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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안평대군, 무수리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8,804 작성일2006.08.09

안평대군과 무수리에 대한

아래의  여섯 가지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1 안평대군의 가족

2 계유정란 이후 안평대군의 고문 여부

3 수성궁의 위치 (경복궁에서 봤을 때 어느 방향에 있었나)

4 무계정사, 담담정의 존재 여부

 

5 공주나 대군의 경우

 개인적으로 무수리 등의 종을 둘 수 있었는지

6 궁의 무수리는 어디에서 물을 길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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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는 아니지만 몇가지 답해드리겠습니다.

 

수성궁은 안평대군의 궁방으로 인왕산 밑자락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공주나 대군의 경우 개인적인 궁녀를 소유할수 있느냐는 물음이신거 같습니다.

궁녀는 쉽게 말하여 궁에서 일하는 여자를 뜻합니다.

 

공주는 사가로 시집을 가기때문에 궁방을 소유할수 없었지만,

왕의 적자인 대군들의 경우에는 일정 나이가 되면 경복궁 근처의 궁방을 하사받고

궁을 떠났습니다. 궁을 떠나는 나이는 장가를 들게되면 나가는데요.

 

조선시대 조혼풍습으로 13살정도면 모두 궁을 나섰다고 보시면 됩니다.

자신의 궁으로 떠날때는 궁녀들 또한 대동 하고갔는데요.

 

궁방은 작은 경복궁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대신들이 없을뿐 지밀나인들이 존재하였고 상궁들 또한 있었습니다.

대군과 대군부인도 당의를 입지는 않았지만 대군은 관을 쓰고 대군부인은 머리에

가채를 올리고 떨잠을 꽂고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중종반정이후 궁녀를 충원하기 위하여 궁녀들을 차출하였는데요.

보통은 내수사 출신의 공노비를 차출하지만 그 당시에는 영창대군 궁방 소속의

궁녀들이 인수대비전으로 많이 들어갔다고 전해집니다.

 

 

 

무수리가 물을 깃는곳이라.. 아마도 궁의 외곽에 있는 우물이였을겁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우물은 수맥의 자리라 하여 안채나 사랑채와는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게끔 만드는것이 관례였습니다. 궁에서는 아예 내궁문 밖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경복궁에가셔서 우물 자리를 보시면 굉장히 외곽에 위치한 것을 아실수 있습니다.

 

 

200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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