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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동맹과 삼국협상의 충돌
3B 정책과3C정책의 충돌 해외식민지 쟁탈
제국주의 확장정책으로 말미암아 영국과 독일은 얼마후 제1차세계대전에서 각각 3국협상과 3국동맹의 일원으로 전쟁을 하게 되었으며 이는 유럽의 강국이라 자부하는 영국과 독일의 식민지 재정책의 결과입니다
영국은 전세계곳곳에 식민지를 경영했지만, 다소 늦은 근대화와 통일로 뒤처져있던 독일은 식민지 확보를 하려고 하면 영국이나 프랑스가 방해를 하게되어 영국 프랑스가 관심을 갖지않은 지역을 선택하게된것입니다
1880년대부터 시작된 영국의 3c정책과 독일의 3b정책이었으며 각각 카이로(Cairo)ㆍ 케이프타운(Capetown)ㆍ 캘커타(Calcutta)를 연결하여 아프리카와 인도양의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것과 베를린(Berlin)ㆍ 비잔티움( Byzantium)ㆍ바그다드(Baghdad)를 연결(철도부설)하여 소아시아와 중동지방의 팽창 즉 근동지방확장을 목적으로 한 것이 바로 독일의 3B 정책입니다
이런 확장 정책은 다른 경쟁국들과의 마찰도 있었지만 , 1890년대에 들어오면서 독일의 공업과 무역이 영국의 구세력을 위협하자 더욱 첨예화하였으며, 군비경쟁으로까지 확산 되었습니다
1차대전은 영국과 독일의 직접 대립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보면 합스부르그 왕가와 영국 프랑스의 부루봉 왕가의 대결이었습니다 여기에 러시아의 남진정책이 물려 영국 독일은 다시 러시아를 저지하는데 협력하게되었으며 이런 밀월이 끝나자 세계대전의 시작이 바로 식민지 쟁탈전의 전초였습니다
20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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