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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유명관광지 알려주세요!!
김지우 조회수 509 작성일2018.11.11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유명관광지 알려주세요!!(여행코스로 나타내 주시면 더욱 좋구여 ㅎㅎ)

(예:@@@ -> ### -> $$$) 내공 50입니다!!!!

최대한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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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an****
수호신
강원도여행 1위, 무역 7위, 원주시 5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주변에 관광국들도 많은데 어떻게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를....

하필이면 코트라 무역관이 없는 나라라서 국가정보를 정리해놓은 곳이 없어서

조각으로 자료를 첨부할 수 밖에 없네요.


일단 북부 이슬람계의 보스니아의  남부 카톨릭계의 헤르체코비나가 합쳐진  

1국가 2체제의 나라라는 것과,

이웃 깡패국인 크로아티아의 횡포로 해안가를 거의다 내주어 내륙국가 아닌

내륙국가가 된 슬픈나라입니다. (크로아티아는 해안마을을 관광지로 해서

수입이 짭짤하죠. 심지어 슬로베니아도 해안선이 얼마 안되요.)


1차대전의 발발하게된 계기를 만든 오스트리아 황태자부부 저격사건이 일어난

사라예보를 수도로 하고 있구요. 역사를 보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쉽죠.


시간 많으면 디나르 알프스의 산골마을을 방문하며 다녀도 괜찮기는 하죠.


여행가기 전에 참고할만한 것들입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자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아드리아해 바로 동쪽에 위치하지만 아드리아해에 접한 해안선은 20km에 불과하며 국경선의 대부분이 크로아티아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이다. 북부의 보스니아와 남부의 헤르체고비나로 지방적 특색이 나타난다. 크로아티아와의 국경지대를 흐르는 사바강과 그 지류인 보스나강과 비바스강이 북류하면서 이루어 놓은 북부 평야지대와 남부의 네레트바강 유역평야를 제외하고는 평균 해발고도가 1,000~1,600m의 디나르고원이 위치하는 전형적인 산악국이다. 국토의 척량산맥인 디나르알프스산맥가 뻗어 있고,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되어 있다. 지질 구조상 강한 지진대에 속한다.
기후는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지중해성 기후, 온난습윤기후, 서안해양성 기후가 차례로 나타나고 있다. 즉,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기후적으로 매우 대조적이다. 보스니아는 비교적 온화한 편이나 겨울철 추위는 혹독하다. 반면에 헤르체고비나는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철에는 매우 기온이 높고 건조하나 겨울철에는 온난하고 비가 많이 내려 아열대성 기후에 가깝다. 또 계절풍에서도 헤르체고비나는 남서계절풍인 시로코의 영향을 받는 반면, 보스니아는 북동풍인 보라의 영향으로 피해를 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자연 (두산백과)


사라예보

사라예보 빌딩

위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경위도동경 18°25′0″, 북위 43°52′0″
면적(㎢)141.5
시간대UTC+1, Summer: UTC+2
홈페이지http://www.sarajevo.ba/en/
인구(명)469,400(2011년)

기계·전기·담배·가구 등의 공업과 민예품과 깔개 등의 수공업으로 널리 유명하다. 그리스도교이슬람교의 문화권이 접하는 곳에 위치하여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의 건물이 뒤섞인 진기한 광경을 엿볼 수 있다. 1949년 설립된 대학과 지방박물관, 근대적인 철도역과 비행장이 있으며, 새로운 근대 주택가도 건설되었다.

이곳은 1914년 6월 발생한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사건(사라예보 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시내를 흐르는 밀야츠카 강변에는 이 사건을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고 시내에는 이슬람풍의 거리와 시장, 다수의 모스크·성당 등이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1992년 3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분리·독립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슬람계·세르비아계·크로아티아계 민족 간의 분쟁으로 사라예보는 내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이곳은 1973년 4월 개최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에리사·정현숙 선수 등이 여자단체전을 석권하여 처음으로 한국탁구가 세계제패를 이룬 곳이다. 그리고 1984년에는 이 도시에서 제14회 동계 올림픽이 열리기도 했다.



제니차고라즈데투즐라브르치코비하치프리예도르야이체보산스키 브로트도보이사라예보모스타르바냐루카

[네이버 지식백과] 사라예보 [Sarajevo] (두산백과)


디나르알프스산맥

길이 약 650km. 너비 60∼180km. 평균고도 1,600m. 이스트리아반도에서 남동 방향의 알바니아까지 뻗은 산계로, 가장 높은 산은 북서부에 있는 트리글라프산(2,863m)이다. 산지는 대체로 알프스 같이 험준하지는 않으며, 융기준평원()으로 볼 수 있는 고원상의 산지가 널리 전개되어 있다. 석회암이 널리 분포하여 크고 작은 폴리예(Polije)와 돌리네(Doline)로 구성된 카르스트 지형이 있으나, 특히 북서쪽의 카르스트 지방에서 현저하다.

지하자원으로서는 망간 ·안티몬 ·크롬 ·철 등을 산출하며, 해안산지에서는 발전도 하고 있다. 이 산지의 고도는 그다지 높지 않으나, 남동 유럽의 기후에 크게 영향을 끼쳐, 지중해성 기후와 내륙성 기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아드리아 해안은 상쾌한 지중해성 기후로, 비가 많아 연강수량 1,000∼1,500mm에 이른다.

산자락 일대에서는 포도 ·올리브 ·무화과 등 지중해성 과실이 재배된다. 고산지역의 우량은 연 2,000∼3,000mm에 이르며,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소나무 등의 침엽수림도 볼 수 있다. 산지 대부분은 물의 침투력이 강한 석회암지역이므로 유럽에서 최다우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토지가 건조하여 카르스트 지형과 아울러 황무지와 반건조 초지가 넓게 분포한다.

이와 같은 산간에서는 폴리예와 돌리네의 바닥이나 곡저평야()에서 농경이 이루어지는 외에 양의 목축이 있을 뿐으로 인구밀도는 낮고, 특히 산지 남부는 20∼40인/km2에 불과하다. 산지의 교통이 불편한 데다가 아드리아 해안의 만입도 배후지()의 혜택이 적어 항구도시의 발달이 거의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디나르알프스산맥 [Dinar Alps Mts.] (두산백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역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고대에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슬라브인이 이주해오면서 북부지방의 보스니아는 12세기에, 남부지방의 헤르체고비나는 15세기에 각각 독립하였다. 두 지방은 15세기에 들어와 오스만투르크에 저항하였지만 결국 병합되어 주가 되었다. 
이에 따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다수가 동방교회이지만 이슬람의 영향을 받게 되고 특히 슬라브계통에 속하는 보스니아인들이 이슬람교로 많이 개종하였다. 1875년 투르크 지배에 대한 농민의 반란이 일어나자 러시아-투르크 전쟁의 발단이 되었으며, 러시아가 승리한 뒤 1878년 베를린회의의 결과 두 주의 행정권은 오스트리아 제국에 위임되었다. 그러나 이 지방에서 오스트리아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남()슬라브족의 통일을 부르짖는 민족주의 운동은 세르비아와의 결속을 한층 강화시켰지만 이로 말미암아 오스트리아에 대한 저항을 촉발하는 구심점이 되었다. 1908년 오스트리아가 두 주를 병합한 후, 세르비아인들이 반()오스트리아 비밀결사의 활약을 강화하면서 1914년 6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하여 보스니아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패배하고 민족해방운동이 더욱 활발해져 다민족국가인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형성되고 1918년 12월 1일 베오그라드왕국의 성립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비롯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 있던 남슬라브인들의 땅, 이른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이보다나, 달마티아, 마케도니아가 베오그라드왕국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이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이 왕국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 구소련이 전승국이 된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티토에 의하여 구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이 출범하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이를 구성하는 공화국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민족 공화국으로서 갈등의 씨앗을 내재하고 있었다. 1990년 7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의회 선거에서 공산당이 패배하여 1991년 10월 주권국가의 독립선언을 하게 되자 이를 계기로 내전이 촉발되었다. 1992년 2월 슬라브계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인의 지도부가 공화국 독립의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독립을 결정하자, 세르비아인은 투표를 거부하였다. 구연방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남부슬라브인의 자존심을 지켜온 세르비아인들에게는 연방의 해체가 600여년 전의 1389년 코소보전투에서 이슬람에 패배한 일과 맞먹는 비극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이슬람교· 세르비아정교(세르비아인)· 가톨릭(크로아티아인)의 3종교가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분쟁이 한층 격화되었다. 4월에 EU(유럽연합)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을 승인하자 세르비아인은 북부를 중심으로 ‘세르비아 공화국’ 설립을 선언하였다. 5월에 UN(United Nations: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보스니아의 내전 및 외부개입의 즉각적인 정지를 결의하였다. 7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와 함께 UN에 가입하였고, 7월 크로아티안 세력이 ‘헤르체크 보스나 크로아티아 자치구’ 설립을 선언하였다. 이에 세르비아 세력은 전쟁에 돌입하였다.
EU와 미국은 분쟁의 배후를 조정하던 신유고연방의 세르비아 정부를 비난, 세르비아세력의 팽창을 막는 무력행사 용인을 결의하였고, 1993년 6월 UN은 유엔보호군의 무력 용인 결의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내전해결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았고 8월 크로아티아인 세력이 ‘헤르체크 보스니아 공화국’ 수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이슬람교도·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간 내전이 각 세력의 '인종청소'로 이어지는 등 매우 격렬해지자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1995년 12월 데이턴평화협정을 체결하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연방(이슬람계-크로아티아계 연방)과 스르프스카공화국(세르비아계 공화국)으로 이루어지는 1국가 2체제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크로아티아국의 견제로 아드리아 해안에 면하는 20km의 해안선을 확보하였으나 항구다운 항구가 없어 내륙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역사 (두산백과)


메주고리예 순례지

[Medugorje]

요약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서남부, 치트룩시에 속한 가톨릭 교회 소교구() 명칭이자, 교구 내에 속한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애초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한적한 농촌이었으나, 1981년 성모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가톨릭 신도들의 순례지이자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메주고리예 순례지

원어명Međugorje

메주고리에는 슬라브어로 ‘산과 산 사이의 지역’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해발 200미터 높이의 산악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구 전체 인구가 약 4300명 정도다.

1981년 6월 여섯 아이들이 마을 외곽의 크르니카라는 언덕 위에서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고 주장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처음 목격자는 두 명이었으며, 이후 수 차례에 걸쳐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나타나 기도와 평화의 메시지 등을 전했다는 주장이었다.

아이들의 성모 발현 주장을 놓고 가톨릭 교회와 과학 및 의학계에서 다양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현재까지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부정적이다. 가톨릭 내부 법규에 따라서 해당 교구 주교가 조사하여 1차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이곳 주교가 “초자연적인 존재의 발현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다만 교황청의 직접 조사 가능성을 열어두었으나, 2006년 현재까지 교황청은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신도들의 메주고리예 여행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순례는 금하지만 개인적인 여행은 허락한다는 입장이다.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이 성모 발현을 부정하고 있지만, 일반 가톨릭 신자들은 이곳을 성모발현 성지로 인정하는 경향이 짙다. 항공편은 물론이려니와 철도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도 1981년 이후 수천만 명이 이곳을 다녀갔고, 메주고리예의 관광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방문객이 많아지자 작은 산골 교구 메주고리예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주차시설과 숙박시설, 상가가 들어서 제법 관광지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성모가 발현했다는 언덕뿐 아니라, 십자가의 길,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 교구 교회 및 그 앞의 평화의 성모상 등 다양한 볼거리들을 볼 수 있다. 인근 십자가산의 콘크리트 십자가도 이곳의 명물이다. 1933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우박을 동반한 폭풍우가 멈춘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세운 것으로, 14톤의 콘크리트를 사용해 만들었으며 해발 520미터 높이의 산 위에 서 있다. 메주고리에는 여러 나라에서 오는 순례자들을 위해 다국어를 지원하고 있으며, 화장실 벽화까지도 종교적인 의미를 담아 성모 발현지로서의 면모에 충실을 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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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예 순례지

[네이버 지식백과]메주고리예 순례지 [Medugorje] (두산백과)



모스타르

[Mostar]

요약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서부, 헤르체고비나 지방에 있는 도시.

모스타르(Mostar)

위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서부
인구(명)109,517(2006년)

모스타르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로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으며,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네레트바강() 연안에 위치한다. 주변 일대에서 포도 ·과일 ·잎담배가 재배되고, 담배 ·섬유 ·목재가공 ·비행기 공업도 활발하다. 또 부근에 있는 석탄 ·보크사이트 채굴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중세 건축물이 많으며, 로마 시대의 성(), 1556년 건설된 다리, 터키령 시대의 이슬람교 사원 등이 유명하다. 1878∼1918년 오스트리아 지배 때에는 세르비아 애국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스타르 [Mostar] (두산백과)

네레트바강

[Neretva R.]

요약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흐르는 강.

네레트바 강

국가보스니아
위치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길이약 218km

길이 약 218km. 헤르체고비나의 디나르알프스 산중에서 발원하여 석회암 지대를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남서쪽으로 흘러서 메토코비치를 거쳐 아드리아해()로 흘러든다. 여름에는 수량이 적으나 야블라니차 근처에는 거대한 수력발전소가 있고, 하류평야에서는 면화 ·포도주 등을 생산한다. 네레트바강()이 흐르는 협곡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이탈리아군()과 유격대의 싸움이 있었던 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네레트바강 [Neretva R.] (두산백과)

201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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