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유성기업 ‘노조 파괴’ 개입 혐의로 기소…유성기업 사태 6년 만

김상범 기자

현대자동차 주식회사와 현대차 구매본부 직원들이 ‘노조 파괴의 대명사’라 불리는 유성기업과 공모해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그동안 유성기업 노조 와해 작업의 ‘실질적 배후’라는 의혹을 받아 온 현대차가, 사태 6년 만에 사법처리를 받게 된 것이다. 대기업이 협력업체 노사관계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현대차의 개입 증거를 손에 쥐고도 수년간 불기소 처분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온 검찰은 ‘늑장 기소’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19일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혐의로 현대차 구매본부 구동부품개발실의 최모 실장과 황모 팀장, 강모 차장, 권모 대리 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법인체인 현대차 주식회사도 기소됐다. 유성기업 임원진과 공모해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유성지회)를 와해하기 위해 제2노조 설립·확대 등 부당노동행위에 관여한 혐의다. 노조법은 사용자가 노조를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개입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24일 노동·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유성범대위는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

지난해 5월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앞에서 노조파괴 공작을 벌이는 현대차와 정몽구회장의 처벌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우울증을 앓다 지난해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합원 한광호씨의 영정이 보인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5월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앞에서 노조파괴 공작을 벌이는 현대차와 정몽구회장의 처벌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우울증을 앓다 지난해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합원 한광호씨의 영정이 보인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현대차, 제2노조 가입 목표치 하달…“가입인원 적다” 채근도

검찰 공소장을 보면 최 실장 등 현대차 직원들은 2011년 7월 유성기업에 제2노조가 설립된 이후, 그 해 9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유성기업 사측으로부터 노조 운영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았다. 현대차는 유성기업에 제2노조 조합원 확대 목표치까지 제시하면서 금속노조 파괴에 관여했다. 최 실장은 제2노조 조합원 가입 속도가 더디자 2011년 9월 부하 직원에게 “신규노조 가입인원이 최근 1주일간 1명도 없는데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9월20일까지 220명, 9월30일 250명, 10월10일 290명 목표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1명도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강하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강 차장은 이를 유성기업 최모 영업담당 이사에게 전달했다.

또 황 팀장과 강 차장 등은 2011년 9월2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10층 회의실에서 유성기업·창조컨설팅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관련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 해 10월8일 유성기업은 “2012년 12월31일까지 유성노조 조합원수가 (총원의) 80%이상을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취지의 자료를 현대차에 제출했다.

현대차 같은 대기업 원청업체가 부품 협력업체의 노조 파괴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현대차는 “유성기업에 부당노동행위를 지시·공모한 사실이 없다”며 “안정적으로 부품공급을 받기 위해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유성기업 측 자료를 받아본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해 왔다. 소송을 담당한 법률사무소 새날의 김상은 변호사는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진 완성차의 부품사 노조관계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통한 노조파괴 행위를 확인한 최초의 법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납품량 감축’ 무기삼아 부품사 노사관계 개입

현대차는 ‘납품량 감축’을 구실 삼아 유성기업 노사관계에 관여했다. 유성기업은 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링 등을 생산해 현대차 등 완성차업체에 공급하는 1차 협력업체다. 공소장에 따르면 현대차는 2011년 초 유성지회의 파업과 직장폐쇄로 납품에 지장이 생기자, 그 해 9월 “결품 우려 없는 안정적 생산구조를 정착시키지 못할 경우 납품구조 2원화 방침에 따라 주문량을 감축할 수 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이에 유성기업은 현대차에 “사측에 친화적인 2노조가 설립됐으니 유성지회가 파업할 경우에도 결품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현대차는 기간별 가입인원을 정해 주면서까지 유성기업에 제2노조 확대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유시영 회장은 구매본부 최 실장에게 제2노조 가입인원을 보고하면서 “납품구조 2원화를 실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2011년 11월 1일 유성기업 간부가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에게 보낸 e메일. 현대차가 유성노조(기업노조) 신규가입자를 70~80% 선까지 확보하라고 강요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1월 금속노조가 입수한 수사기록에 포함된 문건 중 하나다. |금속노조 제공

2011년 11월 1일 유성기업 간부가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에게 보낸 e메일. 현대차가 유성노조(기업노조) 신규가입자를 70~80% 선까지 확보하라고 강요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1월 금속노조가 입수한 수사기록에 포함된 문건 중 하나다. |금속노조 제공

■검찰, 공소시효 사흘 앞두고 기소…늑장·부실수사 비판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공소시효 만료일인 22일을 불과 사흘 앞두고 공소를 제기했다. 검찰은 유성기업 노조파괴의 ‘몸통’인 현대차의 개입 증거를 확보하고도 4년 넘게 기소를 미뤄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소장에 적시된 주요 증거들이 모두 2012년 말 창조컨설팅과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확보한 이메일·회의문건에 담긴 내용이기 때문이다. 해당 내용들은 소송 과정에서 수사 기록을 입수한 금속노조와 은수미 전 의원을 통해 지난해 1월 언론에 이미 공개되기까지 했다.

검찰은 2012년 현대차 개입 증거를 확보하고도, 이듬해 12월 유성기업과 현대차 관계자의 핵심 혐의 대부분을 사실확인 불가,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지회는 지난해 2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직원들과 유성기업·창조컨설팅 관계자에 대한 고소장을 다시 천안지청에 냈다. 검찰 수사가 더디자 금속노조는 지난해 9월과 지난 2월,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내용에 대해 대전고법에 재정신청을 냈다. 김상은 변호사는 “현대차 임직원들과 유성기업 임직원들의 변명이 종전과 다르지 않아 추가적인 증거는 없었던 점을 고려할 때, 결국 2012년 말 기소할 수 있었던 사건을 4년반 이상 방치하다가 비로소 기소한 것이 명백하다”라고 말했다. 김성민 금속노조 유성기업영동지회장은 “이번 기소는 기쁜 일이지만, 진작에 법과 원칙대로 수사를 했다면 유성기업은 일찌기 정상화됐을 것”이라며 “검찰의 기업 편들기 수사로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고통을 겪어왔다”고 말했다.

■법원, 이미 현대차 개입 증거 인정

충남 아산과 충북 영동에 공장을 두고 있는 유성기업은 엔진용 부품 제조업체다. 2011년 이후로는 창조컨설팅과 손잡은 사측의 노조 파괴로 더 많이 알려졌다. 주간연속 2교대 도입을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격해지자 2011년 금속노조 유성지회는 부분파업을 했다. 사측은 공격적 직장폐쇄, 제2노조 설립, 조합원 차별·징계, 금속노조 조합원 회유 등 창조컨설팅이 짠 시나리오에 따라 유성지회 와해 전략을 폈다. 금속노조 조합원을 향한 징계와 소송이 남발됐다. 사측으로부터 소송 10여건을 당한 조합원 한광호씨는 지난해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월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은 법원에서 “회사에 우호적인 노조를 키우기 위해 컨설팅 계약을 맺은 뒤 신설 노조를 지원했다. 징계를 남용해 직원을 해고하고 노조를 와해시키려 하는 등 헌법이 보장한 근로자 단결권을 침해한 책임이 무겁다”며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앞서 유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도 현대차가 유성기업 노사관계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당시 판결문은 유성기업이 창조컨설팅의 자문 문건을 ‘현대차 제출용’으로 분류해 수시로 보고한 내용을 증거로 채택했다. 금속노조 조합원에 대한 징계 계획, 회사에 우호적인 제2노조 조합원 확대방안, 제2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삼기 위한 전략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유성기업은 현대차에 제2노조 조합원 수를 부풀려 보고하기도 했는데 법원은 이를 “현대차를 안심시키기 위해 실제보다 과장된 가입현황을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원청(현대차)과 협력사(유성기업), 그리고 창조컨설팅의 ‘삼각 관계’를 이미 법원도 인정한 셈이다.

24일 유성범대위와 민변 등이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성기업 개입 관련 현대차 기소 사실을 알리고 있다.

24일 유성범대위와 민변 등이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성기업 개입 관련 현대차 기소 사실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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