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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쓰는 이작가 Jul 17. 2018

하온이와 병재

젊은시인의 발견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

왼쪽이 김하온이.

법륜스님이 또 어느 사연많은 중생에게 해준 말인가 하겠지만 이것은 고등래퍼2의 김하온의 자기소개랩이다. 태극권을 하는 명상가요, 삶을 여행하는 여행가라고 자신을 말하는 김하온은 2000년생이다. 밀레니엄 어쩌구로 세상이 흥분했던 그 해, 직전의 1999년의 마지막 날 자정이 되면 선택받은 자들만 하늘로 올라갈 거라는 신흥 종교 단체의 신도들이 새 옷 입고 하늘 갈 준비하고 그랬는데, 그냥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고 밥 먹고......오늘 김하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주 그냥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심지어 오늘 처음 봤는데도) 랩배틀대회에서 독야청청 '삶을 유영하라' 하던 김하온을 보며, 가끔 마음 답답한 날은 "아오-! 이거 김하온한테 물어보고 싶다!" 생각할 정도로 김하온은 독창적이었다. '화가 나면 자신을 타인처럼 객관화해서 보라'던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라던가'  매회 받아적어야 마땅한 명언들을 툭- 던져주곤 했는데, 하온이의 이런 생각들은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라는 일명 러시아판 시크릿에서 영향받은 것이라고 한다. 내가 그 책 저자라면 당장 한국의 김하온을 찾아서 씨바쓰바하면서 유닛 무대라도 설 텐데. (미안하다 하온아. 이런 날 그냥 나로써 받아들여..)  


사실 자기계발서에 빠진 청소년 정도로 실망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회에 하온이의 일년 전 이야기를 보고 상당히 놀랐다. 1년의 김하온은 고등래퍼에 예선에 나온 자신감 없는 랩지망생(?)이었고, 당연스레 통편집 됐었다. 근데 세상에 사람이 고작 1년이란 시간 안에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일단 꽂히면 머릿속까지 바꿔버릴 수 있는 게 젊음의 유연함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하온이의 비포에프터까지 보고 나니 무려 세권짜리 자기계발서를 읽어볼 마음까지 들었으니까.


No Pain, No Gain 의 프레임을 깨닫고 지금처럼 즐겁게 랩을 하게 됐다는 하온이. 그 애의 비행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오른쪽이 유병재 아니고 이병재 또는 빈첸

이런 어린 철학자의 곁에 '이병재'라는 친구가 있다. 원래 친구는 아니고, 빈첸이라는 이름으로 고등래퍼에 나와 준우승을 한 마찬가지로 2000년생이다. HOT시절 장우혁의 독수리 앞머리를 하고 나타나 온 몸으로 '나는 중증 우울증이다!'라고 외치며, 자주 자신의 오른팔의 자해흔적에 대해 랩으로 이야기하는 병재를 보며 중2병이 고착화된 흔한 자퇴생이라고 생각했다.

알아,알아...청춘이란 밑도끝도 없는 비극이고 싶어하는 시절이지 인마....하면서, 감흥 없이 20년쯤 교사생활을 해온 담임 선생 같이(과목은 잘 모르겠다) 생각할 때, '그대들은 어떠 기분이신가요'를 들었다.


제 위치는 합정역7번출구 도보4분 정도 거리 지하방 대각선 방향에는 메세나폴리스 거기 사는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 신호를 기다리며 바라보면

괜시리 허무한 느낌이 들고 여러 감정이 오가요 그대들의 돈은 노력인가요 집안인가요 그걸 떠나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


뭐..이러면서 이병재식으로 웅얼웅얼하는데, 그냥 내가 그 동네에 살았어서 그런건지 뭔지, 아무튼 내가 그 애가 그 곳을 보던 횡단보도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주상복합이 들어선다던 몇 년의 공사장을 지나다니다 어느 날, 거대한 오픈 행사 처럼 열린 고급 아파트의 쇼핑몰에는 자주 행사가 열리고 가끔 연예인 부부들도 보였다. 나는 그 동네에 집도 없으면서 괜히 밀려난 토박이 같은 기분이 들어 괜히 '끝까지 지키고 있던 마포만두가 용자'라며 하잘데기 없는 농담이나 치곤 했다. 어느 날은 자리에 있던 음식물쓰레기통이 그 아파트 주차장 자리 때문에 사라져서 냅다 경찰서에 들어가 함부로 자리를 바꾸면 어떠냐고 따지기도 했었다. 그런 내 마음이 사실 저랬나 보다. 이거저거 다 떠나서, '저기 사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내가 빈정대는 농담으로나 겨우 받아치던 진짜 마음 같은 걸,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태연함에 놀란다. 저리 꺼지라면서도 관심 받고 싶어하고, 불행한게 나답다고 하면서도 행복을 갈구하는 게 너무나 드러나는데. 잘 먹고 잘 사는 놈들 배알꼴려 하면서도 만원 짜리 오도로를 먹고 느끼는 자본주의적 행복을 아무렇지 않게 자랑하는 2000년 생의 두서없는 욕망이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 그냥 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이라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다. 그런 기분이라면 좀 슬프긴 하지만.


노골적인 욕망과 돈과 행복과 기쁨과 좇같음이 공존할 수 있는 스무살의 생동감. 전혀 다른 타입의 두 사람 같은 한 사람들. 하온이와 병재의 랩을 읽는다. 랩을 쓰자! 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랩몬스터가 왜 공부 관두고 랩한다고 했는지도 알 것 같다. (미안해 병재, 넌 이쪽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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