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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안상수 한나라당 국회의원 군 면제 어떻게 받은거죠??
esco**** 조회수 49,922 작성일2010.09.14
현재 안상수 한나라당 국회의원 군대 면제 어떻게 받은건가요?

제가 대충 인터넷 검색해보니까, 이렇다는데요.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 의원
군 복무 내역 = 병역 미필 (입영기피)
* 1966~1967년 징병검사기피
* 1968년 1을종
* 1969년 입영기일연기
* 1970년 2급
* 1971년 입영기피
* 1973년 입영기일연기 (행방불명)
* 1974년 입영기일연기 (행방불명)
* 1975년 공소권 무효
* 1975년 입영후 귀가
* 1977년 무관후보생편입
* 1977년 보충역 (신체검사 및 퇴교조치자로 입영의무 면제)
* 1978년 소집면제 (고령)


일[출처] 안상수 군대|작성자 빨간탱크


일단, 여기서 궁금한게, 행방불명인데요. 일반인도 어디 학교 근처나 집이 아닌 곳에 살면서 입영통지서 계속 안 받고 하면 행방불명 되는건가요?? 병무청에서 찾으러 다니지는 않을꺼 아니에요.. 그리고 안상수는 행방불명이랑 입영기피하면서 벌금은 냈을까요? 그돈도 장난아닐텐데... 집이 부잔가?

그리고 두번재로 궁금한게, 공소권 무효는 뭔가요? 행방불명에 대한 공소권 무효? 아님, 입영에 대한?

그리고 세번째로 무관후보생편입은 모죠?

마지막으로 고령으로 소집면제가 되려면 몇세여야 하기에? 안상수는 46년 생인데, 78년도에 고령으로 소집면제 되었으면 MC몽도 79년생인까 2011년도까지만 버티면 소집면제(고령) 인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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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n****
수호신
세계사 24위, 한국사 69위, 사회학 14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안상수(安商守, 1946년 2월 9일 - ,경남 마산)는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출신 법조인, 법관,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한나라당 소속의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다. 제5공화국 당시 당직변호사 제도를 제안하여 신설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당직변호사 제도로 무려 3,000여명을 무료 면담하여인권의 파수꾼이라는 별명을 받았다. 또한 제3공화국 당시 그는 병역을 기피하였는데, 그의 병역 사항과 행적 관련하여 행방불명 또는 행적이 묘연한 경우가 많아 행불자, 행불상수라는 별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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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편집]

마산에서 기와공장을 하던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6·25가 끝난 후 아버지가 전염병으로 사망하면서 회사는 사기꾼들에게 넘어가고 어려운 유년생활을 보냈다. 마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1974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재직하던 1987년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규명 수사를 맡아 박처원 당시 치안감의 은폐음모를 언론에 공개한 뒤 사표를 제출하고 노동운동에 투신, 노동자 법률상담에 종사했다.

1996년 신한국당의 공천으로 과천시·의왕시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이 후 4선을 기록하고 있다. 2007년 8월 부터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하고 있다.

이력 [편집]

  • 마산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 입학
  • 대학교 2학년 재학 중, 학생운동에 투신
  • 대학교 3학년 재학 중,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 1965년 6월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6·3 항쟁 당시 단식농성에 참가
  • 1966년 이병철의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 성토대회에 참가, 사카린 밀수사건 성토대회 사회를 보다가 주모자로 유기정학을 받았다.
  • 1966년 ~ 1967년 징병검사기피
  • 1967년 여당의 6·8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자,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집시법'위반으로 재판에 회부, 시국사건에도 연루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 1968년 1을종
  • 1969년 입영기일연기
  • 1970년 2급
  • 1971년 입영기피
  • 1973년 입영기일연기 (행방불명)
  • 1974년 입영기일연기 (행방불명)
  •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검사에 임용
  • 검사에 임용되었으나 학생운동, 노동운동 연루 경력으로 검사발령이 되지 않다가 전주지방검찰청에 발령되었다.
  • 1975년 공소권 무효, 입영후 귀가
  • 1977년 무관후보생편입
  • 1977년 보충역 (신체검사 및 퇴교조치자로 입영의무 면제)
  • 전주, 대구, 마산,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경향신문 객원 논설위원
  • 1978년 소집면제 (고령)
  • 1985년 3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힌 뒤 검사직 사퇴
  •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 1994년 외국인 이주노동자 법률상담소 소장
  • 1996년 신한국당의 총재였던 김영삼에 의해 발탁, 4·11총선에서 경기도 과천·의왕시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계 입문

기타 사건 [편집]

  • 신한국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된 뒤 보수성향으로 전향하였다.[1]
  • 2008년 3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좌파 정권'으로 규정짓고 사회 전반에 걸친 인적/제도적 청산 의지를 천명. 실질적으로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정부기관과 산하단체 인사들의 일괄 사퇴를 요구하였다.
  • 2009년 5월 27일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직에 있을 때 “국민장[2]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있어 소요사태[3]가 일어날지 걱정”이라고 말해 야당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4]
  • 2009년 7월 24일 야당의 미디어법 장외투쟁과 관련 “등원거부, 거리투쟁과 농성, 국회법 무시, 폭력행사, 반대를 위한 반대, 이명박 정부 발목잡기에 전력을 쏟고 있는 게 제1 야당의 존재 이유냐 정권 퇴진이니 반정부니 하며 흑색선전[5]으로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국민에게 해독을 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6]
  • 2010년 3월 17일 김길태 사건 등 아동 성폭행 문제와 관련 “지난 10년간의 좌파 정권 동안에 엄청나게 편향된 교육이 이루어졌다”면서 “이런 잘못된 교육에 의해서 대한민국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많은 세력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그러한 흉악범죄들, 아동성폭력 범죄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7] 그러나 정작 김길태(1977년생)와강호순(1969년생), 조두순(1952년생) 등은 중,고등학교 때 김영삼, 전두환 등 우파 정권 하에서 교육을 받았다.

명진 스님 공격 파문 [편집]

  • 2010년 3월 21일 조계종 총무원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사찰로 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8]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 직후인 2009년 11월 13일 아침 프라자호텔 식당에서 자승 총무원장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이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안상수 대표가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 부자 절의 주지를 그냥 놔둬서 쓰겠느냐 말했다. 또 11월 30일 자승 스님의 총무원장 당선 직후에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과 함께 자승 총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자승 스님으로부터 안상수 대표가 좌파 주지 운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대해 안상수 원내대표는 3월 22일 “누가 명진 스님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 모른다. 봉은사 주지 스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슨 압력을 넣느냐?” “일체 대응하지 않겠다”라고 밝혔지만, 명진 스님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10여 년 전 안상수 원내대표와 석가탄신일마다 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음을 밝히고, “날 모른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안상수 원내대표의 거짓말을 폭로했다.[9] 모임을 주선하고 같이 동석을 했던 김영국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도 3월 23일 기자회견을 가지고 “명진 스님의 말은 모두 사실”이라고 확인을 했다.[10] 김영국은 한나라당 부대변인 출신을 맡았던 보수성향의 인물이다.[11]

201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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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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