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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김천의 유명한 문화재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696 작성일2008.05.23

빨리용

급해요 김천의 유명한 문화재 알려주세용

내공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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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n****
수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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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금동육각사리함

 

종 목 국보 제208호

지 정 일 1982.12.07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직지사

시 대 통일신라

 

경상북도 선산군 도리사에 있는 종 모양의 세존사리탑 안에서 발견된 사리함이다.

 

사리함은 높이 17㎝로 기단, 탑몸,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고, 표면에 도금이 잘 남아 있다. 평면 6각형으로 각 면의 기단에 안상을 뚫었다. 2면의 탑몸에는 불자와 금강저를 든 불교의 수호신인 천부상을 선과 점으로 새겼다. 남은 4면에는 사천왕상을 선으로 새겼다. 이들의 배치는 사천왕상 중에서 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천부상을 배치하여, 다문천이 정면이 되게 한 듯 보인다.

 

지붕 처마와 추녀에는 고리가 있어 장식을 달았던 것처럼 보인다. 꼭대기에는 연꽃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그 중심에 꼭지만 남아 있어 원래 꽃봉오리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8각이 유행하던 시기에 6각형의 사리함이 나타났다는 점이 특이하며, 시대를 달리하는 종 모양 부도에 안치되었던 것도 특이하다 하겠다.


 

2.김룡사 동종

 

종 목 보물 제11-2호

지 정 일 2000.02.15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직지사박물관내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조선 후기의 종 형태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같은 해 만들어진 홍천 수타사동종(보물 제11-3호)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독특하게 표현하였다.

 

이 종은 수타산의 종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사인비구의 작품세계와 조선 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3.오봉동 석조석가여래좌상

 

종 목 보물 제245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남면 오봉리 65

시 대 통일신라

 

갈항사 터에 있는 높이 1.22m의 불상으로 군데군데 파손이 심한 상태이다.

 

둥근 얼굴에 신비스런 미소를 띠고 있으며 눈·코·입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가슴이 발달하였고 허리가 잘록하며, 왼쪽 어깨를 감싼 옷은 굴곡있는 신체에 밀착되어 부드러운 옷주름 선을 나타내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아래를 가리키고 있지만, 오른 손목과 손등 뿐이며 왼손도 일부 깨졌다.

 

불상이 만들어진 시기는 갈항사 3층석탑의 건립 연대인 경덕왕 15년(758)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4.청암사 수도암 삼층석탑

 

종 목 보물 제297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3 청암사

시 대 통일신라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쪽에 서 있는 쌍탑으로,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전해온다. 앞 뜰이 좁아서 탑과 법당과의 거리가 가깝다.

 

동탑은 단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얕게 새겼다. 탑신부에서는 1층 몸돌이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각 면에는 4각형의 감실(불상을 모시는 방)을 두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2·3층의 몸돌에는 각 모서리 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받침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크게 줄었으나 3층 몸돌은 2층과 비슷하다. 1층 몸돌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만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 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동탑보다 얇고 넓으며 밑받침은 5단이다.

 

두 탑은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며, 곳곳에서 특이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동탑은 1층 몸돌의 위가 좁고 감실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고 서탑은 지붕돌 밑의 간격과 지붕돌이 넓다는 것이 특징이다.

 

 

5.방초정

 

종 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

지 정 일 1974.12.10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83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이정복이 조상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2층 누각이다. 몇 차례의 화재와 홍수로 파손된 것을 정조 11년(1787)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다락집으로, 2층 가운데 1칸을 방으로 만들어 꾸민 것이 특이하다. 가운데 부분에 사이기둥을 세우고 벽을 쳐서 문짝을 단 것인데, 뒷날 몇 가지의 구조물들을 첨가되어 구조상 어색한 점도 있다.

 

많은 시인들이 정자에 올라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시가 건물 안에 걸려있다. 앞에는 커다란 연못이 꾸며져 있으며 그 안에 2개의 섬이 있다.

 

건물·연못·나무의 배치 등은 우리나라 정원의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6.직지사 대웅전

 

종 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5호

지 정 일 1985.12.30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시 대 조선시대

 

직지사는 418년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하며 절의 이름은 아도화상이 절터를 손가락으로 가르켰다는 뜻에서 직지사라 부른다.

 

직지사 대웅전은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어 그 모습이 화려하다.

 

내부에는 원래 석가모니불상만을 모시나 이곳에는 약사·석가·아미타불의 세 불상을 모시고 있다. 또한 영조 20년(1744)에 만들어진 불화도 있는데 6m나 되는 비단 위에 그려졌다. 이 불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왼쪽은 약사불화, 가운데에는 석가후불탱화, 오른쪽은 아미타탱화가 있다. 모두 짜임새 있는 구성과 불·보살상의 뛰어난 묘사, 안정감 있는 색깔, 정교한 장식표현 등이 조선시대 후기 불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직지사 대웅전은 짜임새 있는 규모와 화려한 모습 등 뛰어난 건축미를 보여주는 조선 후기(18세기)의 건물이다.

 

7.봉황대

 

종 목 문화재자료 제15호 

지 정 일 1985.08.05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교동 820-1

시 대 조선시대

 

연화지 가운데 있는 정자로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서 옛 선비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토론했던 장소이다.

 

처음에는 삼락동 마을에 세워 흡취헌이라고 부르다가 군수 윤택이 봉황이 나는 꿈을 꾸고 좋은 징조라 해서 봉황루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영조 47년(1771)에 고쳐 세우면서 ‘봉황대’라고 이름을 고쳤다. 그 뒤 정조 16년(1792)에 고쳤으며,헌종 4년(1838)에는 군수 이능연이 연화지 못 가운데로 옮겨 세웠다. 또한 고종 33년(1896)에 다시 고쳤고 1978년에 김천시에서 고쳤다.

 

건물 규모는 앞면·옆면 3칸 2층 누각이며,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8.지례향교 대성전

 

종 목 문화재자료 제118호

지 정 일 1985.08.05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지례면 교천리 739

시 대 조선시대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지례향교는 조선 세종 8년(1426)에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1592) 때 불탄 것을 숙종 16년(1690)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다. 안에는 묵판음화의 공자 영정이 보관되고 있었는데, 1978년 도난당하였고 지금 있는 공자상은 이것을 대체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9.금산향교

 

종 목 문화재자료 제257호

지 정 일 1992.07.18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교동 437

시 대 조선시대

 

금산향교는 조선 태조 1년(1392) 처음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인조 12년(1634) 대성전과 명륜당을 다시 지었고 동재·서재, 동무·서무, 묘문(廟門) 등을 복원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그 당시에 지은 것이다.

 

제사지내는 공간인 5칸의 대성전과 동무,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7칸의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남아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10.직지사 대웅전앞 삼층석탑

 

종 목 보물 제606호

지 정 일 1976.11.30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시 대 통일신라

 

직지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2기의 석탑으로, 원래 경북 문경의 도천사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두 탑 모두 각 부분의 양식이 같아서 1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다.

 

여러 장의 넓적한 돌로 짜여진 기단은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뚜렷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얇고 평평한 지붕돌의 밑면 받침으로 1·2층은 5단, 3층은 4단을 두었고,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에 올려진 거대한 모습의 머리장식은 1976년 탑을 옮겨 세울 때 새로 만들어 장식해 놓은 것이다.

 

탑신의 1층 몸돌 높이가 지나치게 높긴 하나, 전체적으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기단이 1단이고, 지붕돌의 들린 정도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11.직지사 비로전앞 삼층석탑

 

종 목 보물 제607호

지 정 일 1976.11.30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시 대 통일신라

 

직지사 비로전 앞에 세워져 있는 3층 석탑이다. 1974년 대웅전 앞 3층석탑 2기와 함께 경상북도 문경 웅창마을 북방 금강가의 옛 도천사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다.

 

바닥돌은 넓적하게 짜여져 있으며, 그 위로 여러 장의 석재를 조성한 2단의 높직한 괴임을 두어 기단을 받치고 있다. 기단은 몇 개의 널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뚜렷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다. 지붕돌은 얇고 평평한 편으로 밑면의 받침을 5단씩 두었고, 날카롭게 들린 네 귀퉁이로 인해 경쾌함이 느껴진다.

 

탑신의 1층 몸돌이 2·3층에 비해 매우 높으나, 전체적으로 비례가 적절한 세련된 모습으로, 9세기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2008.05.23.

  • 출처

    It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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