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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제안대군에대해..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4,069 작성일2008.08.01
제안대군은 연산군에게 장녹수를 헌납하고 연산군과 나름 궁합을 잘맞추었죠 이정도라면 훗날 연산이 폐주가된뒤 반정군의살생부에 오를정도였는데 그는 그이후에 나름 평안한삶을 살다가 중종시대에 사망했는데 제안대군이 연산군과 친분이 있었음에도 중종반정뒤 나름 평안한삶을 살수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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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
초수
한국사, 세계사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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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대군은 예종의 둘째아들이며 안순왕후 한씨 소생이다. 4세때 부왕인 예종이 죽자 왕위 계승의 첫번째 후보로 올랐으나 세조의 정비 정희왕후의 반대로 세자에 책봉되지 못했다.

이후 1470년 5세의 나이로 제안대군에 봉해졌으며, 세종의 일곱째아들인 평원대군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그리고 사도시정 김수말의 딸고 혼인했으나, 어머니 안순왕후가 그녀를 내쫓았끼 때문에 14세에 다시 박중선의 딸과 혼인하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쫓겨난 김씨를 잊지 못해 1485년 20세 때 성종의 배려로 그녀와 다시 복합하였다. 1489년 안순왕후가 죽은 후로 홀로 거처하였으며, 평생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는 노래를 즐기고 사죽관현 연주에 뛰어났다. 그래서 연산군이 네 차례나 음률을 잘 아는 여자를 궁중으로 맞아들여 그에게 내렸지만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패관잡기』에서는 '그는 성품이 어리석었다' 고 기록하는 한편 '그것은 몸을 보전하기 위해 어리석음을 가장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즉 왕위 계승전에서 밀려난 사람은 언제든지 죽음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는데, 이를 모면하기 위해 고의로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보신책 덕분이었는지 그는 1525년까지 천수를 누리다가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200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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