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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영화 소오강호와 소설 소오강호의 내용이 많이 다른가요?
wh**** 조회수 27,475 작성일2002.12.27
소설 소오강호를 읽고 잇는데....많이 다른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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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swordman)
감독 : 서극
주연 : 허관걸, 장학우, 엽동, 장민
제작년도 : 1990년
국가 : 홍콩

명나라 만력, 황궁(禁宮)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는 내승운고(內承運庫)에 자객이 침입하여, 최고의 무공이 수록된 무공비록 '규화보전(葵花寶典)'이 도난당한다. 이를 맡아오던 동파의 내시 총관은 대립되고 있던 서파에 의해 조정에 알려질까 두려워 심복 황보천호(장학우 분)를 앞세워, 근래에 사직한 황궁의 금위무사 임진남의 집을 포위하고 그와 대립한다. 이때 관군의 포위망을 뚫고 임진남을 찾은 자가 있으니, 화산파의 수제자 영호충(허관걸 분)이다. 그는 사매(원결영 분)와 함께 사부인 악불군의 명을 받고 임진남을 찾아오게 되어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한편 총관 내시는 강남 맹주를 자처하는 고수 좌냉선을 고용하여, 규화보전을 찾게 한다. 임진남의 집에 침입한 좌냉선은 그의 가족이 무참해 살해하고, 임진남 마저 목숨을 빼앗는다. 임진남은 죽기전 영호충에게, 자신의 아들 임평지에게 규화보전의 행방을 전해줄 것을 당부한다. 이번 일들을 모두 일월교의 소행으로 몰아넣은 총관은 일월교도들을 탄압한다. 한편, 화산파로 향하던 영호충은 은퇴하여 강호를 떠나려는 순풍당의 당주(우마 분)와 그의 친구인 일월교의 곡장노(임정영 분)를 만나 함께 뱃길을 가게 되면서 젊은 시절 두 사람이 함께 은퇴하면 부르겠다는 소오강호를 연주한다.
""험한 파도에 웃음을 싣고, 물결따라 덧없이 살아온 삶, 한 잔 술에 웃음을 담아, 모든 은원 깨끗이 잊고 살리라, 산천초목도 따라 웃누나, 뜬구름 같은 부귀영화 부질 없어라, 소슬 바람에 미소 지으며, 모든 근심 잊고 살리라, 우리네 인생은 아름다운 것, 욕심없이 어우러져 웃고 살리라"."
이때, 좌냉선이 영호충 일행을 추적해 와 일대 싸움이 벌어지고 그에게 큰 부상을 입은 당주와 곡장노는 '소오강호'의 악보와 악기를 영호충에게 전해주고 스스로 배에 불을 지르고 죽음을 택한다. 한편, 임평지를 죽인 황보천호는 자신이 임평지로 위장하여 영호충의 화산파에 접근하게 되고, 마침 제자들을 이끌고 임진남의 집으로 향하던 화산파 사부 악불군과 객전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이 찾는 규화보전은 체내의 기로서 큰 힘을 발휘하는 '인화대법'이라는 무예에 대해 씌어진 비법서였다. 쫓기는 몸이 된 영호충은 무림에서 우연히 강호를 떠도는 풍천양이라는 괴노인에게서 만나 죽음을 초월한 신비한 공격 검술 '독고구검'을 전수받고, 그에게서 영욕에 사로잡힌 사부를 조심하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영호충은 이어서 고산족 일월교와 만나 교주의 심복인 남봉황을 알게 된다. 화산파로 돌아온 영호충은 임평지로 가장한 황보천호에게 규화보전의 위치를 알려주나 악불군도 몰래 이를 엿듣는다. 영호충이 황보천호의 독주를 마시고 의식을 잃자 염탐을 하기 위해 잠입했던 남봉황이 그를 일월교로 옮겨간다. 처음엔 영호충이 한인이라 오해했던 미모의 교주는 그가 곡장노와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의 몸에 퍼진 독을 없애 목숨을 구한다. 이때 좌냉선이 공격해 오자 의식이 깨어난 영호충과 결전을 벌이고, 마침내 좌냉선은 남봉황이 구사하는 벌떼에 휩싸여 교주의 무서운 채찍에 목이 잘려 죽는다.
한편, 전부터 규화보전을 노리는 악불군은 황보천호와 동행하고자, 자신의 딸 사매를 그와 결혼시키겠다며 총관이 있는 임진남의 집으로 향한다. 마침내 규화보전을 둘러싸고 총관과 황보천호, 그리고 악불군과의 미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날 밤 황보천호가 숨겨놓은 규화보전을 손에 넣는 순간, 악불군이 이를 낚아채 버리나, 도중에 영호충의 소오강호 악보와 뒤바뀌게 된다. 총관에 의해 수세에 몰린 악불군은 위기를 모면하고자 제자인 영호충과 사제들에게 일월교와 결탁했다며 누명을 쒸우려 하자, 위기에 빠진 영호충에게 교주와 남봉황이 찾아와 총관의 관군과 대립한다. 긴박한 상황, 영호충에게서 몰래 규화보전을 전달받았던 사매가 영호충을 위해 규화보전을 내놓게 되고, 이에 총관과 악불군과의 일대 싸움이 벌어진다. 악불군은 총관이 워낙 고수라 상대가 되지 않아 혼자 도주를 하고, 다시 영호충 일행이 총관과 대적한다. 이때 배신에 대한 두려움에 황보천관이 쏜 총에 총관이 맞자, 이 틈을 타 영호충과 교주가 힘을 합쳐 총관을 처치한다. 하지만 비열한 황보천호는 규화보전을 손에 넣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이어 영호충 앞에 사부 악불군이 다시 나타나 규화보전에 대한 자신의 욕심을 들어내며 사제들을 공격한다. 마침내 제자와 사부 간의 일대 결투가 벌어진다. 사부보다 무예가 낮은 영호충이 수세에 몰리자, 독고구검을 구사하여 사부를 응징하고, 마침내 그를 제압하지만 사매의 간청으로 목숨을 살려준다. 말에 오른 영호충은 사매를 태우고 교주, 남봉황과 함께 화산파를 떠나 새로운 길을 떠난다.

위는 영화 소오강호이구요. 이후 동방불패에는 이연걸이 주인공으로 나오죠.
소설은 아시겠지만, 김용선생의 작품이고, 우리나라에선 '아!만리성','소오강호','동방불패'등등의 이름으로 번역된 적이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이정범님께서 가져오신, 동방불패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소오강호 책에 실린 "소오강호"의 평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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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 평론>

천하가 잘 다스려지지 않고는 자기 한 몸의 잘됨을 얻기 어렵다.
-<<소오강호(笑傲江湖)>>

김용의 무협 소설 중에서 진실하고 광활한 역사적 배경은 종종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된다. '강호(江湖)'와 '강산(江山)', '녹림(綠林)'과 '묘당(廟堂)'이 결합되고 싸움터(무예 시합이나 격투술 시합)와 전쟁터, 관장(官場)과 정장(情場)이 결합되고, 진실한 역사적 인물의 허구적인 고사와 허구적인 전기적 인물의 진실한 인성이 결합된다.
이것이 바로 '김용 소설'의 특징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김용의 15부나 되는 소설 중에서 극소수의 작품에서만 진실한 역사적 인물이나, 명확한 역사적 시대 배경, 관부(官府)의 인물이 출현하지 않는다. <<협객행(俠客行)>>이나 <<백마소서풍(白馬嘯西風)>>, <<연성결(連城訣)>> 등이 그러한데, 그 중 <<연성결>>에서는 그래도 강릉지부(江陵知府)인 능퇴사(凌退思)가 등장한다.
그 외에 <<소오강호>> 역시 그러하다. 보기에 이 책에는 진실한 역사적 인물도 없고, 명확한 시대적 배경도 없어서, 이 이야기가 대체 어느 왕조의 어느 시대의 이야기인지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책 이름이 <<소오강호>>인데다가, 책 속의 인물과 고사 역시 순수한 무림의 인물과 강호에서의 일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소설을 아주 순수한 '무협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보기에 이 책은 순수한 무협 소설 같지만, 실제로는 더욱 순수한 정치적 역사 혹은 역사적 정치적 교훈을 담고 있다. 작가가 이 소설의 <<후기>>에서 밝힌 얘기를 보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결코 의도적으로 중공의 문화혁명(文革)을 모델로 하고 있지 않고, 책 속의 인물들을 통해 중국 삼천여 년 동안에 있어 왔던 어느 정도 보편적인 현상을 그려내고자 시도했을 뿐이다. 무엇을 모델로 삼는 소설은 큰 의의가 있을 수 없다. 정치적 현상은 금새 변하곤 하는 것이다. 인성(人性)을 묘사해 내야 비교적 오랜 동안 가치를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중국이나 외국이나, 정치적 활동의 기본적인 현상이었다. 과거 몇천 년 동안 그래 왔고, 앞으로 몇천 년 역시 아마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임아행(任我行), 동방불패(東方不敗), 악불군(岳不群), 좌랭선(左冷禪) 같은 인물들은 주로 무림의 고수들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인물들이다. 임평지(林平之), 상문천(向問天), 방증대사(方證大師), 충허도인(忠虛道人), 정한사태(定閑師太), 막대선생(莫大先生), 여창해(余滄海) 등도 역시 모두 정치적 인물들이다. 이러한 가지 각색의 인물들은 어느 시대, 어느 왕조에나 모두 있었으며, 다른 나라에도 역시 있었을 것이다. 보편적 성격을 지닌 정치 활동 중의 흔한 현상을 쓰고자 했기 때문에 이 책에는 역사적 배경이 없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어느 시대에나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 <<소오강호>>가 과연 한 권의 기서(奇書)이면서 한 권의 걸작임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이 소설이 무언가를 모델로 삼는 소설(또는 암시성의 소설)이 아니라고 하지만, 소설의 창작 연대는 마침 대륙의 '문화대혁명'의 투쟁이 기세 등등하게 일어나던 시기였고, 작자는 매일 <명보(明報)>에 냉정하고 객관적이면서 격렬한 필치로 사회 평을 쓰던 시기였다.
이 때의 소설은 정치적 우언 소설이 많았다고 하니, 암시를 받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것은 누구 누구다'라든지, '이것은 어떠어떠한 사건이다'라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교훈 소설에 있어 아주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로, 이 소설은 정치적 인물과 정치적 사건을 간략화하고 개념화하고 공식화하여 쓴 소설이 아니라, 그저 광의적이면서 아주 깊은 의미를 지닌 우언(寓言)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소설 속의 정치적 인물과 그들의 행동거지는 그저 보편적인 현상이요, 보편적 인성의 필연적이면서 독특한 반영이자 표현일 뿐이다. 이것은 소설에 있어서, 특히 정치적 소설 혹은 우언 소설의 창작에 있어서 아주 곤란한 점이라 말할 수 있다.
역사와 전기, 강호의 풍파와 정치적 투쟁이라는 이 두가지 사이의 차이점은 아주 명확하며, 천양지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 두가지 사이(영원한 인성의 묘사와 특정한 환경 속의 필연적인 표현을 통해)에 견고하면서도 은폐된 다리를 놓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마 이 점이 가장 중요할 것인데, 독자는 이미 이 소설을 정치적 투쟁을 그린 우언(寓言) 소설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여전히 이것을 한 권의 다채롭고 순수하고 오락적이면서 긴장된 무협 전기 고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니면, 그 중의 '오락'적인 면을 볼 수도 있고(책 속에는 볼만한 구경거리가 많이 있으니까), 혹은 그 안에 담긴 '도리'를 볼 수도(책 속에는 볼만한 도리 역시 많으니까) 있다. 순수하게 소일거리만을 목적으로 이 책을 본다면 이 책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며, 또 한편, 엄숙한 연구적인 자세를 가지고 이 책을 본다면 이 책을 '볼만한' 것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어찌되었든 적지 않은 독자들은 아마도 이 책이 정치적 투쟁을 그린 우언 소설이면서 구경거리도 있고 의미심장하면서도 재미있고 한편으론 문장도 뛰어난 소설이라는 것을 느끼지(혹은 인정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一. 벽사 검법(劈邪劍法)과 독고구검(獨孤九劍)


우리들은 무협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무'에 대해서 쓴다는 점을 이야기한 바가 있다. 김용의 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김용 소설의 독특하면서도 정묘한 부분은 '무(武)이면서도 무(武)가 아니라는' 점에 있으며, 무술의 초식과 이름을 쓰는데 있어 오로지 순수하거나 진실된 '격투술'에 대해서 묘사할 뿐만 아니라, '기술이 예술의 경지에 오르고' 더 나아가 '예술이 도(道)의 경지에 이른' 것을 쓴다는 점이다. 무술의 초식과 이름이 김용의 붓 아래에서는 아주 신묘하고, 깊고 심오하고, 예상하기 힘들게 변화되어 버린다.
이 소설 속에서 김용은 또 두가지 고명하면서도 독특한 검법을 창조해 냈는데, 하나는 '벽사검법'이라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독고구검'이라는 것이다.
이 두가지 검법은 김용이 묘사한 '당시검법(唐詩劍法)'처럼 그저 '보기' 좋고, '듣기' 좋은 그저 공허하게 이름만 붙인 검법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며, 실제적인 신묘한 효용도 없고 진실한 '출처'를 찾을 수도 없다. 하지만 이 '벽사검법'과 '독고구검'은 아주 커다란 차이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벽사검법'은 책 속에서 아주 커다란 작용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벽사검법은 복건성(福建省) 복주성(福州城) 복위표국의 주인인 임진남(林震南)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던 검법이었다.
소설의 첫장인 <멸문(滅門)>은 바로 천서(川西) 청성파(靑城派)의 송풍관주(松風觀主) 여창해가 문도들을 이끌고 불원천리 달려와 이 복주성의 '복위표국'을 잔인하게 멸망시키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바로 이 '벽사검법' 때문이었다. 여창해 및 청성파는 복위표국 및 임진남과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고, 도리어 임진남은 교분을 두텁게 하기 위해 매번 여창해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여창해가 복위표국에 대해 이처럼 잔인한 공격을 퍼붓게 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사람은 죄가 없지만, 그 재능은 시샘을 받아 화를 입은' 것이었다.
임씨 집안에는 선조 대부터 내려오던 신묘한 '벽사검법'이 있었는데 그 조상인 임도원(林圖遠)은 이 검법 덕분에 천하를 주름잡고 무림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으며, '복위표국'을 세우고 그 '복(福)'과 '위엄(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벽사검법의 검보(劍譜)를 찾기 위해 여창해는 이처럼 악랄한 술수를 써서 복위표국의 이름을 강호에서 사라지게 하고 임씨 집안을 멸망시킨 것이다.
사람들은 분명 이 '벽사검법'이 이처럼 대단하다면 어째서 임진남, 임평지 부자의 무공이 이처럼 보잘것 없이 평범한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임평지 부자가 미처 그 정수를 다 못 배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로 임진남이 말한 바, '강호의 일은 이름이 2할을, 실력이 2할을 차지하고, 나머지 6할은 흑백 양도의 친구들의 체면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처럼 '교분'만 중시하고 '실력' 쌓는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일까?
이 가운데의 오묘한 비밀이 이 책 구조를 이루는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임진남 부자가 말하는 '벽사검법'은 바로 '겉모습은 그럴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무공이 이처럼 평범하여 여창해의 일격을 막아내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진정한 '벽사검법'은 책 전체의 줄거리 및 대다수의 주인공과 관련되어 있다! 가깝게 말하자면, 소설 속의 여창해의 공공연한 공격, 숭산파(嵩山派)의 암투, 새북명타(塞北明駝) 목고봉(木高峰)과 화산(華山) 장문 악불군이 임평지를 빼앗아 서로 제자로 삼으려고 했던 일, 소설의 주인공인 영호충의 '누명' 등등은 모두 이 '벽사검법'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마치 강호에서 흔히 있는 '비급 탈취'나 '보물 탈취'인 것처럼 보인다. 한 권의 무공 비급을 얻기 위해 무림 전체, 흑백 양도(黑白兩徒), 사도(邪徒)의 군웅들이 모두 그것을 얻고자 온갖 계략을 다 쓰며 싸우고, 피비린내 나는 일대 사건들이 벌어지게 되는...
이러한 고사는 일반적인 무협 소설 속에 흔히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김용의 이 <<소오강호>>는 절대로 그런 소설과 다르다. 만일 이것이 그저 '무림의 비급을 탈취하는' 이야기였다면 그야말로 '겉모습은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먼 거리에서 말하자면, 화산파의 기(氣), 검(劍) 두 종파의 상호간의 의견 차이로 자기 편끼리 서로 싸우는 상황이라든가, 일월교(日月敎)와 오악검파(五嶽劍派)간의 '정사(正邪)의 다툼'으로 인한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는 모두 이 '벽사검법'에서 기인한 것이다. 다만 이 '벽사검법'은 원래 '벽사검법'이라고 불렸던 것이 아니라 <규화보전(葵花寶典)>이라고 불렸으며, 무학 중의 지고무상(至高無尙)한 비급으로 중시되던 것이었을 뿐이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일월교의 교주 동방불패(東方不敗)는 이 <규화보전(벽사검법)>을 연마했기 때문에 무공의 천하 제일인이 되었으며, 또 바로 이 무공을 연마했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임진남의 아들인 임평지는 진정한 벽사검법을 연마했기 때문에 부모와 집안의 원수를 갚게 된다. 좌랭선은 진짜를 연마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악파(五嶽派)'와 병파(幷派)의 장문인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일 때 악불군에게 패하고 말았으며, 화산 장문인이자 임평지의 사부이면서 악부인 악불군은 이 벽사검법을 연마했기 때문에 뜻하지 않게 '오악파'의 총 장문인이 될 수 있었다. 최후로, 벽사 검법을 연마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임종을 맞을 수 없었다.
따라서 <<소오강호>>의 전체의 고사와 줄거리 및 구조상으로 말하면, 모두 이 벽사검법으로 묶여 있으며, 이 벽사검법과 무관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영호충마저도 이로 인해 누명을 쓰게 되었고, 임아행은 이로 인해 살아날 수 있었으며 일월교 교주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 벽사검법 혹은 <규화보전>은 가히 '범상하지 않은 물건'이라 할 수 있으며 명백한 '사문(邪門)의 무공'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아주 대단하고 대적할 상대가 없기는 하지만 음독한 사문(邪門)으로 아주 음산한 것이다. 반면에 바로 이것이 음산하고 신비하면서 음독한 사문(邪門)이었기 때문에 이 무공이 아주 대단하고 대적할 상대가 없게 될 수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오묘한 비밀은 바로 그것이 몇백 년 전의 환관이 만든 것이라는 데 있다. 그것을 연공하는 '비결'의 첫번째 관문은 바로 '신공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칼을 들고 거세해야' 하는 데 있었으니, 우선 자신을 음(陰)도 아니고 양(陽)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괴물로 만들어야 이 사문(邪門)의 무공을 연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무공은 명백히 '비인간' 혹은 '비인성'을 지닌 자만이 연마할 수 있었다.
화산파(華山派) 기종(氣宗)의 시조인 악소(嶽肅)와 화산파 검종(劍宗)의 시조인 채자봉(蔡子峰) 두 사람은 원래 사이 좋은 사형제였는데 복건(福建) 보전의 소림사 하원에서 몰래 <규화보전>을 두 사람이 각각 반씩 훔쳐 본 뒤에는 기(氣), 검(劍)의 양 종파로 갈라져 서로 끊임없이 싸우는 관계로 변하고 말았다.
소림사 하원의 주지 스님인 홍엽(紅葉) 선사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자 도원(渡元) 선사를 보내 악소와 채자봉 두 사람이 이 무공을 연마하지 못하도록 했으나, 하필이면 이 도원 선사가 두 사람이 얻은 '무공'을 전부 얻게 되어 임도원(바로 복위 표국의 창시자이자 임진남의 조부)이 되게 된다.
또한 마교(魔敎:日月敎는 화산파의 악소, 채자봉 두 사람이 <규화보전>을 얻었다는 것을 알고 십장로를 보내 화산을 공격하여 오악검파의 기종과 검종을 모두 이겨 마침내 <규화보전>의 나머지 비급을 얻어 결국 후에 일월교 교주가 된 동방불패가 무공의 천하 제일인이 되게 된다.
우리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벽사검법(규화보전)이 이 <<소오강호>>의 관건이 되는 까닭은 그것이 소설의 줄거리와 고사 서술의 중심 원인인 이유라는 점에 있지 않으며, 또 이 무공이 '비인성'적인 사문의 무공이라는 점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원래 궁중의 태감이 만들어 낸 무공이며, 또한 강호의 패주가 되어 '천추만재, 일통강호(千秋萬裁,一統江湖)'의 권력을 탈취하고자 도모하는 정치 투쟁의 도구가 되었다는 점에 있다.
공공연히 공격하거아 남몰래 암투의 목적은 이 무공을 완성하여 강호의 패권을 잡자는 데 있었고, '칼을 들어 거세하는' 목적 역시 정권을 잡아 무림의 패주가 되자는 데 있었다. 따라서 이 벽사검법 혹은 <규화보전>이 진정으로 사문의 악독한 무공이라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수히 피를 흘려 강호에 무한한 분쟁을 일으킨 데 있는 것도 아니고 칼을 들어 스스로 거세하여 인성을 변화시킨 데 있는 것도 아니며, 바로 궁중에서 정권 탈취의 도구로 쓰였다는 데 있다. 다름아닌 '정치 투쟁'의 도화선이자 상징이 된 것에 있다.
벽사검법과 상대되는 무공이 바로 풍청양이 영호충에게 전수해 준 '독고검법' 혹은 '독고구검'이다. 이것은 '신비한 용은 머리만 보이고 꼬리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매우 신묘한 검법으로, 강호에 비록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있어도 직접 그 검술을 본 사람은 적었으며, 그것을 직접 전수받은 자는 더더욱 없었다. 이것은 신묘하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검술이다.
김용은 풍청양이 검술을 전수하는 장면에서, 심오한 '무학'의 도리를 이야기 하는데, 그 안에는 정심(精深)한 최고의 철학과 '선기(禪機:선종의 화상이 설법을 할 때 언행이나 사물로 교의를 암시해주는 비결)'를 포함하고 있다.


풍청양이 말했다.
"오악검파 가운데는 많은 멍청이들이 있다. 그들은 사부가 전수해 준 검초를 익히기만 하면 자연히 고수가 되는 줄 알고 있다. 흥! 당시 삼백 수를 숙독하게 된다면 시를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겠지. 그리고 남의 싯구를 숙독하게 된다면 몇 수의 엉터리 시를 지을 수 있겠지. 하지만 자기 스스로 창조해 낼 수 없다면 어떻게 대 시인이 될 수 있겠느냐?"
풍청양이 말을 이었다.
"살아 있는 것을 배우고 살아 있는 것을 펼치는 것은 제 일보에 지나지 않는다. 손을 쓰게 되었을 때 초식이 없어야만 진정으로 고수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너는 각 초식이 한 덩어리가 되면 적을 깨뜨릴 수 있게 되리라고 말했는데 그 한 마디는 반 쯤밖에 못 맞춘 것이다. 한 덩어리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초식이 없어야 한다. 너의 검초가 아무리 한 덩어리가 되도록 펼쳐도 추호의 빈 틈이 있기만 하면 적은 그 틈을 노리고 찔러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근본적으로 초식이 없을 때 적이 어떻게 너의 초식을 깨뜨릴 수 있겠느냐?"
영호충의 가슴이 쿵쿵 뛰놀기 시작했고 손과 심장이 화끈 달아 올랐다.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근본적으로 초식이 없는데, 어떻게 깨뜨릴 수 있는가? 근본적으로 초식이 없는데, 어떻게 깨뜨릴 수 있는가?'
갑자기 그의 눈 앞에 한평생 보지도,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천지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풍청양이 말했다.
"너는 너무 겸손해 할 필요 없다. 물론 독고대협(獨孤大俠)은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검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깨달을 오(悟) 자에 있으며 결코 억지로 기억한다고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이 구검의 뜻을 완전히 통달하게 되어 마음대로 펼친다면 모든 변화를 깡그리 잊어도 상관 없다. 더군다나 적을 상대하게 되었을 때는 깨끗하고 철저하게 잊어 검법의 구속을 받지 않아야 한다. 너는 자질이 무척 뛰어나 구검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인재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현재 세상에 대단한 영웅이 있다고는... 허허허, 아마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후 너는 열심히 무공을 익히도록 해라. 나는 이제 가 봐야겠다."


영호충은 이 독고구패(獨孤求敗)가 만들고, 풍청양이 전수한 '독고구검'을 배운 결과, 과연 천하 무적이 될 수 있었다. 다만 소설 속에서 악영산(嶽靈珊) 등은 이 강호에서 본 사람이 거의 없는 신묘한 검법인 이 '독고구검'을 '벽사검법'이라고 생각하여 영호충을 수도 없이 고민하게 만들었으며, 그에게 누명을 씌우고(그는 '벽사검법'을 훔친 도둑으로 오인되었으나 풍청양이 이 검법을 전수받은 일에 대해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기 때문에 영호충은 변명하고 싶어도 할 방도가 없어서 그저 누명을 받으며 고통을 당하는 수밖에 없었음) 압력을 가했지만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이 '독고구검'은 마치 영호충이 전문적으로 익히도록 하기 위해 존재했던 무공 같았다. 풍청양이 이 검법을 그에게 전수한 까닭은 그가 바로 '자질이 뛰어나, 바로 이 검법을 연마하기에 적합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으며, 더더욱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의 '인품'이 이 검법과 딱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풍청양은 두 눈을 형형히 뜨고 영호충을 노려보며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참된 군자(君子)를 상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영호충이 말했다.
"설사 그가 참된 군자라 해도 만약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저로서도 그의 손에 죽음을 당할 수 없는 노릇이죠. 부득이할 때는 몰염치하고 비열한 수단을 조금 써 보아야 되겠지요."
풍청양이 크게 기뻐하며 낭랑히 말했다.
"좋다, 좋아! 네가 그같이 말하는 것을 보면 착한 척하는 위선자는 아니로구나. 사내 대장부는 행함에 있어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 구름이 떠 가고 물이 흐르듯이 마음대로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무림의 규칙이나 문파의 계율이라는 것은 모두 개방구 같은 소리다."
영호충은 빙그레 웃었다. 풍청양의 이 말은 그의 마음에 꼭 드는 말이라 듣기에 여간 통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 사부로부터 목숨을 버릴지언정 절대로 문규를 어겨서는 안 되고 화산파의 명성을 더럽혀서도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기에 사숙조의 그 같은 말에 공공연히 맞장구를 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착한 척하는 위선자 운운하는 말은 바로 사부 군자검의 외호를 빗대어 하는 말 같아서 그저 빙그레 웃었을 뿐 그 말에 찬동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풍청양이 그의 사람됨을 보고 검술을 전수해 준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이 '독고구검'의 신묘한 점은 심신이 합일되고, 사람과 검이 합일되고, 살아 있는 것을 배우고, 살아 있는 것을 펼치며, 구름이 떠 가고 물이 흐르듯이 마음대로 행해야 하는 데 있다. 이것은 일종의 '검의 도리(道)'이며 동시에 또한 '사람의 도리'인 것이다. 바로 일종의 '무학'이자 인생 철학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이 검법이 실제로 '은사(隱士) 검법'이라는 점에 있다. 이 검법을 창시한 사람은 독고구패(獨孤救敗)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패배를 추구(救敗)'했으나 그러지 못했으니 얼마나 '고독(獨孤)'했겠는가! 더욱이 그가 '패배를 추구'했다는 것은, 그의 검술의 고명한 점을 설명해 줄 뿐만 아니라 그의 검술과 무학에 대한 초탈함과 애정, 치정(癡情)을 설명해 준다. 다른 사람들이 검을 배울 때는 모두 승리를 추구하지만, 그에 반해 패배를 추구하는 자는 반드시 정말로 그 도를 사랑한다고 볼 수 있다.
부언하여, 이 독구구패는 김용의 또 다른 소설인 <<신조협려(神雕俠侶)>>에 이미 출현한 바가 있는데 양과(楊過)는 그가 은거하여 수련한 곳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사용한 검도 보았고, 또 독고구패가 남긴 독수리의 도움으로 천하 제일의 일신상의 무공을 연공하게 된다.
양과는 후에 부인인 소용녀(小龍女)와 함께 은사(隱士)가 된다. 또한 <<소오강호>>에서 이 검법을 전수한 풍청양 역시 실망감 속에 의기소침하고 활기가 없는 은사였다. 영호충에게 검술을 완전히 전수한 후 결국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자조차 버리고 작별을 하게 된다. 또한 영호충에게 자신이 검술을 전수한 사실을 절대로 누구에게든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그 이후로는 과연 소식이 묘연해졌으니 정말 용이 머리만 보이고 꼬리가 보이지 않는 형상과 같다고 할 것이다.
만일 벽사검법을 '사문의 검법'이요, '내시의 검법'이요, '궁중의 검법'이라고 한다면 '독구구검'은 '은사의 검법'이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비교한다면 이 두 검법의 상징적 의의를 아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二. 강호를 비웃음(笑傲江湖)와 강호를 통일함(一統江湖)


이 소설의 책제명은 <소오강호>라는 옛날 곡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그 안의 거문고 곡조는 진나라(晋) 때의 사람 계강(稽康)의 명곡 <광릉산(廣陵散)>을 편곡하여 만든 것이다. <광릉산>, 일명 <소오강호곡(笑傲江湖曲)>은 아주 고아하고 뛰어난 '은사의 곡조'이다.
진나라 때의 계강은 '문사(文辭)가 장려하고, 노장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했으며 항상 의협심이 강했다'고 전해진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위나라(魏) 종실(宗室)과 친인척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사마씨에게 의탁하기를 원치 않았었다. 사실상 그는 용모가 아주 준수하고 뛰어났으며, 박학다식한 데다가, 거문고를 잘 탔고 그림에 능했으며 노장 사상에 심취하여 '명예와 교리를 초월하여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자유로움'을 추구했으며, 정치면에 있어서는 악을 싫어하는 의지가 강했고, 자신의 재주를 과시하곤 했으며, 사람됨이 구름이 떠가고 물이 흐르듯이 자유롭게 제 멋대로 행하곤 했기 때문에 당연히 조정에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정치적 활동에 적합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은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아주 유명한 '은사'이며, 개성의 해방을 추구한 유명한 인문주의자였다! 하지만 사마소(司馬昭)에게 참소당했기 때문에 끝까지 은사 노릇을 할 수가 없었다.
사마소는 명령을 내려 그를 죽이라고 했고, 계강은 죽음에 임해, 거문고로 곡조를 읊었으니 그것이 바로 <광릉산>이며, 그 때 계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광릉산>은 사라지고 말겠구나!"
뜻밖에 음악에 미칠 정도로 빠져 있던 일월교의 장로 곡양(曲洋)은 계강의 '이제 <광릉산>은 사라지고 말겠구나!'라는 이 말에 불만을 느껴 서한(西漢)과 동한(東漢) 시대의 황제들과 대신들의 무덤을 스물 아홉개나 파낸 끝에, 마침내 채옹(蔡邕)의 무덤 속에서 <광릉산>의 악보를 발견해 내고 만다. 그리고는 그 악보를 거문고와 퉁소의 합주에 어울리는 <소오강호곡>으로 편곡하였고, 이로써 형산파(衡山派)의 유정풍(劉正風)과 생사를 함께 하는 교우 관계를 맺게 된다.
소설에서 형산파의 대협객인 유정풍은 오랫동안 곡양 장로와 <소오강호곡>을 연습하고자 했으나, 곡양이 일월교의 장로인데다가, 오악검파 등의 명문 정파에서는 일월교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치부했던 때문에 형산파에서는 곡양과 교우 관계를 맺기가 어려웠으므로 '금분세수(金盆洗手:은퇴)'를 하고 무림계를 떠나 음악 예술에만 전념하며 곡양 장로와 오랜 기간 우정을 나눌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은퇴는 뜻밖에 '오악맹주'인 좌랭선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어 '금분세수'의 아름다운 꿈은 결국 집안이 망하고 사람들이 살해되는 참극으로 변하고 만다. 또한 유정풍과 곡양은 함께 자살해 버리나, 다행히 이 <소오강호곡>은 전수받을 사람을 찾아달라고 하는 유언과 함께 영호충에게 전해지게 된다.
영호충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거문고를 탈 줄 알고 퉁소를 불 줄 아는 일월교의 공주 임영영(任盈盈)을 만나게 되고, 이로 인해 '푹 빠져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경지에 몰입하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 일 장에서는 뜻밖에 막다른 골목에서 길이 생겨 영호충과 임영영이 다행스럽게도 결혼할 수 있게 되고, 결혼 연회에서 이 <소오강호곡>을 합주하는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이 <소오강호곡:은사의 곡>은 이 소설에 은은히 흐르는 '주 선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부 선율'은 바로 일월교 교도들이 교주를 뵐 때 외치는 '천추만재, 일통강호'라는 구호일 것이다.
따라서, <소오강호>의 선율과 그 내용은 바로 '소오강호곡'과 '일통강호'라는 구호가 함께 짜여져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이 '벽사검법'과 '독고구검'의 실마리를 줄거리에서 찾는 것처럼 이 '소오강호곡'과 '일통강호'의 실마리 역시 <소오강호>라는 이 소설의 내용과 주제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얼핏 보면, <<소오강호>>라는 이 소설의 줄거리는 아주 복잡한 것 같다. 소설 속에는 적어도 아래의 몇가지 방면의 모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 '오악검파'로 대표되는 '정파(正派) 무림'과 일월교로 대표되는 '사교(邪敎)' 간의 모순이다. 간단히 말해서 '정사(正邪)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오악검파' 내부의 '병파(幷派)'와 '비병파(非幷派)' 간의 모순으로, 특히 숭산파 장문인 좌랭선과 화산파 장문인 악불군 간의 모순이다. 간단히 말해서 '병파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세째, 악불군으로 대표되는 화산 기종(氣宗)과 봉불평(封不平) 등의 사람으로 대표되는 화산 검종(劍宗)간의 모순으로, 간단히 말하면 '기종과 검종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네째, 임평지와 청성파 송풍관주 여창해 간의 원수 관계이다.
다섯째, 임아행, 상문천으로 대표되는 '노교주(老敎主)'와 동방불패, 양련정(楊連亭)으로 대표되는 '실권파(當權派:현재 교주)'간의 일월교 내부의 분쟁으로, 간단히 '권력 싸움'으로 말할 수 있다.
여섯째, 영호충(주인공)은 강호의 온갖 모순과 소용돌이의 중심에 위치하여 저도 모르는 새 이미 그 안에 말려 들어가 빠져 나오고 싶어도 빠져 나올 수 없게 되어 버린 데다가, 악영산, 임영영, 비구니 의림(儀琳)이라는 세 명의 소녀와 애정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영호충이라는 이 한 사람의 몸에 '소오강호'와 '일통강호'의 싸움이 가장 집중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으며, 간단히 말하자면 '진퇴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이러한 줄거리의 단서는 거의 서로 상관이 없는 데다가, 또 아주 복잡 다단하게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주된 실마리는 바로 '나아가서 취하려는' 쪽과 '물러가서 은거하려는' 양 쪽의 대립(대비)에 있다. 즉, '소오강호'와 '일통강호'의 대립과 모순이 주된 줄기라 하겠다.
앞에서 우리는 이런 모순들이 서로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모두 태감이 만들어낸 무학의 비급인 <규화보전>, 즉 '벽사검보'와 전부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문파와 모든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자각적으로 혹은 비자각적으로, 원해서 혹은 원치 않음에도, 의도적으로 혹은 비의도적으로, 또한 무고하게 '벽사검보'의 분쟁 속에 말려 들어가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앞에서 우리는 또 이 벽사검보는 '사문의 검법'이자 '궁중의 검술'이며 '궁중의 사술'이어서, 이것을 얻은 자나 이것을 얻으려고 하는 자는 모두 상서롭지 못한 기운에 감염되고 불행한 운을 만나게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여전히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것을 얻으려고만 해서, 이것이 '정치 투쟁의 도구이자 상징'이 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시비와 선악, 행복과 불행, 상서로움과 상서롭지 못함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어떤 물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 것이다. '사(邪)'와 '정(正)'이라는 것은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지 물건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벽사검법'은 '사문의 검술'이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지만 사실은 그것 모두가 다 '사람이 자초한 일'인 것이다.
실제로, 정말로 음독한 사문이며, 무섭고 상서롭지 못한 것은 무슨 <규화보전> 혹은 '벽사검보'가 아니라, 강호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일통강호'의 망상과 야심일 것이다!
정사의 싸움, 병파의 싸움, 기종과 검종의 싸움, 일월교의 내분과 반역, 임평지의 원한과 복수, 영호충의 모든 기구한 운명과 불행... 이러한 모든 것들은 전부 '일통강호'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가!
우선, 우리들은 일월교 내의 '권력 투쟁과 모반'에 얽힌 싸움에 대해 살펴 보아야 한다. 임아행이 서호(西湖)의 강물 속에 수십 년 동안 갇혀 있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동정할만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가 동방불패의 자리를 빼앗은 것은 악으로 악을 바꾸고, 포악함으로 포악함을 바꾼 것일 뿐이었다. 물론 동방불패가 악덕무도하기는 하지만, 임아행 역시 결코 선한 사람이 아니었으며 사악함으로 말할 때 동방불패보다 지나쳤으면 지나쳤지 결코 못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동방불패는 혼자 <규화보전>을 연마한 뒤 음양이 뒤섞인 괴물로 변해 일월교의 모든 권력을 양련정에게 물려주었다. 정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행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좋은 점이 한가지는 있었으니 바로 일월교인들에게 외치게 한 '천추만재, 일통강호'의 구호가 그에게는 그저 축사(祝辭)였을 뿐, 정말 '일통강호'의 망상에 빠져 무림에 피비린내가 가득한 참화를 만들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임아행은 달랐다. 그는 정권을 잡은 초기에는 교인들이 외치는 '천추만재, 일통강호'의 구호를 정말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점차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감화되어 정말로 음모를 꾸며 '일통강호'를 위한 행동을 개시하게 되었다! 그로 인한 참화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파는 확실히 '사악'하다. 일월교가 무림에 끼친 참화로 인해 강호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공포에 떨면서 한편으론 멸시했으니, 확실히 선(善)이 아니라 악(惡)이었으며, 정(正)이 아니라 사(邪)였다.
하지만, 이 '일통강호'라는 야심으로 말하자면, 동방불패는 교인들에게 구호를 외치도록 했었고, 임아행은 그 야심을 실행에 옮기게 되어, 악(惡)에다 사(邪)를 더한 셈이니 말 그대로 '전혀 숨길 것도 꺼릴 것도 없는 진짜 악인'임에 틀림없기는 했지만, '정파 무림' 중의 '숨길만 하고 꺼릴만 한' 위군자(僞君子)와 비교해 보면 그 위군자들보다는 오히려 더 나은 점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일월교의 '꺼릴 것 없이 드러내는 야심'은 사람들에게 미리 방어할 마음과 대항할 뜻을 갖도록 해주고 한편인 무림인들과 편을 짤 수 있게 했었다. 하지만 '정파 무림의 야심가'들은 이에 비해 훨씬 더 무서운 점이 많았다.
숭산파의 대 장문인이면서 오악검맹의 맹주이기도 한 좌랭선 같은 사람은 유정풍이 은퇴할 때 패권의 야심을 이미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때에는 '숭산파'가 아직 '정의'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었고, 유정풍은 확실히 '친구를 잘못 사귀었으나' 그래도 '죽어도 후회하지 않고' 죽어갔기 때문에, 유정풍의 집안의 멸망이 모든 독자들의 마음속에 비탄에 찬 눈물을 흘리고 비분강개함을 느끼게 했겠지만, 좌랭선을 비난할 뭔가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에 좌랭선은 사람을 보내 벽사검법을 빼앗아 오도록 시켰고, 또 사람을 보내어 항산파(恒山派)를 공격하여 몰살했으며, 또 노덕낙(勞德諾)을 화산파에서 몇년간 첩자로 심어 놓았으며, 태산파의 장문인 사숙을 매수하여 그들의 '자리를 넘기는 데' 동의하도록 하는 등등의 일을 저질렀으니, 그의 행동은 무지막지할 뿐만 아니라 극도로 흉악하고 잔인무도하며 인륜을 저버린 패악무도하다고 할 만했다.
일월교의 악행과 비교해 볼 때 좌랭선의 행동은 방법이 다를 뿐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조금도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지나치면 지나쳤지 모자라지 않았다.
좌랭선이 비록 악덕하고 패권을 차지하려는 헛된 기도를 하여 악행을 많이 저지르고 같은 무림인들에게 화를 입히기는 했지만, 화산파의 장문인인 악불군과 비교해 볼 때는 오히려 한 수 처진다 하겠다.
좌랭선의 행동은 비록 음독하고 사악했지만, 그런 행위의 목적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고, 결국 모든 진상이 낱낱이 드러나는, 음모(陰謀)가 아닌 '양모(陽謀)'라 할 수 있지만, '군자검(君子劍)' 악불군은 조금의 내색도 없이 전술 전략을 세우는 '음모(陰謀) 야심가'이자 '위군자'였으며, 대단한 사기성과 선동성, 선정성을 지니고 있어서 악불군과 비교해 보면, 좌랭선은 그보다 한 수 뒤떨어지는 셈이었다.
결국 좌랭선은 악불군에게 지고 말았고, 강호에서 경험도 오래되고 견식도 높은 소림사의 방증대사 및 무당산의 충허도인 같은 사람들까지 모두 그에게 속아 넘어가 그를 '정의의 상징'이니 '무림의 행복'이니 하는 말로 칭찬하고 말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태산파의 내분, 화산파의 기종과 검종의 싸움, 봉불평등이 악불군에게 싸움을 건 사건 등에는 그 목적이나 의도상 무슨 '정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으며 '빛나는 문파'는 더더욱 없었고, '기'와 '검'의 높고 낮음을 가리기 위한 것도 전혀 아니었다. 까놓고 말해서, 그것은 모두 정권과 장문인의 자리를 위한 싸움이었을 뿐이다.
임아행, 좌랭선, 악불군의 '일통강호'를 위한 '웅대한 뜻'과 비교해 볼 때 그런 사건들은 '소인배들의 짓거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행동 방식 역시 한 수 아래였으므로 말할 거리도 못된다.
태산파의 '옥(玉)'자 돌림의 장로와 화산 검종의 봉불평 등의 사람들이 자기네 파의 장문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한 것은 그저 '좌맹주(좌랭선)'의 힘을 믿고 덤볐을 뿐이었다. 그들이 각 파의 장문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패주(覇主)에 의지하는 '꼬마 황제'에 불과했을 것이다.
여창해의 목적은 임아행, 좌랭선, 악불군 등의 사람과 동일했다. 그 역시 '일통강호'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에게는 수만명의 교도가 없었고, 의지할 만한 '오악연리(五嶽連理)'도 없었으며, 다른 사람에 비해 무공이나 견식도 뒤떨어졌기 때문에 '벽사검보'를 빼앗으려고 했던 것이다.
여창해는 '악례(惡例)를 만든 사람'이었지만, '음모를 꾸며 계획적으로' 공공연한 악행을 저질렀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잔인하고 흉악하며 무림에 화를 끼치는 악인이라고 욕은 욕대로 먹으면서도 벽사검보를 얻지도 못했으니, 이 일 한가지만 보아도 여창해는 그리 대단한 인물이 못 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야심과 음흉함, 악랄함으로 말하자면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강호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평화로운 세월이 있을 수 없었다. 비록 '권력에 대한 야심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말할 수는 없고, 기껏해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거나, 혹은 '일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겠지만,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집권자라면 누구나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 나오는 강호의 모든 세계는 하나의 권력 탈취와 자리 싸움이라는 정치적 투쟁의 축소판이다.
그러므로 '일통강호'를 꿈꾸지 않는 각 파의 장문인들조차 모두 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강호 맹주의 지위 다툼이라는 투쟁 속에 연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형산파(衡山派)의 장문인 '소상야우(瀟湘夜雨)' 막대선생이나 항산파의 장문인 정한사태, 소림사의 방장인 방증대사, 무당파의 장문인인 충허도장 같은 '강호의 인물들'까지도 이 권력 투쟁과 자리 싸움이라는 정치적 투쟁에 자신도 모르는 새 참가하고 있으며, 역시 진정한 '강호의 인물'이 아닌 '정치적 인물'로 변화되고 만다.
그들은 그들에게 '일통강호'의 야심이 없었기 때문에 '일통강호'를 반대했다. 하지만 '소오강호적인' 은거할 마음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들 역시 '일통강호'에 참가한 참여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한 문파의 장문인의 자리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이 권위와 이 권위가 대표하는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이런 정치 투쟁 속에 연루될 수밖에 없었고, 시시각각으로 온갖 복잡한 국면에 대응할 준비를 갖춰야만 했으며, 정치 투쟁의 온갖 계략과 소질을 닦아 둘 수밖에 없었다.
항산파의 여 장문인인 정한사태가 '아주 꼼꼼하게' 각 문파의 무공과, 하류에 속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무공을 하나 하나 연구해서 기억해 둔 것 역시 정치 투쟁의 소질이었으니 바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 백승'의 전략을 이용한 것이었다.
또 그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장문(掌門)의 막중한 임무를 불제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명성이 그리 좋지 않던 영호충에게 넘겨준, 이러한 비범한 행동은 상식에 어긋나고 이치로는 설명하기 힘든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오묘한 정치 투쟁의 책략을 쓴 것이었다. 소위 '부득이하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임시 변통책이었다.
마찬가지로, 막대선생이 머리는 숨기고 꼬리만 내놓은 격으로, 실의에 빠지고 남루한 모양을 하고 다녔던 것은 한편으론 성격이 원래 그러했던 탓도 있었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투쟁의 필요와 고려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그는 숭산파의 좌랭선과 싸울 힘이 없었고, 악불군과 싸울 힘도 없었으며,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만회할 힘도 없었음에도 멸망되거나 합병(幷派)되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에 그저 머리는 숨기고 꼬리만 내놓은 채 때를 기다리면서 계략을 세우고, 구세주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방증대사와 충허도장, 두 사람은 무림의 진정한 '정도(正道)'의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인 동시에 또한 그들 각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영호충에 대한 심사숙고와 도움, 안배(安排) 역시 어느것 하나 정치 투쟁의 고려와 안배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당당한 무당산(武當山) 장문인이라는 신분을 지닌 인물이 늙고 남루한 노인으로 분장하여 영호충이라는 강호의 신예의 무공을 관찰하고자 했겠는가? 또 어찌 정식으로 영호충이 버림받고 이도 저도 아닌 항산파의 장문이 되었을 때 방증대사와 함께 달려와 '축하'를 했겠는가.
악불군이 화산파의 장문인이 되었을 때 이 두 사람은 그저 사람을 보내 예를 다하고 '축전을 보냈을' 뿐, 직접 찾아가지는 않았었다. 이러한 것 모두가 정치 투쟁의 필요에서 한 일일 따름이었다.
우리들은 영호충이 원래 정치적 인물이 아니며 실권을 장악하지도 못했고, 또 권력을 장악하려는 야심도 없었으며, '일통강호'의 야심과 구호를 철두철미하게 진심으로 싫어하는 인물임을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이 기묘하고 복잡한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어가, 저도 모르는 새에 이 소용돌이 속을 떠다니며 빠져나오고자 애썼지만, 최후에는 뜻밖에도 이 투쟁의 중심이자 관건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가 어느 쪽으로 가든, 반드시 성공을 거두곤 했다. 여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의 무공이 기이하고 뛰어났기 때문이다. 독고구검은 무엇에 비할 바 없이 신묘하여, 충허도장과 맞먹을 수 있는, 아니 그 보다도 오히려 약간 더 뛰어날 정도였다. 또한 그는 우연히 아주 웅혼한 일신상의 기이한 내공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정사(正邪) 어느 쪽과 비교해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둘째로는 그의 '사회적 관계가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화산파 '기종'의 수제자이면서, 또 '검종'의 대종사 풍청양의 의발 제자였기 때문에 '검종'의 고수 봉불평과 싸울 때 사람들로 하여금 '검종은 기공이 낫고, 기종(영호충)은 검술이 뛰어나다'는 탄식을 자아내게 할 정도였다.
그는 화산파라는 '명문 정파'의 제자이면서, 또 임아행의 '흡성대법(吸星大法)'을 연공했고, 강호의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 진다는 임아행과 상문천 등의 사람들과 서로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두터운 교분을 유지했다.
그는 화산파 정종(正宗)의 제자로, 일월신교, 일명 '마교'에 가입하기를 원치 않던 사람이었다. 그는 임영영과 애정 관계가 얽혀 있었고 일월교도들과 삼산 오악의 각 영웅 호걸들의 추대를 받았고, 항산파를 구해준 은인으로 항산 장문인인 정한 사태의 임종 때 장문의 지위를 의탁받았다. 맑스주의에서의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각 방면의 총 합계'라는 이론처럼, 확실히 무림 각 파의 세력과 기운과 흥망성쇠와 관련된 힘이 영호충이라는 한 사람에게 존재하고 있었다.
세째로, 가장 중요한 점은 아마도 비록 그의 무공이 높았음에도 인품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화산파의 악불군에게 버림받은 사실을 무림의 각 파의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음에도 소림사의 방증대사는 그에게 '역근경(易筋經)'을 전수하여 그로 하여금 문하(門下)에서 첫째의 자리를 도로 찾을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으며, 임아행은 더더욱 극력 그를 일월교로 끌어들여 그에게 높은 지위를 내려 주었고, 항산 장문은 죽기 직전 장문의 막중한 임무를 그에게 의탁하였다는 점에 있다.
영호충은 정권이니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으며 '일통강호'의 뜻은 더더욱 없었고, 반대로 이러한 것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악감정과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악불군은 그를 제명하고 제거하여 자기 야심과 음모의 희생양으로 만든 것을 남몰래 후회했던 것이다. 당연히 악불군의 '남모르는 후회'란 절대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후회가 아니라, 영호충의 몸에 숨겨져 있던 능력을 알게 되어 후회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영호충은 가장 세력 있는 무림의 패주가 되기를 기도하던 악불군과 임아행 두 사람이 얻고자 하는 대상이 되었으며, 또 항산의 정한 사태, 형산의 막대 장문 등 오악검파 중 '병파'를 원하지 않으면서 어쩔수 없이 좌랭선에게 병합된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대상이자 희망이 되었으며, 또한 소림사 방증대사와 무당산 충허도장 같은 '대인물'들의 '호의'를 받고 그들이 관계를 맺기 위해 애쓰는 대상이 되었다.
영호충은 대단한 '성공'을 얻을 수 있는 인연과 기회가 아주 많이 있었다.
그는 일월교의 부교주이기도 했고 오악검파의 '총장문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자(前者)에 있어서 그는 일월교의 '일통강호'라는 구호와 임아행의 야심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데다가 항산파 장문인이 그에게 의탁한 막중한 임무를 배반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악검파의 총장문인 자리는 내심으로 사랑하던 악영산에게 양보하게 되었으니 간접적으로는 악불군에게 양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일월교의 정신에 대해 매우 엄한 듯한 태도를 보였고, 후에는 악영산에게 가짜로 패했으니, '정도(正道)'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자신의 사사로운 정을 더 중시하여 무림 세계의 대세와 기운은 전연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방증대사와 충허도장이 예전에 그에 대해 명백히 분석했던 내용이다.
그는 이러한 사람이었다. 그는 '독고구검'이라는 이 '은사의 검법'을 전수받은 사람인 동시에 또한 <소오강호곡>이라는 '은사의 곡조'를 전수받은 사람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내심과 본성이 모두 이러한 소오강호(강호를 비웃는)적인 기질과 아주 잘 맞았다는 점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일통강호'의 대업에 아무런 흥미도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혐오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영호충이 이와 같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로 그가 강호의 '정사(正邪)'의 구분이 실제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숭산파가 항산파를 멸망시킨 수단들은 일월교보다 더 잔인하고 잔혹하다면 모를까,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으며, 각 파의 내부 분쟁으로 말하자면, 기종과 검종의 분쟁이든, 오파(五派)와 병파(幷派)의 싸움이든, 일월교의 권력 쟁탈이든, 태산파의 장문인 쟁탈전이든, 모두 하나같이 똑같았으며 무슨 '정의(正義)'니 '사악(邪惡)'이니 하는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영호충에게(독자들에게도) 뭐라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둘째로, 아마도 강호 도처에 음모가 깔려 있고 계략 투성이이며, 서로 속고 속이고, 권력과 지위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일들이 영호충에게는 무섭고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각 문파의 장문인들, 예를 들면 오악파 중의 항산 장문인인 정한사태는 아주 자상하고 평화스러웠고, 태산 장문인인 천문도장은 위엄있고 중후했으며, 숭산파 장문인은 아주 음흉하고 악랄했고, 화산의 악불군은 신비했고, 형산 장문인인 막대선생은 겉모습은 길가의 소인처럼 왜소하고 평범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들 지혜가 뛰어나고 계략에 능한 인물들이었으며, 영호충으로 하여금 '나 영호충은 쓸모없는 사람으로 그들에 비해 너무 뒤떨어진다'는 탄식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소림사의 방증대사와 무당산의 충허도장이 승복과 도포 속에 숨기고 있는 '정치가'적인 재략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한 여창해, 동방불패, 좌랭선, 악불군 같은 강호의 패권을 기도하는 인물들의 무섭고 두려운 점에 대해서도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창해는 잔인하고 흉악하며, 좌랭선은 방자하고 패도포악하며, 동방불패는 신비하고 음산하며, 임아행은 악행을 저지르는데 있어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으며, 악불군은 거짓되고 교활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영호충으로서는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었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소오강호적이고 유유자적하고, 조금의 간계도 없는 자유분방함 같은 모든 성격과는 전혀 합치될 수 없는 것이었고, 적응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소설 속의 거의 모든 대인물들의 말과 행동거지는 계략을 품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런 것들이 영호충으로 하여금 그런 것들에 대해 '존경하기는 하지만 멀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영호충이 악영산을 사랑했고, 임영영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모두 남녀의 사랑에 불과하며, 대사(大事)와는 관계가 없고, 행복과 불행, 성사됨의 여부는 그저 개인의 '애정선(線)'에 달려 있는 일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악불군은 위급할 때 뜻밖에도 검초 속에 장차 그에게 혼인을 허락할 뜻을 비추었고, 임아행은 소림사의 대전 안에서 군웅들의 면전에서 영호충이 자신의 사위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으니, 이 장면들이 그저 혼인을 허락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두 사람은 전부 자신들의 딸의 애정과 결혼을 자신들의 '대업'과 '대세'를 이루기 위해 이용한 것일 뿐이었다. 즉, 그들의 허락은 전부가 다 '정치적 혼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영호충으로 하여금 극도의 허망함과 극도의 실망을 느끼게 했을 뿐 아니라 공포감까지 느끼게 했다.
'소오강호'를 원했으나 이룰 수 없었고, '일통강호'를 원하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그 안에 말려들었으니 이것은 정말 '사람이 강호에 있으면 제 몸도 제 것이 아님(人在江湖,身不由己)'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하지 않는가!
영호충의 운명은 어찌 이토록 비참한지!


三. 강호에 있으면 몸도 제 것이 아니다.(人在江湖,身不由己)


중국의 유학자들은 개인의 인생에 대해 아주 우렁찬 이상적인 구호를 제기했으니 바로 '통하면 천하를 다스리고, 궁하면 자기 한 몸이 잘 되기를 꾀하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천 백 년 동안 이것에 아주 익숙해져 왔으며, 또 그를 위해 힘쓰곤 했다. 이것은 분명 이상적인 인생의 목표라 하겠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이상적인' 목표이기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심지어는 현실적인 정치 활동이나 투쟁과 서로 상반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현실적인 정치 활동과 투쟁 속에서는 종종 '통해도 천하를 다스릴 수 없고, 궁하면 자기 한 몸의 잘되는 것 조차 꾀하기 어려운' 식이 되고, 더 나아가면 '천하를 다스리지 않으면 자기 한 몸의 잘됨을 얻기 어려운' 식이 되는 것이다.
소설 <<소오강호>>는 '사람이 강호에 있으면 제 몸도 자기 것이 아니'라는 이 점을 충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천하를 다스리고 자기 한 몸의 잘됨을 꾀하는' 것은 모두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는 말장난이거나 혹은 자아도취에 빠진 아름다운 꿈에 불과할 뿐이다.
이 <<소오강호>> 속에서, 정권을 잡으려고 정치 투쟁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비록 '기검의 구분'이 있고 '병파와 비병파의 구분'이 있고 심지어 '정사의 구분'까지 있지만, 실제로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봉불평은 악불군보다 나을 게 없고, 악불군은 좌랭선보다 '군자'다울 게 없으며, 좌랭선은 동방불패나 임아행같은 '사마외도'보다 '정의'롭거나 '정파(正派)'다운 점도 없다.
'정의' 혹은 '천하를 다스림'이라는 것은 그저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들'의 말이요, 구호요,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는 체면에 불과할 뿐, 그들의 목적은 사실 전부 권력 다툼이라는 '천추만재, 일통강호'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권력 쟁탈을 위해 모든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였고, 인간성의 더럽고 비열한 부분을 남김없이 드러내어 사람들을 공포에 떨도록 하였다. '실권파'이든 '반역파'이든 '개혁파'이든 그들의 구호와 그들의 실제적인 수단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들의 목적과 최초의 지향점이 비록 좋은 것이었다 해도 실제적인 투쟁 속에서 점점 오염되고 더럽혀졌다.
소설 속의 임아행의 경우를 일례로 들어 보자. 그가 권력을 빼앗기고 철장 속에 넣어져 서호의 강물 속에서 고초를 겪었던 점은 동정받을 만하다.
동방불패라는 실권파로 말하자면, 그는 '권력을 빼앗은 사람'이자 '반역파'였다.
동방불패가 저지른 온갖 악행, 제멋대로의 행동, 연극같은 온갖 언행,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구호와 의식에 대해 임아행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으며 우습고 슬프다는 생각도 했었으니, 그는 '개혁파'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아주 빠르게 동방불패의 의식에 익숙해졌으며, 실권을 잡자 '개혁'은 끝나고 말았다. '일통강호'를 위한 행동도 동방불패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뒤떨어지지는 않았다.
좌랭선과 악불군은 '정파'와 '정의'의 대표로 '사파'와 대립하면서, '천하의 백성들'과 무림인들의 희망처럼 보였으나, 그들이 저지른 일들은 사람들을 공포에 젖게 했고, 어느 것 하나 정의롭고 정직한 '정파의 사람'의 '이상(理想)적인' 행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오직 음모와 함정을 꾸며 잔인하고 흉악한 방법으로 자기의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해 비열하고 천박한 행동을 저질렀으니, 동방불패나 임아행 등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막대선생, 정한사태, 방증대사, 충허도장 같은 정인 군자(正人君子)들은 비록 대악 무도하지는 않았지만, 실제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역시 '정권에 종속적'이었으며, 종종 '도의'를 생각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무슨 일이든 했고,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곤 했다. '통하면 천하를 다스린다'는 '이상'은 철저하게 깨지고 사라져버린 셈이다!
마찬가지로, '궁하면 자기 한 몸의 잘됨을 꾀한다'는 것 역시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복주 '복위표국'의 주인인 임진남이 바로 좋은 예가 된다. 강호에서 임진남은 '자신의 분수에 만족하는' 표국의 주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강호의 일은 이름이 2할을, 실력이 2할을 차지하고, 나머지 6할은 흑백 양도의 친구들의 체면에 의존해야 한다. 생각해 보아라. 북위표국의 표사들이 10개 성(省)을 다니는데 만약 한번 다녀올 때마다 싸움이 난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다치겠느냐? 설사 매번 이긴다 해도 흔히 말하길 '적을 천명 죽이면, 자기 편도 팔백은 다친다'고 하질 않느냐. 표사가 만약 불행하게 다치면 우리가 그 가족을 도와줘야 하고, 거둬들인 표은은 쓸 수도 없으니 우리 집안에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그러니까 말이다. 우리들이 이 표국업을 하는데 있어서 첫째로 중시해야 할 점은 사람들의 얼굴을 익히고 사귀어 두는데 있다. 이 '교분'이라는 두 글자는 진짜 칼이나 창을 쓰는 실력보다도 더욱 중요하단다."


나아가, 책 속에서는 더욱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임진남은 다시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이면서 말했다.
"이 아버지의 무예는 너의 증조부보다는 뒤떨어지고, 또 너의 할아버지에게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표국을 경영하는 일은 내가 너의 증조부님이나 할아버님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복건(福建)에서 남쪽으로는 광동(廣東)까지, 북쪽으로는 절강(浙江), 강소(江蘇)에 이르기까지, 이 네 성의 기업은 너의 증조부께서 이룩하신 것이다. 산동(山東), 하북(河北), 양호(兩湖), 강서(江西)와 광서(廣西)의 여섯 성은 내가 이룩한 것이다. 거기에는 비결이 있는데, 까놓고 말하자면, '친구는 많이 사귀고 원한은 적게 맺는다'는 것이다. 복위(福威)라는 이름에서 '복' 자가 위에 있고, '위'자가 아래에 있는 것은 복기가 위풍보다 더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복기(福氣)라는 것은 '친구는 많이 사귀고 원한은 적게 맺는다'는 비결에서 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위엄을 놓고 본다면, '위복(威福)'이라고 고치면 위엄조차 복이 될지도 모르지, 하하하! 하하하!"


임진남의 이러한 사고 방식은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 한 몸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첫 부분에서, 바로 그가 이 말을 할 때, 이미 큰 화가 닥쳐오고 있었고, 결국 멸문(滅門)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앞에서 말한 바대로 바로 '사람은 죄가 없지만, 그 재능은 시샘을 받아 화를 입는' 것이다.
임진남은 무슨 벽사검법이니 하는 것을 연마한 적이 없었고, 그저 '친구를 많이 사귀고 원한은 적게 맺는' 이런 방침으로 가정을 보호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강호에는 줄곧 법도가 없었고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했기 때문에 임진남은 비급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연마하지 않은 탓에 어쩔 수 없이 '자기 한 몸이 잘 되기를' 바라기조차 어렵게 되었고, 반대로 가정과 표국 모두가 멸망당하고 말았다.
임평지라는 이 소표국주는 비록 덕행을 쌓은 바도 없었고, '천하를 다스릴 만한' 장점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무슨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우연히 약한 자를 도와주고 곤란한 사람을 도와준 적도 있었다. 원래 '선조의 음덕'에 의거해 자기 한 몸이 잘 되기에는 충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무정하고 잔인한 여창해가 집안을 멸망시켰기 때문에 이로 인해 강호의 끝없는 복수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어가고 만다.
그는 원래 '일통강호'니 뭐니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일통강호'를 꾀하는 무리에 이용당해 계속 그 사람들의 도구로 사용된다. 우선 목고봉이 그랬고, 그 다음으로는 악불군이 그랬으며, 좌랭선도 그랬다.
그들은 그에게 마치 호의가 있는 듯, 은혜를 배푸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각기 계략이 있어서 나온 행동에 불과했다. 따라서 복수하여 원한을 갚아야 하는 부담을 지고 사람들에게 동정받을 만한 이 임평지라는 소년 공자 역시 점점 음독하고 잔인하게 변해 갔으며 어느새 새로운 '군자검'이자 '위군자'인 악불군처럼 되어 가고 있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에게 진심을 보이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던 악영산은 도리어 그의 손에 죽고 만다! 그의 복수는 원래 동정받을 만한 일이었으나, 이 '복수의 신'이 실제로 이미 '복수의 악마'로, 괴물로, 이성을 상실한 미친 마두(魔頭)로 변하고 만 것이었다.
임진남과 임평지 부자의 인생 역정은 아마도 대표성을 지니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형산파의 유정풍이 예술적 자유를 추구하고, 막역하고 진심어린 우정을 중시하여 금분세수하고 무림에서 물러나고자 한 것은 어떠한가.
이것은 원래 누구에게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림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정도(正道)'에서 허락받지 못해, 이로 인해 결국 집안이 망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항주 서호의 고산매장(孤山梅莊)의 '매장사우(梅莊四友)'인 황종공(黃鍾公), 흑백자(黑白子), 독필옹(禿筆翁), 단청생(丹靑生) 네 사람은 각기 거문고, 바둑, 서책, 그림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이 네 사람의 이름과 이들이 각자 사랑하는 사물은 대단한 상징성을 지님) 성명을 감추고 거문고와 바둑과 서책과 그림의 재미만을 만끽하고자 했으나, 권력 투쟁(정치)의 어떤 곳에서도 허락받을 수가 없어, 그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죽음을 맞고 만다. 소설 속에 매장사우의 첫째인 황종공이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을 살펴 보자.


황종공은 몸을 돌려 벽에 기대 서서 말했다.
"우리 네 형제가 일월신교(日月神敎)에 들어간 것은 강호에서 의로움을 행하고 좋은 일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임교주의 성격이 포악하고 사리사욕만 채워 우리 네 형제는 벌써부터 물러나가고 싶었습니다. 동방 교주가 교주에 오른 다음 간신을 옆에 두고, 교 중의 원로들을 모두 제거해 버려 우리 네 사람은 너무나 낙담하고 실망하여 이런 임무를 자청한 것입니다. 이런 임무를 자청한 것은, 첫째로는 흑목애(黑木崖)에서 멀리 떨어지면 사람들과 다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고, 두번째로는 이 서호의 한가(閑家)에 머물면서 글과 서예를 즐기고자 함이었습니다. 십이 년 동안 이런 풍류를 즐길 만큼 즐겼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 때에는 근심이 많고 즐거움이 원래 적은 게 당연한 이치이지요."
여기까지 말하고는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천천히 쓰러졌다.


황종공은 자살했다. 이 말은 '궁하면 자기 한 몸이 잘 되는 것 조차 꾀하기 어렵다'는 말과 '통해도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는 말을 잘 드러낸다 하겠다.
동시에 강호에서 권력을 다투는 정치적 투쟁의 더러운 내막과 은사가 되고자 하나 뜻대로 할 수 없는 고충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탄식을 폭로하고 있기도 하다!
임진남, 임평지, 유정풍, 매장사우 등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 한 몸의 잘됨을 꾀했으나' 뜻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로 '사람이 강호에 있으면 제 몸도 제 것이 아니'라는 비극의 주인공 들이다.
역사상 계강 등의 인물들의 비극과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으며, 권력 투쟁의 근본적 성질과 그 대단한 면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의 동방불패, 임아행, 좌랭선, 악불군, 여창해는 물론 천문도인, 정한사태, 막대선생, 방증대사, 충허도장 등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또한 '사람이 강호에 있으면 제 몸도 제 것이 아니'라는 비극적 인물들이다.
작가가 이 소설의 후기에서 '정치와 권력에 열중한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권력욕에 구속받게 되고 자기 몸도 자기 것이 아니게 되어 자신의 양심에 위배되는 행동을 수도 없이 저지르게 되니 정말 불쌍한 일'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라. 좌랭선, 악불군, 동방불패, 임아행 같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권력욕의 노예로, 이 때문에 남을 해하고 자신도 해하여 결국 좋지 않은 종말을 맞지 않았는가.
소설 속에서 이러한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결말을 맞은 자가 없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불의를 많이 행하면 반드시 자멸하고 만다'는 오래 된 이상주의의 관념의 산물이라 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인물들의 비극적인 성질은 확실히 책에 쓰여 있는대로 '사람이 강호에 있으면 제 몸도 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권력 쟁탈이라는 정치적 투쟁의 희생이라 할 수도 있다.
일단 이러한 정치 투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면 '제 몸의 잘됨만을 꾀하고자 해도' 이룰 수 없고, '천하를 다스리는 일'도 생각할 틈도 없이, 오직 용감하게 앞으로만 나가면서 '이기고자 경쟁하는' 수밖에 없게 되어,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을 매장하게 되고, 자기 자신도 매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막대선생의 <소상야우곡>이 이처럼 쓸쓸하고 애상적으로 들리는 것은, 한편으론 '경계가 높지 못해 세속의 기운을 떨치지 못한' 탓에 '오로지 애상(哀想)'만을 노래하지 '슬프나 상하지 않는(哀而不傷)' 예술적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강호의 권력 쟁탈이라든가, 제 몸이 제 것이 아닌 이러한 비극적 생애에 대한 깊은 관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악곡은 사실 <<소오강호>>의 주제곡으로도 삼을 수 있을만 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소설 <<소오강호>>는 철두철미한 대비극이다. 정(正)이든 사(邪)든, '일통강호'이든 '소오강호'이든, 모두가 비극적 결말을 맞고 있다.
이 소설은 정치, 특히 중국 정치의 대비극에 대한 심각한 우언이다. 그것의 심각한 면은 바로 정치 체제의 비극과 인성 속에 내재한 권력욕의 비극이라는 양면을 함께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체제 속에서 인성은 극도로 왜곡되고, 인성 속의 더러운 부분이 극도로 팽창되어 결국 '사람이 강호에 있으면 제 몸도 제 것이 아니게' 되고 마는 것이다. 천하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자기 한 몸의 잘됨을 얻기도 어려운 것이다!

200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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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
시민
인체건강상식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일단 옛 소설이니 만큼 출판사마다 약간씩 틀린 면도 없지않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긴 소설들을 몇시간 내의 영화로 만든다는것은 여러가지가
빠질 수 있겠지요. 거기에 덧 붙여 어느 출판사의 줄거리를 소재로 썻는지
그거에 따라 내용이 약간씩 변하게 되는 것이죠.

뭐 결과는 비슷비슷하지만 어느정도의 차이가 나는것은 자기가 아는 선에서
비스하게 맞춰서 보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네요.

200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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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많이 다름니다

일반적으로 비됴 대여점에 보면

무협시리즈가있어여 (제가 좋아하죠 ㅋㅋㅋ)

김용원작 무협시리즈를(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소오강호 등등) 보면 각색한부분이 없지않아 있지만

거의 원작을 살려냈다고 볼수있어여

편수는 대부분15~20편 정도입니다

물론 비됴하나엔 1시간반짜리이고요

시간당으로 계산해봐도 2시간짜리 영화한편이랑은

엄청난 차이가 있겠죠...

소오강호나 후속편 동방불패(동방불패2제외) 같은경우에는

원작 일부분의 스토리에다가 살을 덧붙여서 만든거에여

제생각엔 소오강호와 속편 동방불패를 섞어놓으면

거의 원작 소오강호를 닮지않을까...

<쓸대없는말>답변이 너무부실해서.....

영화 동방불패만본 많은 사람들이 원작에서도 영호충이랑

동방불패랑 사랑에 빠지는줄 아는데여 ㅡ.ㅡ

당치도 않습니다 차라리 영호충이 동방불패가

거세를 해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고 놀리는??부분이있죠..ㅋㅋ

아~ 김용선생님 만세~~ 고려원이여 부활하라 영웅문을 서점에서 팔라~~!!!

200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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