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연대표 만드는거 알려주세요...ㅜ3ㅜ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간단하게요.
아 글고 어떤 형식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도 알려주세요;;;;;
내공은 적지만 10입니다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ㅎ 그럼 제주도의 역사를 알려드릴게여!
제주도의 역사
제주도 역사의 기원은 석기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시대 사람들은 동굴이나 바위 그늘 주거지에서 생활하였으며, 유물로는 타제석기, 골각기등이 발견되고 있다.이후 청동기,철기시대의 유물,유적으로 고인돌, 마제석기, 토기, 옹관묘 등도 도내 전역에 분포되고 있어 제주도 역사의 기원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제주의 옛명칭은 도이, 동영주, 섭라, 탐모라, 탁라 등으로 불리어 왔다.이들 명칭중 '동영주'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섬나라' 라는 뜻이다. 제주도의 개벽신화인 3성신화에 의하면 태고에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라고하는 삼신인이 한라산 북쪽 모흥혈(현재의 삼성혈) 이라는 땅 속에서 솟아나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며살고 있었다. 이들 삼신인들은 '벽랑국' 에서 오곡의 씨앗과, 송아지, 망아지등을 갖고 목함을 타고 제주도 동쪽해상으로 들어온 삼공주를 맞아 혼례를 올렸다. 이때부터 이들은 오곡의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소와 말을 기르며 살기 시작했다.그후 '고을나'의 15대 후손 3형제 (후, 청, 계)가 당시 한국의 고대왕조의 하나인 '신라'(B.C 57~A.D 935)에 입조하여 '탐라'(제주도의 옛명칭) 라는 국호를 갖게 되었고, 또 이때부터 '탐라'는 '신라'를 섬기게 되었다.기록에 의하면 이 탐라국은 고구려, 백제 및 신라로 분열된 삼국시대에는 이들 나라들과 독자적으로 혹은 그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외교관계를 맺어왔다 .
이러한 관계는 그후 고려 시대에도 계속되면서 탐라국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의 맥을 이어왔다.1105년에는 고려의 행정구역인 탐라군으로 바뀌었으나, 왕자의 지위는 그대로 존속되어 실질적인 탐라의 통치자 역활을 하였다고 하네요.
다음은 주요문화 유적지
1.삼성혈
종 목 사적 제134호
면 적 33,833㎡
지 정 일 1964.06.10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이도동 1313
시 대 시대미상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씨·양씨·부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3개의 구멍을 말한다.
3시조들은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사냥해 먹고 살다가, 다섯 곡식의 씨와 송아지·망아지를 가지고 온 벽랑국의 세 공주와 각각 결혼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구멍은 품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하나만 바다와 통하고 나머지는 흔적만 남아있다.
조선 중종 21년(1526)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단과 비석을 세우고, 주위에 울타리를 쌓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2.제주목관아지
종 목 사적 제380호
면 적 22,391㎡
지 정 일 1993.03.31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삼도2동 43-40외
시 대 조선시대
관아란 벼슬을 가진 사람들이 일을 보던 건물로서 제주목 관아터는 제주의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지였다.
발굴조사 결과 탐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관아의 중요한 시설이었던 동헌·내아 건물터 등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하였다. 이로써 제주목 관아터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의 중심지 구실을 한 중요한 곳임이 밝혀졌다. 관아터 남서쪽에는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조선 세종 30년(1448)에 세운 관덕정(보물 제322호)이 있다.
3.고산리 선사유적
종 목 사적 제412호
면 적 99,121㎡
지 정 일 1998.12.23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3628번지
시 대 석기시대
수월봉 앞 해안단구 대지에 넓게 형성되어 있는 신석기시대 전기의 선사유적이다. 신석기시대는 원시농경과 목축을 기반으로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인류문화 발달사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시기이다.
발굴 결과 나온 유물로는 석기 99,000여 점, 토기조각 1,000여 점이 있는데, 특히 원시형 적갈색 섬유질 토기조각은 독특한 토기형태로 고산리식 토기라고 불린다.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유물 조합을 통해 후기 구석기 말엽의 수렵채집 집단이 석기 전통을 계승하며, 초보적인 형태의 토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4.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종 목 사적 제396호
면 적 1,135,476㎡
지 정 일 1997.04.18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1126-1외
시 대 고려시대
고려 원종 14년(1273) 김통정 장군과 삼별초 대원들이 여몽연합군과 마지막까지 싸운 곳이다.
진도 싸움에서 패한 삼별초는 원종 12년(1271) 제주도에 들어와 안팎 2중으로 된 성을 쌓았는데 안쪽의 성은 성벽의 안팎을 수직에 가깝게 돌로 쌓았으며, 바깥성은 언덕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쌓았다.
이 성은 해발 약 190∼215m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고성천이 있고 서쪽으로는 소앵천이 있다.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으며 동쪽은 완만하고 서쪽에는 하천이 있어 성을 쌓기에 적합한 지형이다. 주변에는 대부분 경작지, 목초지 들판이 있고 남쪽과 북쪽에는 논이 있었다.
당시에 쌓았던 토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돌쩌귀, 기와, 자기, 연못터 등 많은 유적이 발견되었다. 오늘날에는 유적 정화사업을 벌여 순의비, 순의문, 항몽유적기록화 7폭, 관리사무소를 두고 역사교육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5.삼양동 선사유적
종 목 사적 제416호
면 적 14129.8㎡
지 정 일 1999.11.16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삼양1동 1660-5외
시 대 선사시대
제주시 삼양동 일대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던 당시에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이다.
1997년 4월부터 1999년 7월에 걸쳐 제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한 결과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집터 236곳을 비롯하여 돌을 쌓아 만든 담장, 쓰레기를 버리던 폐기장, 마을의 외곽을 두르고 있던 도랑 자리가 있는 큰 규모의 마을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집터 안에서는 구멍띠토기, 덧띠무늬토기(점토대토기), 적갈색항아리 따위의 그릇 종류와 돌도끼·대패·갈돌·숯돌 등 돌로 만든 도구종류와 철제도끼, 손칼, 동검, 칼자루끝장식(검파두식), 콩, 보리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됨에 따라 탐라국이 형성되던 시기의 제주도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적이다.
6.추사유배지
종 목 사적 제487호
면 적 1499㎡
지 정 일 2007.10.10
소 재 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66-1번지 일원
시 대 조선시대
서귀포시 대정읍성 동문자리 안쪽에 자리잡은 추사거적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유배생활을 하던 곳이다.
김정희는 영조의 사위였던 김한신의 증손으로, 조선 순조 19년(181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대사성·이조참판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러다 조선 헌종 6년(1840) 55세 되던 해에 동지부사로 임명되어 중국행을 앞두고 안동김씨 세력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유배 초기에 포도청의 부장인 송계순의 집에 머물다가 몇 년 뒤 현재의 적거지로 지정된 강도순의 집으로 이사하였다. 이 집은 1948년 제주도 4·3사건 때 불타버리고 빈 터만 남았다가 1984년 강도순 증손의 고증에 따라 다시 지은 것이다.
김정희는 이 곳에 머물면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완당세한도>(국보 제180호)를 비롯한 많은 서화를 그렸으며, 제주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는 등 많은 공적을 남겼다.
추사적거지는 추사 김정희선생이 제주에 남긴 유배 문학의 커다란 문화적 가치 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금석학과 유학, 서학의 의미는 역사적·학술적으로 크게 평가되고 있다.
7.오현단
종 목 제주도 기념물 제1호
지 정 일 1971.08.26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이도1동 1421-3
시 대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이곳 제주도에 유배되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의 교학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5현)을 기리고 있는 제단으로, 이들의 위패를 모시던 귤림서원의 옛 터에 마련되어 있다.
5현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 선생, 중종 29년(1534)에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규암 송인수선생, 선조 34년(16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 다섯 분이다.
고종 29년(1892) 제주사람 김의정이 중심이 되어 비를 세우고 제단을 쌓아놓았는데, 원래는 선조 11년(1578) 임진이 목사로 있을 때, 판관 조인준이 가락천 동쪽에 충암 김정을 모시기 위한 충암묘를 지은 것이 그 시초이다. 현종 6년(1665) 판관 최진남이 이 묘를 장수당 남쪽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뒤, 숙종 8년(1682) 예조정랑 안건지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귤림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여 김정 선생·송인수 선생·김상헌 선생·정온 선생 등 네 분의 위패를 모시도록 하였다. 숙종 21년(1695) 송시열 선생도 함께 모시면서 5현을 배향하게 되었으나,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 서원이 헐리게 되어, 그 터에 이 제단을 설치하게 되었다.
단내에 있는 5현의 자취로는 철종 7년(1856) 송시열 선생의 글씨로 하여 판관 홍경섭이 바위에 새긴 ‘증주벽립’이라는 글씨와, 김정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가 남아있다.
8.제주성지
종 목 제주도 기념물 제3호
지 정 일 1971.08.26
소 재 지 제주 제주시 이도1동 1437-6외 3필
시 대 탐라국시대
제주성은 언제 쌓았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탐라국 수도 부근의 성곽으로 오래 전에 쌓은 것이라 전해진다.
이 성은 제주의 많은 화산암을 이용해서 고려 숙종 때 둘레 4700척, 높이 11척으로 확장하여 새롭게 정비하였다. 그후 조선 중종 7년(1512)에 둘레를 5486척으로 확장하고 방어시설을 갖추었다. 성안에 샘이 없어서 겪었던 급수의 어려움을 해결하기도 했다.
명종 10년(1555) 을묘왜변 때는 왜적이 침입하여 성을 포위하고 공격했으나, 이를 물리치는데 성공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성벽을 5척 높여 쌓고 방어시설을 갖추기도 하였다.
현재는 성벽이나 건물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의 축성방식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9.대정성지
종 목 제주도 기념물 제12호
지 정 일 1971.08.26
소 재 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인성리,안성리
시 대 조선시대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조선 태종 16년(1416) 제주도의 행정 구역 정비로 대정현이 설치되고, 2년 뒤에 현감 유신이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읍성을 축조했다. 이 읍성은 산과 계곡을 끼고 있는 일반적인 읍성과는 달리 집과 밭들 사이에 만들어져 있다.
성벽의 둘레는 약 1614m이고, 높이는 약 5.1m이다. 지금은 성벽 안에서 군데군데 옛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성문은 동·서·남문 3개만 설치되고 북문은 처음부터 만들지 않았다. 이곳을 중심으로 관아와 창고들이 있었으며, 이 지역 방어를 위하여 10여 곳에 봉수대를 설치해 먼 곳에 외적의 침입을 알렸다.
10.법화사지
종 목 제주도 기념물 제13호
지 정 일 1971.08.26
소 재 지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 1071
시 대
법화사는 12세기∼15세기에 제주도에서 번창했던 절이다.
18세기 전기에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주도의 절 3곳을 불태워 없앨때 완전히 불타버렸으며, 지금의 건물들은 1987년 다시 세운 것이다.
현재의 법당 자리에서 금당지로 보이는 건물터가 발견되었는데, 앞면 5칸·옆면 4칸에 면적이 약 100평인 대규모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법화사는 건물 기단의 바닥돌이 2단으로 되어있고, 면석의 기법이 특이하며, 출토된 도자기와 기와조각 등으로 보아 10세기∼12세기 경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규모가 매우 큰 절로 제주도 3대 사찰 중 하나인 중요한 유적이다.
2010.08.15.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2010.08.15.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역사연대표는 대부분 사회나 국사 참고서나 문제집에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몇학년 이신지 몰라서 딱히 설명은 못 드리겠구요,
전 중학생인데요 한끝이나 문제집 보면 앞에 참고서에 나와 있습니다.
연대표는 각 시대마다 왕도 많고 왕의 이름을 다 적지 마시고 몇년도에 왕이 즉위했고
몇년도에 죽었고 그 왕의 업적만 간단하게 적어주시면 됩니다
에를 들어 조선시대 000년 세종 훈민정음 창제
뭐 이렇게 적어주시면 되고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선사시대 같이 시대를 적을때
싸인펜이나 색깔펜으로 적어주시면 보기 편합니다.
연대표는 한번에 파악을 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알아보기 쉽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간단하게 만드는 것을 원하시니 최대한 중요한 것 임오군란이나 임진왜란 나라 건국
뭐 이정도만 해 주시면 됩니다.
열심히 만드시길 바라겠습니다
2010.08.15.
-
출처
내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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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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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와 사건의 칸을나누고 사건의 간단한 설명을 합니다.
예를 들자면
1392년 조선건국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다
이렇게
201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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