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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뱀파이어의 유래
승리의 참치전 조회수 2,327 작성일2009.09.14

제가 들은 바로는 유럽쪽에 아름다운 여성이 있는데 남편이 죽고 외모에 고민하던중 하녀가 머릴 잘못 빗어 머리카락을 땡겨 그 하녀의 얼굴을 마구 할퀴었는데 피가 손에 묻자 피부가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여자의 피로 목욕을 하고 마시면 피부가 좋아지고 더 아름다워질 꺼라고 생각하여 집에오는 여자와 하녀의 목을 잘라 피로 샤워를

하고 처음엔 잔에 피를 받아먹다 나중에는 아예목을 물어뜯어 빨아먹었고, 유괴당한 여자가 도망쳐나와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것을 도와주었던 하녀와하인은 사형을 당했고 그여자는 귀족이여서 교도소에서

삶을 마쳤다는 이야기요...실화라던데 자세히 알려주세요...

그 여자 이름과 정확한 국적등....    내공냠냠이나 장난글은 바로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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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
세계사 45위, 삼국지 30위, 역사학 86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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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엘리자베스 바토리(에르체베트 바토리라고도 합니다) 에 대한 걸 묻고 계신듯 합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합스부르크 왕조와 비견될 정도로 트란실바니아에서 가장 유서깊은 가문인 바토리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폴란드의 이슈트반 바토리의 조카이며, 트란실바니아공과 재상은 그녀의 사촌이었죠.

 

이 당시 유럽의 귀족가문들은 재산과 영지가 분배되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근친혼을 많이 했는데, 아시다시피 근친혼은 유전학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실제로 그녀가 열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이런 유전학적인 간질 증상으로 인해 사망했으며, 숙부인 이슈트반 바토리도 간질로 죽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행위에 대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를 둘러싼 친족들이 심한 정신이상을 보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녀의 숙모는 동성애자였으며, 숙부는 악마숭배자였고, 형제들은 색정광이었으며, 그녀 자신 또한 14살에 하인의 아이를 임신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15살이 되던해에 헝가리의 페렌츠 나더스디 백작과 결혼했는데, 그녀의 혈통이 남편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결혼후에도 바토리라는 성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용맹함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동시에 잔혹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잦은 전쟁으로 인해 부재중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나이가 40대 초반이 되었을때 전사하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소유지인 슬로바키아의 체이테 성으로 주거지를 옮기게 됩니다.

 

말씀하신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바로 이 체이테 성으로 옮겨오고 나서의 일입니다.

 

어느날 간질 증상이 일어난 바토리는 그녀를 부축하려는 하녀의 팔을 깨물어 뜯었습니다. 하녀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보는 순간 발작이 멈췄죠. 이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바토리는 젊은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흘리는 모습을 즐기게 되었고, 체이테 성으로 일하러 들어간 여자들은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며, 바토리에 의해 피를 쥐어짜인 끝에 성의 정원에 묻히고 만다는 소문이 퍼진 것도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남편인 나더스디도 에르제베트의 그러한 잔학한 취미를 알게 되어 살해당한 것이라는 소문까지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러한 소문이 돌아다니고 있었음에도, 체이테 성 주변의 가난한 백성들은 돈과 바꾸기 위해 자신의 딸을 팔아 성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근처 마을로 처녀들을 수집하러 오는 역할은 야노시라는 작은 몸집의 사내가 맡았고, 바토리의 잔혹한 취미를 거든 사람은 일로너라는 추녀와 도르커라는 큰 몸집의 여자였습니다. 일로너와 도르커는 곡물 저장고로 쓰였던 성 안의 지하실로 처녀들을 데리고 가서 바토리가 보는 앞에서 처녀들에게 고문을 가했습니다. 때로는 바토리 자신이 직접 핀으로 찌르거나 칼로 베기도 했는데, 두 여인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모아 그것을 바토리에게 마시도록 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바토리는 수십 명의 처녀들을 모아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는데, 연회가 끝나면 그녀들을 모두 알몸으로 벗겨 차례차례 죽인 뒤 그 피를 모두 통 속에 모아, 옷을 벗고 그 안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는 아직 죽지 않은 처녀들의 신음을 들으며 흥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몸상태가 안 좋을 때는 직접 팔이나 가슴,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빨아마시고 그 고기를 먹었다고도 전해집니다.

 

나중에 귀족 처녀의 피가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토리는 일종의 귀족 여학교를 설립하여 그곳의 여학생들을 희생자로 삼기도 합니다.

 

바토리가 이처럼 죽인 여자의 수는 1,568명이 넘었습니다. 그녀의 일기에는 1600년부터 1610년까지만에도 모두 612명의 여성을 죽였다고 쓰여있습니다. 또한 죽이는 방법도 해마다 새롭게 고안되었음이 그녀가 체포된 후 실시된 체이테 성의 조사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알몸의 여자를 쇠꼬챙이와 칼날이 달린 새장처럼 생긴 것에 넣으면 도르래를 이용해 들어올린 후 새장에 설치한 칼날을 조여 난자당한 처녀가 피를 쏟게 만드는 기계나, 복잡한 톱니바퀴가 천천히 돌아가며 몸에서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고 짜내는 기계 등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바토리의 초상화입니다>

200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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