과 회유속에서 신앙을 고수하며 모진 형벌을 받다가 그해 9월 12일 포청옥에서 장렬히 순교하였다. 부인 이성례도 그 이듬해 1월 31일 용산 당고개에서 참수되었다. 최경환의 시신은 담배촌에 묻혔다가 명동성당으로 천묘 후 다시 양화진성당으로 옮겨졌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 6일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수리산 성지는 2000년에 순례지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문을 연 성지이다.수리산 최경환 성지는 가묘와 함께 예수님의 고행을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와 순교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며, 전국 각지에서 연중 30,000여 천주교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6경 안양유원지 
 
안양유원지는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주변의 전통사찰 및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어 과거 수도권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으며, 안양의 명물로 이름을 떨쳤던 포도가 오가는 이의 미각을 돋구어 주었던 곳이다. 삼성천 계곡의 울창한 숲속 사이로 잘 발달된 여러 등산로가 있어지금도 시민들의 등산코스로 사랑을 받고 있으며 또한, 안양사·염불암 등 전통사찰과 보물 제4호인 중초사지당간지주를 비롯해 석수동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안양사 귀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 중초사지 3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 등이 있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열악한 시설과 낙후된 환경으로 현재는 유원지라는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우리시에서는 안양유원지가 옛 명성을 되찾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명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2004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사업비 365억원을 들여 안양유원지 정비 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사업내용으로는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 민속마을, 카페마을 등을 조성하며, 하천에는 사계절
맑은 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상류지점에 용수확보를 위한 저수지를 지난 해 9월 완료하였으며, 아울러 유원지 주변에는 벽천분수, 야외공연장, 조각공원, 체력단련장, 임간휴게소 등을 다양하게 조성하여 자연과 문 화가 교류하는 테마파크 조성사업을 올 5월에 착공하였다. 또한, 앞으로 민속놀이대회와 벚꽃축제, 젊음의 축제, 등산대회 등 자연을 이용한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리하여 향후 안양유원지가「수도권의 휴양지」로서 다시 찾고 싶은 명소가 되도록 할 계획이다.

  

 

제7경 병목안 산림욕장 석탑 
 
병목안은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마을초입은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하여 예로부터 불리워진 안양9동의 마을 명칭이다. 계곡이 길고 경치가 수려하며 맑은 물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병목안을 거슬러 올라가다 왼편에 보이는 산이 수리산으로 해발 489m로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으며, ×자 형태로 뻗은 능선을 따라 여러 산행코스를 이루고 있다. 수리산중에는 산세가 관머리같다하여 붙여진 관모봉이 있다. 관모봉에서 바라보는 안양 시가지는 넓은 벌판을 보는 것 같이 크고 작은 빌딩들과 도로가 어우러져 안양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수리산에는 시에서 잘 꾸며 놓은 산림욕장이 있다. 시에서 설치한 제 1·2·3전망대는 장소별로 각기 조망이 달라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특히, 제1·2전망대의 목재전망데크, 시민들의 건강을 위한 발지압장, 그리고 연장 25m의 출렁다리와 임간교실 등이 지난해 6월 시에서 설치한 이후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백영약수터 등 10 여개의 약수터는 시민에게 맑은 약수를 공급해 주고 있다. 병목안을 상징해 주면서도 수리산을 상징하는 징표이기도한 병모양의 석탑! 양 쪽에 조화롭게 병모양으로 쌓아올린 탑은 주변의 쓸모없는 돌무더기 들을 이용해서 자연의 조화와 인공의 미를 살린 수리산 산림욕장의 명물이며 이정표이기도 하다.

 

석탑이 상징하듯 백영약수터 오르막길에는 돌무더기 곳곳마다 정성을 쌓아 올린 돌탑들이 무수히 쌓여있다. 시민 휴식처로서의 수리산은 계절마다의 독특한 특성과 함께 산림욕의 최적지로서 손색이 없으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행중 가장 상징깊게 화면에 남는 곳은 바로 혼신을 다해 정성껏 쌓아올린 석탑이 될 것이다.

  

 

제8경 안양1번가 
 
조선조 제22대 정조 임금께서 1795년 시흥현과 과천현 경계지점에 사도세자인 부왕의 묘에 능행을 위해 만안교를 놓으신 후 화산능행의 노정을 과천~인덕원~수원에서 시흥~안양~수원의 노정으로 바꾸시면서 유래정 뒤(안양1동 674-67)에 안양 행궁을 짓고 휴식을 취하신 곳이 되자 주변에 민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의 개통과 함께 안양역이 생기자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로 발달된 안양1동에는 1917년 7월에 호계2동에 있던 서이면사무소가 지금의 안양1동사무소 옆으로 이전하여 면사무소 업무를 보게 되었다. 그후 1924년 에는 안양금융조합과 안양연초조합, 우체국들이 속속 이곳에 세워졌고, 광복 후에도 시흥군청사와 안양경찰서, 안양읍사무소 등 공공 기관이 들어서자 관가의 거리로 되었다.

 

재래상권인 안양시장이 1926년 이곳에 개설되어 상권의 기틀이 다져졌으며 1980년대에는 먹거리, 옷가게, 유흥주점이 주류를 이루었던 곳이 1990년대 들어 젊은 취향의 캐쥬얼 스타일의 의류와 내셔널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하였다. 2000년이후 컴퓨터, 통신, 시네마 등 쇼핑과 문화 가 잘 융화된 거리로 수도권에 손꼽히는 상권을 형성하여 안양최대 의 번화가로 부상하였다. 안양의 금융, 교통, 상권을 태동시킨 안양1번 가는 지역 발전을 일으킨 상징적 의미에서 안양 1번가로 부르게 되었고 시에서는 1998년 상가 주변길을 안양1번가 길로 명칭을 부여했다.

 

1996년부터 매년 10월에 젊음의도시·패션의거리 안양이라는 슬로건 아래 일번가 거리 대축제가 열려 시민들에게 볼거리 제공과 함께 자유와 멋과 낭만을 느끼고 체험할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201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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