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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정조의 왕후와 후궁들 중, 궁으로 간 순서
비공개 조회수 6,704 작성일2015.01.03

정조의 왕후와 후궁들 중, 누가 먼저 왕후, 후궁이 되었는지 알려주세요. 예를들어 ㅅ,ㅇ,ㄹ,ㅎ가 있었다면

ㅇ가 제일먼저 왔고,ㅅ가그다음,ㄹ가그 후,ㅎ가 마지막..

정도? 그렇게 해 주세요. 그리고 계급까지 알려 주세요.

왕이 어느 차례로 총애했는지 까지요.

정조가 아니라면 광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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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n****
물신
한국사 26위, 사회, 도덕 84위, 전통 예절, 의식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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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왕세손빈(=효의왕후) 가례.

1778년 원빈홍씨 간택입궁.

1779년 원빈홍씨 사망.

1780년 화빈윤씨 간택입궁.

1781년 화빈윤씨 출산 => 왕자녀 조졸.

1782년 상의성씨 문효세자 출산 => 정3품 소용 승진

1783년 소용성씨 의빈으로 승진.

1786년 의빈성씨 임신중 사망.

1787년 수빈박씨 간택입궁.


실록기록에 후사가 없는 정조가 궁녀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대비 정순왕후가 왕의 이러한 편벽한 성격을 걱정하여 후궁을 간택하라는 하교를 내립니다.


또다른 기록에 정조는 궁인은 임신을 한 뒤에 후궁으로 관작을 봉하라는 비망기를 내립니다.


11살의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중에서 죽어나간 비참한 지경을 겪었던 정조는

즉위후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하여 영조가 애지중지하던 화완옹주를 귀양보내고 영조의 화첩이던 숙의문씨를 폐출하여 사사시켰고, 생모인 혜경궁 홍씨조차도 경계할 정도였으니 여자를 멀리 하였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지요.


효의왕후는 정조의 정식 배위이며, 11살에 혼인하여, 시집온지 6개월만에 사도세자가 죽은 임오화변을 함께 겪은 조강지처입니다.


정조는 네명의 후궁을 두었으나, 의빈성씨만이 유일하게 나인출신의 승은후궁이었고,

원빈, 화빈, 수빈은 양반가의 적녀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바탕에 두고 뽑아온 간택후궁들입니다.

원빈이 첫번째 후궁이긴 하나 입궁한지 일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15살에 사망하였고,

화빈은 첫딸을 낳았으나 아이는 조졸하고, 이후 별다른 기록조차 없습니다.


이시기에 승은후궁이었던 상의성씨는

정조의 장자 문효세자를 낳아 정3품 소용이 되었고,

이듬해 정1품 의빈이 되었고, 다음해 또 딸을 낳았으나 옹주는 조졸합니다.

이듬해 문효세자가 유행병으로 사망하고,

4개월뒤 만삭이던 의빈조차 갑자기 사망하여 정조가 몹시 슬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몇달 뒤 수빈박씨가 입궁하여 숙선옹주와 순조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기록에도 정조가 누구를 더 우대하였다거나, 총애가 대단하였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에

본마음은 정조 자신만이 알겠지요 ^^



201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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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jad****
고수
사회, 도덕, 학교생활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정조는
효의왕후 김씨
ㄴ자식 없음
의빈 성씨
ㄴ궁녀출신, 문효세자(일찍 죽음)
수빈 박씨
ㄴ순조 생산
유빈 박씨
원빈 홍씨
ㄴ세도가 홍국영의 누이
화빈 윤씨

이순서대로 총애하였습니다.

201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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