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들아 제가 동생 때문에 찾을게 좀 있는데요,,
그런데 검색창에는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러는데 수원화성의 상업적, 군사적 의미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오늘 까지 꼭요 내공은 +10더 드릴께요...
답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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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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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화성사업소 올해 관광객수 전망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의 관광객이 매년 늘어 올 한해에만 100만명을 넘을 전망이다.
수원시 화성사업소는 화성을 찾은 관광객이 지난 2003년 64만805명(내국인 55만492.외국인 9만313명)에서 지난해 69만6천302명(내국인 54만5천110.외국인 15만1천192)으로 9% 늘었다고 20일 밝혔다.
올들어 4월말 현재 관광객은 33만137명(내국인 24만2천832.외국인 8만7305명)으로, 매년 가을에 관광객이 집중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수원시는 지난 1996년부터 2018년까지 총 1조3천163억원을 투입, 5.74㎞ 둘레의 화성 성곽내 40여만평을 200여년전의 정조시대 모습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며, 공사 시작 9년이 지난 요즘 성내 일부 시설이 옛모습을 드러내는 등 볼거리가 많아져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행궁의 경우 지난 1999∼2003년 395억원을 들여 1단계 복원공사를 끝냈으며, 화서문 일대 공원 3천여평도 지난해 말까지 모두 정비했다.
또 군사들의 훈련장이었던 연무대는 2003년까지, 창룡문은 2004년까지 각각 옛모습을 되찾았으며, 인근 불량주택 등을 모두 철거해 공원으로 조성했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대장금' 촬영지인 화성행궁(華城行宮) 인근에서 어정(御井)을 발굴, 우물안의 퇴적물을 퍼내고 물을 받아본 결과 식수적합 판정을 받아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200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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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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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보니깐 거이다저랑 똑같이했는데 잘될지 저도모름
자 이젠 시~~~~~~~~작!!!!!!!!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다.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하였으나 전란으로 소멸되고 현재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수원화성은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 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咆)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4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수원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성곽의 전돌, 건조물의 기와 등이 독특한 방법으로 제작되어 있어 현재의 기술로 이를 재현하기 어려워 보수시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계속 연구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성벽은 외측만 쌓아올리고 내측은 자연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성곽을 만들었으며, 또한 수원화성은 철학적 논쟁 대신에 백성의 현실생활속에서 학문의 실천과제를 찾으려고 노력한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벽돌과 돌의 교축, 현안·누조의 고안, 거중기의 발명, 목재와 벽돌의 조화를 이룬 축성방법 등은 동양성곽 축성술의 결정체로서 희대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대학자들이 충분한 연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하여 축성하였기 때문에 그 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끝~~~~~~~~~~~~
이건 거이다 이렇게햇음 자세한건문화재정보센터라고치삼그러면나옴 책에서본건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에대한 효심으로 개혁을위해 국력을 총동원해 수원이라는 신도시를
건설하고화성행궁을만들고화성을쌓았다
끝~~~~~~~~~~~
수원화성의장점1):수원화성 성곽을보면 아주견고하고
그 시대의 과학이 얼마나 발달햇는지 알수있다
아!!!!!그러고보니깐 저도 수원화성을숙제로하다가
이렇게 알고 시간이남아서 햇음
날짜10월16일10시37분 마침~~~~~~~~~~~~~~~~~~~~~~~~~~~~~~~~~~~~~~~~~~~~~~~~~~~~~~~~~~~~~~~~~~~~~~~~~~~~~~~~~~~~~~~~~~~
200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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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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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화성사업소 올해 관광객수 전망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의 관광객이 매년 늘어 올 한해에만 100만명을 넘을 전망이다.
수원시 화성사업소는 화성을 찾은 관광객이 지난 2003년 64만805명(내국인 55만492.외국인 9만313명)에서 지난해 69만6천302명(내국인 54만5천110.외국인 15만1천192)으로 9% 늘었다고 20일 밝혔다...;;
올들어 4월말 현재 관광객은 33만137명(내국인 24만2천832.외국인 8만7305명)으로, 매년 가을에 관광객이 집중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수원시는 지난 1996년부터 2018년까지 총 1조3천163억원을 투입, 5.74㎞ 둘레의 화성 성곽내 40여만평을 200여년전의 정조시대 모습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며, 공사 시작 9년이 지난 요즘 성내 일부 시설이 옛모습을 드러내는 등 볼거리가 많아져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아, 배아포)
행궁의 경우 지난 1999∼2003년 395억원을 들여 1단계 복원공사를 끝냈으며, 화서문 일대 공원 3천여평도 지난해 말까지 모두 정비했다....;;;
또 군사들의 훈련장이었던 연무대는 2003년까지, 창룡문은 2004년까지 각각 옛모습을 되찾았으며, 인근 불량주택 등을 모두 철거해 공원으로 조성했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대장금' 촬영지인 화성행궁(華城行宮) 인근에서 어정(御井)을 발굴, 우물안의 퇴적물을 퍼내고 물을 받아본 결과 식수적합 판정을 받아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200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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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월 21일 사적 제3호로 지정되었다. 둘레 5,744m, 길이 5,520m, 높이 4.9m~6.2m이며, 면적은 18만 8048㎡이다. 수원성은 단순히 토축(土築)된 읍성(邑城)이었으나, 조선 정조 때 성곽을 새로이 축조함으로써 이후로는 화성(華城)이라 하였다. 성내에 어목헌지(禦牧軒池)·관청전지(官廳前池)·문루전지(門樓前池)·객사후지(客舍後池) 등의 못이 있었다.
화성이라 할 때는 그 안에 장안문(長安門)·팔달문(八達門)·화홍문(華虹門)·장악당(長樂堂), 북동(北東)·북서포루(北西砲樓), 봉수당(奉壽堂)·낙남헌(洛南軒)·서장대(西將臺)·방화수유정(訪花隨柳亭)·강무당(講武堂)·북옹성(北甕城)·북포루(北鋪樓)·남암문(南暗門)·적대(敵臺)·남옹성(南甕城)·만석거(萬石渠)·남장대(南將臺)·영화정(迎華亭)·창룡문(蒼龍門)·남공심돈(南空心墩)·화서문(華西門)·남수문(南水門)·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북암문(北暗門)·동북노대(東北弩臺)·서포루(西砲樓) 등을 갖추게 되었다.
정약용(丁若鏞)의 성설(城說)을 설계지침으로 하고, 채제공(蔡濟恭)을 중심으로 조심태(趙心泰) 등의 진력으로 이룬, 뛰어난 과학적인 구조물이다. 돌과 벽돌을 혼용한 과감한 방법, 거중기(擧重機) 등의 기계를 크게 활용하고 용재(用材)를 규격화한 점, 화포를 주무기로 하는 공용화기 사용의 방어구조 등은 다른 성곽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200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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