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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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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
배영수

인천 출생인 배영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음악 커뮤니티를 전전하다가 2006년 대중음악 전문지 [52street]의 기자가 되어 글쓰기로 밥벌이삼기 시작했다. 더불어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MKMF] 의 선정위원과 [멜론]의 음악전문 웹진 [멜론쥬스]의 제작을 맡기도 했다. 2010년부터 애향심이 발동해 인천으로 귀향해 [플랫폼], [아트인천] 등에서 음반 및 음악관련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인천의 정론매체 [인천in]의 문화부 기자로 인천의 여러 예술 공간을 취재하고 제3세계 국가의 전통 및 대중음악을 소개하는 음악감상회를 진행하고 있다. 근대 이후 인천의 음악역사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인천여관]에서 인천의 음악과 문화예술을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부둣가 라디오]의 제작 및 진행을 담당하고 있다.

  • H.O.T. 멤버들이 음악적 진일보를 꿈꾸며 발매한 정규 4집이다. 138만 장의 공식 판매고를 기록한 이 음반은 H.O.T.의 디스코그래피 중 두 번째로 많이 판매된 앨범이다. 이들은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타이틀곡 <아이야!>로 최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인기와 함께 ‘뮤지션’으로 거듭난 음반] 1996년 정규 1집 성공 이후 H.O.T.는 2집에서 152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해 전작을 뛰어넘는 상업적 성공을 보여주며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했다. 대형 기획사 SM 소속 아이돌 그룹의 위상을 과시한 이들의 행보는 탄탄대로 그 자체였다. 1998년 발매한 3집도 110만 장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지상파 인기가요 차트 1위를 휩쓸었다. 특히 이들은 여타 아이돌 그룹들과 달리 스스로 작사 · 작곡 및 편곡 등 프로듀싱에 참여하며 음악적 성장도 이뤄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멤버들이 곡을 쓰고 프로듀싱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하는 등, 이들에게 음악적 지분을...

  • 2000년 발표한 H.O.T.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다. 타이틀곡 <Outside Castle>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소속사 간 불화 등으로 그룹은 해체했지만, 전곡의 제작을 아이돌 그룹 멤버 스스로 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앨범이다. [인기의 이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매년 발표한 3장의 정규 앨범 모두 밀리언셀러로 만든 H.O.T.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라이벌로 지목됐던 젝스키스조차 음반 판매 기록에서는 이들을 능가하지 못했다. 이는 다른 인기 가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엄청난 인기의 이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미 1999년의 4집 「I yah!」에서부터 멤버들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개인별 계약 조건이 다르다는 사실을 파악한 일부 멤버들이 기획사에 반발했다는 이야기도 팬들 사이에 나돌았다. [멤버 스스로 전곡을 만든 마지막 정규 앨범] 에이치오티(H.O.T.)의 5집이자 마지막 정규...

  • 현재 엠씨더맥스로 활동하는 4인조 밴드 문차일드의 데뷔 음반이다. 고 신해철이 초기 제작에 관여했지만, 소속사의 조급함 탓에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음반이 되고 말았다. 물론 완성도를 어느 정도 포기한 대신 일부 상업적 성과를 얻기는 했다. [신해철이 제작한 아이돌 록 밴드] 문차일드는 가요 팬들이 ‘최고의 목소리’로 평가하는 이수, 그리고 그의 안양예고 동기동창 전민혁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먼저 오디션에 합격한 이수를 전민혁이 함께 데려갔고, 여기에 멤버 2명을 영입해 4인조 밴드 문차일드를 결성했다. 이수는 한때 SM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단번에 합격했을 만큼 가수의 자질이 있었다. SM은 훗날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 신화에 그를 포함시키려 했지만, 밴드 활동을 원했던 이수는 합격을 포기했다. 2000년 데뷔한 문차일드는 멤버 발탁 및 프로듀스 일부에 신해철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지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성급함’으로 결국 ‘정체성’을 잃어버린 결과]...

  • 남성 듀오 하모하모에서 멤버 수를 늘린 보이 그룹 엔알지(NRG)의 공식 데뷔 앨범이다. 지상파 가요 차트 2위까지 오르며 1990년대 한국 댄스 가요의 전형을 보여준 <할 수 있어>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또한 후속작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인기로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남성 듀오에서 보이 그룹으로 발전] ‘새롭게 빛나는 그룹(New Radiancy Group)’이라는 뜻의 약자인 NRG는 이성진과 천명훈이 듀오로 활동했던 ‘하모하모’를 전신으로 한 팀이다. 공식 데뷔는 1997년 10월이지만, 하모하모가 활동했던 1996년을 이들의 시발점으로 보기도 한다. 원래 비보이 유망주였던 천명훈은 유명 R&B 트리오 솔리드의 백댄서로도 활동하며 나름대로 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당시 소방차 출신으로 연예사업가로 변신한 김태형의 추천으로 이성진과 듀오 하모하모를 결성했다. 하모하모는 가요 차트 순위 30위권 안으로 진입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김태형은 H.O.T와 젝스키스 등...

  • 임창정이 1998년 발표한 네 번째 앨범이다. 수록곡 중 최대 히트곡은 김형석이 작곡한 애절한 발라드 <별이 되어>였다. 이 곡은 SBS 「인기가요」에서 2주간 1위에 오르며 전작의 인기를 이어갔다. 직접 안무까지 선보인 댄스곡 <늑대와 함께 춤을>도 인기를 얻었다. [애절한 발라드 넘버에 강한 임창정] 연기자가 아닌 가수로서 임창정은 1997년 3집 「Again」의 <그때 또 다시>와 <결혼해줘>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2곡 모두 KBS 「가요톱10」에서 5주 우승을 차지해 골든컵을 거머쥐면서 그는 스타덤에 올랐다. 임창정은 자기 목소리가 호소력 있는 애절한 발라드 넘버에 가장 적합함을 깨닫고, 자신의 음반에도 그 점을 십분 활용했다. 차기작인 임창정 4집은 1998년 4월 천일기획에서 CD와 카세트테이프로 동시 발매했다. 유통은 소니뮤직에서 맡았다. [전작의 인기를 이어준 발라드 <별이 되어>] 앨범에 수록한 총 9곡(MR 제외)은 애절한 느낌을...

  • 신해철, 데빈, 임형빈이 결성한 3인조 남성 프로젝트 비트겐슈타인의 유일한 정규 앨범이다. 신해철은 이 앨범에서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모습을 잠시 숨기고 이전과 다른 스타일을 보여줬다. 불안했던 당시 한국의 사회상을 잘 반영한 앨범이다. [넥스트 해체 후 소리 연구에 집중한 신해철] 생전의 신해철에게 1995년의 넥스트 3집 「The Return of N.EX.T Part 2: World」 은 일종의 ‘전환점’이었다. 이후 1997년 발표한 4집 「Lazenca: A Space Rock Opera」까지 연이어 해외 프로듀서와 협업했던 그는, 이 음반을 끝으로 영국 유학을 떠났다. 영국과 한국을 오가긴 했으나 사실상 활동이 뜸했던 1990년대 말은 스스로 “신시사이저를 스스로 제조하는 수준까지 올랐다”고 밝혔던 것처럼 ‘소리’에 더욱 천착했던 시기였다. 실제 그가 1998년부터 2000년 사이 발표한 솔로 앨범, 프로듀서 크리스 샹그리디(Chris Tsangarides)와 함께한 1999년의 ‘모노크롬...

  • ‘사물놀이의 원조’로 평가받는 김덕수의 국악 인생 40주년을 기념하는 헌정 앨범이다. 국악인과 국악이 주제가 된 음반에, 이처럼 헌정의 뜻으로 정상급 뮤지션들이 모인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김덕수의 국악 인생 40주년 기념 앨범] 남사당패 출신의 국악인 김덕수는 5살인 1957년부터 공연을 시작했다. 흔히 ‘전통 타악’으로 인식되는 사물놀이는 1978년 김덕수가 소속된 남사당패에서 연주한 것을 시발점으로 본다. 그만큼 김덕수는 현대 국악에서 유일무이한 위치에 있다. 이 앨범은 1997년 E&E MEDIA에서 CD와 카세트테이프로 동시 발매했다. 총 9곡을 수록한 이 음반은 김덕수의 국악 인생 40주년을 기념해, 평소 그를 존경해 온 국내외 서양 음악 뮤지션들이 헌정의 의미로 참여했다. 참여 뮤지션들은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버클리 음대 유학 1세대인 한상원(기타)와 정원영(건반), 한충완(피아니스트) 등이다. 또한 넥스트, DJ...

  • YG엔터테인먼트의 초기 힙합 아이콘이었던 원타임의 1998년 데뷔 음반이다. 힙합 신이 정착하지 않은 당시, 타이틀곡 <1TYM>은 SBS 「인기가요」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하는 등 각종 인기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크게 히트했고, 그 해 골든디스크까지 수상했다. [YG의 초창기 힙합 아이콘] 거대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는 초창기에 힙합 성향 뮤지션들이 많았다. 원타임은 YG의 대표적인 초창기 힙합 아이콘이다. 1998년 초 YG의 수장 양현석이 소속 연습생들을 모아 데뷔를 시도하면서 원타임의 역사는 시작됐다. 소속사 선배인 지누션이 1997년 엄정화의 피처링을 통해 완성한 <말해줘>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멤버 션은 ‘Majah Flavah’라는 이름의 의류 브랜드를 론칭했다. 이에 양현석은 연습생 7명을 모아 션의 의류 브랜드명에서 착안한 ‘M.F.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데뷔시켰다. 이것이 원타임의 모체였다. 이후 멤버 7명 중 3명이 이탈해 테디, 태빈...

  •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 고 김대환의 1990년대를 대표하는 명작 중 하나이다. 1991년 일본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이며, 강은일의 해금과 김대환의 타악기가 음악적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간 음반이다. [김대환의 데뷔 과정] 1933년 충남 태안 출생인 김대환은 어린 시절 인천의 외가로 이주해 성장기를 보냈다. 그는 외가에서 훗날 프리 재즈연주가로 성장한 이종사촌 강태환과 함께 살았다. 동산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밴드부에서 활동하며 드럼 등 타악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대환은 외숙모의 친오빠인 진보 정치가 조명암의 영향으로 경찰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1060년대부터 미8군 무대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프로 연주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70년대에 왕성한 밴드 활동을 펼치면서 신중현과 퀘션스, 자신이 리드했던 김트리오 악단 등을 거쳤다. 이후 이종사촌 강태환과 협연하며 프리...

  • 패닉의 두 번째 앨범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아낸 이 앨범은 2007년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89위에 선정되었고, 100BEAT에서 진행한 「1990년대 100대 명반」에도 선정되며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사회비판적인 ‘반골 기질’ 표출한 앨범] 패닉은 1995년 데뷔 앨범에서 <달팽이>, <아무도>, <왼손잡이> 등 특유의 스타일을 담은 대표작을 발표했다. 이듬해인 1996년 7월부터 9월까지 이적의 주도로 2집을 녹음하면서, 가사와 음악 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실험을 시작했다. 패닉 2집 「밑」은 1996년 9월 신촌뮤직에서 CD와 카세트테이프로 동시 발매했다. 앨범에 수록한 10곡 중 <UFO> 등 8곡은 이적이 작사 · 작곡 · 편곡했다. 김진표는 <벌레>와 <mama> 두 곡을 직접 작사 · 작곡했다. 2집 수록곡을 들은 팬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전작에서는 <왼손잡이> 같은 일부 곡만 반골 기질을 표출했지만, 2집에서는 거의 전 트랙에...

  • <눈물>, <Endless>, <Please> 등 록 발라드 넘버들로 잘 알려진 플라워가 1999년 발표한 데뷔 앨범이다. 전반적으로 인기 작곡가 출신의 고성진이 주도했지만, 리드 보컬 고유진의 가창력이 주목받으며 이후 전성기를 여는 데 큰 동력이 된 음반이다. [3인조 록 발라드 밴드 플라워] 플라워(Flower)는 1999년 보컬리스트 고유진(본명 고한규)을 비롯해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고성진, 베이스 김우디(본명 김선원)의 3인조 라인업으로 출발했다. 대중이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고유진의 날카롭고 비브라토 풍부한 록 성향의 보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록 발라드 밴드 플라워의 DNA는 고성진에게서 나온 것이다. <마지막 약속>, <무한지애> 등 김정민의 주요 히트곡을 비롯해, 고 최진영이 스카이(Sky)로 활약할 당시 제공한 <영원>, 1997년 배우 안재욱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주제곡 <Forever> 등을 모두 그가 작곡했다. 밴드 결성 후 이들은 곧바로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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