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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조선 건국부터 멸망까지 중요사건 정리 좀 해주세요.ㅠ
비공개 조회수 4,967 작성일2011.08.17

중학생인데요. 방학숙제로 역사신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조선을 주제로 하려구요.

조선 건국부터 멸망?까지 중요 사건을 요약해서 올려주시면

엄청 감사할께요..

B4용지 1장 이상이라서요... 용량도 적당히해주시면 감사할께요

저기 3시간내로 해주세요ㅜ

내공30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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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 이성계, 우왕을 폐하고 창왕(昌王)을 세움.

1389년 박위, 대마도(對馬島) 정벌. 왜선 300여 척 격파. 창왕 폐위되고 공양왕(恭讓王) 즉위.

1391년 이성계, 삼군도총제사(三軍都摠制使)가 되어 군사통수권을 장악.

1392년 정몽주 피살(1337). 이성계 즉위. 문무백관의 제도 제정.

1393년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결정. 식년문과(式年文科) 실시(33인 급제).

1394년 정도전(鄭道傳),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편찬. 한양(漢陽)으로 천도.

1395년 정도전 등이 《고려사》 37권을 간행. 예문춘추관 설치.

중앙군 10위(衛)를 10사(司)로 고쳐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에 소속.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戊寅靖社). 태조가 왕세자 방과(芳果)에게 선위(禪位), 정종(定宗) 즉위.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芳幹의 난). 방원(芳遠)을 왕세자로 책봉.

정종이 방원에게 선위. 태종(太宗) 즉위.

1401년 증광문과(增廣文科) 실시. 신문고(申聞鼓) 설치.

1402년 무과의 과거 실시. 호패법(號牌法) 실시.

1403년 계미자(癸未字) 주조(鑄造). 명나라에서 고명(告命)˙인장(印章)˙조칙(詔勅)을 보내옴.

1411년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를 승문원(承文院)으로 고침. 오부학당(五部學堂)을 운영.

동북면지방으로 양전(量田)을 실시.

1413년 도(都)˙군(郡)˙현(縣)의 칭호 개정.

1414년 노비소산한품속신법(奴婢所産限品贖身法)을 제정.

무과(武科)에 삼장통고법(三場通考法) 적용.

1415년 시장세와 상인세를 저화(楮貨)로 징수. 장인세(匠人稅)를 신설.

1417년 각 도(道)에 잠소(蠶所) 설치. 의흥현(義興縣)에서 《향약구급방》 중간.

1419년 이종무(李從茂),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 정벌. 제주에 양전(量田) 시행.

1420년 집현전(集賢殿) 설치. 경연청(經筵廳) 설치.

1423년 한성의 남산에 봉수대 축조. 불교를 선교(禪敎) 양종으로 정리. 조선통보(朝鮮通寶) 주조.

1429년 정초(鄭招), 《농사직설(農事直說)》 저술. 경상도˙충청도에서 양전사업(量田事業) 진행.

1432년 맹사성(孟思誠) 등이 《신찬팔도지리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편찬.

《세종실록지리지》를 편찬. 설순 등이 여연군(閭延郡)에 침입한 여진기병을 격퇴.

1433년 압록강변의 여진족을 토벌. 화포전(火砲箭)을 발명.

1434년 갑인자(甲寅字) 주조, 갑인자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간행.

북동˙북서에 6진(鎭)을 설치. 장영실 등이 경복궁에 자격루(自擊漏)를 설치.

1435년 화약무기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발명. 함길도에 목화를 심게 함.

1436년 납활자 병진자(丙辰字)를 주조.

1437년 물시계인 행루(行漏)˙앙부일구 등을 제조, 간의대(簡儀臺)를 설치.

1438년 왜선의 삼포평균분박(三浦平均分泊) 엄수를 지시. 장영실, 자동물시계 옥루(玉漏)를 제작.

1441년 장영실 등이 세계 최고(最古)의 측우기(測雨器)를 설치하고, 양수표(量水標)를 세움.

1443년 통신사와 대마도주가 계해조약(癸亥條約) 체결. 세견선(歲遣船)을 5척으로 약정.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1444년 양전산계법(量田算計法) 제정. 무과삼관법(武科三官法) 실시.

1446년 수양대군이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편찬. 훈민정음 반포(頒布).

1447년 《용비어천가》의 주해 완성.

1450년 동활자 경자자(庚子字) 주조. 정음청(正音廳)을 설치.

1451년 국방강화를 위해 군사(軍士)를 늘림. 문종이 창안한 화차(火車)를 제작하여 배치.

김종서(金宗瑞) 등이 《고려사》 136권을 개찬.

1452년 김종서 등이 《고려사절요》 편찬. 《동국정운(東國正韻)》을 과거과목 신설.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 수양대군이 김종서˙황보 인 등을 죽이고 정권장악.

안평대군(安平大君) 사사(賜死)됨. 이징옥(李澄玉)의 난.

1456년 사육신(死六臣)사건.

1457년 단종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 영월로 유배. 노산군(단종) 죽음.

1460년 하삼도민(下三道民) 4,500호를 평안˙강원˙황해도에 이주시킴.

1461년 간경도감(刊經都監) 설치.

1463년 홍문관(弘文館) 설치.

1464년 전폐(箭幣)를 주조.

1466년 과전법(科田法)을 폐지하고 직전법(職田法)을 실시.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 규형(窺衡)과 인지의(印地儀)를 이용한 삼각측량법을 발명.

1468년 남이(南怡)˙강순(康純) 등이 반역으로 사형됨.

1474년 개찬한 《경국대전》과 《속록》을 반포.

1481년 서거정(徐居正) 등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50권을 찬진(撰進).

1484년 성균관에 학전(學田) 400결(結)을 줌. 서거정 등이 《동국통감(東國通鑑)》을 찬진.

1489년 유교(儒敎)의 전적(典籍)을 각 향교(鄕校)에 배포.

1490년 울산˙거제˙동래˙남해 등지에 축성. 순천에 전라좌수영을 설치.

1491년 북정(北征)을 결의. 두만강 방면의 여진족 정벌.

1493년 성현(成俔) 등이 《악학궤범(樂學軌範)》 9권을 완성.

1496년 무오사화(戊午史禍). 유자광(柳子光) 등의 무고로 김일손(金馹孫)˙권오복(權五福) 등이

처형되고, 김종직(金宗直)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함.

1498년 상평창(常平倉) 설치.

1502년 하삼도(下三道)의 주민 1,600호를 평안˙함경˙황해도에 이주시킴.

1503년 김감불(金甘佛)˙김검동(金儉同) 등이 연철(鉛鐵)에서 은(銀)을 분리하는 제련법을 발명.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

1507년 이과(李顆) 등이 반란을 꾀하다 발각되어 옥사.

1510년 삼포왜란(三浦倭亂), 황형(黃衡)˙유담년(柳聃年) 등이 이를 평정.

1512년 일본과 임신조약(壬申條約) 체결하여 세견선(歲遣船) 및 세사미(歲賜米)를 반감함.

1515년 을해동활자(乙亥銅活字) 주조.

1517년 김안국(金安國)이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간행하여 반포.

1518년 소격서(昭格署)를 혁파하고, 소장한 그림을 도화서(圖畵署)에 이장(移藏).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1520년 제주의 한지(閑地)에 군량을 마련하기 위해 둔전(屯田)을 설치.

1527년 동궁에 작서(灼鼠)의 변이 일어남. 4월, 최세진(崔世珍)이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지음.

1530년 이행(李荇) 등이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

1532년 조정관리의 녹봉을 감하여 구황(救荒)에 충당.

1538년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지 않는 사찰을 폐지함.

1543년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건립.

1544년 4월, 사량진왜란(蛇梁鎭倭亂).

1545년 조광조 복관(復官)되고, 현량과 다시 실시.

왕대비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가 섭정. 8월, 을사사화(乙巳士禍).

1547년 정미사화(丁未士禍). 대마도주(對馬島主)와 정미약조 체결(수호조약을 개정).

1549년 이홍윤(李洪胤)의 옥 일어남.

1550년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의 편액을 하사함(사액서원의 시초).

12월, 선교양종(禪敎兩宗)을 다시 둠.

1551년 양종선과(兩宗禪科)를 설치하고 시경승(試經僧)에게 도첩(度牒)을 발급.

1555년 을묘왜변(乙卯倭變).

1559년 황해도에서 임꺽정(林巨正)의 난 일어남(~1562).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 사이에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관한 서신왕래 시작(~1566).

1560년 이황, 예안(禮安)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움(75년에 사액).

1561년 10월, 이정(李楨)이 경주에 서악서원(西岳書院)을 세우고 설총(薛聰)˙김유신˙최치원을

향사(享社).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지음.

1562년 임꺽정의 난을 평정.

1567년 명종 죽고(1534~), 선조(宣祖) 즉위(~1608).

1572년 이이(李珥)와 성혼(成渾) 사이에 사단칠정론에 관하여 서신 왕래 시작(~1578).

1574년 안동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우고 이황을 향사(75년에 사액).

1575년 대마도주(對馬島主)가 왜국이 조선침략을 위해 전선을 건조하고 있음을 통지.

7월, 심의겸(沈義謙)˙김효원(金孝元)의 동서당론이 일어남.

1577년 이이, 《격몽요결(擊蒙要訣)》 간행.

1583년 이이,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건의함.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일어남.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시작. 일본침략군 21만이 부산포에 상륙.

옥포해전에서 왜선 26척을 대파. 명(明)나라의 1차원군 압록강을 건너옴.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 명나라의 2차원군 4만이 압록강을 건너옴.

1593년 왜군이 철수 시작. 선조가 한성으로 귀환.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약 20만의 왜군 상륙.

원균(元均) 휘하의 수군이 칠천(漆川)˙고성(固城)에서 대패.

1598년 이순신(李舜臣)이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전사. 왜군 철수.

1601년 한성에 동묘(東廟) 건립.

1603년 이광정(李光庭)과 권희(權憘)가 연경에서 마테오 리치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를 가져옴.

1604년 유정(惟政)을 쓰시마섬과 일본에 보내어 그곳 사정을 알아보게 함.

1605년 유정이 포로 3,000여 명을 데리고 일본에서 귀국.

1608년 선조 죽고, 왕세자 즉위(광해군).

1610년 허준(許浚)이 《동의보감》 25권 찬진.

1613년 영창대군의 관작을 삭탈하고 서인으로 함. 폐모론 일어남.

1614년 강화부사 정항(鄭沆)이 영창대군을 죽임.

1618년 인목대비의 호를 삭탈하고 서궁(西宮)이라 칭함. 대북파 정권 장악.

1619년 명나라에 1만 명의 원군 파견.

1623년 김류 등이 광해군을 폐하고 능양군(綾陽君) 추대, 정권을 잡음(인조반정).

1624년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킴.

1626년 호패법시행. 남한산성을 쌓고 수어청을 둠.

1627년 후금이 조선에 침입(정묘호란). 인조가 강화로 피신.

1628년 2월, 명나라의 숭정연호(崇禎年號)를 사용.

1630년 무감(武監) 설치.

1633년 척화(斥和)의 교를 내리고, 후금의 침략에 대비케 함.

임경업(林慶業)을 청북방어사(淸北防禦使)에 임명. 상평청에서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전.

1635년 금나라 사신 마부대(馬夫大)가 국서를 전함.

1636년 후금의 국서를 거절. 금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 옴. 청군 침입(병자호란).

1637년 강화도 함락됨. 인조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 인조 환궁.

왕세자 일행 불모가 되어 선양[瀋陽]에 도착. 명나라 연호를 폐지하고 청나라 연호를 씀.

1640년 세자 선양에서 돌아옴.

1645년 소현세자, 독일인 신부 아담 샬(湯苦望)로부터 천문˙산학(算學)˙천주교에 관한 서적 등을 받아 가지고 한성으로 돌아옴.

왕세자(소현세자) 죽음. 봉림대군(鳳林大君) 한성으로 돌아와 세자로 책봉됨.

1649년 인조 죽음. 세자 봉림대군 즉위(효종). 관상감 청나라 역서에 따라 역법(曆法)을 고침.

1652년 연경에 천문학관을 보내어 시헌력법(時憲曆法)을 배워오게 함. 어영청(御營廳)을 설치.

1653년 제주목사,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의 화순포(和順浦) 표착을 보고.

1655년 추쇄도감을 두고 전국의 노비를 추쇄, 강화(江華)방비에 임하게 함.

일본통신사 조형(趙珩) 일행 부산에서 대마도로 떠남.

1657년 최유지(崔攸之) 천문관측기구를 제작.

1658년 청나라가 러시아정벌에 원군을 요청해 옴.

1659년 효종 죽음. 왕세자 즉위(현종).

1660년 남인˙서인 간에 예론시비(禮論是非) 시작됨. 전라도 산간군(山間郡)에 대동법 실시.

1662년 현종 창덕궁으로 옮김. 고려조의 능침(陵寢)을 봉식(封植).

1671년 현종 경덕궁으로 옮김. 전국적으로 대기근. 경기˙충청도에서 민란 일어남.

1674년 현종 죽음. 세자 즉위(숙종). 북한산성을 수축함.

1679년 강화에 돈대(燉臺) 축조함.

1682년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 설치.

1687년 금위영(禁衛營) 폐지. 숙종 탕평책(蕩平策)을 유시함.

1688년 창덕궁 금호문 밖에 관천대(觀天臺) 축조.

1689년 세자책봉문제로 노론(老論)이 실각하고 남인이 집권(기사환국).

왕비 인현왕후 민씨 폐출됨.

1690년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함.

1692년 숙종 창덕궁으로 돌아옴. 북경에서 동을 수입, 화폐 주조.

1694년 노론에 의해 남인 몰락(갑술옥사). 4월, 폐비 민씨를 복위하고 왕후 장씨를 다시 희빈으로 강등. 수도 방위를 위해 문수산에 성을 쌓음.

1697년 장길산(張吉山)이 이끈 농민군 봉기. 도성안의 거지들을 각 섬으로 보냄.

막부(幕府)를 통하여 왜인의 울릉도 출입금지를 보장받음.

1698년 숙종 탕평책을 지시.

1702년 백두산 화산 폭발. 이준명(李浚明) 울릉도를 답사, 지도 작성.

1711년 평양성과 안주성을 개축케 함. 북한산성 축성 시작.

조태억(趙泰億) 등을 일본에 통신사로 보냄.

1712년 청나라 오라총관 목극등(穆克登)이 백두산정계비를 세움. 북한산성 역사를 끝냄.

1713년 중인˙서얼 출신에게 죽은 뒤 벼슬을 주는 규정 제정.

1714년 8도에 지진 발생.

1720년 숙종 죽고, 세자 즉위(경종).

1723년 서양의 수총기(소화기)를 만들게 함.

10월, 관상감에서 서양의 문진종(서양식 시계)을 만들게 함.

1724년 경종 죽고, 왕세제 연잉군 즉위(영조). 서얼 200여 명이 차별대우 철폐를 요구.

1725년 화폐주조를 중지하고 무기 제작.

1728년 이인좌(李麟佐) 등 밀풍군(密豊君) 추대, 반란을 일으킴.

1729년 사형수에 대하여 삼복(三覆)을 시행함.

1732년 관상감 관원 청나라에서 《만년력(萬年曆)》을 가져옴.

1736년 원자를 세자로 책봉함(사도세자).

1740년 각 지방의 도량형기를 통일시키도록 함.

1745년 예각(藝閣)에서 《경국대전》 《속대전》을 1책으로 간행.

1746년 《속대전》이 활자본으로 간행됨.

1750년 균역청 설치.

1752년 새돈 44만 4000냥 주조.

1756년 금주령 선포, 밀주를 엄히 단속함. 11월, 흉년으로 기아민 다수가 도성에 들어옴.

1758년 해서˙관동 지방에 천주교가 크게 보급 됨.

1759년 원손을 왕세손으로 책봉함(정조).

1761년 노비에 대한 상전의 사형(私刑) 금지.

1762년 왕세자, 궤 속에 갇혀 굶어 죽음. 금주령을 엄수케 하고 범법자는 사형에 처함.

1763년 김수장(金壽長)이 《해동가요》 편찬. 장안의 승려들을 추방함.

통신사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지고 들어옴.

1764년 장례원(掌隷院)을 혁파.

1765년 홍계희(洪啓禧) 등 《해동악장》을 편찬.

10월, 장례원에서 맡았던 노비관계 사무를 형조에 이관.

1768년 각도의 성곽시설과 장비를 수리토록 함.

1769년 청천강을 따라 남당성(토성)을 쌓음.

1770년 전국의 제언(堤堰)을 수축. 《동국문헌비고》 100권 40책을 완성.

1772년 갑인자(甲寅字)를 개수하여 활자 15만 자를 주조(임진자).

1773년 한성 청계천의 뚝을 돌로 쌓기 시작함.

11월, 총융청에서 조회포˙일화봉 등 새로운 포탄을 만들어 사격 실험.

1774년 종1품에서 당상 정3품을 대상으로 등준시(登俊試)를 실시(15인 급제).

1776년 영조 죽고, 왕세손 즉위(정조). 《열성어제(列聖御製)》 간행.

경모궁(景慕宮)을 다시 세움. 금원 북쪽에 규장각(奎章閣)을 새로 지음.

1777년 고쳐 주조한 갑인자 15만자를 주조(점유자).

1779년 처음으로 내각검서관(內閣檢書官)을 설치.

1780년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수정에 착수(1796년에 완성).

창덕궁에 측우기를 설치하고, 서운관(書雲觀)에 명하여 《천세력(千歲曆)》을 만들게 함.

1783년 승려의 장안 입성을 금함. 이승훈(李承薰)이 동지겸사은사 일행을 따라 연경으로 떠남.

1784년 이승훈이 연경 남천주당에서 그라몽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음.

이승훈, 천주교 관련 서적을 가지고 귀국.

이벽(李檗)˙권철신(權日身) 등이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음.

1785년 한성에 천주교교회가 생김(진고개 김범우의 집).

해시계 간평일귀(簡平日晷)˙혼개일구(渾蓋日) 등을 제작함.

1786년 연경에서 서양서적의 구입을 금함. 검서시예(檢書試藝)의 규정을 정함.

1787년 프랑스함대 페루즈 일행 제주도를 측량하고 울릉도에 접근함.

동 5월 책문후시(柵門後市)를 금지함.

1788년 서학관계 서적을 대량 불태움.

1791년 박필관(朴弼寬)의 격고(擊鼓) 사건 일어남. 신해교난(辛亥敎難) 일어남.

1792년 북경 주교 구베아가 교황 비오 6세에게 조선교회 창립을 보고.

정약용(丁若鏞) 기중기(機重器)를 발명.

1794년 수원성[華城]을 쌓기 시작함. 울릉도 지도를 제작케 하고 토산물을 조사함.

12월,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 밀입국 상경.

1795년 천주교도 김시삼(金始三)이 청나라 신부 주문모의 밀입국 포교사실을 밀고.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한중록》을 지음.

1797년 영국제독 브로우튼의 북태평양 탐험선 프로비던스호 동래 용당포(龍塘浦)에 표착.1800년 원자를 세자로 책봉(순조).

정조 죽고, 세자 즉위(순조). 대왕대비(영조계비 정순왕후), 수렴청정을 함.

1801년 정순왕후(貞純王后) 대왕대비 김씨(金氏)의 명에 따라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 실시.

서얼소통 시행, 내사노비(內寺奴婢) 폐지 등 제도 개혁.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 등 30여 명의 교도가 처형되는��신유교난(辛酉敎難)��일어남.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사건 일어남.

1802년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화를 입은 이들에게 증직(贈職).

1804년 순조의 친정시작, 김대왕대비 수렴정치 폐함. 평양에 대화재, 공해 여사 600여 호 소실.

1805년 정조실록(正祖實錄) 인간됨.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세도정치 시작.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한중록(恨中錄)》 완간.

1806년 전라도 영광(靈光) 등 40여 군현에 흉년. 기아자 약 50여만명 발생.

정부 2만 5000석의 구휼미를 배급.

1807년 황해안 대해일(大海溢)로 패해도 극심. 유구인 99명 제주도에 표착.

대마도(對馬島)에 통신사(通信使) 파견 요청 거절하자, 왜관(倭館)의 왜인들 난동을 벌임.

1808년 북청(北靑)˙단천(端川)에서 민란 발생. 《만기요람(萬機要覽)》 완성.

1809년 함흥에 대화재. 필리핀 루손섬의 원주민 3명, 제주도 표착 9년 만에 송환.

1811년 곡산 등 민란 일어남. 홍경래(洪景來)의 난(평안도 농민전쟁) 일어남.

역법(曆法)을 개정, 시행.

1812년 4월 19일, 홍경래 전사, 난이 평정됨. 왕자 호(昊), 왕세자에 책봉됨(훗날의 익종).

1813년 공충도(公忠道)를 다시 충청도로 개칭. 제주도 토호 양제해(梁濟海) 등의 민란 일어남.

1814년 함경도 일대, 경상도 지방에 대홍수.

1815년 경상도 함안(咸安) 등지에 대홍수.

을해교난(乙亥敎難).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

남공철(南公轍)의 《금릉집(金陵集)》 24권 121책 완간.

1816년 영국 군함 알세스토호˙리라호가 충청도 마량진(馬梁津)에 옴.

이로 인해 서양 해도(海圖)상에서 한반도 서해안의 지형 분명해짐.

한성과 경상도 일대에 홍수.

1817년 삼남지방에 대홍수. 김정희(金正喜), 신라 진흥왕의 북한산순수비 발견, 68자의 비문 판독.

해인사에 대화재.

1818년 경상도 유생(儒生)들, 상소(上疏)로 채제공(蔡濟恭)의 신원을 요구.

정약용, 유배지 강진(康津)에서 《목민심서(牧民心書)》 완성.

1819년 충청도 공주˙전라도 전주 등지에 대홍수. 전국적 호구˙인구조사 실시.

호수:153만 3515호, 인구:651만 2349명.

1821년 평양 지방에 괴질 유행, 10여만 명 사망. 국가재정 궁핍상태에 빠짐.

1822년 호적법을 강화함. 인삼밀수출 엄금, 위반자 사형에 처함.

1823년 충청도˙경상도 일부에 홍수. 경기˙충청˙황해도 등 5도 유생들이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서얼(庶孼)의 임용을 요청.

1824년 정하상(丁夏祥)이 베이징에 가 교황에게 사제 파송을 요청. 감자씨 전해짐.

유희(柳僖), 《언문지(諺文誌)》(1권 1책) 등을 완성.

1825년 무신의 승교(乘轎)를 금함. 정하상˙유진길(劉進吉) 등, 교황청에 서한 발송,

조선천주교의 수난사실을 보고.

1826년 6월에 지진 발생.

1827년 왕세자(익종) 대리청정. 호적법 정비. 서울(한성)에서 야간통행금지 실시.

전라˙경상도 각지에서 천주교도 탄압사건 일어남(정해교난).

평안도˙함경도˙전라도 일대 등, 전국적으로 홍수피해 막심. 지진 발생.

1828년 법사(法司)˙반족(班族)의 백성들에 대한 재산침해를 엄금. 삼남(三南)지방에 병충해 극심.

1829년 영종(英宗)˙진종(眞宗)˙정종(正宗) 3대 왕의 어필집(御筆集) 발간. 남공철, 영의정 사퇴.

경희궁에 대화재 발생, 여러 전각 소실. 작자미상의 《이두편람(吏頭便覽)》 완성.

1830년 선정비(善政碑) 남립(濫立) 금지. 효명세자(孝明世子) 병사, 왕세자 책봉.

1831년 경희궁 중건 완료. 로마 교황청이 천주교 조선교구 창설.

1832년 개성(開城)출신 무과 급제자의 임용 허용.

영국 상선 로도 아마스트호, 몽금포(夢金浦) 앞바다에 나타나 외교사상 처음 통상을 요구.

순조, 경희궁으로 천궁.

1833년 전국 각지의 제방 수축. 북한산성 수축 완료.

황해도 재령(載寧)지방 소작인들, 소작료 납부거부운동.

삼남지방의 목화 흉작으로 대동포(大同布)를 대동미(大同米)로 징수.

1834년 폐습˙사치를 금함. 창덕궁의 숭문당˙양화당 등 많은 전각들 준공.

순조 죽고 왕세손 즉위(현종), 대왕대비(순조의 비, 純元王后金氏)가 수렴청정.

1835년 전국에 전염병(大疫)유행. 《순조실록》 편찬 위해 실록청(實錄廳) 설치.

청주성 화약고에 낙뢰. 세곡방납(稅穀防納)의 폐를 바로잡음. 왕, 창덕궁으로 환어(還御).

1836년 프랑스인 신부 모방, 의주(義州)를 거쳐 밀입국.

소의 밀도살, 금광(金鑛)의 잠채(潛採)를 금함.

1837년 충청도 대흥군(大興郡)에서 성국로(成國老) 등이 집권자들의 죄를 폭로한 괘서(掛書)사건

일어남.

1838년 지진발생. 《순조실록》 34권과 《정조실록》 15권 완성. 《만기요람(萬機要覽)》완성.

1839년 유진길˙정하상(丁夏祥) 등 교도 다수 처형됨(己亥敎難). 평안˙황해˙경상도에 홍수.

조인영(趙寅永)이 제진한 '척사윤음(斥邪綸音)'을 헌종이 반포함. 오가작통법 실시.

1840년 앙반들의 상민(常民)착취 엄금. 영국선 2척, 제주도에서 소 등 가축을 약탈해 감.

대왕대비(純元王后 金氏)수렴청정 중단, 헌종의 친정 시작.

풍양 조씨(豊陽趙氏)의 세도정치 시작됨.

1841년 전국에 전염병 유행.

1842년 순천부(順川府) 송광사(松廣寺)에 화재. 《천세력(千歲曆)》 발간.

1843년 송광사 중건. 공주(公州)의 대동미(大同米) 착복한 이양옥(李陽玉) 처형.

1844년 이원덕(李遠德) 등, 원경(元慶)을 받들고 모반을 획책하다 처형됨.

김정호(金正浩)의 《오대주도(五大洲圖)》 완성. 김정희(金正喜)가 《세한도(歲寒圖)》그림.

1845년 영국군함 사마랑호(號), 무단으로 제주도와 전라도 서남해안을 측량.

훈련도감에서 대완구˙비격진천뢰 등 무기를 제작. 왕 경희궁으로 천궁.

김대건, 상하이[上海]에서 조선인 최초의 신부가 되어 밀입국.

1846년 프랑스 세실 해군소장, 천주교탄압을 구실로 군함 3척 끌고 충청도 외연도(外煙島) 정박,

왕에게 항의 서한 전달. 김대건 신부, 새남터에서 순교.

1847년 프랑스 군함 글로아르호(號), 지난해 세실 소장이 전한 국서에 대한 해답을 받고자 서해안 으로 들어오다가 고군산열도(古群山列島)에서 좌초.

정부는 청나라를 통해 그 답신을 전달(서양과의 첫 외교문서).

1848년 정부, 아편흡연을 엄금.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재개.

1849년 헌종이 죽자 은언군(恩彦君) 인의 증손 원범(元範) 즉위(철종).

정학유(丁學游) 또는 고상안(高尙顔)의 《농가월령가(農歌月令歌)》 및 《승정원일기

(承政院日記)》 편찬.

1850년 개성에서 사적인 인삼재배 성행.

1851년 국가경상비 부족으로 비상대비용인 봉부동전(封不動錢)을 변통 사용.

김문근(金汶根)의 딸이 철종비가 됨(純明王后 金氏). 김씨 세도정치 재개됨.

12월, 대왕대비(순조비 純元王后 金氏)청정중단, 철종의 친정 시작됨.

1852년 김흥근(金興根), 영의정이 됨. 오위장(五衛將)의 임명을 엄정, 진장(鎭將)도 매관매직 엄금.

1853년 페레올 주교 사망. 왜관(倭館)을 다시 건립. 춘궁기에 전국적으로 많은 아사자 발생.

1854년 러시아 선박 함경도 덕원(德源)˙영흥(永興)해안에 침입, 어민들을 살상.

1855년 영남의 유생들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추존(追尊)을 상소.

영국함 흐네트호(號) 독도(獨島)를 측량, 프랑스함 비르지니호(號) 동해안 일대를 측량.

1856년 가축의 무단도살 엄금.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중건을 위한 공명첩(空命帖) 300장, 승첩(僧帖:度牒) 100장을 발행.

《동문휘고(同文彙考)》 완간. 《통문관지(通文館志)》 속편 완성.

1857년 최한기(崔漢綺), 세계지리서 《지구전요(地球典要)》 저술 완료.

1859년《대명률(大明律)》 《대전통편(大典通編)》 등 간행. 원자(元子) 죽음.

서울 근교 사찰들을 훼파. 억불책의 일환.

1860년 경희궁으로 천궁(遷宮). 최제우(崔濟愚), 경주에서 동학(東學)을 창시.

1861년 창덕궁으로 환어.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완성˙간행.

러시아 함대, 함경도 원산항(元山港)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

1862년 충청˙전라˙경상도 곳곳에서 잇단 민란 일어남. 1850년 이후에 세운 서원을 모조리 철폐.

1863년 금위영(禁衛營)군졸들, 받은 녹미(祿米)의 질 문제로 소요.

동학 교조 최제우 체포되고, 남해에 민란.

흥선군을 대원군(大院君)으로 봉하고, 대왕대비 조씨가 수렴청정을 시행.

1864년 북인(北人)˙남인(南人)을 등용하고, 비변사(備邊司)와 의정부(議政府)의 업무분장.

최제우, 대구에서 사형. 김정호, 대동지지《(大同地志)》완성.

1865년 통제중군(統制中軍) 설치. 찬집소(纂輯所) 설치 《대전회통(大典會通)》 편찬,

《양전편고(兩銓便攷)》 등과 함께 완성.

1866년 대왕대비의 수렴청정 끝내고 왕에게 환정(還政). 민치록(閔緇祿)의 딸이 왕비가 됨.

미국 상선 제네럴 셔먼호(號), 군민(軍民)에 의해 불탐. 척사윤음(斥邪綸音) 발표.

프랑스 함대, 양화진(楊花津)에 내침.

해군대령 올리비에가 이끄는 프랑스군, 재차 내침, 강화도 점령, 양헌수(梁憲洙) 등이 대파.

1867년 서울 각 성문에서 통과세(通過稅) 징수. 신관호(申觀浩)가 수뢰포(水雷砲)를 만듦.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경회루(慶會樓) 완공.

1868년 당백전(當百錢)의 통용을 명령.

1869년 전라도 광양현(光陽縣)에서 민란 발생.

대원군의 명에 좇아 전국 8도(八道) 4도(四都)에 원납전(願納錢) 납입을 독촉.

1870년 일본주재 독일공사 브란트, 일본 외무서기 하나부사[花房義質] 등 군함 헬타호(號)를 타고

부산에 입항, 통상을 요구, 거절당하자 귀국. 청국인 7,000여 명이 평안도 후창군(厚昌郡)

일대에 침입, 벌목을 시도하다 축출됨.

1871년 사액(賜額) 서원 47곳만 남기고 전국의 서원을 철폐.

1873년 선혜청(宣惠廳) 별창(別倉)에 화재. 최익현(崔益鉉), 대원군을 배척하고 시폐(時弊)를 논단 하는 상소로, 호초참판에 특임. 소사(疏辭)가 과격하다 하여 제주에 유배.

국왕, 친정 선포(대원군 실각).

1874년 강화도 연안 포대 축조 완성. 일본의 '정한설(征韓說)'로 각 군영(軍營)에 엄중경계령

내림. 병조판서 민승호(閔升鎬)의 침실 화약 폭발로 일가족 폭사.

달레(프랑스 신부)의 저서 최초의 《한국교회사》 발간.

1875년 울산에서 민란 일어남(29일 진압).

왕이 경복궁으로 옮기고, 양주(楊州)에서 은거하던 대원군 운현궁으로 환거.

일본 군함 운요호를 포격, 퇴각.

1876년 최익현(崔益鉉), ��척사소(斥邪疏)��로 일본과의 통상조약에 반대, 흑산도에 유배.

불평등조약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강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에 조인.

경복궁에서 실화로 열조 어필(列祖御筆)˙대보(大寶) 등 소실.

1877년 제생의원(濟生醫院), 종두(種痘) 실시.

천주교 조선교구 주교 리델(프랑스인) 및 두새˙로베르 신부 등 체포.

1878년 청의 요청으로 리델 등 프랑스 신부를 베이징으로 귀환 조처.

일본 대리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가 부산해관의 철폐를 요구하는 무력시위 감행.

1879년 강수관(講修官) 홍우창(洪祐昌), 일본 대리공사 하나부사와 원산개항예약 의정서(議定書)에

조인.

1880년 김홍집(金弘集)을 일본수신사(日本修信使)에 임명. 원산에 일본 영사관 개관.

하나부사, 일본 국왕의 친서(親書) 고종에게 전달.

삼군부(三軍府) 폐지하고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

《동경대전(東經大典)》 등 출간. 지석영, 종두(種痘) 실시.

1881년 박정양(朴定陽) 등 10여 명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에 임명.

별기군(別技軍)을 두고 신식군사훈련을 실시.

1882년 조미(朝美)수호조규˙조영(朝英)수호조규 조인. 원산˙부산˙인천 개항.

5월, 조독(朝獨)수호통상조약 조인.

군인들, 급료 체불과 급여양곡의 변질˙정량부족 등에 격분, 난동(壬午軍亂).

대원군, 원군으로 들어온 청군에 의해 납치, 청국으로 호송.

7월, 제물포조약 및 수호조규속약(修好條規續約) 체결.

박영효(朴泳孝)를 일본특사 겸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선중에서 태극기를 고안).

1883년 태극기를 국기로 정함. 당오전(當五錢)을 주조. 초대 미국공사로 푸트 착임,

수호조규(修好條規)를 비준˙교환. 기기국(機器局)을 새로 설치. 최초로 영어교육 실시.

조영(朝英)수호통상 조약, 조독(朝獨)수호통상조약 조인.

1884년 부산~나가사키[長崎] 간 해저전선 개통. 우정총국(郵政總局) 개설.

이탈리아 및 러시아와 수호조규에 조인.

개화당 일파, 수구당 민씨 일파를 죽이고 새 정부를 조직(甲申政變).

5개조항으로 된 한성조약 체결.

1885년 광혜원(廣惠院)을 설립, 미국인 의사 알렌 진료 실시. 영국함대 거문도를 불법점령.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 등 내한. 최초의 개신교회(소래교회) 창립.

배재학당(培材學堂) 설립. 대원군 귀국. 《한성주보》 발간.

1886년 이헌영을 초대 주일공사에 임명. 서대문 밖에 수력화약공장(水力火藥工場) 건설.

스크랜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 설립(梨花學堂). 한불수호조규(韓佛修好條規) 조인.

언더우드, 학당 개설(儆新學校).

1887년 거문도 점거했던 영국 함대 철수(1885~). 광무국(鑛務局) 설치.

최초의 감리교회 정동교회(貞洞敎會) 창립.

김홍집(金弘集)을 좌의정 겸 총리내무부사(總理內務府使)에 임명. 새문안교회 창립.

상공회의소 개설.

1888년 이화학당에서 최초로 주일학교(主日學校) 시작. 군제 개편, 삼남지방에 큰 흉년.

1889년 함북 길주(吉州)와 강원 정선군(旌善郡) 등지에서 민란 발생.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록(西遊見聞錄)》 완성.

언더우드, 조선야소교서회(朝鮮耶蘇敎書會:현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부산에 최초의 기선회사 설립.

1890년 부산˙인천의 25객주(客主)를 철폐. 침례교회 선교를 시작.

커피˙홍차 등이 소개.

서양의 배˙사과˙복숭아 등이 원산(元山)˙길주(吉州)˙대구(大邱) 등지에서 재배 시작.

1891년 제주민란 발생.

1892년 일본 어선, 제주 성산포(城山浦)에 상륙, 민간인을 살해하고 부녀자 폭행.

정부, 김옥균(金玉均) 암살계획을 세워 이일식(李逸植) 등 일본에 파견. 현대식 화폐 주조.

1893년 동학교도 2만여 명, 충청도 보은군(報恩郡) 장내(帳內)에 모여 '척왜척양(斥倭斥洋)'

��창의(倡儀)��의 기치 아래 농성시위 계속.

지석영(池錫永), 교동(校洞)에 우두보영당(牛痘保謁堂)을 설립.

중림동(中林洞) 약현성당(藥峴聖堂) 준공. 전봉준(全琫準) 등 학정 시정을 진정.

최초로 전화기 들여옴. 최초의 시계포, 구리개(을지로 入口)에 등장.

1894년 김옥균, 상하이[上海]에서 홍종우(洪鍾宇)에게 암살당함. 갑오경장(甲午更張)의 시작.

과거제도 폐지. 15일, 김홍집내각 성립.

경북 안동(安東)에서 서상철(徐相轍) 의병 봉기(최초의 反日의병운동).

동학교주 최시형(崔時亨), 무장봉기 선포.

'홍범십사조(洪範十四條)'와 '독립선고문'을 종묘에 고함.

1895년 동학운동 주모자 전봉준 등 사형. 을미개혁(乙未改革) 단행,

재판소(법원) 구성법 등 34건의 개혁안 의결. 군제(軍制)개혁도 단행, 훈련대 등 설치.

일본공사 미우라[三浦梧樓] 부임. 소학교령(小學校令) 공포.

8월, 명성황후(明成皇后:閔妃)를 시해한 을미사변(乙未事變) 발생. 제3차 김홍집내각 성립.

1896년 연호 건양(建陽)˙태양력 사용(음력 1895.11.17).

이범진(李範晋)˙이완용(李完用) 등 고종 및 왕세자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俄館播遷).

서재필, 《독립신문》 창간.

1897년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침. 국호(國號)를 '대한제국(大韓帝國)', 왕의 호칭을 '황제'로 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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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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