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독교인입니다. 보통 개신교에선 개역개정을 주로 사용하는데
제가 읽어보니 개역한글에 아름다운 표현이 많아서.. (언어의 아름다움이 더 잘 표현됬다고 느껴집니다.)
개역한글을 보는데 목사님께선 개역한글엔 번역상 오류가 많아서 좀더 원서와 가깝게 개선된 개역개정을 보는게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개역개정은 개역한글보다 좀 가볍게 느껴집니다.
개역한글을 장엄한 느낌이 있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성경이긴 하지만, 이단들이 애용(?)하는 성경이라 좀 찝찝하긴 합니다.....
개역한글판에서 개역개정으로 옮기는것이 좋을까요?
솔직히 번역상 오류가 없다면 예배때는 개역개정을 볼 지언정, 평소엔 개역한글을 보고 싶은데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일대일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질문자와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개역한글 성경을 사랑하는 분들이 꽤 있구요. 물론 이단들로 개역한글을 애용하는 데가 있기는 합니다.
확실히 무게감은 개역한글이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개역개정은 그 나온 이유가 별로 건전하지가 않습니다. 원래 교회가 예배용으로 사용하게끔 성서공회에서 번역한 성경은 새번역이나 표준새번역인데, 진보적이라고 많은 교회들이 사용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개역한글의 성서공회 저작권이 만료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작권을 새로이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부랴부랴 얼마간 고쳐서 내놓은 것이 개역개정입니다. 개역한글은 지금은 저작권이 없어져서 누구나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나 다른 누구라도 개역한글이 보기 편한분들은 굳이 바꿔서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예배용으로 사용하는 성경은 따로 있어야 하겠지만요.
새번역도 번역자체는 쉽게 한 번역이지만 보수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개역개정은 개역한글의 개정판, 새번역은 표준새번역의 개정판이네요.
참고; http://www.bskorea.or.kr/about/owntrans/major/feature04.aspx
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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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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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들어 다니엘서2장에 신상의 모습에 대하여 광채가 특심하다로 번역한 것을 광채가 찬란하다로 번역한 개역개정은 올바른 번역이 아닙니다.
이는 광채가 찬란한 것이 아니라 다른 부위보다 특별하게 윤이날 뿐 찬란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외 이사야서 6장 등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번역도 개역한글이 더 올바르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일반 사람들이 분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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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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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원문에 가장 충실한 성경 입니다.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개관 소식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 개관 소식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한 분이 충남 서천군에 있는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를 다녀왔다고 하면서 몇 장의 사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한국 최초의 전래 성경은 다름 아닌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출간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사진을 살펴보시면 다른 분들에게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이곳은 2016년 9월 8일에 개관하였다고 합니다. 밑에 있는 국민일보 기사를 보시고 시간나면 삼삼오오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이 건립 추진 13년 만에 문을 열었다. 한국최초성경전래사업회(이사장 김대곤 서천교회 목사)와 충남 서천군은 5일 마량포구(마량진)에서 교계 및 지역 인사와 주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겸한 성경전래 200주년 기념예배를 진행했다. 서천군 서면 마량진은 1816년 9월 4∼5일 영국 해군 머레이 맥스웰 대령이 군함을 이끌고 서해안을 탐사할 목적으로 포구 해안에 들렀다가 해도를 작성한 곳이다. 이때 맥스웰 대령이 마량진 첨사(조선시대 무관) 조대복에게 성경을 처음 건네주었다는 기록이 2003년 확인되면서 ‘한국 최초 성경전래지 기념사업’이 첫발을 뗐다. 기념관은 연면적 1374㎡(약 415평)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꾸며져 있다. 1·2층은 전시관, 3층은 전망 카페, 4층은 다목적실이 들어서 있다. 전시관에는 영국에서 제작된 킹제임스 성경 원본과 시기별 한국어 성경 번역본 등이 전시돼 있으며,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있다. 기념관에서 400m 떨어진 곳에는 성경전래지기념비와 영국 범선 조형물 등이 비치된 9920㎡(약 3000평) 규모의 야외기념공원도 있다. 막바지 공사 중인 기념관 진입로는 연내 완공될 예정이다. 성경전래사업회 이사장 김대곤 목사는 “이곳에 성경이 전래된 지 꼭 200주년이 되는 이때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념관이 탄생하게 돼 기쁘다”면서 “한국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나아가 성경을 더욱 더 가까이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16-09-08 출처: 국민일보 http://naver.me/FD5WR7cm 킹제임스 흠정역: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킵바이블에서... |
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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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민일보 및 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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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서 3장
1 이러하므로 그리스도<기름부음> 예수<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의 일로 너희 異(다를 이)邦(나라 방)을 爲(할 위)하여 갇힌 者(사람 자) 된 나 바울<작은 자>은...
1 그리스도의 일로 이방인 여러분을 위하여 갇혀 있는 저 바울은 ...
❧ 본절에는 어떤 말이 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말이 생략이 되어 있는 것일까요? 일부러 안한 말일까요? 아니면 있었는데 빠진 것일까요?
만일 바울이 이렇게 시작된 말이 뒤로 이어지면 그릇이 내용물인 보석의 흉내를 내는 것이 됩니다. 그릇이 자체적으로 “나는 예쁜 그릇” 이라고 말을 하는 것은 범법 행위입니다. 그릇은 어떤 그릇이든지 모두 질그릇입니다. 그것은 또한 월권이며, 하나님의 영역에 침범을 하는 행위가 됩니다. 더구나 이미 말하고 있는 1절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이방인들은 바울을 그리스도처럼 여길 수 있는 소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울이 가리는 것이 됩니다.
바울이 갇힌 것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과 자기를 위한 것은 될 수 있어도 '이방을 위한 것' 은 될 수 없습니다. 그의 갇힘은 결과적으로 그릇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자신을 위한 일이지 그것이 결코 이방을 위한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이 만일 계속 이어져 갔다면 이로 인하여 바울이 그간에 이방 땅에서 한 모든 일이 바울의 하늘 곳간에서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나뉠 수가 있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고, 또 바울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세례를 받았습니까?"
이어지는 다음 말씀과 13절은 똑같은 “너희를 위하여” 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단서가 있으므로 문제가 없습니다. 본절을 다시 고쳐 쓴 것이 13절이 됩니다. 물론 13절은 먼저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 달라는 '구함' 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작은 차이이지만 모든 전도자가 명심하지 않으면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게 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말을 멈춘 표현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줄임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점을 상기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완전함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의 의' 가 중심이 되었느냐, 아니면 '자기의 의' 가 중심이 되었느냐의 차이입니다. 그 차이가 이 줄임을 놓아두고 ‘의문으로 남겼느냐’, 아니면 ‘지우고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느냐’ 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로움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됩니다. 물론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오역들이 '한글개역성경' 이외의 번역들을 보면 많이 있습니다.
유다서에 그 대표적인 예를 밝혀 놓았습니다.
❧ 무슨 번역을 어떻게 했느니, 누가 했느니, 무엇을 참고 했느니 하는 것들은 그저 '사람의 기준' 일 뿐입니다. 기술적인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 으로 성경을 번역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글개역성경' 은 그 저자들이 자신들의 세상에서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 마음으로 만든 성경입니다.
물론 모든 성경이 그렇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한글개역성경을 번역할 당시에는 사람 사이에 상대적인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정치, 사회적인 요소들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다만 진리를 전하겠다는 일념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만들어진 번역들이 나올 때에는 모두 상대적인 사고가 번역자의 마음에 들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개역성경이 존재하는 터이고, 또 여러 교파가 들어온 뒤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사고가 발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말을 어떻게 했고, 무엇을 기초로 번역했느냐의 문제를 가지고 번역의 오역 문제를 논하지만 그것은 번역의 어떠함을 결정짓는 요인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소유' 이며 '하나님의 말씀' 이기 때문입니다. 한글개역성경의 번역은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 그 번역자들의 마음을 따라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현존하는 모든 성경 중에 정치적, 사회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번역된 성경은 한글개역성경뿐입니다. 번역의 어떠함을 떠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임을 믿으신다면 필자의 말에 수긍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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