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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락이 뭔가요??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7,298 작성일2006.01.03

락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게 잘 알지 못 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려 합니다;..

 

1.락이 뭔가요?

 

2.여기 저기 다니면 '메탈'이라는 게 있는데 메탈이 뭔가요 도대체;;...

 

3.muse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4.311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해 주세요!

 

5.제가 밴드를 좋아하는데 락밴드의 좋은 노래좀 소개시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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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h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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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오브아너 44위, 록, 메탈 음악, 콜오브듀티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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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가 아는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메탈이란 락에 포함된 장르중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뭐 헤비메탈, 바로크메탈, 뉴메탈, 데스메탈, 블랙메탈 등등 수도 없이 많지요~

 

muse라는 밴드는 장르가 브리티시 모던락이라고 하더군요. 간단하게 모던락이라고 보시

 

면 됩니다.

 

정말 노래 좋죠^^ 슬립낫 듣다가 뮤즈꺼 들으면 참 감미롭고 부드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밴드추천은요

 

처음 입문하시는거라면 린킨파크 추천해드립니다. 처음 접하기가 쉽죠

 

음...좀쎈거 좋아하신다면 슬립낫 추천해드리겠습니다.

 

그외에도 좋은밴드들 많죠^^

 

너바나, 레드제플린.... 메탈리카도 추천해드립니다.

200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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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에라
고수
힙합, 댄스 음악, 록, 메탈 음악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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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롹이 뭘까용~?

- 롹이란 대부분은 그 노래에서 뭔가 말할수 없는 엄청난 괴력의 파워가 뿜어져나오는 노래를 롹이라고 정의합니다.  위엣 분이 아주 많이 (^_^;;) 설명하신 장르들로 나누어 질수 있는데요.. 저는 그런거 골치아파서 그냥 롹과 메탈로 구분을 합니다. 

 

2. 여지 저기 다니면 '메탈'이라는 게 있는데 메탈이 뭘까용~?
- 메탈이란 롹에서 좀 무거운 소리로 롹보다는 조금 어두운 싸운드를 가진 노래라고 정의합니다.

 

3. Muse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 (^_~)

- Muse는 롹밴드 입니다..

 

4. 311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

- 311은 롹밴드 입니다.. 하지만 예전에 많이 흥행을 한 밴드로 알고 있습니다.

노래 정말 좋습니다.. ^_^!!

 

5. 좋은 노래 소개용~

-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 나열이용~

1. 311 - Creatures (For A While)

2. 311 - You Wouldn't Believe

3. Akaline Trio - My Friend Peter

4. At The Drive-In - One-Armed Scissor

5. Brand New - Logan To Government Center

6. Broken Social Scene - Cause = Time <-- 정말 강추입니다!!!

7. Cauterize - Shooting Stars <--강추!

8. Coheed And Cambria - Devil In Jersey City

9. Coheed And Cambria - A Favor House Atlantic

10. Dashboard Confessional - Hands Down

11. Finch - Perfection Throough Silence <--강추!

12. Foo Fighter - Monkey Wrench

13. Foo Fighter - Everlong

14. Jimmy Eat World - Bleed American

15. Jimmy Eat World - The Middle

16. Me First And Gimme Gimmes - I Believe I Can Fly

17. Me First And Gimme Gimmes - Over The Rainbow

18. Me First And Gimme Gimmes - Puff The Magic Dragon

19. My Chemical Romance - Drowning Lessons

20. New Found Glory - Dressed to Kill

21. New Found Glory - Hit or Miss

22. New Found Glory - Eyesore

23. Rufio - Above Me

24. Smashing Pumpkins - 1979 <-- 강추!

25. Smashing Pumpkins - Today <-- 강추!

26. Smashing Pumpkins - Perfect <--강!!!! 추!!!

27. Taking Back Sunday - Cute Without The 'E' <--대박 강추!!

28. The All-American Rejects - My Paper Heart

29. The All-American Rejects - Swing Swing

30. The All-American Rejects - Time Stands Still

31. The All-American Rejects - One More Sad Song

32. The Used - Bullmic

33. The Used - The Taste Of Ink

34. Transmatic - Blind Spot

35. Weezer <--노래들 모두다!

36. Yellowcard - Way Away

37. Yellowcard - Starstruck

 

여기까지. ㅎㅎ

정말 근데 롹이란건 들으면 등뒤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기분은 한방에 그냥 날아갈 듯한 쾌감이 느껴지는~ 그런 맛으로 듣는거 같습니다.

200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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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dj****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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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CK의 장르 ROCK의 기원, 정의

Punk Rock(펑크 락 ) - 70년대 중반 이후 영국의 런던과 미국의 뉴욕에서 태동한 특이한 개성을 지닌 락음악이 펑크 락이다. 펑크락은 70년대 중반 영국 런던에서 락그룹 섹스 피스톨스, 맬컴 맥라런등에 의해서 시도되면서 미국에까지 전파된 젊은이들의 문화였다. 60년대 히피가 부유한 환경조건에서의 산물이라면 70년대의 펑크는 못가진 젊은이들로부터 표출된 현상이었다고 할수 있다. 그러니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상류사회에 불만을 품었거나 또 음악적으로 기성 락세대에 반기를 들고 나서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어갔다. 그들은 격렬하고 난폭한 반항을 서슴치 않았다. 탈법적인 험담, 독설을 통해 부유층이나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때로 위혐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이 음악을 처음부터 주도했고 또 세상에 널리 알렸던 섹스피스톨스는 한 마디로 외모에서도 펑크의 표준이었다. 그들은 무대공연시 넝마처럼 모두 찢어진 티셔츠에 나치 마크나 히틀러의 훈장을 달고 무대에 등장한다. 그들의 머리는 빨강, 노랑,초록, 보라색 등으로 물들여져 있고 코에는 안전핀을 꽂고 있다. 펑크 락커들의 공연장에서의 청중에 대한 태도는 상상밖이다. 흥이 나서 격렬한 분위기가 고조되면 관중들에게 가래침을 뱉는 것은 보통이고 때로는 관중들에게 먹은 음식물을 토해서 던지기도했다. 심한 욕설을 퍼붓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때로는 사람을 통째로 관중석에 집어 던지기도 하고 유리나 칼로 자해를 하여 관중들을 소름끼치게 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펑크 분위기는 미국 뉴욕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데이빗 요한슨이 이끄는 뉴욕 돌스나 데비 해리의 블론디. 스트랭글러스 등이 대표적인 미국출신의 펑크 그룹이었다. 특히 스트랭글러스는 미국공연시 완전 나체의 미녀를 무대에 세워놓고 원색적인 해프닝을 벌임으로써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했었다. 그러나 평크의 기원을 살펴보면, 이미 1960년대 중반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태동했던 일단의 펑크 분위기 그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행 온 슬루피'(Hang On Sloopy)의 매코이스를 비롯해서 '울리 불리'(Wooly Bully)의 샘더 샘 & 더 파라오스, 트래시맨, 퀘스천마크 & 더 미스티리언스, 시즈, 스탠돌스, 킹스멘 등이 펑크록의 선구자인 셈이다. 70년대 이 펑크 락이 쉽게 사양길에 들어섰고 자연스럽게 뉴 뮤직으로 흡수되어 버린 이유는 바로 강렬했던 외양에 치중한 나머지 음악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영국인이면서 여왕을 비웃고 무정부를 주장하며 출연(1975년)했던 섹스 피스톨스의 영향으로 클래시를 비롯해서 잼, 애덤 앤츠, 익스플로이티드, 디스차지, 얼람, 피 아이엘, 지비 에이치, 서던 데드 컬트, 섹스 갱 칠드런 등이 펑크 락시대를 주름잡았던 그룹들이다.
Neo Punk(네오펑크) - 90년대 등장한 네오펑크라는 것은 펑크와 그 궤를 달리한다.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와 사회비판적인 문제제기보다는 90년대 풍요를 한껏 느끼고 즐기자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단지 음악적으로만 펑크의 이미지를 따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Grean Day와 NOFX, offspring이 있다.

Southern Rock (서던 락) - 1970년대 초 올맨 브러더스 밴드와 함께 락음악계에 대두한 것이 서던 락이다. 미국 남부 출신의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들고 나왔다 하여 '서던 락'이라 이름붙여진 이 사운드는 70년대 전반에 걸쳐 특히 미국의 남부에서 유행했다.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영향이 남아 복잡한 사운드가 팝스계를 누비던 시기에 서던 락은 락의 원류 즉 리듬 & 블루스와 컨트리 & 웨스턴에서 그 사운드의 기초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것은 뿌리로의 그리고 락의 본 모습으로의 귀환이었다. 그러므로 서던 락은 그 내용면에서도 미국 남부인들의 소박하고 낙천적인 인생관과 남부 특유의 지역색으로 인한 비극적 운명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서던 락의 핵심이라면 락큰롤의 기원인 소울과 컨트리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돌리려 한 데 있다.
Psychedelic Rock (사이키델릭 락) - 6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는 기성 질서와 개념을 타파하고자 하는 히피들이 등장해 갖가지 문화 운동을 주도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확산된 이 문화운동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당시 미국이 깊이 개입했던 월남전에 대항하는 '꽃의 시위'(Flower Movement)와 '드럭 무브먼트'(Drug Movement)를 들 수 있다. 이들 문화운동은 특히 마마스 & 파파스의 '꿈 속의 캘리포니아'(California Dreamin')와 스코트 매킨지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San Fransisc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두 곡의 노래에 의해 이미지가 정착되었고 전세계의 히피들이'사랑과 평화'(Love & Peace)의 메시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곡이 도화선이 되어 샌프란시스코에 번졌던 락 뮤직이 사이키델릭 락이었다. 사이키델릭 락 뮤직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반전과 인류애와 평화를 주장하며 환각제 등을 사용하는 음악을 선보였다. 조명효과를 이용 하는 화려한 라이브 무대에서 블루스 락을 기반으로 하여 재즈나 전위음악적 요소를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제퍼슨 에어플레인은 관능적인 메시지 송으로 락 음악에 불가사의 한 힘을 주며 과거의 가치관을 타파해 갔다. 환각제에 의한 사이키델릭한 음을 표현한다 하여 '애시드 락'(Acid Rock)이라고도 불리며 제퍼슨 에어플레인 외에 그레이트 풀데드등의 아티스트가 있다.

Hard Rock (하드 락) - 하드 락은 락큰롤보다 무겁고 볼륨이 강하며 직선적인 음악으로서 락큰롤에서 진보된 형태라 할 수 있다. 하드 락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1956년에 발표한 로커빌리 스타일의 '사냥개'(Hound Dog)였다. 그 후 점차 강한 락 음악이 성장하게 되어 '여름의 블루스'(Summertime Blues)로 유명했던 에디 코크런, 리틀 리처드 등도 하드 락의 모태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에 황금기를 맞은 하드 락은 이름 그대로 일반적 락 뮤직보다 한층 증폭된 사운드, 스케일이 큰 규모의 음악을 지칭한다. 전기 기타의 거친 사운드와 때려부술 듯한 드럼연주, 울부짖는 보컬을 커다란 음량으로 증폭시켜 들려 주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드 락은 그 파괴적이고 폭발적인 사운드가 현실에 대한 불만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하여 크림, 제퍼슨 에어프레인,마운틴, 레드 제풀린, 딥 퍼플 등의 스타 그룹을 탄생시켰다.
heavy rock (헤비 락) - 말 그대로 무거운 락을 가리키며, 하드 락이나 헤비메탈 락과 비슷한 말이다.

Folk Rock (포크 락) - 미국에서 생겨난 또 하나의 음악장르가 포크 락이다. 포크 락은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전통 민요를 채록, 노래하던 포크 뮤지션들이 포크의 정신과 전통은 그대로 살리면서 그 표현 형식에 락의 방법을 가미한 형태의 음악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 현실의 비리에 대항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며 포크계로부터 이탈한 봅 딜런과 같은 싱어 송라이터들이 등장하여 포크 록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었다. 최초의 포크 락 그룹으로 꼽히는 버즈는 전기 기타와 드럼을 추가하여 그룹을 결성, 봅 딜런의 '미스터 탬버린 맨'(Mr. Tambourine Man)을 락 비트를 살린 형태로 연주하여 화제를 모았다. 그 후 포크 락은 월남전을 소재로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파괴의 전야'(Eve Of Destruction)를 배리 맥과이어가 히트시킴으로써 절정을 맞았다. 포크 락의 대표적 그룹으로는 '지금 사랑은 무엇인가요?'(What Now My Love)의 소니 & 셰어, '꿈 속의 캘리포니아'(California Dreamin')의 마마스 & 파파스 등이 있다.
Transcendental Rock (트랜센덴탈 락) - 이 락의 발생은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가졌던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인도로 여행하여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로 부터 '선천적인인 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을 배우므로 시작되었다. 도노반(Donovan), 도어즈(the Doors) 그룹, 그리고 비치 보이스(Beach Boys)도 뒤를 이어 마하리쉬를 방문하였다. 선험적인 명상이 음악에 반영된 작품은 해리슨의 (1970)와 앨범, [All Things Must Pass]중의 일부 곡들이다.

Theater Rock (시어터 락) - 무대의상, 행동 또는 풍채 등의 매력이나 이상스러움 또는 익살스러움에 의해서 관객을 놀라게 하거나 즐겁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용어이다. 1974년에 데뷔를 한 4인조 그룹인 키스(Kiss)는 수염난 고양이, 은색 눈빛의 우주인, 입술을 내밀은 모양, 그리고 흡혈귀등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짙은 분장을 하였다. 1980년에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그들의 새 앨범, [The Wall] 중에서 발췌한 곡들을 연주하는 동한 한 패거리는 벽돌을 한장씩 쌓아서 35피트x210피트의 대형 벽판을 만들었다.시어터 락은 이러한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포용하며 단순한 흥행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충격을 주기 위해서 폭력이나 불건전한 행위까지도 자행한다. 이와 유사한 장르가 요즘 일본에서 한창 유행하는 비쥬얼 락 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비쥬얼 락은 너무 비쥬얼적인 측면에 치중한 나머지 락의 본의를 져 버리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Glitter Rock (글리터 락) - 70년대 초에 영국인 폴 가드(Paul Gadd)가 예명으로 사용했던 개리 글리터(Gary Glitter)라는 이름에서 따온 락의 한 분파 이름. 그는 무대 공연의 한 부분을 시각적인 면에 중점을 두어 구경거리를 연출하는 락 연주인들 중의 선두주자였다. 이상하고 기상천외한 의상과 분장, 머리 모양, 무대 도구들, 그리고 익살스런 행동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음악적 프로그램에다 시각적인 면을 더한 것이 글리터 락의 특징이었다. 이러한 시각적인 면의 범위를 넘어서 폭력과 섹스를 가미하여 단순한 흥행의 차원을 넘어 선 것은 쇼크 락(Shook Rock)이라고 하고, 이 두 유형의 시각적인 락을 포괄하는 의미로는 시어터 락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Shock Rock (쇼크 락) - 락 그룹들이 그들의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줄 목적으로 폭력이나 섹스의 해프닝으로 치닫는데, 그러한 공연의 락 음악을 일컫는말이다. 앨리스 쿠퍼(Alice Cooper)는 팬티 스타킹과 검은 타이츠를 입고 구렁이와 춤을 추거나 장난감 인형들을 처형하고 토끼들을 죽이고 하는 행위가 대표적인 예.

Rock (락) - 1950년대 이후에 팝 뮤직으로 편입되어서 많은 변화를 거치며 세계의 팝 뮤직이 된 사운드와 리듬을 뜻하는 말이다. 락과 팝의 차이를 대비시키면 다음과 같다. 락의 형식은 12마디의 블루스인데 비해 팝은 8마디와 16마디를 하나의 단위로 하는 형식의 32마디 곡이다.리듬에 있어서 락은 1마디가 8비트로 된 부기-우기로서 상박에 액센트가 오며 드럼보다는 베이스에 의존한다. 하모니에 있어서 락은 전음계적이기보다는 선법적이고 7도권 대신에 직접적인 전조를 하는 경향이 있다. 팝은 감성에 호소하는 매력적인 선율과 관계된 것인데 비해 락은 힘과 과감성이 강조되어 다양한 종류의 음향변조 기구들(피드백, 퍼즈톤,리버브, 와와 페달 등)이 대담하게 이용된다.

Pub Rock (퍼브 락) - 영국에서 펑크에 앞서 나타났던 락 음악을 일컫는 말로서'퍼브'(pub)라는 단어는 영국식 영어로 클럽이란 뜻인데 이 음악을 연주하는 그룹들의 활동 무대가 '퍼브'들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퍼브 락 그룹들로는 비록 잘 알려진 이름들은 아니지만 덕스 딜럭스(Ducks Deluxe), 브린슬리 슈워츠(Brinsley Schwarz), 비즈 메이크 허니(Bees Make Honey), 킬번 앤더 하이 로즈(Kilburn & the High Roads) 등이 있었다. 그들은 당시의 주류적인 락 음악보다 더 크고 공격적이며 거친 사운드의 락큰롤을 연주하였다.
Protest Rock (프로테스트 락) - 프로테스트 락은 가사의 주제적인 문제나 정신적인 자세 또는 이념등과 결부된 개념의 말이다. 프로테스트 락은 1960년대에 월남전 반대, 인종차별 반대, 반핵 등의 사회적인 운동의 일환으로서 개발되었다. 밥 딜런(Bob Dylan), 필 오크스(Phil Ochs),탐 팩스튼(Tom Paxton), 피트 시거(Pete Seeger)등이 선구자이다. 레이버, 스톨러, 그리고 스펙터의 (1961)을 비롯,크리스탈즈 그룹의 히트곡이 되었던 진 피트니(Gene Pitney)의 (1962), 1965년에 1위의 히트곡이 되었던 배리 맥과이어(Barry McGuire)의 , 그리고 돈 맥클린(Don McLean)의 (1972) 등이 모두 프로테스트 곡들의 예이다.

Poetic Rock (포에틱 락) - 1960년대에 락 음악의 가사들은 밥 딜런과 비틀즈와 함께 그 주제의 깊이와 이미지의 신선함 그리고 표현의 우아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와 결부된 이 요소들은 각기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니 밋첼 (Joni Mitchell), 닐 영(Neil Young), 로라 니로(Laura Nyro),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캐롤 킹(Carole King), 랜디 뉴먼(Randy Newman), 폴 사이먼(Paul Simon),캣 스티븐스(Cat Stevens) 그리고 레오나드 코헨(Leonard Cohen) 등의 곡에서 발견된다. 특히 코헨은 1968년에 록 싱어겸 작사가가 되기 전 까지만 해도 인정받는 소설가이며 시인이었다.
No Wave Rock (노 웨이브 락) - 펑크와 뉴 웨이브에서 파생된 락 음악의 하나로서 그 경향은 극단적인 비상업주의로 흘렀으며 비직업적인 음악가들에 의해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도 포함되었다.

New rock (뉴 락) - 1960년대 말, 영국이나 뉴욕에는 사이키델릭한 스테이징을 보여주는 그룹들이 등장했다. 이들 그룹은, 기본적으로는 블루스를 바탕으로 하면서 새로운 감각으로 파퓰러의 명곡을 편곡하려는 시도나, 즉흥 연주에 중점을 둔 연주를 했는데, 이들의 연주를 뉴 락이라고 한다. 긴 연주 시간, 즉흥 연주의 긴장감 등 당시의 락 뮤직에 활력을 주었다. 크림이나 바닐라 퍼지 같은 그룹이 대표적이다.

Latin Rock (라틴 락) - 라틴과 락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음악. 일종의 퓨전 음악인데,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1969년에 데뷔 앨범을 발매하여 1년만에 2백만장의 판매 기록을 세웠던 6인조 그룹 산타나의 창설자이며 멕시코 태생인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ta)이다. 또, 그 중요한 역할을 한 그룹들에는 캄보 그룹들인 엘치카노(El Chicano), 창고(Chango), 세귀다(Seguida) 등이 포함된다.
Instrumental Rock (인스트러멘탈 락) - 보컬이 없이 악기로만 연주되는 락을 말하며 전기 오르간이나 전기 기타 또는 테너 색소폰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시기인 1959년에서 1963년 사이에 그 전성기를 이루었다.

India influence in Rock (인디아 인플루언스 인 락) - 락에 있어서 인도 음악의 영향은 1960년대에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을 비롯해서 여러 아티스트들이 인도의 음악과 악기에 대해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루어 지게 되었다. 1964년에 비틀즈의 열풍이 미국을 휩쓴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지 해리슨은 인도의 고 악기인 시타르(Sitar)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는 인도 사람이며 시타르의 대가인 라비 샹카에게 시타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 영향은 [Rubber Soul] 앨범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해리슨은 이앨범에서 시타르를 연주하였다. 그래서 락 연주가들은 이 악기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라비 샹카는 이 악기의 지도 교실을 열게 되었다. 연주인들의 관심은 비단 시타르 뿐만 아니라 래가스(Ragas)나 타블라스(Tablas), 그리고 또 다른 인도의 악기인 사로드(Sarod) 등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비틀즈는 인도의 음악 뿐만 아니라 인도의 종교와 철학에 관해서도 관심을 쏟게 되어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에게 초월적 명상을 배우기 위해 인도로 여행을 하기도 했다. 비틀즈의 인도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영향을 받은 그룹들 중의 하나가 인크레디블 스프링 밴드인데 이들의 두번째 앨범 [The 5,000 Sprits of the Layers of the Onion] 중의 힌곡은 5악장으로 작곡되었으며 그 중에서 세개의 악장은 인도 음악을 테마로 사용한 것 이었고, 나머지2개는 컨트리 앤 웨스턴과 인도의 래가 요소를 혼합한 것이었다. 인도의 영향은 1970년대까지도 지속되어 영국 욕크셔 출신인 존 맥로린(John McLauglin)은 종교적인 전향을 하여 그의 이름을 '마하비쉬누'로 개명하였다. 그는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그 방향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영적인 음악신인 스리 친모이의 은총으로 신의 존재를 더욱 더 인식하게 되었다. 신은 절대적인 음악가로서 음악의 영혼이며 정신이다. 나는 내 자신을 그의 도구가 되게 함으로써 그에게 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해리슨의 인도 종교에 대한 관심이 결실로서 나타난 것은 헤어 크리쉬나템플 그룹이 녹음하고 그가 1969년에 제작하였던 [Hare Krishna Mantra]레코드에서였다.
God Rock (갓 락) - 종교적 성향을 띤 작품을 일컫는 말. 1967년에 일렉트릭 프룬즈(the Electric Prunes)는 헤브루 기도문에 근거를 둔 작품인 [Release of an Oath]와 [The Kol Nidrei]에 이어서 [Mass in F Minor]을 녹음 하였다. 갓 락의 또 다른 그룹인 어소시에이션(the Association)도 [Requiem for the Masses]라는 앨범 하나를 녹음했다. 밥 딜런의 1979년도 앨범 [Slow Train Coming]과 1980년도 앨범 [Saved]는 그리스도 교인으로서 다시 태어났다는 그의 생각을 담은 것으로서 역시 갓 락에 포함시킬 수 있겠으나, 갓 락이 아닌 지저스 락(Jesus Rock)으로 분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Fusion Rock (퓨전 락) - 재즈 그룹이 락 음악을 시도하거나 락 그룹들이 재즈를 연주하려고 시도하던 1970년대의 실험적인 혼합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 락 과 라틴 리듬이 결합된 것도 역시 퓨전 락에 속한다.
Freak Rock (프리크 락) - 일부 락 그룹들이 사용하는 괴상한 의상과 난폭한 광고, 그리고 야단스런 분장 등이 특색인 락의 한 갈래.

Experimental Rock (익스페리멘틀 락) - 락의 한 스타일이나 그 범주를 말할때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로서 실험적 락 음악을 뜻하며 우연성 락, 전위 락, 클래식 락, 그리고 전자 락 등이 이에 속한다.
Euro rock (유로 락) - 영국 이외의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발생한 락을 한때 유로 락이라고 했다. 유로 락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되었으며, 실제로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데, 그 절정을 이룬 것은, 네덜란드의 포커스가 영국으로 진출하여, 1972년의 멜로디 메이커지인 팝 폴, '브라이티스트 호프'에서 1위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이탈리아의 PFM, 독일의 탠저린 드림이나 크라프트 베르크 등이 세계로 진출하여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하겠다. 유로 락이 전성기를 이룰 무렵, 그 중심지는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의 3국이었으며, 음악적으로는 다양한 스타일을 형성했는데, 그 대부분은 한때 영국에서 번영을 누린 프로그레시브 락의 영향을 받아, 클래식이나 현대 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언더그라운드적인 락이었다.

Downer Rock (다우너 락) - 사운드의 우울한 분위기와 메시지의 병적인 상태에 의해서 한정지어 지는 락의 한 분파. 주요 연주인들에는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블러드로드(Bloodrod), 그리고 MC 5 등이 포함된
Destruction Rock (디스트럭션 락) - 파괴적인 해프닝을 무대에서 연출하는 것. 앨리스 쿠퍼(AliceCooper)의 멤버들은 수박을 부수기도 하고 베개를 찢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병아리의 목을 베기도 했다. 1967년의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1942-1970)는, 그의 기타에 불을 질렀는데, 이는 해프닝의 개척자이며 자동차를 파괴하는 쇼를 고집스럽게도 늘 보여주는 그룹인 후(The Who)를 제압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사실 해괴한 행동의 발단은 후 그룹이 런던의 한 크럽인 레일웨이 태번에서 공연하던 중에 피터 타운센드가 우연히 그의 기타를 낮은 천장에 부딪쳐서 기타의 목을 부러뜨리므로 시작되었는데 그는 화가나서 기타를 산산조각으로 부수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인기를 얻었으므로 그후부터는 파괴하는 일이 계획된 쇼맨쉽의 하나가 되었다. 그 후 그룹의 파괴 습성은 무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호텔의 방까지 연장되어 기물을 파손함으로써 그들의 수입의 일부가 그것을 변상하는데 쓰일 정도였다.

Dada Rock (다다 락) - 1920년 대의 아방 가르드 문학운동인 '다다이즘'에서 유래된 무대 매너의 한 유형. '다다'라는 말은 신생아의 첫 울음 소리에서 본딴것으로서 그 이념은 어린이와 같은 호기심과 천진함을 되찾자는 것이었다. 락 그룹들 중에서는 앨리스 쿠퍼(Alice Cooper)와 '무대의 불한당'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밴드가 그러한 류의 선조들인데 그들은 어린이와 같은 장난기와 익살로써 베개를 찢어 깃털을 청중에게 날려 보내거나 또는 공기로 부풀린 장난감 인형들로써 모의 전쟁을 하는 등의 연기를 보여줬다.
Crusading Rock (크루세이딩 락) - 1978년에서 1979년 사이에 수많은 그룹들이 자신들이 신봉하는 특정주의나 주장을 나타내는 그룹명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헬스 인슈어런스(Health Insurance)는 정부의 건강보험과 관계가 있던 밴드였다. 건플레이(Gunplay)는 무기소지를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로 할 것을 주장했던 그룹의 이름이고, 자니 앤 더 엠프리시스츠(Johnny & the Empiricists)는 기본적 과학연구를 위한 기금을 모으는데 목청을 돋구었던 그룹 이름이다. 잉글리쉬 프리저베이션 락 밴드(the English preservation Rock Band)의 목적은 영어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이었고, 데모크러시(Democracy)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목적을 가진 디스코 밴드였다.

Classical Rock (클래시컬 락) - 이 용어는 락 음악이 오늘날의 락으로 발전해 오는 중도의 한 과정에서 불리워지던 명칭인 '라커빌리(Rockabilly)'나 음악의 한 형식인 에시드 락(Acid Rock), 그리고 하나의 악파를 지칭하는 클래식 음악과 락 음악이 일시적으로 융합되어 만들어지는 음악을 일컫는 말이다. 이 음악의 락 그룹들에는 1971년의 콘서트에서 무소르그스키(Mousorgsky)의 <전람회의 그림>을 바탕으로 사용했던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를 비롯, <200 motels>를 연주하는데 자신의 락 그룹과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 협연을 했던 프랭크 재퍼(Frank Zappa),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하였던 무디 블루스(Moody Blues), 바리즈(Varese)의 음렬기법을 사용하여 [Freak Out] 앨범을 만들었던 마더즈 오브 인벤션(Mothers of Invention)을 녹음하였던 예스(Yes), [Mass in Minor F](1967)와 [Release of an Oath]및 [The Kol Nidrer](1968)가 그 녹음에 포함되어 있었던 일렉트릭 프룬즈(Electric Prunes), 5인의 멤버들 중 3인이 줄리어드 출신으로서 그들의 첫 앨범 [Faithful Friends...Flattering Foe]에다 바하의 <트리오 소나타 제 2번 G장조>를 락으로 변형시킨 것을 포함시켰으며,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였던 뉴욕 락 앙상블 (the New York Rock Ensemble), 에드먼튼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연주 실황 녹음 앨범 [Live in Concert with the Edmonton Symphony Orchestra]을 발표한 프로콜 하룸(Procol Harum), [Wind and Wuthering]에 변형된 소나타 형식을 포함시킴으로서 클래식의 영향을 나타내었던 제네시스(Genesis), 쇤베르크(Schoenberg)의 영향이 나타나 보이는 음반들을 녹음하였던 나이스(Nice), 클래식 지향적인 네델란드의 밴드 포커스(Forcus), 그리고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Electric Light Orchestra)등이 있다.
British rock (브리티쉬 락) - 영국에서 발생한 락. 브리티쉬 포크, 스키플 뮤직 등과 흐름을 같이하면서, 미국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며, 더우기 오늘날에는 레게까지도 받아들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드 락, 뉴 락, 글램 락 등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British hard rock (브리티쉬 하드 락) - 1970년경 영국에서 일어난 락. 리듬 앤 블루스를 바탕으로 하면서보다 힘차고 속도감이 있으며, 큰 음향으로 연주된다. 리듬앤 블루스라고는 해도 형태를 완전히 바꾸어서, 드라마틱한 멜로디를 전개하여, 기타리스트를 주로 내세운 사운드와, 고음부를 강조한 보컬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메리칸 하드 락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보다 무겁고 보다 끈끈한 느낌을 주는 것인데, 대표적인 그룹으로는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등이 있다.
Space Rock (스페이스 락) - 우주 탐사의 개념에 근거한 락의 한 분야. 외계를 암시하는 사운드의 부수적인 사용과 함께 스페이스 락은 공상 과학 음악이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실질적인 업적을 이룩한 사람은 1973년에 앨범 [Space Oddity]를 발표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였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도 그들의 밀리언 셀러 앨범 [Dark Side of the Moon](1973)에 이 주제를 다루었고 그 기념으로 런던의 천문관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Barouque Rock (바로크 락) - 1967년과 '68년 사이에 생겨났으나 금방 소멸해 버린 락 음악의 한 형태. 원래는 리코더(recorder), 플루트, 하프시코드가 만들어내는 바로크 모들 뮤직(Baroque modal music)의 사운드를 락 비트에 결합시 키려는 시도로 출발하였다. 이러한 분야의 그룹으로는 아르스노바 (Ars Nova), 크리설리스(Chrysalis), 뉴욕 스트링 앙상블(New York String Ensemble), 그리고 뉴욕 로큰롤 앙상블(New York Rock and Roll Ensemble)등이 있다. 바하의 칸타타를 각색한 프로콜하름의 이 바로크 락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다.
Attitude Rock (애티튜드 락) - 1960년대 중반에 출현한 난해한 부류의록 뮤직. 애티튜드 락은 주어진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 야기된 감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범주의 작곡가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비평, 공격, 저항 뿐만 아니란 자신의 감정과 성찰에 대한 탐구에도 관심을 가졌다.

Art Rock (아트 락) - 아트 락은 애시드 락(Acid Rock)이나 헤비 메틀 락(Heavy Metal Rock) 처럼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란 시적인 암시와 깊이에 접근하는 가사를 내포하고 있다. 잭슨 브라운(Jackson Browne),레오나드 코헨(Leonard Cohen), 조니 미첼(Joni Mitchell), 랜디 뉴먼 (Randy Newman), 로라 니로(Laura Nyro), 폴 사이먼(Paul Simon),닐 영(Neil Young) 등과 같은 싱어, 송라이터들의 작품들은 아트 락의 대표적인 예로서 자주 칭송되고 있다.

Aleatory Rock (에일리어토리 락) - 칼하인츠 스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밀튼 배빗(Milton Babbit), 존 케이지(John Cage) 같은 전위적인 작곡가들은 음악적인 법칙과 상식에서 벗어난 우연성 작곡 (chance composition, random composition)을 시도하였다. 에일리어토리(Aleatory)란 말은 '도박과 주사위'와 관련 있는 라틴어,'aleator, alea'에서 유래 된 것으로 '우연성 음악'을 뜻한다. 실제로 러시아계 미국인 죠셉 실린저는 우연성 기법의 기본형으로 숫자들을 사용하였으며 존 케이지는 동양악기인 칭(Ching)을 사용하기도 했다. 혹자는 신서사이저나 컴퓨터, 테이프 반복 진행을 사용하기도 한다. 비틀즈나 프랭크 재퍼는 이러한 형태의 음악을 시도한 바 있다.
Acid Rock (애시드 락) -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에서 발생한 음악으로 LSD같은 환각제의 힘을 빌어 환각 상태에서 얻는 정신적 효력과 고정된 방향 감각에서의 이 탈을 추구하는 락 뮤직의 한 분야. 춤을 추며 즐기기 보다는 듣고 느끼기 위한 음악으로 전통적인 락 뮤직의 흐름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왜곡된 감각의 정신적 황홀 상태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애시드 락(Acid Rock)뮤지션들은 신서사이저와 고출력의 앰프, 피드백 (feedback), 퍼즈톤(fuzztone), 그리고 우드(ud)나 시타르(Sitar)같은 중동과 인도의 악기들을 사용하였다. 애시드 락은 특히 나른한 멜로디, 흐느적 거리며 미끄러지는 음, 코드 변화의 부재, 음계적인 사운드가 강조되었다. 애처로이 흐느끼듯, 단조롭게 칭얼대듯, 이국 정서가 물씬 풍기는 음향을 흉내내기 위해 전통악기는 물론 전자악기들도 동원되었다. 황홀 상태를 강렬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만화경같이 현란한 조명이 번뜩이는 쇼 무대가 개발되었다. 애시드 락커(acid rocker)가 아닌 그룹들도 다음과 같은 노래들 속에서 몇번쯤은 환각의 영행을 떠났던 경험을 갖고 있다. '비틀즈', '밥 딜런'(Bob Dylan),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반 다이크 팍스'(Van Dyke Parks),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모타운(Motown) 소속의 '템테이션즈'(Temptations), 그리고 '비치 보이스'(Beach Boys)등이 한 때 애시드 락에 관심을 보였다. 1970년대에는 독일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s) 같은 그룹들의 음반 속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Alternative Rock (얼터너티브 락) - 90년대 들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락 음악은 일련의 변화를 맞고 있다.80년대를 풍미하던 로스엔젤레스 중심의 메틀과 팝 메틀의 기세가 주춤해진 반면, 언더그라운드로 여겨지던 Trash 계통이 점차 부각되기 시작하고 아울 러60-70년대의 락 스타일이 부활되는 복고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또 한 음악 장르간의 경계도 한층 더 불분명해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90년대들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인 탈규범화, 탈장르화의 물결에 락이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터너티브 락이란 다른 음악 장르처럼 그 기원과 정의가 명쾌하지 않고 막연하고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몀 하드락과 펑크락의 결합이라 할수있다. 뉴 웨이브(New Wave)와 다른 점은 뉴 웨이브가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나 근원을 가졌는데 반해, 얼터너티브는 비록 현재는 주류가 아니나 한 때는 주류였던 과거의 음악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미국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얼터너티브 락의 정의는 60-70년대의 블루스. 특히 사이키델릭이나 플라워 무브먼트의 음악을 90년대 필터를 통해 여과시켜 재창조한 비주류적인 락을 일컫는다. 얼터너티브 락의 대표적인 밴드로는 Nivana, Sound Garden, Pearl Jam, Alice In Chains, Mother Love Bone, Smashing Pompkins 등이다.
Roots(루츠) - 90년대로 들어와서 음악적 경향은 과거로의 희귀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그와 더불어 일렉트로닉에 반(反)하는 징후도 나타났다. 이것을 가르켜 음악저널계에서는 언플러그드(Unpluged)라는 말을 써 일릭트릭 등을 비롯한 전자사운드에대한 반(反)경향으로 일렉트릭에 반하는 어쿠스틱 경향을 표시하려했다. 루츠의 음악은 컨트리,포크 등 자연적인 스타일이 락 전반에 두루 활용되며 풀내음 또는 녹색의 신선함 내지는 건강미가 느껴지는 음악들을 가르켜 루츠라고 한다. 루츠가 언플러그드와 다른 점이라면 일렉트릭을 철저히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의 월플라워즈(Wallflowers), 벡(Beck), 헤이든(Hayden) 등이 이 사조를 대표한다.

인더스트리얼 - 인더스트리얼이라는용어는 75년 경 제네시스 피올릿지(Genesis P-Orridge)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히피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였던 제네시스는 과학화되고 첨단산업화 되는 환경에 어울리는 새로운 음악을 해보고 싶어했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을 찾던 그는 그것을 인더스트리얼 음악이라고 정의하고 쓰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이라는 팀을 만들게 된다. 제네시스와 여자친구인 코지(Cosey)를 중심으로 한 쓰로밍 그리슬은 자기파괴, 수음, 성교, 등 갖가지 쇼킹한 것들을 무대에 벌이며 실험적인 일릭트로닉(Electronic)을 연출해 주목을 받았다. 쓰로밍 그리슬이 발표한 4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몇 장의 정규앨범은 인더스트리얼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최근의 나인 인치 네일스(N.I.N)는 아마도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의 가장 상징적인 존재이다. '인더스트리얼은 나인인치 네일스'라는 공식이 가능하듯 이들의 등장은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의 오버그라운드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 역시 음악적으로는 쓰로밍 크리슬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현재에와서도 인더스트리얼은 매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강력한 메틀적 사운드와 첨단 SF적 기법을 수용하여 90년ㄷ 음악공간의 중요한 세력으로 인정 받고 있다.



1990년대 초반 - 새로운 조류 (이현석,H2O,NexT,서태지,안치환,강산에)

80년대식 헤비메틀은 90년 결성된 '아시아나'와 ' 카리스마'라는 슈퍼밴드의 앨범작업으로 끝을 맺는다.

이들은 80년대를 호령하던 쟁쟁한 멤버들로 구성되었지만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단발적인 작업으로만 만족해야만 했다.

이후 90년대에는 헤비메틀의 2세대들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밴드가 스트레인져, 디오너서스, 아마게돈, 더 클럽, 제로지등이다.

그리고 이들 밴드의 대표주자들인 서안상,이시영,안회태 등이 만든 미스테리와 몽키헤드까지가 헤비메틀2세대로 보면 좋을듯 싶다.

그렇지만 이들의 활동은 80년대 중반 1세대들의 모습에 비해 그다지 좋은 활동을 보이지는 못했다.

이미 서구의 팝도 헤비메틀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음에도 LA메틀 중심의 활동을 했고 디젤,터보,나티,아발란쉬 등 스래쉬 메틀을 구사하는 밴드들도 메탈리카에 필적할 만한 사운드를 생산하고 있었음에도 대중의 이해부족으로 답보상태에 머물러야만 했다.

어찌되었든 이 당시 실력파로 활동하던 서안상,안회태,이시영,김병삼,배재범,임덕규,김동규 등이 현재 회자되는 인물들이 아닌것을 보면 90년대 초반 한국 록의 모습은 매우 상황이 좋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비록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여전히 7-80년대 뮤지션들이 추앙받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말이다.

그러나 92년말에 발매된 이현석의 음반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미스테리 1집과 함께 메틀마니아의 주목을 받았던 음반으로 기타리스트 이현석의 솔로 프로젝트 앨범이다.

이현석은 80년대 후반 손무현,오태호와 함께 고교 스쿨밴드의 최고 기타리스트로 꼽히던 인물이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손무현은 김완선의 작곡자로 오태호는 이승환의 파트너로 모두 제도권으로 흡수되어 버린뒤, 이현석만이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표현해 내었다. 이현석 1집은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기타연주 음반이다.

(비록 기획사의 상업적 의도 때문에 몇곡의 노래가 가사를 붙여 이현석의 목소리로 불려지고는 있지만) 특히 잉베이 맘스틴의 주도아래 범주화된 바로크 메틀을 구사한 국내 최초의 음반이기도 하다. 기타라는 악기의 각종 이펙터들이 발전하면서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유럽의 기타리스트들을 중심으로 한 기타연주 음반이 많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 기타리스트들의 실력을 가름하는 잣대는 다름아닌 스피드였다. 얼마나 빨리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느냐가 바로 기타리스트의 실력이 되곤 했던 것이다.

이현석은 1집에서 속주기타연주의 전형을 보여준다. 'Sky hihg'나 'Child play' 그리고 'Life cycle'등에서의 프레이즈는 압권이었다. 이현석 1집은 밴드를 구성하지 못해 기타와 베이스는 직접연주하고 드럼머쉰과 프로그래밍으로 나머지 부분을 채웠다고 한다.

그래서 사운드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기타연주 하나만으로도 멋진 음반이었다. 1집의 반응이 괜찮았는지 2,3집이 계속 제작되었는데 이미 시대는 속주기타를 떠나 얼터너티브 쪽으로 변하고 있어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현석은 90년대 후반에 김경호의 솔로음반에 세션으로 참가하고 최근에 '이현석 프로젝트'라는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H2O 2집은 사실상 헤비메틀 시대가 끝나고 모던록의 시대를 알리는 최초의 완성도 높은 음반이었다. 김준원을 중심으로 한 하드록 밴드였던 H2O가 카리스마의 박현준, 김민기와 시나위 출신으로 베이스와 신디사이저에 모두 능한 강기영을 새로 영입하여 변신을 꾀하였다. 앨범 자켓에서 짧게 정돈된 머리를 보면 이들에게서 80년대 헤비메틀의 냄새는 느껴지지 않는다.(헤비메틀의 근원지에 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강기영,김민기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라이브에 세션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이미 헤비메틀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어졌음을 알 수 있었지만 박현준의 세련된 기타연주는 다소 의외였다.

U2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깔끔한 리듬기타는 매우 훌륭했다.

(사실 박현준은 카리스마에서 베이스 주자였다) 그리고 1집에서 샤우팅을 하던 김준원도 절제된 보컬을 선보이고 있다. H2O는 경쾌한 하모니커 사운드가 인상적인 '걱정하지마'의 빅히트로 90년대 초반 TV쇼에 자주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Hey remember me'와 '변함없는 하늘가' 등에서 김준원의 보컬과 박현준의 기타가 잘 어울렸다. 전반적으로 볼 때 U2와 폴리스의 스타일을 추구한 듯 싶다. 이후 H2O는 듀스 2집에 참여하고 듀스 공연에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강기영,박현준이 여러가지 이유로 탈퇴하고(이후 삐삐밴드 결성), 김민기도 솔로로 독립하면서 해체되고 만다. 해체직전 H2O는 제작사의 계약관계 때문에 3집 '오늘 나는'을 발표하지만 3집에 대한 활동은 없이 해체된다.(Sub의 전 편집장 박준흠씨는 이 음반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을 한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현재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여러모로 볼 때 90년대는 80년대보다 이전 세대에 대한 정통성이 뒤떨어지는 시대임에 틀림없다. 80년대 그 뜨거웠던 헤비메틀의 주역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제도권으로 흡수되고(김종서,임재범,이근형,손무현,오태호 등) 이 땅의 록음악은 90년대식으로 새로이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성공한 케이스인 '넥스트'를 보더라도 그렇다. 물론 리더인 신해철은 80년대 후반 대학가요제를 통해 등장을 한 뮤지션이기는 하지만 그가 몸담았던 '무한궤도' 역시 정통성에는 거리가 멀었다.

신해철은 참 독특한 뮤지션이다. 분명 그는 록에 대한 이해가 보통 뮤지션보다는 월등히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해철은 근본적으로 테크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뮤지션으로 넥스트의 2집에서 4집까지의 활동은 그의 전체 음악 활동에 비춰 본다면 다소 의외성이 강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름사냥 출신의 기타리스트 정기송과 함께 만든 다소 모던록에 가까웠던 1집 음반과는 달리 스트레인져의 임덕규와 정기송이 번갈아가며 연주하는 2집은 스래쉬 메틀을 선보여 충격을 주었다.

'이중 인격자'에서의 메가데스 스타일은 놀라웠다.

발라드나 댄스 뮤지션으로 알려져있던 신해철이 샤우팅을 할 줄은 누구도 몰랐다.

더군다나 이렇게 완성도 높은 스래쉬를 그가 연출해 낼줄은 정말 몰랐다.

헬로윈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껍질의 파괴'의 대곡 스타일도 무척 인상이 깊었고 신디사이져 연주와 철학적인 노랫말이 좋은 '불멸에 관하여'는 베스트 트랙이다.

인지도 높은 신해철이 완성도 높은 스래쉬 매틀을 선보이면서 90년대 록은 장르의 확산을 경험할 수 있었다. 90년대 초반 여러 밴드가 실패한 스래쉬 메틀을 넥스트가 완성하면서 이 땅에는 '크래쉬'라는 대형 밴드가 탄생할 터를 만들수 있었다.

넥스트는 2집의 성공에 힘입어 록밴드로서는 최초로 수많은 지지자를 확보하였고 3집과 4집에는 다운타운 출신 기타리스트 김세황과 감각적인 김영석을 영입하여 안정된 사운드를 선보였다.(3집은 넥스트 앨범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 4집 라젠카 이후 신해철은 모노크롬으로 그리고 나머지 멤버는 패닉 출신의 김진표와 노바소닉을 결성하여 활동 중이다.

90년대 주류음악을 거론할때 서태지를 빼놓을 수는 없다.

서태지는 엔터네이너로서 90년대식 표본을 설정해 주었고 랩과 댄스에 대한 새로운 시류를 개척하기도 했다.

사실상 90년대 주류 음악의 처음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서태지의 영향력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주류 시장을 보라. 모두 서태지의 아류다.)

그런데 록을 이야기할 때 랩과 댄스의 귀재인 그가 거론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그는 랩퍼이기전에 록커였기 때문이다.

시나위 4집에서 베이스를 담당하면서 서태지의 프로 음악세계는 시작되었다.

무슨 이유에서 그가 솔로 음반을 준비하면서 비박스와 랩을 첨가하며 백댄서를 거느린 댄싱음악을 하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분명 그의 음악은 보통 댄스하고는 달랐다.

그의 랩은 힙합의 그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데뷰곡 '난 알아요'에서 헤비기타 리프는 분명 혁명이었다. '하여가'에서 이태섭의 기타 솔로는 스래쉬 메틀의 그것과 일치하였고 3집에서는 마침내 록커의 위치로 돌아서고 만다. '교실 이데아'에서 안흥찬의 목소리를 빌어온 외침이나 '내 맘이야'의 거침없는 지껄임은 록의 저항성과 파괴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서태지는 궁극적으로 '발해를 꿈꾸며'나 '널 지우려고 해'에서와 같은 얼터너티브 성향을 추구한 듯 하다. 그것은 4집의 '시대유감'과 '필승'에서처럼 하드코어적인 이미지와 함께 완성되어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헤체이후 발매된 솔로 음반에서는 '컴백홈'같은 힙합요소는 완전히 거세되고 완성도 높은 모던록을 보여주고 있다.

서태지의 수많은 공적중에 가장 위대한 점은 록의 제도권화일 것이다.

서태지 이후 대중의 귀(특히 10대)는 록에 관대해졌다. 일부 메니아에 국한되었던 록음악이 공중파를 탈수 있었고 90년대 중반이후 시나위의 재결성과 윤도현 밴드의 활동이 가능했으며 인디록의 탄생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비록 서태지로 인해 주류의 음악이 천편일률적으로 댄스화가 되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결코 서태지의 음악은 '댄스를 위한' 음악이 아닌 근본적인 록의 정신을 갖춘 음악이었다.

넥스트와 서태지의 열풍에 90년대의 록은 자극적인 성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는 70년대부터 면면히 이어온 포크계의 침체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90년대 초반의 포크는 김광석이 혼자 짊어지다시피 했다. 그와중에 강산에 등장은 신선하고 작은 충격을 주었다.조용히 발매된 강산에 1집은 소비성향이 짙던 90년대 주류의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진 분위기였다. 목소리는 김현식 분위기에 음악 스타일은 들국화의 전인권과 많이 닮아있었다. 한마디로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정서를 제대로 표현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수박'과 '에럴랄라'에서 거침없이 내뱉어내는 보컬은 '그래 노래란 이런것이야'를 느끼게 한다. 특히 '라구요'의 노랫말과 멜로디는 성인취향에 맞아떨어져 라디오 리퀘스트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강산에는 90년대식 포크록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만일 그가 없었다면 이 땅의 록은 그저 강하고 직선적으로만 발전했을 것이다.

강산에의 포크 사운드는 매우 소박하고 정겨웠다. 1집의 성공으로 기획사의 의도가 많이 반영된 두번째 앨범에서 '너라면 할 수 있어'가 성공하지만 강산에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기엔 너무나 아쉬운 졸작이었다. 그러나 강산에는 3집 '삐따기'와 4집 '연어'를 통해 여전히 훌륭하고 완성도 높은 포크록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엔 자신의 음악적 모태인 한대수의 음악을 위주로 한 리메이크 앨범까지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80년대식 모던포크는 조동진, 시인과 촌장류의 서정적인 부류와 노찾사를 중심으로 한 메세지 송으로 양분되었다. 그중 메세지송의 대부는 싱어송라이터 안치환이었다. 노찾사의 주옥같은 곡을 작곡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한 안치환은 1,2,3집에서이전 노찾사의 분위기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다. 물론 '소금인형'이나 '귀뚜라미'식의 서정적 멜로디도 있었지만 그것은 일부였을 뿐 여전히 안치환은 '철의 노동자'가 어울렸었다.

그러던 중 그의 네번째 앨범에서는 확연히 사운드를 일신하여 포크로커로서 대변신에 성공한다.

여전히 가사는 사회참여적인 메세지가 주를 이루었지만 통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고 목소리도 힘차게 바뀌었다. '수풀을 헤치며'와 '당당하게'는 포크록으로서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안치환의 음악의 영원한 화두는 시인 김남주이다.

물론 80년대 대학생중 김남주의 시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겠지만 안치환은 김남주의 시에 노래를 붙이는 작업을 여전히 좋아한다. 특히 5집에서 '희망은 있다'에 일렉기타 사운드를 입혀 멋진 녹을 만들어냈다. 안치환은 현재 여섯장의 정규음반을 만들었는데, 4,5,6집은 음악적 성향으로 볼 때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 좋다.

4집의 포크록 성향이 점진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단계인 셈이다.

특히 5집에서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같은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명곡을 생산하기도 했다.

90년대 한국록을 거론할 때 넥스트와 서태지 중심의 강렬한 사운드를 거론하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인데, 강산에와 안치환의 포크록 사운드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포크는 이 땅의 대중음악의 한 축으로 포크를 90년대식으로 발전시킨 강산에와 안치환 역시 한국록 역사에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후반 - 그리고 새로운 대안

서태지의 등장은 이 땅의 록이 주류 문화속에 자리잡을 수 있는 원동력을 주었다.

'하여가'의 대히트는 이태섭의 화려한 기타솔로를 이 시대 대중(특히 10대)의 귀에 적응시킬수 있었고 '교실이데아'를 통해 안흥찬의 동물적인 보컬도 라디오 전파에 어울림을 주었다. 덕분에 대기업 라이센스인 SKC에서는 헤비메틀 음악에 관심을 기울였고 전문 메탈 레이블인 메탈포스를 만들었다.

메탈포스는 소위 2세대 메탈 연주인들에 관심을 기우리면서 그 첫번째 작품으로 수도권 등지에서 독자적인 라이브 활동을 펼치던 신예 '크래쉬'를 발굴한다.

물론 메탈리카나 메가데스가 국내에 수많은 메니아를 거느리고는 있었지만 사실 크래쉬의 성향은 국내 환경에 그다지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멜로디를 전혀 무시하는 스래쉬 메틀 보다 한 층 더 과격한 데쓰메탈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이 좋았는지 서태지의 '교실이데아'에 크래쉬가 참여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서태지 라이브 콘서트에 세션을 참여해서 '교실이데아'를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정말 멋지게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콜린 리차드슨이라는 프로듀서를 영입하여 녹음 자체의 질적 향상을 꾀하기도 했다.

데뷰앨범의 'Scream', 'Smoke on the water'와 유일한 우리말 노래인 '최후의 날에' 등은 정말이지 혁명적인 사운드였다. 2집에서는 실험적으로 하드코어를 하기도 했고 3집은 1집의 콜린 리차드슨을 재영입하고 영국에서 녹음을 하여 완성도를 매우 높였다. 특히 안흥찬의 음산하고 퇴폐적인 보컬에 스래쉬 기타리듬이 돋보이는 '무상'은 압권이다. 비록 94년 데뷔당시에는 애송이에 불과하고 운이 좋아 메탈포스와 서태지의 영향으로 성공한 케이스로 절하되기도 했지만 이젠 크래쉬의 안흥찬은 국내 최고의 뮤지션으로 성장했다.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스래쉬/데스 메탈 뿐만아니라 하드코어와 테크노까지 장르 확장을 꿈꾸고 있는 안흥찬의 노력이 있는 한 크래쉬의 혁명은 계속될 것이다.

90년대 후반 가장 완전한 헤비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를 꼽는다면 단연 노이즈가든이다. 윤병주의 화려한 테크닉과 박건의 파워보컬은 단연코 현존 밴드중 최고이다. 사운드가든이나 엘리스 인 체인 등의 카피밴드에 불과했던 노이즈가든은 톰보이 록페스티벌에 참가해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프로 음악세계에 데뷰했다고 한다.

노이즈가든 사운드의 핵은 역시 윤병주의 기타에 있다. 윤병주 기타의 매력은 물론 화려한 테크닉에도 있겠지만 독특한 톤에 있다. 기타리스트의 능력중에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사운드 메이킹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미페이지를 보라. 테크닉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레드제플린의 10년 역사속에 일정한 기타 톤은 제플린 음악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었다)

그런 면에서 윤병주는 국내 몇 안되는 독창적인 톤을 지는 연주가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기타연주만 놓고 볼 때 노이즈 가든의 1집과 시나위 6집이 90년대 음반중 최고작으로 뽑는다. 1집에는 90년대를 대표할 만한 명곡들이 많이 실려있는데, 특히 점층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유혹'이 베스트이다.(레드 제플린의 케시미어를 연상시킨다.) 물론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타협의 비','말해봐' 등도 훌륭했다.

최근 발매된 2집은 윤병주 기타 톤을 더욱 확고히 했고 새로운 시도로 세기말 최고의 화두인 테크노에 대한 접근이 눈에 띈다. 이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제발이지 지속적인 활동이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이미 밴드의 이합집산으로 인한 음악의 붕괴를 80년대 헤비메틀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던록의 새로운 시도로는 델리 스파이스와 이한철을 거론할 필요가 있다.

김민규, 윤준호로 구성된 델리스파이스는 1집을 통해 모던록의 가능성을 충분히 시험해

보았다. '노캐리어'와 '차우차우'가 FM전파를 탈 수 있었고 또 완성도도 매우 높은 성공작이었다. 또 이들에게서 중요한 점은 한국식 모던록의 완성이다.

물론 H2O 2집에서부터 모던록 스타일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서태지와 넥스트를 거치면서 다소 모던록의 대중적 이해가 크지 않았는데 델리 스파이스의 완성도 높은 음반작업으로 인해 후배 밴드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이후 등장하는 인디록 밴드들에게 음악적 방법론을 제시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델리 스파이스는 99년 두번째 앨범을 발표하는데 녹음의 완성도에서 1집을 압도한다.

단연코 99년 최고 음반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꽉찬 기타 사운드와 뛰어난 편곡력이 보인다. '원한다면','종이비행기','회상' 등 좋은 곡이 많이 있다.

반면 이한철은 델리스파이스보다 먼저 등장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철저히 무시된 안타까운 뮤지션이다. 대학가요제를 통해 등장했고 걸죽한 사투리의 입담으로 토크쇼에 출연하면서 음악성이 평가절하된 불운아이기도 하다.

영화제목을 이용한 1집은 당시 유행하던 얼터너티브를 차용하였으나 '델마와 루이스'가

조금 주목받다 말았다. 96년에는 두번째 앨범'되는 되는거야'라는 걸작을 발표했지만 왠일인지 대중매체는 그를 외면했다. 그러나 이한철 2집은 90년대 베스트 앨범중 하나이다. 신해철이 참여하기도 한 2집은 레게와 테크노를 기반으로 한 훌륭한 펑크록 음반이다.

특히 '애니멀'에서의 변박과 레게의 조화에서 보이는 이한철의 리듬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두통','아야' 등에서의 감각도 훌륭했다.

그의 음악 파트너 장기영과 최근에 '지퍼'를 조직해서 역시 훌륭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지만 왠일인지 미디어는 자꾸만 그를 외면한다. (유일한 히트곡은 지퍼의 발라드 '내가 사랑한 그녀는' 뿐)

언니네 이발관의 아마추어리즘은 90년대 최대의 성과물인 인디록의 탄생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노이즈가든의 윤병주가 프로듀싱해서 완성한 언니네 이발관 1집은 유치한 팀이름에 재켓디자인까지 아마추어 냄새가 많이 난다.

'푸훗'으로 시작되는 음악도 기타를 조금만 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저건 나도 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보컬은 어떤가)

그러나 그들은 '할 줄 알면 해봐'라고 대답할 줄 아는 뮤지션들이었다.

경력 1년 미만의 멤버들이 창작한 열두트랙의 곡들은 테크닉에서 유치할지는 몰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경'의 기타 아르페지오나 '쥐는 너야'의 베이스 드러밍 그리고 '산책끝 추격전'의 사이킬릭적인 이미지 등은 곡 구성의 승리였다.

각각의 곡들도 작사,작곡 식의 일률적인 명시가 아니라 각각 파트의 구성을 담당한 사람을 명시함으로써 앨범작업이 멤버의 공동작업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음악적인 완성도를 떠나 참으로 곡들의 구성만큼은 신선했다.

'푸훗'이 인기를 얻고 네티즌을 중심으로 세인의 관심을 받자 두번째 음반을 제작하지만 1집에서의 신선도는 많이 사라졌다.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마추어 정신으로 무장했던 1집의 구성력은 사라지고 솔로연주가 늘어 2집은 개인적으로 실망을 많이 했다. 아마도 이러한 아마추어적인 음반은 단발적인 작업을 끝을 맺는 것이 더 좋았을 것만 같다.

90년대 이 땅의 록음악에서 최대의 화두는 역시 인디록이다.

저예산 독립음반을 의미하는 인디록은 홍대앞의 록카페 '드럭'에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드럭의 고정출연 밴드인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의 녹음작업을 저예산으로 하고 거창한 홍보나 마케팅 없이 공연장 등지에서 앨범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인디록의 시작이되었다. 인디록의 주된 장르는 펑크록이다.

아무래도 저예산이기 때문에 앨범제작에 있어 걸림돌이 많이 없기 때문에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기 때문에 아마추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펑크가 인디록의 주류 장르로 정착할 수 있었다.

드럭이 '아워 네이션'이란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음반작업을 하면서 크라잉 넛이나 노 브레인 같은 밴드 대중에게 익숙하게 되었고 재머스,S&H,블루데빌 등 많은 클럽에서 수많은 실력파 아마추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단군이래 가장 많은 밴드가 결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홍대앞 클럽가는 호황을 누렸다. 이들 인디밴드들 중에 주목할 만한 밴드를 꼽으면 허클 베리핀, 노브레인, 레인리 선, 미선이, 토스트, 새드 리전드 등이 있다.

특히 최근들어서는 메이져 레이블을 통해 '인디파워 1999'라는 컴필리언 음반이 제작되는 등 메이저로의 등극도 눈에 띈다. 그리고 장르도 펑크에서 테크노와 하드코어 심지어 힙합으로 까지 확장되면서 점차 인디록도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정착되는 느낌이다.

이는 상당히 바람직한 것으로 아마추어들의 무대와 음반작업을 적은 예산으로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은 향후 이 땅의 대중음악에 질적 향상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90년대 후반에 기존 뮤지션들의 활동으로는 시나위와 봄여름가을겨울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10주년 기념음반에서 기존의 재즈와 블루스 위주의 음악에서 복고적인 록 사운드를 선사하는데, 많은 후배 뮤지션이 참여해서 완성도를 높여 주었다.

신대철이 이끄는 시나위의 활동 재개는 상당히 의미있는 행보였다.

시나위의 재결성은 신대철이 손성훈의 솔로 음반을 프로듀싱하면서 알게된 뮤지션들과 의기투합해서 재결성되었다.

4집의 실패와 함께 80년대 헤비메틀 시대가 끝나면서 시나위도 함께 사라졌다.

블루스 록 밴드 '자유'를 결성하기도 한 신대철은 결국 자신의 음악의 본류인 시나위의 이름으로 다시 컴백했다. 손성훈과 함께 한 5집은 시대적 영향으로 그런지 스타일로 제작되었다. 화려한 신대철의 테크닉이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당시 그런지 스타일의 연주도 거의 독보적이었다. 비록 손성훈의 개성없는 보컬이 아쉬웠지만 '매맞는 아이'와 '상심의 계단'등은 괜찮았다. 그뒤, 김바다를 새로운 보컬로 영입하고 제작한 6집은 시나위 2집이후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명반이다.

노이즈가든 1집과 더불어 90년대 최고의 록 음반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예전 시나위에 비해 현실 참여적인 가사가 일단은 눈에 띄고 블루스 필을 기반으로 한 얼터너티브 사운드는 잘 다듬어져 있다.

김바다의 보컬도 걸죽하고 퇴폐적으로 매력이 있었다.

'죽은나무', '서커스' ,'해랑사' 등이 베스트 트랙이다.

현재는 70년대 사운드를 재현하는 7집 '사이키델로스'를 발표하고 80년대 이루지 못한 일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잦은 멤버 교체로 시나위의 정통성을 본다면 오히려 김종서 밴드(김종서,김영진,김민기 등 기타를 제외한 부분이 모두 전 시나위 멤버들이다.)

보다 현 시나위가 처질지는 모르지만 시나위의실질적인 주체인 신대철이 이끄는 시나위는 분명 80년대부터 이어저오는 한국 록의 역사임에 틀리없다.

이런 전통있는 밴드가 우리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네이버지식인 zzonga7777님 답변 참고

200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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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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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답변

제가 딱짤라서 말씀드릴게요

 

젊음의 힘은 바로 락! 입니다.

200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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