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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의 관광은 어떤 형태였나요?
메실챠 조회수 2,510 작성일2015.09.24
왕족이나 양반들이 유람을 가거나 온천으로 요양가는 것 외에도 어떤 형태의 관광이 있었나요?
조선시대때도 에도 막부처럼 지역간 이동을 금지했었나요? 인조 이전까지는 주막도 없었으니 남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는걸 제외하면 양반들이 묵었던 객잔이나 요즘으로 따지면 고급호텔 등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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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식물신
베트남, 캄보디아 24위, 외국법 41위, 이민 95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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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은 TV에서 나오는 주점/식당 겸 여인숙인 주막은 17세기 후반에나 등장 합니다..


그렇다고 아주 여관이 없던건 아니고..

단지 공무상 사신들을 위한 국립여관 홍제원..하고 관리의 공무를 위한 역원..이란 숙박시설 외엔

없었습니다..


원글님 말씀처럼..  남의집에서 민박하는거 외엔 방법이 없었는데..


당시 양반가의 전체 수입중 3분의 1정도가 접빈 비용으로 나갔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 접빈들은 친척, 지인뿐만이 아니고 여행객과 승려 등을 접대한 비용이라 하네요..  먹고자고한것과

 씀씀이가 좋은 양반의 경우 노잣돈도 제공했다고 합니다..  나쁜 양반만 아니면 대부분 접대를 했고요)


조선조 당시는 고급호텔 문화는 없었네요.. (근대식 호텔은 구한말 이후에 등장하니)


양반들이나 상인들은 비교적 이동에 제한이 없었다고 보여집니다만..


양인과 노비들은 거주, 지역이동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농민과 노비의 이동은 농업 생산성과 조세 수입이 떨어질 위험이 크므로 해서 농민이 토지에 붙어있는

게 국가나 지주 입장에서 유리하죠...


때문에 국가와 지주는 농민이 토지를 벗어나 거주·이전의 자유를 향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구요.

국가는 주요 관문에 병력을 배치해 일반인의 이동을 통제하고..

지주는 주거지를 떠난 노비와 소작농을 '도주 노비'로 간주해 관청에 신고하거나 추적했습니다..


더위가 심해 노비, 소작농들이 여름철에 가족을 데리고 소속 행정구역을 벗어나 바다·계곡으로 여행을

가는 일은 꿈조차 몼꾸는거죠.. 잘못하면 감옥이나 저세상으로 가니까..

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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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역사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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