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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책상을 쳤더니 죽어버렸다는 '박종철'이란 분에 대해서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4,820 작성일2005.06.05

이름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뭐 책상을 내리쳤더니 죽었다는..

그런말만 들었거든요?

이 사람에 대해.. 그리구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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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문으로 질식사했다고 알려졌습니다.


1987년 1월 14일 발생. 경찰은 수배중이던 학생 소재를 찾기 위해 후배인 서울대생 박종철을 연행.

박종철 역시 운동권 학생이라 연행 당시 별다른 활동 없이 조용히 지냈지만, 연행된 뒤 각종 고문을 당하고 고문으로 숨짐.

경찰은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

숨진 박종철을 최초로 검안한 황적준 박사는 박군이 쇼크사로 숨진 게 아니라 고문에 의해 숨졌다고 양심선언.

그래서 고문에 참가한 경찰 두 명이 체포.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 호헌조치 발표(제5공화국 헌법을 고치지 않고 그 헌법으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 당시 개헌논의로 어수선했음)

1987년 5월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조직적이었고, 고문에 참여한 경찰이 이미 구속된 둘이 아니라 다섯 명이었다고 발표. 수감된 경찰은 억울함을 감옥에서 호소했고, 우연히 그들 옆방에 수감된 이부영(현 한나라당 의원)에게 사건전모를 털어놨음. 이부영은 평소 알고 지내던 교도관을 통해 이 사실을 밖으로 알림.

치안본부장(현재의 경찰청장)이 짤림. 고문에 참가한 경찰들 추가로 구속.

6월 10일 전두환 대통령 대통령 후보로 민주정의당 대표인 노태우를 지명. 이날 서울 성공회 교회에서는 시국대회가 경찰봉쇄 속에서 열림. 밖에서는 대학생과 시민들 '호헌철폐' 외치며 격렬시위(당시에는 무조건 격렬시위였음). 밤이 되자 시위대는 경찰에 밀리고, 일부 시위대는 명동성당으로 쫓겨 감.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이들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시작. 농성에 참여하는 시민, 학생들이 증가.

6월 민주화 항쟁 시작. 항쟁기간에 연세대 이한열 머리에 최루탄을 맞음.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 개헌을 골자로 한 6.29 선언 발표.

이한열 사망. 1987년 7월

1987년 12월 . 대통령 선거. 1위 노태우 2위 김영삼 3위 김대중 4위 김종필

그렇게 해서 1987년은 저물었음.

200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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