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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옛 도읍지의 문화재 (사진도 )
비공개 조회수 41,573 작성일2007.09.10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셨는데, 그게 옛 도읍지의 문화재를 사진과 함께 자세한 자료를 가져오라는 것이였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한 자료가 없는데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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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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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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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도읍지 서울

1)숭례문

 

→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문으로 남쪽에 있다. 웅장한 만큼 가장 아름다우며 우리민

 

족이 예의를 중하게 여기는 민족이라는 뜻을 가졌다.

 

 

 

2) 경복궁

 

→조선의 정궁으로 가장 먼저 세워졌다. 이름의 뜻은 조선이 오래도록 큰 복을 누리라는

 

뜻으로 붙여졌으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나 흥선대원군이 다시 복원했다.

 

 

 

 

▶고려의 도읍지 개경(개성)


1.당시 송악이라 불리던 개성은 고려의 태조 왕건의 고향이었으며 무역이 발달하여 수

 

도로서는 매우 알맞는 곳이었다.


2.중국의 수차례 침략과 오랜 세월로 조선보다는 남아있는 문화재가 적지만 불교문화가

 

매우 발달하여 개경의 중심가는 매우 아름다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3.현재 개성 성균관, 관음사, 공민왕릉, 현화사 터, 화장사 터, 개국사 등이 남아있다.

 

 

 

▶고구려의 도읍지 평양


1.평양은 서울과 비슷한 지형으로 적의 침입을 막아내기에 알맞았고 땅이 기름져 일찍이

 

고구려의 장수왕이 도읍을 정했다.

2.삼국시대 최고의 강국이었던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 평양에서 태평성대를 누리며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만큼 수많은 문화재가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이 없어지거나 회손된 상태

 

다.

3.현재 남아있는 유적 중 대표적인 것은 약간의 성터와 고분벽화 뿐이다.

 


▶신라 천년의 도읍지 경주


1.신라는 삼국시대의 국가 중 유일하게 한번도 천도하지 않아 경주에 문화재가 굉장히 많

 

이 남아있다.
2.천마총, 천마도, 첨성대, 반월성 터, 석빙고, 석굴암, 불국사, 수많은 불교예술품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문화재의 수가 많다.

3.경주는 대부분의 지역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문화재가 보호받고 있으며 석굴암의 경

 

우는 유네스코에도 등록된 귀중한 문화재이다.

4.신라는 고려에 흡수되어 993년의 역사를 저 버리고 멸망했다.

200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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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경복궁 안에 있는 건물로, 나라의 중요한 행사를 치르거나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부용지:창덕궁 후원에 있는 연못. 창덕궁 후원은 한국식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종묘:조선 시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서,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숭례문:서울의 남쪽 성문으로, 예의를 잘 지킨다는 뜻을 나타낸 이름이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네요~ 

힘내세요~ 

200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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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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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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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제가 신라의 문화재를 쫌 했거든요..

제가 한거 올려드릴께여..

제가 죄송한것은.. 별루 자세하진 않았어여..

 

진흥왕 순수비

진흥왕 재위 기간(534~576년)

현재까지 4개가 발견되었다. 북한산비 진흥왕16년(555) 한강유역, 창녕비 진흥왕22년(561) 낙동강유역, 황초령비 진흥왕29년(568) 함경도 유역, 마운령비 진흥왕29년(568)

 

천마총 금관

약 5세기말~6세기 초

높이: 32.5cm, 지름: 20cm

국보 제188호

 

석굴암 본존불

8세기 중엽

연화좌대의 높이: 1.6m, 상면의 지름: 2.72m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된 석굴암에 본존불이 안치되어 있다.

 

성덕대왕 신종

771년(혜공왕 7년)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 무게: 18.9톤

국보 제29호

 

천마총 천마도

5~6세기

가로: 75㎝, 세로: 53㎝, 두께: 6㎜

1973년 경주 황남동고분 155호분(천마총)에서 발견

 

황남대총 금관장식

신라시대

금관 높이: 27.5cm, 지름: 17cm, 무게: 750g, 드리개(수식) 길이: 13∼30.3㎝

국보 제191호

 

황룡사 9층탑

643년(선덕여왕 12)

사적 제6호

 

불국사

통일신라시대

경내면적: 11,7541평

사적 제1호

 

금동제 용머리 당간두

통일신라시대

높이: 65㎝

보물 제1401호

 

포석정

통일신라시대

면적: 7,445㎡

사적 제1호

 

배리삼존불상

7세기 신라

보물 제63호

 

황남대총 유리병

신라시대

높이: 25㎝, 배지름: 9.5㎝

국보 제193호

 

화엄사 사사자 3층석탑

통일신라시대 추정

높이: 5.5m

국보 제35호

 

첨성대

신라시대

높이 9.17m,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

국보 제31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통일신라시대

두루마리 1축(軸)으로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

국보 제126호

 

석가탑

통일신라시대

높이: 8.2m

국보 제21호

 

진전사지 3층 석탑

통일신라 8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

높이: 5m

국보 제122호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통일신라시대

높이: 1.4m

국보 제57호

 

법주사 쌍사자 석등

통일신라시대

높이: 3.3m

국보 제5호

 

많은 도움이 되셨기를..

그럼 숙제 잘 하세여!~

화이팅!

200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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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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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구려의 내력

고구려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37년에 세워졌다.

중국과 북방의 이민족과의 끊임없는 항쟁과 교류를 통하여 점차 국력을 성장시켜

나아갔으며 서기 313년에는 낙랑을 몰아낸 뒤 보다 남쪽으로 영역을 확대하여

요하에서 한강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5~6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화려한 문화를 꽃피었으나 668년에 나 당 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문화재

1.국내성:고구려 초기 도읍지 현재 중국 지린 성(길림성) 지안 현 퉁거우입니다.

유물 유적 : 장군총,무용총,광개토대왕릉비가 있습니다.

 

장군총 : 3세기 초부터 427년까지 고구려가 도읍한 지안현 퉁거우평야[通溝平野]에는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와 고구려 최대형 무덤인 태왕릉(太王陵)·사신총(四神塚) 등 석릉과 토분(土墳) 1만 기(基)가 있으나 외형이 거의 완존(完存)한 석릉은 이것뿐이다.

 

 

무용총

중국 둥베이[東北]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고구려의 고분벽화(古墳壁畵

 

광개토대왕릉비

비신(碑身) 높이 5.34m. 각 면 너비 1.5m. 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도 한다.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운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2.평양성:국내성이후 고구려 도읍지

유물 유적 : 을밀대,대동문,최승대가 있습니다.

 

을밀대: 북한 사적 제7호. 사허정(四虛亭)이라고도 한다. 6세기 중엽 고구려시대에 평양성의 내성장대로 처음 건립되었다.

 

대동문 : 북한 국보급 문화재 제1호이다. 높이 19m, 축대높이 6.5m, 길이 26.3m, 폭 14.25m이다. 문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석축 위에 2층으로 된 누각을 갖춘 성문이다. 6세기 중엽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성 내성의 동문으로 최초 건립되었다. 고려 초 947년과 조선 초 1392년에 복원되었으며 1635년(조선 인조13년)에 재건되었다

 

고구려 인물

광개토대왕

연개소문

담징

을지문덕

 

백제의 내력

고구려 주몽의 아들 온조가 고구려의 유민을 이끌고 남하하여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세웠다고 한다. 한강 유역의 백제는 4세기 말 근초고왕 때 전성기를 맞아 영토를 확장하고 한반도에서 세력을 확대하였으나 웅진으로 천도한 후 세력이

약화 되더니 무령왕 이후 다시 국력이 회복되었고 사비로의 재천도가 이루어졌다.

 

백제 문화재

1.위례성 :

위례성은 백제의 첫 도읍지였으나 

문화재가 많지 않다.

 

 

몽촌토성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항아리

 

몽촌토성은 오래 전부터 백제 초기 토성으로 전하여 왔다.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진흙으로 쌓은 성벽을 만들어 1M 정도 파서

살림집이 아닌 군사의 필요한 것으로 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올림픽 공원 속에 있다.

 

 

풍납토성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있는 백제 초기의 토성터.

소재지 : 서울 송파구 풍납동

시대 : 백제 초기

지정 : 사적 제11호

규모 : 동벽 1,500m, 남벽 200m, 북벽 300m

1925년 대홍수 때 삼국시대의 청동제 초두가 2개 발견되었고, 토기 조각들도 많이 발견되었다.

 

돌무지 무덤

 

돌무지시설을 한 점에서 남방식 고인돌과 공통되므로, 원래 고인돌인

무덤이 후대에 상석이 없어져

돌무지 무덤으로 된 가능성도 있다.

 

 

 

2.웅진 :

웅진의 문화재 :

 

계유명삼존천불비상

국보 제108호

문화재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통일신라시대

 

금제관식(왕)

국보 제154호

문화재지정일 : 1974년 7월 9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백제시대

 

금제관식(왕비)

국보 제155호

문화재지정일 : 1974년 7월 9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백제시대

 

금제심엽형이식(왕)

국보 제156호

문화재지정일 : 1974년 7월 9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백제시대

 

금제수식부이식(왕비)

국보 제157호

문화재지정일 : 1974년 7월 9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백제시대

 

금제경식(왕비)

국보 제158호

문화재지정일 : 1974년 7월 9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백제시대

 

 

3.사비 :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 - 국보 9호

흔히 백제오층석탑이라고도 한다. 화강석으로 되었으며, 높이는 8.33m이다.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 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다.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379
시대 - 백제시대 후기

 

 

미륵사지석탑(彌勒寺址石塔) - 국보 11호

분류 - 석탑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
시대 - 백제시대 후기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 - 국보 84호

분류 - 마애불(부동산)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
시대 - 백제시대 후기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대향로 -- 국보 287호 충남 부여군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百濟昌王銘石造舍利龕) -- 국보 288호 충남 부여군

 

부여석조(扶餘石槽) -- 보물 194호 충남 부여군

 

부여성흥산성(扶餘聖興山城) -- 사적 4호 충남 부여군

 

부여능산리고분군(扶餘陵山里古墳群) -- 사적 14호 충남 부여군

 

 

백제의 인물

온조왕

근초고왕

왕인

계백

 

 

신라의 내력

신라는 경주지방의 사로국에서 발전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는 박혁거세에 의해

건국되었다. 신라는 4세기 후반에 이르러 나라의 기틀이 완전히 잡혔다.

그리고 6세기 초부터 많은 발전이 거듭되었다. 신라는 진흥왕 때에 비약적인 발전을 하여

영토가 넓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통일의 분위기로  이어졌다.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루어냈고 통일 신라 시대를 맞아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다가 935년 말기의 어지러운 사회를 맞아 고려에 합병되었다.

 

신라의 문화재

성덕대왕 신종

 국보 29호 : 시대 : 771년 :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 최대의 종으로,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奉德寺)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종이라고도 한다.

 

경주임해전지(사적 제18호)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국유 연못)를 대표하는 유적.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높이는 9.17m.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경주포석정지(사적 제1호)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

 

 

신라태종무열왕릉비(국보25호)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진 석비

 

 

김유신묘(사적21호)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장군 김유신의 무덤.

 

 

문무대왕릉(사적158호)

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무덤.

동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

 

 

불국사 다보탑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0.4m, 기단 폭 4.4m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 서쪽의 석가탑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탑으로, 전형적인 쌍탑가람의 배치이다

 

 

불국사 3층석탑

국보 21호: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동서로 세워진 두 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석가">釋부처이름 가, ㉠부처이름 ㉡막다">迦如來常住設法塔)'이며 흔히 줄여서 '석가탑'이라고도 한다.

 

석굴암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정식 문화재 명칭은 석굴암석굴이며, 석불사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進峴洞) 891번지에 있다. 한국의 국보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문화재의 하나이다.

 

신라의 인물

무열왕

문무왕

김유신

원효

 

 

고려의 유래

고려는 918년 왕건에 의해 건국되었다. 개성을 도읍지로 정하고 만월대는 궁궐이였다.

고려의 멸망은 선죽교의 유래와 함께 전달 할 수 있다.

 

고려의 문화재

개경 유적 유물

만월대 : 개성시 송악산(松嶽山) 남쪽 기슭에 있는 고려의 왕궁지(王宮址)

만월대

 

선죽교

고려 태조가 919년 송도(松都:개성시)의 시가지를 정비할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선죽교는 1392년(태조 1) 정몽주(鄭夢周)가 이방원(李芳遠 : 조선 태종)에 의해 피살된 장소로 유명하다

 

 

고려의 인물

왕건

강감찬

정몽주

의천

 

 

조선의 내력

조선은 1392년 고려의 뒤를 이어 세워졌다. 고려사회는 말기에 부정부패로 혼란하였고

외적의 침입이 잦았다. 마참내 어지러운 사회를 개혁하고자 뜻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로 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조선을 건국하였다.

 

 

조선의 문화재

조선 도읍지 유적 유물

경복궁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궐(正闕).

 

 

숭례문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 중층(重層)의 우진각지붕 다포(多包)집이다. 서울 도성의 남쪽 정문이며 원래의 이름은 숭례문(崇禮門)이다.

 

 

종묘

조선시대 역대의 왕과 왕비 및 추존(追尊)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가의 사당

 

조선의 인물

세종대왕 

이순신

이율곡

정약용

 

 

참고하시어 도움이 되시길............ 

나중에 보니 액박이 있네요. 죄송합니다.

200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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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1****
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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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시다고 하시기에 빨리 해왔습죠!

 

일단 한양 이옵니다!

조선의 내력

조선은 1392년 고려의 뒤를 이어 세워졌다. 고려사회는 말기에 부정부패로 혼란하였고

외적의 침입이 잦았다. 마참내 어지러운 사회를 개혁하고자 뜻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로 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조선을 건국하였다.

 

 

조선의 문화재

조선 도읍지 유적 유물

경복궁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궐(正闕).

 

 

숭례문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 중층(重層)의 우진각지붕 다포(多包)집이다. 서울 도성의 남쪽 정문이며 원래의 이름은 숭례문(崇禮門)이다.

 

 

종묘

조선시대 역대의 왕과 왕비 및 추존(追尊)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가의 사당

 

조선의 인물

세종대왕 

이순신

이율곡

정약용

 

금성!

신라의 내력

신라는 경주지방의 사로국에서 발전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는 박혁거세에 의해

건국되었다. 신라는 4세기 후반에 이르러 나라의 기틀이 완전히 잡혔다.

그리고 6세기 초부터 많은 발전이 거듭되었다. 신라는 진흥왕 때에 비약적인 발전을 하여

영토가 넓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통일의 분위기로  이어졌다.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루어냈고 통일 신라 시대를 맞아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다가 935년 말기의 어지러운 사회를 맞아 고려에 합병되었다.

 

신라의 문화재

성덕대왕 신종

 국보 29호 : 시대 : 771년 :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 최대의 종으로,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奉德寺)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종이라고도 한다.

 

경주임해전지(사적 제18호)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국유 연못)를 대표하는 유적.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높이는 9.17m.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경주포석정지(사적 제1호)

경주 남산 서쪽 계곡에 있는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곳.

 

 

신라태종무열왕릉비(국보25호)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진 석비

 

 

김유신묘(사적21호)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장군 김유신의 무덤.

 

 

문무대왕릉(사적158호)

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무덤.

동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

 

 

불국사 다보탑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0.4m, 기단 폭 4.4m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 서쪽의 석가탑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탑으로, 전형적인 쌍탑가람의 배치이다

 

 

불국사 3층석탑

국보 21호: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동서로 세워진 두 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석가">釋부처이름 가, ㉠부처이름 ㉡막다">迦如來常住設法塔)'이며 흔히 줄여서 '석가탑'이라고도 한다.

 

석굴암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정식 문화재 명칭은 석굴암석굴이며, 석불사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進峴洞) 891번지에 있다. 한국의 국보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문화재의 하나이다.

 

신라의 인물

무열왕

문무왕

김유신

원효

 

위례성,웅진~(사진 액밖이다...지송!)

 

위례성은 백제의 첫 도읍지였으나 

문화재가 많지 않다.

 

 

몽촌토성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항아리

 

몽촌토성은 오래 전부터 백제 초기 토성으로 전하여 왔다.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진흙으로 쌓은 성벽을 만들어 1M 정도 파서

살림집이 아닌 군사의 필요한 것으로 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올림픽 공원 속에 있다.

 

 

풍납토성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있는 백제 초기의 토성터.

소재지 : 서울 송파구 풍납동

시대 : 백제 초기

지정 : 사적 제11호

규모 : 동벽 1,500m, 남벽 200m, 북벽 300m

1925년 대홍수 때 삼국시대의 청동제 초두가 2개 발견되었고, 토기 조각들도 많이 발견되었다.

 

돌무지 무덤

 

돌무지시설을 한 점에서 남방식 고인돌과 공통되므로, 원래 고인돌인

무덤이 후대에 상석이 없어져

돌무지 무덤으로 된 가능성도 있다.

 

 

 

2.웅진 :

웅진의 문화재 :

 

계유명삼존천불비상

국보 제108호

문화재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통일신라시대

 

금제관식(왕)

국보 제154호

문화재지정일 : 1974년 7월 9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백제시대

 

금제관식(왕비)

국보 제155호

문화재지정일 : 1974년 7월 9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백제시대

 

금제심엽형이식(왕)

국보 제156호

문화재지정일 : 1974년 7월 9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백제시대

 

금제수식부이식(왕비)

국보 제157호

문화재지정일 : 1974년 7월 9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백제시대

 

금제경식(왕비)

국보 제158호

문화재지정일 : 1974년 7월 9일

소재지 : 웅진동 360 국립공주박물관

기타 : 백제시대

국~내~성!

고구려의 내력

고구려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37년에 세워졌다.

중국과 북방의 이민족과의 끊임없는 항쟁과 교류를 통하여 점차 국력을 성장시켜

나아갔으며 서기 313년에는 낙랑을 몰아낸 뒤 보다 남쪽으로 영역을 확대하여

요하에서 한강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5~6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화려한 문화를 꽃피었으나 668년에 나 당 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문화재

1.국내성:고구려 초기 도읍지 현재 중국 지린 성(길림성) 지안 현 퉁거우입니다.

유물 유적 : 장군총,무용총,광개토대왕릉비가 있습니다.

 

장군총 : 3세기 초부터 427년까지 고구려가 도읍한 지안현 퉁거우평야[通溝平野]에는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와 고구려 최대형 무덤인 태왕릉(太王陵)·사신총(四神塚) 등 석릉과 토분(土墳) 1만 기(基)가 있으나 외형이 거의 완존(完存)한 석릉은 이것뿐이다.

 

 

무용총

중국 둥베이[東北]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고구려의 고분벽화(古墳壁畵

 

광개토대왕릉비

비신(碑身) 높이 5.34m. 각 면 너비 1.5m. 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도 한다.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운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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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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