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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예멘이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한데요..
ls**** 조회수 7,411 작성일2004.07.08
얼마 안있어 예멘으로 인테리어를 하러가게 됩니다..
근데 한번도 접해본 일이 없는지라 그나라 정보가 부족합니다. 다른 인터넷을 뒤져봐도 자세히 나와있지도 않고 주 예멘 대사관도 1998년에 폐쇠되었답니다..
이제 곧 떠나는데 그곳 사정을 잘 아시는 분들 답변 부탁드립니다.
물가라던가 인건비 자재비등도 알고있다면 사정없이 답변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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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
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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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 사나(Sana'a , 인구 97만명)
◈ 인구 : 약 1,648만명(2000년 기준)
◈ 면적 : 555,000㎢(한반도의 2.4배)
◈ 위치 : 아라비아 반도 서남단 홍해 입구
◈ 주요도시 : 아덴(Aden), 호데이다(Hodeidha), 타이즈(Taiz), 무칼라(Mukalla)
◈ 주요민족 : 아랍인 90%, 인도인.소말리아인 10%
◈ 주요언어 : 아랍어
◈ 종교 : 회교 99%(대부분 순니 샤피파, 북서부 일부지역 시아 자이디파)
◈ 정부형태 : 대통령중심제
◈ 정체 : 공화제

위치와 지형
예멘은 남서아시아(보통 중동이라고 함)에 위치하며 아라비아 반도의 남쪽 끝에 있다. 북동쪽으로는 오만(Oman)과 북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접한다. 예멘 남쪽에는 인도양에 위치하는 아덴만이 있고, 서쪽에 홍해가 있다. 바브엘만데브(Babel-Mandeb) 해협은 홍해에서 아덴만 사이를 연결하며, 예멘과 아프리카 대륙의 경계가 된다. 이 좁은 해협을 가로지르면 아프리카의 지부티(Djibouti), 에티오피아(Ethiopia), 소말리아(Somalia)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예멘의 총면적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멘의 영토에는 또한 하니시섬, 홍해에 있는 카마란섬과 페림섬, 인도양에 있는 소코트라섬이 있다. 예멘의 지형은 산악·고지대·사막·평야로 이루어졌다. 광대한 사막(Empty Quarter)으로 인해 아라비아 반도의 북부지역이 끊겨서 고립되어 있다. 현대의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변하고 있지만 고립을 극복하기는 어렵다. 예멘의 몇몇 산들은 활화산으로 가끔 지진도 발생한다. 예멘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선박항로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관리한다. 바브엘만데브는 홍해와 아덴만을 연결하는 해협이다.

기후
고온건조한 사막, 고온습윤한 해안, 온화한 고지대 등 지형으로 인해 지역에 따른 차이가 크다. 강수량도 서부 고지대의 몬순에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까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산악지대에서는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서몬순의 영향으로 비가 많아 400-1,200mm 내외의 연강수량을 보인다. 그 중 중앙산맥에 펼쳐진 고원지대는 온대에 속하여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쾌적한 지역이다.

모카 커피와 예멘
우리 일상생활에서 예멘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바로 모카빵, 모카커피 등에 쓰인 ‘모카(Mocha)’라는 말이다. 모카(Mocha)는 예멘 남서안의 항구도시로 아라비아어로는 무카(al-Mukh)라고 한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북쪽 70km에 있으며, 중세에는 양질의 커피 수출항으로 알려져 ‘모카커피’라는 이름을 남겼다.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무역기지가 건설되었으나, 19세기부터 북쪽의 호데이다(Hodeidha) 및 남쪽의 아덴(Aden)이 발전하면서 쇠퇴하였다.

출입국시 주의사항
예멘은 2001.9.11 사태이후 테러범 입국을 차단하기 위해 일부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으며 공항, 국경 등의 검색을 강화한 상태임.(특히 파키스탄, 이란 여행자는 입국불허하고 있으니 : 여권상 파키스탄, 이란 여행사실이 기재되어 있는지 확인) 예멘은 외국인 납치가 종종 발생하며, 최근에는 정부의 대테러 투쟁으로 정부와 부족간의 충돌도 있었던 바, 방문시 각별히 유의. 현지 거주 재외국민을 통해 사전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안임.

종교, 풍습, 법규, 관습 주의사항
o 남예멘 지역이 과거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방적이며 자유가 많음.
o 종교는 이슬람교으로 코란에 저촉되는 행위 및 공개된 장소에서의 음주는 반감을 살 우려가 있으며, 보편적으로 국민성은 온순, 소박, 친절한 편이나, 다른 이슬람국가와는 달리 외국인에 대해 부당 요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음.

건강 유의사항
o 특별한 풍토병은 없으나 해안저지대(호데이다, 아덴항 등)에는 콜레라, 장티푸스, 말라리아 등기타 유사 전염병에 유의 필요
o 예멘 수도 사나는 해발 2,300m의 고산지대, 산림지역이 적어 산소량이 저지대의 70%정도임. 따라서 고혈압 및 저혈압 환자는 특별한 주의 요망.
* 고도장해를 일으켜 두통, 구토, 전신권태감 증세가 나타난 경우 심한 운동, 술, 담배는 피하고,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되, 수면은 호흡을 늦추므로 역효과가 발생됨으로 주의.
o 물 사정은 좋은 편이나 석회질이 많아 식수로 사용할 수 없으며, 주재국에서 생산되는 미네랄워터 사용시에는 큰 문제점은 없음.
o 2000.9월 이후 저지대에서 괴질(Rift Valley Fever)일 발생한 바, 모기에 조심하고, 양고기 생우유 섭취시 주의를 요함.

여행제한
o 파키스탄, 이란 여행자는 예멘 입국이 금지되고 있으니 참고 바람.
o 정부와 부족간 갈등이 심한 사우디 국경지대인 마립, 싸다지역 등은 빈번한 차량탈취 및 인질사건으로 인해 여행이 제한됨.

여행지역 범죄유형, 마약, 조직범죄 등
1) 여행지역 범죄 유형 : 지형이 험준한 산악지대가 많아 고가의 지프형 4륜 구동차량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지방지역 방문도중 총기위협에 의한 차량 탈취, 인질(중앙정부와 지방 부족장간의 갈등으로 인한 교섭용) 사고가 빈번함.
- 지방 도로 사정이 매우 좋지 않으며 주요 도시마다 검문을 거쳐야 하며, 여행시 거래회사나 정부로부터 여행 확인서를 취득하여야 하므로 육로 여행은 가급적 삼가는 것이 바람직함.
2) 정당간 정치적 갈등이 주요인사에 대한 테러 위협으로 표출된 바 있음.(특정 이슬람사원 및 영화관 등 폭탄테러 등으로 표출)
3) 소규모 주거침입 도둑에 대한 주의 요망.
4) 마약 : 마약류 단속은 매우 엄격하며, 마약소지자는 외국인의 경우 추방되거나 또는 일단 구속 후 재판절차를 밟게 됨.
5) 조직폭력 : 일반적으로 알려진 폭력 조직은 없음.
6) 특별한 우범지역은 거의 없으며 군사시설, 박물관, 공항 시설에 대한 사진촬영이 제한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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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인권비나, 자재비, 물가라는것은 자세히나와있질않네요


그래서 일단 보이는정보넣습니다

2004.07.08.

  • 출처

    travel.hanatou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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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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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있는 나라.

위치 : 아라비아 서남안 홍해 입구
면적 : 47만 2099㎢
인구 : 1949만 5000명(2002)
인구밀도 : 35.1명/㎢(2002)
수도 : 사나
정체 : 입헌공화국
공용어 : 아랍어
통화 : 예멘 리알(Yemen Rial, YRIs)
환율 : 176.39YRIs = 1달러(2002.9)
1인당 국민총생산 : 370달러(2000)


면적은 47만 2099㎢, 인구는 1949만 5000명(2002)이다. 인구밀도는 35.1명/㎢(2002)이다. 정식명칭은 예멘공화국(Republic of Yemen)이다. 수도는 사나이고 공용어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다. 아랍어로는 야만(Yaman)이라고 한다. 북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동쪽으로는 오만, 서쪽으로는 홍해(紅海), 남쪽으로는 아덴만(灣) 너머의 아라비아해(海)를 사이에 두고 소말리아와 지부티가 있다. 예멘은 아라비아해에 소코트라섬과 그 인접 도서(島嶼), 그리고 서쪽의 바브엘만데브해협과 홍해의 페림섬, 카마란섬 등도 포함한다. 1990년 5월 22일 북예멘으로 불린 예멘아랍공화국(Yemen Arab Republic)과 남예멘으로 불린 예멘인민민주공화국(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Yemen)이 재통일을 선언하여 단일국가를 수립하였다.

1. 자연

예멘의 국토는 북부 지역에 넓게 펼쳐져 있는 산지와 북동부의 룹알할리사막, 중부의 고원, 그리고 서부 홍해 연안부터 시작하여 바브엘만데브해협을 거쳐 오만 국경까지 걸쳐 있는 좁고 길게 뻗은 연안평야로 대별된다. 중부 고원지대는 해발고도 1,300∼3,000m의 산악지대가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이곳은 아라비아반도에서 가장 양호한 기후를 가진 곳이다.

아라비아반도의 최고봉인 높이 3,760m의 나비수아이브산(山)과 구약성서에 나오는 대홍수 뒤 노아가 세웠다고 하는 고도(古都) 사누아도 이 지역에 있다. 이 산악지대는 계단경작으로 비교적 풍부하고도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토양이 비옥하고 규칙적인 강우를 동반하는 인도양 몬순의 영향으로 농업에 알맞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남부는 약 2%만이 경작 가능지일 뿐이다. 그 가운데 북동부 내륙의 하드라마우트는 하천의 침식작용에 의해서 깊이 팬 석회암 언덕이 특이한 풍경을 이루고 있으며, 건계(乾季)에는 물이 마르는 대규모 와디(Wadi:간헐하천) 지형이 발달하여 농업중심지가 되고 있다. 전 국토의 16%만이 경작이 가능하고 초원과 산림지대는 각각 33.5%, 4%이다.

중부 고원지대는 온대에 속하면서 아라비아에서 가장 쾌적한 기후를 이루고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서늘하여 연간 400∼1,000mm의 강수량을 보이고 평균기온은 0~25℃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홍해 연안의 평야는 40∼45℃의 고온과 높은 습도의 기후를 이룬다. 과거 남예멘에 속한 남부와 동부의 기후는 고온 건조하며, 여름은 남서계절풍의 영향으로 습도가 높고, 기온 분포도 35∼42℃에 이른다. 겨울에는 비가 오지만 그 양은 20∼30mm 정도이고, 기온은 25℃ 정도로 덥다.

2. 주민

예멘의 주민은 아랍인의 원형이 예멘 지역에서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고, 주로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혼혈을 거듭하면서 살아왔다. 티하마 평야와 남부에는 5∼6세기 무렵에 들어왔다는 동아프리카계의 흑인과 혼혈이 많다. 과거부터 살아온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오늘날에는 거의가 아랍인이다. 그러나 이들 민족 내에서도 종교나 부족 관계, 또는 주거의 형태 등에서 구분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종교별로 보면 전체 인구의 99.9%가 이슬람교이다. 이중 수니파(派)가 53.0%이고, 시아파가 46.9%이다. 북부 산지에는 시아파계의 자이드파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의 신앙은 정치적 견해와 연결되어 과거 북예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에 비해 북부 일부와 남부 저지에는 수니파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은 사회·문화적으로 자이드파와 많은 차이가 있어 과거 남예멘과 북예멘의 정치적 견해 차도 이러한 종교적인 영향으로 인한 것이 많았다. 인구의 47.21%(2001)가 15세 미만의 인구이다. 공식적인 언어는 아랍어다.

3. 역사

예멘은 인도양 몬순의 영향으로 풍부한 강우의 혜택을 받아 일찍부터 부(富)를 이루었다. 이는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눈독을 들이는 물품들을 통제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하여 ‘행복의 아라비아(Arabia Felix)’로 불린 시바(Sheba)왕국으로 번성하였다. BC 7세기경 대규모 관개 시설로 농업을 발전시키고 향료무역(香料貿易)을 통해 큰 이익을 거두어 왕조의 번영이 절정에 다다랐다. 남단의 천연 양항(良港)인 아덴은 무역의 중계지, 물자의 집산지로서 크게 번영하였다.

7세기에 이르러 수니파가 티하마평야에서, 시야파계의 자이드파가 고원지대에 각각 세력을 잡았다. 9세기에 들어서 자이드파의 이맘(Imam) 야흐야 알하디가 라시드왕조를 창건하였다. 1517년 오스만투르크에게 정복되자 서유럽 나라들이 그 세력을 저지하였으나 결국 1872년 다시 오스만투르크에게 정복되었다. 한편 남부의 요충지인 아덴항(港)은 오스만투르크에 정복되었다가, 1839년에는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기선용 저탄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점령하였고, 1953년에는 자유항이 되었다.

1911년 자이드파의 이맘 야흐야는 대반란을 통해 고원지대의 지배권을 획득하고 오스만투르크는 해안지대만 지배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 오스만투르크가 철수하자 승전국인 영국은 이 지역을 분리하여 북예멘만 독립시키고 남예멘은 남아라비아연방에 편입시켜 계속 지배함으로써 이후 분단의 시초를 만들었다.

북예멘은 정치·종교 일체의 왕정을 실시하였다. 1955년에는 내각제를 도입하였으며 1962년에는 대령 아브둘라 살랄이 주도한 쿠데타로 국왕을 추방하고 공화정부를 수립하였다. 이후 왕당파는 산악지대를 근거지로 저항하였으며, 1967년 살랄 정권이 무너지고 온건파인 이리야니 정권이 탄생하여 왕당파와 화해가 성립하였다. 그러나 정권참여를 요구하는 왕당파의 요구에 내전이 지속되었으며 결국 1990년 이리야니가 왕당파의 요구를 수락하여 내전이 종식되었다.

영국 총독의 지배를 받던 남예멘에서는 이집트의 지원하에 남예멘의 완전 독립을 목표로 한 남예멘해방전선(FLOSY)·인민해방전선(NLF) 등의 세력이 계속적인 반영(反英)투쟁을 전개하여 1967년 11월 남예멘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민족해방전선의 서기장 사비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아라비아반도에서 유일한 공산 정권을 수립하였다. 1970년 11월에는 신헌법을 공포하고 국명(國名)을 예멘인민민주공화국으로 변경하였다.

분단된 남·북 예멘은 같은 민족·언어·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나 왕정을 거쳐 아랍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공화정을 채택한 북부와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한 남부의 이데올로기 차이가 컸다. 때문에 남·북 예멘은 1979년 2월 국경전쟁을 치를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기도 하였다.

1980년 4월 남예멘에서 온건파인 나세르 모하메드가 집권하면서 통일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1981년 11월 북예멘 대통령 살레흐가 남예멘을 처음 방문하였으며, 12월에는 남북통합을 명시한 아덴협정을 맺었다. 이어 1983년에는 예멘 최고평의회가 구성되어 통일 작업이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1986년 남예멘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려는 강경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통일 작업에 차질이 발생하였지만, 소련의 개혁과 개방의 영향으로 다시 통일 분위기가 조성되어 1987년 7월 남예멘 대표단이 북예멘을 방문하여 통일에 관한 노력을 재개하기로 합의하고, 1988년 초 국경에서 양측 군대를 철수하였으며, 5월에는 국경 지대 유전의 공동 개발에 착수하였다. 1989년 11월에는 양국 정상이 회담을 갖고, 통일 예멘공화국을 수립하기로 합의하였고, 통일 헌법을 마련하여 1090년 5월 22일 남예멘의 아덴에서 재통일을 선언하고 예멘공화국을 수립하였다.

4. 정치

예멘은 경제 개발과 민주주의를 기본정책으로, 복수정당제·자본주의 경제 제도를 기본 골격으로 삼았다. 통일 이후 30개월의 과도기를 설정하였으며, 인구 비례로 대통령위원회를 설치, 중요한 국정 운영을 하였다. 초대 대통령으로 북예멘 대통령 살레흐, 부통령으로 남예멘의 최고인민회의 의장 알리 살림 알리베이드가 취임하였다. 또한 북예멘 국가자문평의회와 남예멘 최고인민회의, 그리고 임명직 의원을 합쳐 301명의 통일 의회를 구성하였다.

1993년 4월 통일 후 첫 총선에서 대통령 살레흐가 이끄는 대중의회당(GPC)이 121석을 차지하여 최대당이 되었다. 여기에 알 이슬라(예멘개혁연합)와 예멘사회당 등 3대정당이 연정을 구성하여 하이데르 아부 바크르 알 아타스가 총리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1993년 8월 부대통령 알리 살림 알베이드는 수도 사나에서 열릴 회의에 불참하면서 그의 권력 기반인 아덴에 남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정국이 불안해졌다. 그는 자신이 속한 예멘사회주의당의 150명 당원이 계속된 정치적 폭력으로 피살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연정 내부에서도 개혁에 대한 입장의 차이와 출신 지역별 이해 관계가 대립하여 심한 내분을 겪고 있어 민주화의 추진에 장애 요소가 되었다.

이후 요르단, 오만 등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1994년 초부터 미통합 상태의 남북 예멘군대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였고 5월 5일에는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남측은 분리독립을 선언하였으나 7월 7일 북측의 승리로 내전이 끝났고 알베이드 등 남예멘측 지도자는 해외로 망명하였다. 내전 후 대통령 살레흐는 1999년 최초의 국민투표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96.3%의 득표율로 재선되었고, 2001년 2월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국회의원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는 등 집권기반을 강화하였다.

예멘공화국은 통일 후 외교 노선을 중립주의, 비동맹주의, 이슬람 세계와의 연대강화를 기본으로 온건한 노선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1990∼1991년의 걸프전쟁에서 이라크의 입장을 지지하고 미군을 위시한 다국적군의 대(對)이라크 응징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미국의 원조가 급감하였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예멘인(人)에 대한 사증 면제, 경제활동 자유 등 우대 조치를 중지하고 예멘인들의 취업입국을 규제하고 외교관 50명을 출국시켰으며, 약 80만 명의 예멘인 노동자들을 축출하였다. 이외에 예멘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과의 국경 확정 문제로 계속 대립하고 있다.

예멘은 미국과의 관계 회복에 노력하고 걸프전쟁 중 취한 아랍세계와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1993년 6·7월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을 방문하였고, 1994년 대통령 살레흐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였다. 2000년 6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협정을 체결하여 분쟁 종식 계기를 마련하였다. 2000년 10월 12일에는 아덴항에서 미국 군함이 테러로 피격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1년 9월 11일 국제테러단체인 알카에다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대폭발테러사건이 일어나자 미국은 예멘에 알카에다 조직 가담 혐의자 등 테러범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예멘 정부에 테러범을 색출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후 예멘 정부의 대테러 투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2001년 12월 알카에다 조직 가담 혐의자를 추적하던 중 부족군과의 교전으로 30여 명이 사망하였다. 병역은 징병제(2년)이며 육군 6만 5000명, 해군 1,500명, 공군 3,000명을 보유하고 있다. 정규군 이외에 약 2만 명의 중앙수비군과 약 2만 명의 부족 사병이 있다.

5. 경제

예멘의 통일 이후 경제 정책 추진 내용은 신규 투자를 극대화하기 위해 아덴 자유무역지대를 최우선시하며, 지역간 균형 발전을 위해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이루고, 민간 부분은 합작을 통해 투자 활동을 유도하며, 자유경제 활동을 보장하고 생산 활동을 권장하며 물가를 억제하고 과거부터 문제가 된 밀수를 근절하겠다는 것이었다.

예멘은 아랍권 국가에서도 최빈국에 속하며 농업이 여전히 주산업인 국가이다. 농업의 경우 자연 조건의 불량, 인력·영농기술 등의 부족으로 생산량이 적어 자급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 밀, 커피, 목화와 각종 과일, 채소 들이다. 예멘의 농업작물 가운데 마약성 식물인 카트(Qat)재배가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최근에는 마리브댐 건설을 완공하고 수수 경작을 위한 관개답(灌漑畓) 6,000ha, 반관개답(半灌漑畓) 5,000ha를 정리하여 농산물 증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걸프사태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귀국한 노동자들을 농업 개발에 투입하였다.

수산업은 우수한 자원 여건에 비해 선박의 노후, 시설의 미비 등으로 영세한 실정이다. 주요한 어종은 오징어, 참치, 고등어, 게, 새우 등이다. 전통적인 공업은 섬유, 화학, 보석, 유리 가공 등에 국한되었다. 이 가운데 섬유산업은 공업화 정책의 핵심에 해당하며 바질과 사나에 대규모 방직공장이 있다.

아덴은 공업의 중심지로 발전해왔으며 석유정제, 해수(海水)로부터의 제염(製鹽), 화학합성, 알루미늄 공예 등이 발달하고 있다. 특히 아덴항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하여 1991년 5월 30일 자유무역지대로 선정되었다.

천연자원으로는 암염, 철광 등이 과거부터 비교적 오랫동안 채굴되고 있으며 1980년대 중반 다량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남부와 북부에서 발견되어 1986년 처음으로 예멘의 석유가 수출되기 시작하였다. 석유 매장량은 1990년 80∼100억 배럴로 추정되며, 1992년에는 5억 5000만 배럴로 추정되는 마실라유전이 발견되어 외국 자본의 진출이 늘고 있다.

수출은 주로 원유, 면, 커피, 건어물류, 식품, 가축, 기계장비류 등이고 2000년 현재 수출은 42억 달러(80%가 석유), 수입은 27억 달러이다. 주요 수출 대상국은 타이, 중국, 한국, 일본 등이며, 수입 대상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다.

걸프전쟁을 계기로 외국원조가 격감하고 해외취업자의 본국송금 중단 및 대량귀국사태로 경제는 침체를 겪고 1994년 내전으로 전비지출이 많아져 외채상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1998년 저유가로 경제에 큰 타격을 받았으며,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통화기금)의 지도 아래 경제구조개혁을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2000년 사우디아라비와의 국경협정 체결로 양국 관계가 회복되고 유가가 오름에 따라 경제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사회기반시설면에서 도로의 포장률은 저조하며 발전소 역시 부족하여 전력 사정이 좋지 않다. 항구는 아덴항을 중심으로 호데이다·살리프 등이 3∼5만t 수준의 선박접안이 가능하다. 국제공항은 아덴·사나·무칼라·호데이다·타이즈 등에 있다.

6. 사회

예멘인은 고대에 번영한 왕국의 후손으로서의 아랍인의 원형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민족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경제적 빈곤과 남북의 분단으로 인해 과거의 영화를 잇지 못하고 있고 남예멘지역은 사회주의 아래에서 이슬람적 전통이 많이 희석되었다. 문맹률이 남성 약 44%, 여성 약 72%에 이르고, 유아사망률도 1,000명당 107명으로 중동 국가들 가운데 높은 편이다(2001). 의무교육은 12년이며 초등교육 6년, 중등교육 6년, 대학교 4년으로 이루어진다. 고등교육기관으로 사나대학과 아덴대학이 있다. 국영 통신사와 다수의 국영, 민영 일간신문, 국영 텔레비전·라디오 방송사가 있다. 보건, 의료 사정은 열악한 편으로 주로 외국원조에 의존한다.

험준한 산악지역인 북부를 중심으로 일찍부터 부족제도가 발달하여 현대에도 정치, 경제 등에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며 사실상 중앙정부 통제에서 독립되어 있다. 부족사회는 중무장한 사병과 독자적인 재정수입원을 보유하고 있다.

7. 문화

예멘은 고대부터 형성된 독특한 문화유산이 많고 신화·민속 등의 문학도 다양한 편이다. 구비문학·시·음악의 전통이 깊으며 은 세공과 스테인드글라스, 단지 예술이 알려져 있다. 현대문학에서는 시인인 아브달라 알바라두니가 유명하다. 거주문화는 집의 형태로 잘 알 수 있는데, 집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하고 항상 자연 경관과 어울리게 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진흙, 벽돌, 돌을 적절히 이용하며 높은 지역에서는 4~6층 높이의 집을 짓는다. 지하층에는 가축을 기르거나 저장을 위해 사용하고, 1층에는 가구들, 2층에는 손님들을 위한 방, 주방과 거실은 3,4층에 둔다. 가장 높은 곳에 마프레이라고 불리는 큰 방이 있어 주인이 낮에 친구들을 접대하고 만나는 곳으로 이용한다.

남자들은 매일 오후에 모여 해질 때까지 순한 마취약 카트잎을 씹는 카트 파티를 한다. 여성의 의복은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남자들은 대개 상의와 하의가 한 벌로 된 옷을 입는다.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며 조직화된 운동이 드물어 국제 수준을 가진 선수가 거의 없다.



9. 대한관계

북예멘은 북한과는 1963년에, 그리고 한국과는 1985년에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고, 남예멘은 1963년에 북한과, 그리고 한국과는 예멘 재통일 직전인 1990년에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통일 이후 사나로 공관을 단일화하였고 1990년 12월에는 초대 한국 주재 예멘 상주대사가 부임하였다. 1998년 공관을 폐쇄하고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1989년부터 마리브유전 개발에 SK(주), 한국석유개발공사, 삼환기업(주), 현대 등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24.5%의 지분율로 참여하였다. 그외에 1991년까지 총 90만 달러 정도의 물품을 예멘에 무상 원조를 실시하였다. 2000년 현재 대(對)한국 수출 6억 508만 달러, 수입 4419만 1000달러이다. 주요 수입 품목은 직물, 수송기계, 가전제품, 철강제품 등이고, 수출 품목은 원유, 유류제품, 금속제품, 농산물 등이다. 2000년 현재 체류자는 20여 명이다.


여긴
http://www.nis.go.kr/servlet/Board.dbWorldMain?cmd=view&sub_id=2&seq_no=12076&cr_tp=&cr_pg=15&cr_ptp=11&v_sub_id=0

(국정원에서)


아라비아 반도 남단 홍해 입구






527,970평방 Km

1,746 Km

1,906 Km

12해리

19349881名 (2003년)

사나(Sana)

아랍어

80%

아랍인 90%, 인도인·소말리아인 10%

회교(대부분 순니 샤피파,북서부 일부지역 시아 자이디파),유태교,기독교,흰두교

1990.05.22(남·북예멘 통합)

1990.5.22 통합헌법 승인(1994.09.29 대통령 중심제 헌법 개정)

공화제

대통령중심제

살레(Al-abdullah Saleh)대통령(90.5.22 취임, 임기5년)

바잠말(Ba Jammal)총리(98.5.14 취임)

살레(Saleh) 대통령

의회 (301명, 임기6년)

국민회의당(GPC), 예멘개혁당(Islah),예멘사회당(YSP),바트당,나세르당,알 하크당 등

中道中立

1990.05.22

1973.09.05

103억불(2002년) , 1인당 GDP : 820

예멘 리얄(이중환율제)


-2002년도 기준
- 수출: 337,740만불 (원유,면화,커피)
- 수입: 361,400만불 (공산품,식료품,화학제품)



5억1,500만불 (2002년)

육군60,000명, 해군1,500명, 공군5,000명(2002년)









修交日 :1990.05.17(남예멘)
最初修交日 :1985.8.22(북예멘)
修交日 :1990.05.22
最初修交日 :1963.03.09(북예멘)
      :1968.02.07(남예멘)


駐 예멘공화국 駐 韓 駐 예멘공화국 駐 北韓

겸임:1998.12.26 겸임:1998.1.5 겸임:2001.6.15 겸임:2001.6.15

강광원(2003.06.24) 알 호티(..) 전희정(2002.02.) 알 샤우카니(2001.06.15)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영사협정(93.1)
-집권당간 우호협력 협정(95.12)




商 (2002년)
- 수출: 42,906만불 (원유, 銅제품,알미늄제품)
- 수입: 5,226만불 (철강제품, 섬유류)
(1997년)
- 수출: 8800 (임가공용 원유)
- 수입: )


-SK,삼환,현대,유개공 등 4개사가 석유개발 투자(상 주인력 없음)




僑 民 : 名
滯留者 : 36名 僑 民 : 名
滯留者 : 名





지 리 - The World Factbook 2003, 美 CIA

GDP 및
1인당 GDP - The World Factbook 2003, 美 CIA
* 실질 구매력 기준

무역·통상 - International Financial Statistics, 2003.9, IMF
- 무역통계연보, 2002.12 관세청

군사력 및
국방비 - Military Balance 2002-2003, IISS
- 국방백서, 2002 - 2003, 국방부

기 타 - 해외동포현황, 2003.7, 외교부
- Chiefs of State and Cabinet Members of Foreign Governments
2003.8, 美 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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