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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옛날 중국신화에 대해서 질문 좀 할께요 .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756 작성일2016.09.08
제가 관심있는 분야와 중국신화가 상당히 밀접한게 있는것 같아서 알아보고 싶어졌는데 궁금한것은
옛날에 "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 " 그들이 나타나자 " " 수천년 후에 " " 달나라 선녀가 " 이러한 구절들이 있거나 글귀와 관련된 장문의 신화거리에 대한 얘기좀 최대한 많이 올려주세요 . 내공은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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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34위, 샤오미 1위, 세금, 세무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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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족은 나름대로 그들 민족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중국을 비롯한 인도, 그리스, 이집트 등 몇몇 고대 문명 국가들은 매우 풍부한 옛 신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도, 그리스 등의 신화는 완벽하게 보존되어 전해 오고 있는 반면에 중국의 신화는 체계 없이 산만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중국 신화는 『산해경()』, 『회남자()』, 『초사()』 등에 가장 많이 실려 있고, 그 외에 『목천자전()』, 『장자()』, 『국어()』, 『좌전()』 등에 단편적으로 실려 있을 뿐이다.

신들의 사랑, 음모, 투쟁이 신화의 중심적인 주제이며, 은밀한 신의 계획이 숨겨져 있다. 즉 한 문제에 대한 올바른 답을 얻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삶의 투쟁인 것이다. 신화야말로 생명을 지배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신화는 옛 사람들의 사상은 물론 생활의 관념 등을 터득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신화가 당시 사람들의 자연 현상에 대한 해석, 투쟁, 극복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통하여 얻어진 경험적 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유치한 듯한 모티브를 지니고 있지만, 더없는 매력과 친근감을 준다. 친근감이란 현실적인 고통, 역경, 공포 등을 이겨낸 결과에서 오는 애틋한 맛이다. 로고스는 '맛', '신성함', '초월성'을 담을 장소가 없지만, 신화는 이러한 것들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초월적 감각의 발로가 신화 문학의 연원이며, 그 문학에 대한 연구는 '항상 현재성'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신을 자신의 영혼 속의 힘이라고 한다면, 중국 신화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 사람들의 심연의 원시적 사유, 문학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여와와 복희

그렇다면 천지, 인류 창조에 대한 중국인의 생각은 반고()와 여와()의 신화를 통하여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반고는 거대한 달걀과 같은 암흑과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태어났는데, 1만8천 년 동안 천지가 개벽하였다. 양()의 맑음()은 하늘이 되고, 음()의 혼탁함()은 땅이 되었다. 하늘과 땅이 매일 일장()씩 높아지고 두터워졌으며, 반고 역시 일장씩 키가 자랐다. 이렇게 1만8천 년이 지나니 하늘과 땅이 지극히 높아지고 깊어졌으며, 반고의 키도 엄청나게 커졌다. 하늘은 땅에서 9만 리나 떨어지게 되었다.

반고는 죽음에 임박하여 몸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입김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고, 목소리는 천둥이 되었다. 왼쪽 눈은 태양이,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으며, 몸은 울퉁불퉁한 산과 구릉이 되었고, 머리털은 초목 등이 되어 세상이 아름답게 변화하였다. 그런데 하늘과 땅이 열린 후 황량한 대지를 거닐고 있던 여와는 고독을 견딜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생기가 돌 것 같아 황토를 한 움큼 파서 물과 반죽을 해서 어떤 형체를 만들어 땅에 내려놓았다. 살아서 움직였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이것이 곧 '사람'으로 신이 직접 창조했기 때문에 새나 짐승과는 달리 신의 모습을 닮았다. 여와는 계속하여 '남자'와 '여자'를 빚어 냈는데 그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여와를 둘러싸고 춤을 추며 노래하였다. 여와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았지만, 그 지혜로운 창조물을 세상에 가득하게 만들어 놓고 싶었다. 만들기를 계속하다 지친 여와가 새끼줄을 진흙탕 속에 넣고 휘젓다가 꺼내어 한 바퀴 휘두르자 흙탕물이 땅에 뚝뚝 떨어졌다. 그것들은 곧 환희에 겨워 춤을 추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사람들 가운데 귀하고 어진 자는 여와가 직접 황토로 빚어 만든 사람()이며, 천하고 가난한 자는 새끼줄을 휘둘러 만든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렇게 인류는 생존하기 시작하였으나 아직도 해결 못한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생존을 오래 지속시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남자와 여자를 결합시켜 주었다. 그들 스스로 자손을 생육함으로 인류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며, 그 수가 늘어나 번창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신화를 바탕으로 전설은 발전하여 왔다. 곧 신화 가운데 신()은 차츰 사람으로 변하였으며, 그 사람의 발자취를 서술한 것이 전설이 되었다. 「우()의 홍수를 다스림」, 「황제()와 치우()의 전쟁」, 「후예()가 활로 태양을 쏘다」 등의 전설이 대표적이다.

즉 상제의 어명을 받은 천신이 칼()로 곤의 배를 가르자 두 뿔이 달린 용이 튀어 나왔다. 그가 바로 우였다. 우는 곧 용트림을 하면서 승천하였다. 그리고 아버지 곤의 뜻을 받들어 치수의 위업을 하나하나 이루어 갔다. 이에 상제는 인류의 결연한 의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홍수의 벌을 뉘우치게 되었으며, 우를 지상으로 내려보내 홍수를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그것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물의 신인 공공()의 권위를 자극함으로써, 분노한 그가 온 천지를 물바다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우는 설득보다는 무력으로 공공을 몰아냄으로써 본격적으로 치수 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는 거대한 거북이에게 식양( = 생장을 멈추지 않는 토양)을 지고 뒤따르게 함으로써 홍수를 막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꼬리로 금을 그으니 강이 되어 동쪽의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그것이 지금의 양자강과 황하가 되었다고 한다.

황제릉

황제와 치우의 전쟁에 대한 전설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용어하도()』에 의하면 치우의 형제는 모두 81명으로, 구리 머리, 쇠 이마, 짐승의 몸으로 사람의 말을 하였는데 그들의 무위가 천하에 떨쳤다고 한다.

전하는 바로는 치우는 고대 여족()의 우두머리였다. 당시 여족이 참으로 많아서 구려()라고 하였는데 '구()'는 대단히 많음을 의미한다. 치우는 강대한 부족 연맹의 대표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초인간적인 신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권력욕이 강하여 황제의 보좌를 탈취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묘족()(황제의 후손)을 위협하여 탁록(涿鹿 = 현 하북 탁록현 동남)에서 황제, 염제()의 연합군과 대접전을 벌였다.

황제는 응룡()과 발( = 황제의 딸로 늘 푸른 옷을 입음)의 도움을 받아서, 치우의 군대와 구려족을 섬멸하고 치우를 사로잡아 탁록에서 살해하였다. 뒤에 염제와 황제의 연맹이 결렬되어 판천( = 현 산서성)에서 몇 차례 대전을 벌인 끝에 웅(), 비(), 비(), 휴(), 추(), 호()의 합세로 결국 황제가 승리함으로써 황하 중하류의 부락 연맹의 수령이 되었다. 따라서 황제족은 황하 유역에서 최강의 부락 연맹이 되었고, 권력의 강화로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어 나갔다. 요(), 순(), 우()의 등극과 함께 더욱 공고한 사회적인 안정을 기반으로 생산력은 물론 문화 예술도 상당히 발달하였다.

삼황오제(三皇五帝)

3황은 수인씨(), 복희씨(), 신농씨()를 지칭한다. 수인씨는 불을, 복희씨는 그물을 만들어 고기 잡는 방법을, 신농씨는 쟁기를 발명하였다고 한다. 3황의 뒤를 이어 5제가 있었는데 황제(),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을 일컫는다. 황제는 유웅씨()의 군주로, 염제(), 치우() 등을 물리치고 비로소 황하 중, 하류에 국가를 건설하였고, 이로 인해 후세 사람들로부터 지조로 칭해졌다.

예()가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전설은 『산해경』과 『회남자()』의 「본경훈()」에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요 때에 열 개의 태양이 떠올라 벼, 나무, 풀이 모두 타 죽게 되자 예는 10개 중 9개의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 이와 같은 예의 인류를 위한 영웅적인 활약은 당연히 존경을 받게 되었고, 공덕을 칭송하는 노래가 드높았으나 오히려 상제의 분노를 샀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들인 10개의 태양 가운데 한꺼번에 9개를 쏘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상제는 그 죗값으로 예와 아내인 항아()를 다시는 천상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신적()마저 박탈했다. 이로부터 예와 항아의 애정은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의 잘못으로 항아는 천국의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원망과 질책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던 예는 유랑하다가 우연히 낙수()의 여신인 복비()를 만났다. 그녀는 여러 선녀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겨 하였는데, 수심에 겨운 듯한 모습이 오히려 아름답기가 그지없었다. 위()의 조식(, 192~232)은 「낙신부()」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엷은 구름에 가리운 달인 듯 하고,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흰 눈인 듯하네.
멀리서 바라보면,
태양이 아침 노을에 떠오르는 듯하고,
가까이 가서 보면,
연꽃이 푸른 물 위로 솟아 오른 듯하네.

髣髴兮若輕雲之蔽月,
飄颻兮若流風之回雪.
遠而望之, 皎若太陽升朝霞,
迫而察之, 灼若芙蓉出綠波.

항아(상아)

복비의 남편인 하백()은 황하의 신이다. 그런데 굴원이 「구가() 하백()」에서 "그대와 함께 구하에 노니는데, 세찬 바람에 굽이치는 큰 물결!(, !)"이라고 한 것을 보면 하백이 얼마나 방탕했는가를 알 수가 있다. 따라서 하백과 복비( = 낙빈()) 사이에 갈등과 고통이 있었으나 예와의 애정은 깊어만 갔다. 예와 하백이 낙빈을 두고 처절한 싸움을 벌이자 아내인 항아는 질투와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불사약을 훔쳐 먹고 달로 달아났으나 두꺼비로 변하였다. 예는 그 이후 실망과 비애를 절감하고 세상살이의 무상함을 터득하여 갔다. 그러나 끝내 전법()을 전수해 준 봉몽()에게 살해되었다. 봉몽이 스승을 제치고 일인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중국의 신화와 전설은 질박하고 솔직하며 생동감이 있는 삶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여와가 황토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은 황토 고원의 토기 제작 문화와 여성의 활동 상황을, "예가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고 하는 것은 당시의 수렵 생활을, "우왕이 치수를 했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농업과 관개의 중요성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남·북으로 갈라 놓고 볼 때, 북방은 유교 문화권의 문자 문학으로서의 올바른 수용을 이루지 못하여 아름다운 정서의 문학 창작의 길을 열지 못하였다. 그러나 남방은 북방과 사정이 좀 달라서 비교적 온전하게 신화 전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으며, 굴원은 비로소 이들 신화를 소재로 삼아 「이소()」, 「천문()」, 「구가()」, 「초혼()」 등을 창작하였다. 그리하여 북방의 사실주의 문학에 상반하는 새로운 낭만주의의 길을 개척하였다. 한대()에 이르러 가의()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그의 시정신을 본받아 글을 지음으로써 부() 문학의 전성 시대를 이루었는가 하면 그 이후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잡가, 가무, 희곡, 소설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화와 전설 [神話-傳說] (역사 따라 배우는 중국문학사, 2010. 3. 24., 다락원)


201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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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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