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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중국"이란 말의 어원은?(내공 30)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710 작성일200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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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di****
영웅
외국전통문화 5위, 국어 어원, 어휘 100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중국인들은 자신의 나라가 세계속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는 민족입니다
중국 문화가 최고이며, 모든 것이 중국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 만방에 퍼져야 한다는 중국의 민족사상을 갖고 사는 민족이죠 이를 중화 사상이라고 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명은 (중화 인민 공화국) 의 약자 입니다




중화(中華)사상에 대하여

한반도 44배의 땅에 한국 인구의 30배가 넘는 13억 인구의 중국(中華人民共和國). 중국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단어 하나를 찾으라면 단연 중화사상(中華思想)일 것이다. 이 말이 중국 이해의 걸림돌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말을 이해하지 않고선 中國人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데서 그 중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인들은 바로 중화사상이라는 대물림 의식체계 하에서 다른 민족에 대해 '엄청난 우월의식'을 갖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극히 자연스런 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엄청난 우월의식'에서 비롯된다. 남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유일하다고 보는 배타적 우월의식 말이다.

중국인의 의식구조를 외국인 입장에서 들여다 보자. 겉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속으로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며 몰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보여지는 원인이 바로 이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중국인들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저으며 부인할 수 있다. 그러나 물보다 진한 것이 피 아닌가?

중화사상이 형성된 시점은 기원전으로 올라간다.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 은(殷)나라에 이어 주(周)나라가 성립된 기원전 1100년 경. 한족(漢族)의 모체가 된 화하족(華夏族)이 정치, 군사,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주변의 모든 다른 민족을 제압, 그들로부터 절대적 우위의 위치를 인정받게 된다.

역사가 진행되면서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지구상에서 유일하고 가장 앞선 문화라는 민족적인 자긍심을 갖게 됐다. 역사를 살펴보면 당시로선 중국이 지구의 중심이었다는 점을 자랑할만했다고 보여진다. 이민족의 침입과 이민족 왕조 성립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한족의 핏속엔 지금도 바로 그 의식 체계가 남아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화사상의 저변에는 중화를 둘러싸고 있는 이적(夷狄) 즉 오랑캐 개념이 짙게 깔려있다. 중화사상을 화이(華夷)사상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을 지배해야하는 중원(中原)의 고귀한 민족과 오랑캐들, 지배하는 민족과 지배받아야 하는 민족들. 중국 문화가 '유일하고 보편적인 통합 질서'라는 중화사상은 유교의 천명(天命)사상과 그에 따른 왕도(王道)정치에 맥이 닿아 있다. 중국 왕조의 우두머리인 황제(천자)는 천명에 의해 세상을 통치하는 이른바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유덕자로서 군림했다.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나라는 문명 국가이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야만 국가로서 그 백성은 인간이 아닌 금수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시대를 이어오며 강조된 것. 물론 화이동원론(華夷同源論)이 득세한 경우도 적지는 않다. 유아독존인 황제의 지배를 거부하거나 황제의 나라를 침공하려는 나라를 어찌해야 하는가? 교화가능자는 무력으로 정벌하는 것보다 덕으로 다스려 황제의 따사로운 손길이 다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왕자의 도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오랑캐의 우두머리에 있는 군장 아래서 신음하는 오랑케 나라 백성들을 해방시켜 천자의 은덕을 베푸는 것이 천자의 의무이자 권리라는 주장도 힘을 잃지는 않았다. 중국과 중국 주변의 이민족들은 수천년 동안 사상과 이념 그리고 실질적인 군사력 등에 의해 균형을 이루었다. 때때로 힘의 균형이 깨져 전쟁으로 비화돼 중원에 이민족 왕조가 들어서기도 했다. 여기서 고구려와 중국과의 관계를 짚고 가야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는 수나라 당나라 2개 왕조의 황제가 직접 전쟁터에 나와 한판 승부를 벌였던 나라. 중국은 두 번다 전쟁에서 대패했다. 오랑케 즉 금수의 나라가 중화에 복속 되기를 거부하거나 중원을 넘보려 한다고 해서 중원의 황제가 만리장성을 넘어 나라 밖 전쟁터에 나간 경우는 중국 역사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당시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중화사상으로 무장된 중국으로선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도 3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오랑캐와의 전쟁을 위해 황제가 손수 마차를 타고 전쟁터에 나가야했다. 황제가 전쟁터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정황을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지 않은가? 어찌됐든 양제의 무리한 고구려 정벌 실패로 수나라는 무너지고 말았고 당태종도 안시성 싸움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얼마 뒤 병사하고 말았다. 이들 황제들은 왜 고구려 정벌에 그같이 심혈을 기울여야 했을까? 우리 역사는 안타깝게도 당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우리 역사 자체가 중국과의 전쟁 후 수 백년이 지난 뒤 기록됐고 그 기록 마저도 중국 측 역사 내용을 바탕으로 서술됐다고 봐야한다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사대주의 사관에 입각한 역사 기술의 문제점말이다. 우리가 하루속히 발해 역사를 복원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의 경우 당시 역사 기록은 충분하다. 그러나 중국에 불리한 역사는 기록하지 않고 기록한다 하더라도 중국 측에 유리하도록 각색해서 서술한다는 춘추필법(春秋筆法)의 전통 때문에 이 부분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고 있다. 황제가 친정한 전쟁에서 대패했는데 어느 누가 상세히 기록할 수 있었겠는가?

국가의 중요한 의식이 아니면 황궁을 떠나는 것도 꺼려했던 황제들이 만리 길을 출정해야 했다면 틀림없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한다. 첫 째는 우리 민족 사학자들의 주장처럼 당시 고구려 땅엔 중원이 부러워 하고 또는 무서워하는 정신적인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고조선 이래 중원의 한족 왕조는 당시 고구려 영토에 조공 사절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진사 사절을 보내곤 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하고 있다. 예컨데 신령한 점술사나 대 예언자가 있을 수 있다. 그같은 신령한 인물이 있는 경외스런 나라와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군사력만으로 이길 수가 없다. 따라서 황제가 직접 나서야 했다.

두 번째 고구려 군사력이 너무 막강했다. 황제가 몸소 전쟁터에 가지 않으면 정벌군이 전쟁터에 가지 않거나 간다해도 전의를 상실해 제대로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수와 당 두 왕조는 자체 힘으로는 고구려를 정복할 수 없었다. 고구려 내부의 권력투쟁과 그 틈을 탄 신라와의 연합 전술에 의해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원나라, 청나라. 이민족에 의한 중국 통치는 중화사상의 뿌리를 송두리 채 흔들어 놓는 계기가 됐다. 결국 19세기 중엽 이후 중화사상은 중대한 고비를 맞게된다. 동, 서양 모든 오랑캐에게 은덕을 베풀어야 할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다는 중국이 서양 의 여러 나라에 연전 연패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발빠르게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던 일본에게도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다.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이후 중국은 오랫동안 죽의 장막 속에서 가쁜 숨을 쉬어야 했다. 장막이 걷혔다. 그 사이 세계는 너무 변하고 말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는 중국으로선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앞서 있었다. 중국 내부적으론 문화대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문화 압살 시기를 넘기고 천안문 사태도 경험했다. 그리고 달리고 달렸다. 방향이 맞는지 조차 가름할 여유도 없었다. 수구와 진보의 대결, 그에 따른 개혁과 개방 정책. 이제 세계 질서 속에 중국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WTO 가입. 그리고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이 서울 올림픽 개최 20년 만인 2008년 중국에서 열리게 된다.

중화사상은 이제 어떤 형태로 중국인들의 검붉은 핏속에 남아 있는가? 2002년 6월 월드컵에서 한국이 연전 연승하고 있을 때 중국 언론의 보도 내용과 태도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국인으로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내용들이 중국 대륙에 흘러 넘쳤었다. '축구하면 남미와 유럽이다. 중국은 첫 경기에서 탈락했는데 우리와 실력이 비슷한 한국이 어떻게 연전연승할 수 있는가? 어렵쇼 16강 어어 8강 아니 4강이라니!

말도 안된다. 한국이 축구 강국들을 차례로 깨다니. 한국이 이같은 결과를 얻게된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 심판들에게 뭔가를 먹여 구어 삶았다. 그렇지 않고선 이럴 수가 없다. 암.` 뭐 이런 식이었다. 한달 내내 말이다.. 이것이 중국인의 핏속에 있는 남아있는 중화사상의 한 단면이라고 보면 잘못일까? 전통적인 중국의 중화사상은 이제 어떻게 그 모습을 나타낼 것인가? 강자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고 약자에겐 가혹하리 만치 강한 척할까? 아닐까?

잇따른 탈북자 문제와 마약 사범 등 한국인 범죄자 처벌 문제를 둘러싸고 한중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던 2002년 한해가 종내 잊혀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출 처 : [기타] 인터넷 : www.shin-gi.com/

2004.04.20.

  • 출처

    작성자 : yswj795 등록 : 2004-02-23 오픈백과 내용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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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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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란 말의 어원은 중국이 모든 세계의 중심이라 뜻의
가운데중(申)에 나라 국자로 가운데있는 나라란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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