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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Dec 11. 2016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김화영 역 (민음사)





누구나 마음 속에 "엠마(마담 보바리)"가 하나씩 살고 있다.


내 속의 엠마가 속삭인다.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해?
지긋지긋해, 반복되는 일상들....
왜 나만?
왜?
어째서?

세상이 내가 그린대로만 움직여준다면
뭐 그리 힘들고 고달프겠는가.....
내 뜻과는 항상 어긋나고,
내 바램은 언제나 "실재(實在)"하지 않는 바람과 같고,
내가 그리던 미래는 늘 남의 현실이 되어 있고,
찬란했던 내 과거는 잘못된 선택의 후회로 가득한 것을......

그래.
그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이 늘 불행하고, 슬프고, 힘겹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나는 현실과 이상이 다름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것 없는 나의 (과거에 그려본 적 없는)현재를 있게 한 과거의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그리지만,
나의 미래가 내 바램처럼 흘러가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혹여 그렇다 하더라도 잘 적응해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내 바램과 전혀 다른 현재이지만, 그 현재와 현재가 교차하는 사이사이 틈에 숨어있는 작은 꽃과 같은 행복이 내 눈엔 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마음이 진흙처럼 말랑해져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빠져버리는 때,
다시 살그머니 고개를 내밀
내 마음 속 엠마여......
그대에게 "감사"와 "만족"이라는 비소를 보내노니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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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사내는 무엇 하나 가르쳐줄 것도 없고, 무엇 하나 아는 것도 없고 무엇 하나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너무나 흔들림 없는 이 평온과 이 태연한 둔감, 그녀 자신이 그에게 안겨주고 있는 행복 그 자체에 대하여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p.65-


** 그녀는 아들을 갖고 싶었다. 튼튼한 갈색 머리의 애였으면 했다. 이름은 조르주라고 지으리라. 이렇게 사내아이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치 과거의 모든 무력감에 대하여 희망으로 앙갚음하는 느낌이었다. 남자로 태어나면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온갖 정념의 세계, 온갖 나라를 두루 경험할 수 있고 장애를 돌파하고 아무리 먼 행복이라 해도 붙잡을 수가 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는 금지와 마주친다. 무기력한 동시에 유순한 여자는 육체적으로 약하고 법률의 속박에 묶여있다. 여자의 의지는 모자에 달린 배일 같아서 끈에 매여 있으면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거린다. 여자는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어떤 체면에 발목이 잡혀 있다.
                                      -p.131~132-


** 더욱 울화가 치미는 것은, 샤를르가 그녀의 극심한 고통을 짐작조차 못하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고 믿는 그의 확신이 그녀에게는 바보 같은 모욕으로 느껴졌고, 그런 식으로 안심하고 있는 것이 배은망덕으로 여겨졌다. 대체 누구를 위하여 정조를 지키고 있단 말인가? 샤를르야말로 모든 행복의 장애, 모든 비참의 원인, 그녀를 사방에서 옥죄고 있는 이 복잡한 가죽 벨트의 뾰족한 가시바늘 같은 존재가 아닌가?                      -p.160-


** "하지만 제가 보기엔" 하고 엠마는 말했다. "당신이 동정을 받아야 할 분 같지는 않아요." "아, 그렇게 보이십니까?" 하고 로돌프가 말했다.
"왜냐하면 결국" 하고 그녀는 계속했다. "당신은 자유로우니까요."                 -p.203-


** "(....) 보바리 부인! ...... 모두들 당신을 그렇게 부르지요! ...... 사실, 그건 당신 이름이 아니죠! 다른 남자의 이름인걸요!"         -p.226-


** 그는 일체의 부끄러움이란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를 마구 거칠게 다루었다. 그는 그녀를 나긋나긋하고 부패한 물건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것은 남자에 대해서는 찬미가, 여자에 대해서는 애욕이 넘치는 일종의 어리석은 집착이었고 그녀를 마비시키는 것 같은 지극한 행복이었다.                 -p.277-


** "가시더라도 북쪽 문으로 나가주세요!" 하고 아직도 문간에 서 있던 성당지기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부활, 최후의 심판, 낙원, 다윗왕, 그리고 지옥불 속의 저주받은 자들을 보실 수 있으니까요."                         -p.354-


** 그녀는 모든 소설에 등장하는 사랑에 빠진 여자, 모든 연극의 여주인공, 모든 시집의 막연한 그녀였다. 레옹은 그녀의 어깨에서 목욕하는 터키 궁녀의 호박색 빛을 보았다. 긴 코르사쥬를 입은 그녀는 봉건 성주의 마나님 같았다. 그녀는 바르셀로나의 창백한 여인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보다도 <천사>였다!
                                      -p.384-


**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한번도 행복했던 적도 없었다. 인생에 대한 이런 아쉬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의지하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썩어 무너지고 마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 그러나 만일 어디엔가에 강하고 아름다운 한 존재가, 열정과 세련미가 가득 배어 있는 용감한 성품이, 하프의 낭랑한 현을 퉁기며 하늘을 향해 축혼의 엘레지를 탄주하는 천사의 모습을 한 시인 같은 마음이 존재한다면 그녀라고 운 좋게 그를 찾아내지 못하라는 법이야 있겠는가? 아! 턱도 없는 일! 사실 애써 찾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 거짓이다! 미소마다 그 뒤에는 권태의 하품이, 환희마다 그 뒤에는 저주가, 쾌락마다 그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고 황홀한 키스가 끝나면 입술 위에는 오직 보다 큰 관능을 구하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 남을 뿐이다.                        -p.410-


** 내가 볼 때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은 내가 실천에 옮겨보고 싶은 바로 무(無)에 관한 한 권의 책, 외부 세계와의 접착점이 없는 한 권의 책이다. 마치 이 지구가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고도 공중에 떠 있듯이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저 혼자 지탱되는 한 권의 책,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한 권의 책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최소한의 소재만으로 된 작품들이다. 표현이 생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휘는 더욱 생각에 밀착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리하여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p.512 작품해설 中 플로베르의 편지 내용-



** <무에 관한 책>이란, 수많은 격동적 사건들, 돌연한 사태의 전환, 놀라움 등 흔히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재미>의 초점이 다른 차원으로 이동되어서, 사건들이나 그 연쇄 같은 것은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부차적인 선으로 물러나 있는 책을 의미한다. <문학에 있어서 예술적으로 훌륭한 주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보잘것 없는 시골 마을인 이브토를 그리건 유명한 대도시 콘스탄티노플을 그리건 결국은 마찬가지다>라고 한 플로베르의 말은 결국 무엇을 그리느냐보다는 어떻게 그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오직 형식만이 중요할 뿐이라든가, 스타일만이 훌륭하면 그것이 우리의 현실을 전혀 지시하지 않는 것이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스타일은 물질 세계의 <질료> 자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지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작품은 스타일의 힘으로 지탱되어야 하지만 그 힘은 생각과 혼연 일체가 됨으로써 생겨나는 <내면적> 힘이다.
                              -p.513 작품해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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