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이다. 폭행만 일삼았던 게 아니었다.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추가 고소했다. 성폭행은 2014년 여름부터 시작돼 2018 평창 올림픽 개막 두 달 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한국체대 빙상장의 지도자 라커룸, 태릉 및 진천선수촌 빙상장 라커룸 등에서도 성폭행이 행해졌다니 기가 찬다. 심석희의 성적이 2014년부터 부진한 이유가 이제야 납득이 된다.

성폭행이 시작됐을 때 심석희의 나이는 만 17살, 고교 2학년이었다. 어린 나이에 상습적인 구타에다 그 험한 일까지 당했으니 얼마나 두렵고 수치스러웠을까. 심석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등으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꿋꿋이 스케이트를 탄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철저한 조사로 진상을 밝혀야 한다.

이번 심석희의 폭로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체육계 ‘미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빙상계는 폭행 사건뿐만 아니라 성폭력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가 여중생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2012년에는 여제자를 성추행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지도자가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돼 논란이 일었다. 그때마다 조치는 일회성에 그쳐 일을 이렇게 키웠다.

따라서 심석희의 폭로는 잘못된 체육계 문화를 바로잡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정부도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을 내놨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영구제명, 국내외 취업 금지 등 처벌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처벌 강화만으로는 체육계에 만연한 성폭력과 구타를 뿌리 뽑기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엘리트 체육이 대부분인 국내 여건을 고려할 때 지도자 눈 밖에 나면 선수 생활이 위태로운 게 현실이 아닌가. 피해 사실을 폭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체육계의 오랜 관행과 폐쇄적인 문화를 개혁할 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착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