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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Aug 24. 2018

아드리아해의 진주

2.18. 두브로브니크-스플릿

전날 이태리 바리에서 출발한 페리가 아침 7시경에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6시쯤에 일어나서 미리 아침을 먹기로 했다. 예전에 타봤던 실자라인(헬싱키-스톡홀름)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는데, 페리라고 다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배 안의 시설이나 식사 등 모든 것이 그때보다는 못한 거 같고 특히 배의 엔진 소음과 진동이 너무 심해서 잠을 설치는 바람에 좀 피곤하고 멍한 느낌이다. 세월호 생각이 나서 좀 걱정되기도 해서 더 피곤한 거 같다.


전날 배 안에서 한국인 여행객들을 여럿 보았었는데 아침을 먹다가 그 중 한 가족을 다시 만나서 무의식적으로 눈인사를 했더니 아저씨가 깜짝 놀란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눈만 마주치면 인사하는 경우가 많아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인데, 아저씨가 깜짝 놀라니 내가 오히려 무안해진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해변도시로 버나드 쇼가 지상의 낙원이라고 칭했을 정도이다. 특히 도시를 감싸는 성곽이 바다에 면해 완벽하게 남아있는 요새 도시인데 얼마 전 보았던 생말로와도 비슷한 데가 있다. 


특이한 점은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집들의 지붕이 거의 모두 짙은 오렌지색으로 되어 있어서 멀리서 보면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나중에 보니 이곳뿐 아니라 크로아티아의 거의 모든 지역의 지붕들이 다 비슷한 색깔인 것 같다. 



아드리아해 하면 생각나는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이다. 대학시절 화질이 떨어지는 복사판 VHS 테잎으로 붉은 돼지를 보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드리아해 주변에 대한 아름답고도 이국적인 묘사에 막연한 동경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주인공 돼지가 가장 친한 친구를 전쟁으로 잃고 스스로 모습을 돼지로 바꾼다는 특이한 설정을 가진 일종의 반전 영화인데 정작 이곳 크로아티아는 과거 유고내전의 참화를 도시 곳곳에 간직한 것이 아이러니다.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은 두브로브니크를 7개월간 봉쇄하고 포탄을 날려서 도시의 반 이상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내전 종료 후 도시가 거의 완벽하게 복구되었지만 아직도 당시의 탄흔을 가지고 있는 건물들이 일부 그날의 아픔을 간직하고 남아있었다..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성곽투어를 하기 위해 메인 게이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일요일이라서 주차비를 안 내도 될 거 같았지만 단속하는 사람인 듯한 사람이 차 안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며 뭔가 적고 있길래 물어봤더니 자기한테 주차비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봐도 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두 시간 동안의 주차비를 미리 주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이라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아서 한가하게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성 위로 올라가서 둘러보니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짙은 오렌지색 지붕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특히 성 바깥에 바다에 면한 흰색 절벽에 매달려 있는 카페 들이 인상적이었는데, 환상적인 경치도 좋거니와 카페에서 바로 바다로 다이빙을 할 수 있어서 시간만 많다면 하루 종일 쉬었다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곳이었다. 성 한 바퀴를 다 돌려면 두 시간이 걸린다는데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중간에 내려와야 했다.


두브로브니크 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과 눈부신 아드리아해


구 시가지와 성곽 위를 둘러본 후 도시 뒤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스르지산 전망대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케이블카 요금도 성곽투어 요금과 마찬가지로 이곳 물가를 고려하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올라갈지 잠시 망설이다 올라 갔는데, 안 왔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멋진 광경이었다. 


짙은 오렌지색 구시가지와 푸른 아드리아해 바다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광경은 과연 버나드쇼가 말한 지상낙원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드리아해와 드브로브니크 성곽


스르지산의 케이블카


산 꼭대기에 위치한 노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두브로브니크를 내려다 보던 순간은 이번 여행에서 행복한 순간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참을 내려다 보던 와이프가 어느 순간 눈물을 글썽이고 있길래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했더니 너무 감동적이라고 한다. 속으로 그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했지만 멋진 풍경인 것은 분명했다. 



감동적인 두브로브니크를 떠나 아드리아해를 따라 스플릿을 향해 이동했다.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릿을 연결하는 이 해안도로 또한 앞서 달렸던 아말피 못지않게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드라이빙 코스로 꼽히는 곳이다.  


이곳은 아말피 해안도로에 비해 도로가 훨씬 넓고 차도 적어서 운전의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아말피에서는 차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신경을 곤두세우고 앞만 보고 달리느라 아름다운 경치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여기는 길도 넓고 차도 별로 없어 한결 여유있게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었다. 


길가에 아무데나 있는 이름모를 해변


가는 내내 그림 같은 해변들이 수없이 길가에 널려 있어서 아무데나 차를 세워놓고 이름 모를 해변에 누워 쉴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아말피와 달리 거의 개발이 되어있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는 느낌인데, 먼 훗날 다시 찾아왔을 때도 개발되지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해변


점심을 먹으려고 한적한 해변가에 차를 세우고 수풀 뒤쪽으로 갔더니 발가벗고 바닷속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커플이 있다. 우리가 당황해서 얼른 자리를 피했는데, 이 커플이 발가벗고 놀고 있는 위치가 길에서 보이는 곳인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 


이쪽 해변 길에는 이렇게 이렇게 아무것도 안 입고 그냥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중에 돌아와서 해변을 찍은 사진들을 확대해보니 발가벗은 사람들이 구석구석에 꽤나 박혀있었다. 우리 어릴 때 유행했던 ‘월리를 찾아라’ 처럼 나중에 사진을 확대해서 보며 발가벗은 사람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해변을 찍은 사진을 나중에 확대해 보니 이런 아저씨가 찍혀있었다


해변 도로에서 만난 다양한 풍경들


집앞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두브로브니크에서 스플릿을 향해 가다 보면 보스니아 영토를 잠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 나온다. 어쩌다 국경이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는데, 크로아티아에서 보스니아로 출국하자마자 얼마 안 있어서 바로 다시 크로아티아로 입국해야 하는 재미있는 곳이다. 


차를 타고 가다 보니 국경인듯한 곳이 나타나서 조금 긴장했는데, 입국심사를 담당하는 직원에게서 옛 사회주의 국가의 경직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드라이브인 패스트푸드점처럼 차를 탄 채로 여권을 보여주면 출국심사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창으로 몇 미터 더 가서 여권을 보여주면 그게 입국 검사였다.


재미있는 광경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와이프가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 카메라로 입국 심사를 하는 장면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웃으며 포즈까지 취해주는 크로아티아 출국 심사 직원과는 달리 보스니아 쪽 입국 검사관은 정색을 하면서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알았다고 말하고 핸드폰을 내렸지만 이미 찍은 사진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전부 지우라고 위압적으로 말한다. 그제서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찍은 사진을 심사관이 보는 앞에서 지우고서야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이것도 입국 검사인데 너무 생각 없이 행동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와이프는 입국 심사대를 통과한 후에야, 


“히히, 하나 더 남았는데..” 라며 지우지 않은 사진이 남아있다고 좋아했다. 



크로아티아는 해변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산과 호수 등도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경치를 자랑한다. 해안도로의 중간쯤에서 만난 산 위의 이름 모를 호수는 색깔이 다른 두 개의 호수가 붙어있는 특이한 광경이었는데, 하나는 코발트 빛을 띠고 하나는 청자색을 띠는 두 호수가 스위스의 인터라켄처럼 거의 붙어있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던 특이한 모습이기도 하고, 인적이 드문 호수의 주변이 너무나 평화로워서 다음 번에 오게 되면 꼭 한번 오랫동안 쉬어가고 싶은 곳이었다


두가지 색 호수가 붙어있는 특이한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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