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스캔들]제안대군, 이혼과 재혼 반복하다
입력 : 2017-09-06 00:00
수정 : 2017-09-06 09:11
일러스트=최달수

여자에 관심없던 제안대군, 어리단 이유로 후계자 못돼 결국 김씨 부인과 혼인 후 궁 밖으로 …

합방 치를 시기엔 부인 미워해 이혼 왕실 성화로 재혼했지만 또 헤어져

장가 보내려던 성종도 고집에 굴복
 


연산군 10년(1504년)에 쓰여진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그 당시 여자에 무관심해 유명인사가 된 남자 3명이 등장한다. 제안대군, 한경지, 그리고 김자고의 아들이 주인공이다. 한명회의 손자인 한경지는 부인은 물론 여종과도 상종하지 않았고, 김자고의 아들은 남녀간의 일도 모르고 숙맥조차 구분 못하는 바보였다. 이를 걱정한 김자고가 어느 날 남녀의 일을 잘 아는 여자종을 곱게 단장해 들였다. 깜짝 놀란 아들은 침상 밑으로 도망갔고, 이후로는 곱게 단장한 여자만 봐도 울며 도망쳤다.

예종의 원자였던 제안대군은 늘 말하기를 “여자는 더러워서 가까이 할 수 없다”며 부인과 마주 앉지도 않았다. 예종 1년(1469년)에 제안대군은 네살의 원자였는데, 그해 11월에 부왕을 여의었다. 당시 대왕대비였던 정희왕후 윤씨는 원자가 너무 어리다며 제안대군 대신 예종의 조카인 열세살의 자을산군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이 자을산군이 성종이 됨으로써 제안대군은 원자에서 왕자로 격하됐다.

왕자가 된 제안대군은 열살 전후로 김씨 부인과 혼인해 궁을 나갔다. 그런데 합방을 치러야 하는 열다섯살이 되자 제안대군은 김씨 부인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당시 제안대군은 누군가의 부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부인 김씨는 언제나 죽을 것인가?” 하며 몹시 부러워했고, 결국에는 이혼까지 했다.

곧바로 제안대군은 박씨 부인과 재혼했는데, 재혼 후에도 보는 사람마다 자신의 부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이런 사실로 미뤄보면 제안대군은 전처나 후처 모두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두번이나 혼인한 것은 왕실 어른들의 성화 때문이었다.

억지로 재혼한 제안대군은 후처도 아주 미워했다. 특이한 일은 제안대군이 후처와 이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처와 재결합했다는 사실이다. 여자에 무관심한 제안대군이 전처를 사랑해서 재결합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후처에 대한 무관심과 미움 때문이었다. 그처럼 여자를 싫어한 제안대군이 두명의 부인을 거느리게 된 것은 기막힌 역설이었다.

조선시대에 한 남성이 처첩을 거느리는 것은 용인되었지만, 부인 두명을 거느리는 것은 불법이었다. 사헌부에서 문제를 제기해 전처 김씨는 친정으로 쫓겨났다. 그러자 제안대군은 후처 박씨와도 이혼하고 홀로 됐다.

이를 딱하게 여긴 성종이 장가들 것을 명하고 부인을 물색하자 제안대군은 “지금 듣건대 신을 위하여 여자를 고른다고 하시니 실망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며 차라리 전처 김씨와 재결합하겠다고 했다. “만약 들어주지 않으면 평생토록 홀로 살 것입니다”라며 버텼다.

제안대군의 고집에 결국 성종도 굴복했다. 제안대군은 전처 김씨와 다시 살게 됐다. 하지만 제안대군은 김씨 부인은 물론 박씨 부인과의 사이에서도 한명의 자녀도 보지 않았다. 끝까지 부인을 가까이 하지 않은 결과였다.

이처럼 제안대군이 두명의 부인과 이혼과 재혼을 반복한 이유는 남녀의 일을 모르는 천치였거나 아니면 자신의 불행을 대물림하기 싫은 속 깊은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신명호<부경대 교수·‘조선왕조 스캔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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