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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허주엽 교수

만성골반통 개척자

서울 강동구 고덕동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앞의 약국들은 월, 수, 금요일에 밤 11시가 돼야 문을 닫는다. 이 병원 허주엽 원장 때문이다. 허 원장은 오전 9시 진료를 시작해 오후 10시까지는 기본이고 자정까지 환자를 보곤 한다. 환자들은 대부분 골반 부위의 말 못한 통증으로 고생, 고생하다 이 병원까지 찾은 여성들. 허 원장은 자정까지 환자를 보고 병원장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교회의 새벽기도나 아침회의에 참석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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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1948  경기 평택시 출생
    1975  경희대 의대 졸, 석사(78), 박사(86)
    1986  경희의료원 조교수,부교수(90),교수(95)
    2003  경희의료원 산부인과 주임교수
    2005  경희대병원 원장
    현재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원장
    만성골반통연구회 회장
    미국부인과내시경학회, 미국불임학회 정회원
    연수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부인암 분야
    이스라엘 히브리대병원 부인암 분야
    미국 볼티모어대 성 요셉병원 부인과 내시경 단기연수
    싱가포르병원 부인과내시경 단기연수
    미국 부인과내시경학회(AAGL) 골반통, 자궁내막증 치료 연수

환자 사정 듣느라 자정까지 진료를 보는 의사

허주엽 원장의 산부인과 진료실 앞은 유난히 눈물이 많은 편. 환자들은 지금까지 ‘꾀병’으로 치부된 고통의 실체를 확인하고 운다. 허 원장이 1시간 이상 고부갈등, 남편과의 불화 등 온갖 두통거리를 다 들어주기 때문에 가슴의 응어리를 풀고 운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운다. 허 원장은 초진환자에게 1시간 이상 진료해도 5분 진료하는 다른 의사와 진료비는 같다. 그는 “힘은 들지만 만성골반통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면서 “특히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가 많아 진료시간을 줄일 수가 없다”고 말한다.

허 원장이 이처럼 환자를 열심히 보는 것은 자신 역시 병과 통증으로 얼룩졌지만 원인을 모른 채 신음했던 ‘환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 1년 때부터 책만 보면 졸리고 하품이 나와서 제대로 공부를 할 수가 없었지만 나중에 의대에 가서야 난시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대학생 시절에도 난시안경을 잘못 맞춰서 눈알이 빠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의사 수업을 해야만 했다. 그 고통은 인턴 때 선배가 난시에 대한 정확한 처방을 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그는 또 중학교 때부터 극심한 비염으로 고통 받았다. 고2때 축농증 수술을 받고 한때 잠시 호전됐지만 그 해 겨울이 되자 증세가 재발해 10여 년 이상 괴롭게 지냈다.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코 질환이 집먼지 진드기에 의한 알레르기 비염이라는 것은 군의관 시절에야 알았다.

허 원장은 병을 달고 사느라고 제대로 공부를 못해 대학입시에서 삼수를 했어도 원하는 의대에서 낙방했다. 군인이 되기 위해 3사관학교에 지원했지만 알레르기 비염과 관계 있는 결막염 때문에 그마저도 떨어졌다. 낙심한 그에게 동생이 후기대학의 의대 지원을 권했고, ‘혹시나’하는 생각에 경희대 의대에 지원했는데 덜커덕 붙어버렸다. 그는 난시 때문에 하도 고생을 해서 한때 안과를 지원하려고 했지만 산부인과 교수들의 제안을 받고 전공을 산부인과로 정했다. 당시 산부인과는 성적이 5등 안에 들어야 가는 인기과였지만 허 원장은 조건을 달았다. “나는 몸이 약해 술을 마실 수가 없으므로 술을 안 먹인다면 산부인과로 가겠습니다.”

‘교과서에도 없는 병’ 만성골반통 연구의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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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공의 4학년 때 만성골반통으로 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 원인도 정확하지 않은데 일단 자궁이나 난소나팔관을 절제하는 것을 보고 이 병의 정체를 캐보자고 마음먹었다. 군의관 때 알레르기 비염으로 진단받고는 그동안 축농증, 비후성 비염, 비중격 만곡증, 신경쇠약 등 원인이 아니라 합병증에만 치료받았다는 것을 절감하고 골반통의 뿌리를 캐보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우리나라는 물론 선진국에서도 관련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는 1990년대 미국 존스홉킨스병원과 국립보건원(NIH) 하워드병원, 이스라엘의 히브리대병원 등에서 내시경에 대해 공부하면서 만성골반통을 본격 연구할 기본기를 닦았다. 마침 선진국에서도 ‘삶의 질’이 중시되면서 만성골반통에 대한 연구 분위기가 모락모락 조성되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산부인과 교과서에 이 분야에 대한 내용이 실렸다.

허 원장은 황무지를 개척하는 기분으로 이 분야 연구에 매달렸다. 환자가 오면 1시간 이상 문진했고, 진료가 없는 날에는 밤늦게까지 자료를 찾고 환자 사례를 정리했다. 식당에 갈 시간이 없어 간식으로 점심, 저녁을 때우면서 환자를 보는 것은 이제 일상사가 됐다.

처음에는 다른 의사들로부터 “교과서에도 없는 병을 만들어 진료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나 원인을 모른 채 온갖 병원을 전전하다가 허 원장을 찾은 환자들이 지긋지긋한 통증에서 벗어난 얘기들이 주부들의 입을 통해 번져나갔다. 선진국에서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 성과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허 원장이 지금까지 1만 명 이상의 환자를 보면서 관련 연구를 이끌어나가자 다른 의사들이 환자를 보내는 경우가 늘었다. 그 중에서는 예전에 뒤에서 손가락질하던 의사도 있었다. “국내 의료계의 실정으로 볼 때 외국과 달리 상담료가 책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의 온갖 사정을 들어주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당연히 오진이 많고 엉뚱한 처방이 나올 가능성이 커집니다. 환자들은 이곳 저곳을 다니며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절감합니다. 진료환경을 바꿔야 하는데….” 허 원장은 2008년 만성골반통연구회를 결성해서 국내 연구를 이끌고 있다. 비슷한 무렵 허 원장 환자들로 구성된 ‘나비회’가 결성됐는데 현재 회원이 1000명을 넘었다.

허 원장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경기 용인시 생명나무교회의 장로이다. 그가 의사의 길을 마지막으로 결정했던 것도 3수 때 고향의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의사의 길이야말로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나간다. 2003~2005년 연변의 동포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전개했으며 현직에서 물러나면 의사인 사위, 아들, 딸과 함께 의료선교를 하는 것이 꿈이다. 허 원장은 후배 의사들에게 환자와의 대화가 진료의 기본이 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환자와 가슴을 털어놓고 얘기하다 보면 병의 정확한 원인을 알게 되고 상당 부분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허 원장은 그렇게 해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베푸는 길이라고 믿는다.

허주엽 원장이 말하는 만성골반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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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골반통은 골반 부위의 통증이 행동, 정서적 변화와 연관돼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성에게 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직까지 뚜렷한 진료 지침이 없어 몇 년 동안 항생제를 복용하거나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고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곤 한다. 부부갈등과 이혼 등 가정파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한둘이 아니다.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성골반통

국내에서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외국에서는 전체 여성의 3.8% 정도가 이 병을 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부인과 외래 환자의 10~20%가 이 병 환자로 보인다. 외국의 조사에서는 30대 이전 환자가 많지만 우리나라에는 40대 환자가 가장 많고 50대, 30대 순이다. 우리나라 여성은 젊은 시절에 결혼해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아파도 참고 살고 있으며 특히 폐경기인 50대 여성은 선진국의 폐경기 여성과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40~50대에 환자가 많은 것 같다. 또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의 조사결과 환자의 68%가 요통을 동반하고 47%는 생리통, 45%는 편두통, 40%는 성교통, 33%는 배뇨통, 22%는 소화기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들은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통증클리닉, 한방병원 등 평균 5곳의 의료기관을 다니다가 만성골반통클리닉을 찾는 것으로 조사됐다.

만성골반통은 △자궁내막증, 골반유착, 골반울혈증후군, 골반염등 산부인과적 원인△대장염, 요도증후군, 방광염, 근골격계 이상 등 비산부인과적 원인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 정신과적 원인에 의해 생긴다. 가장 큰 원인은 자궁내막증과 골반울혈증후군이다. 자궁내막증은 자궁내막조직이 자궁내강표면 이외의 장소에서 증식하는 병이다. 골반울혈증후군은 정맥혈관에서 혈액이 심장 쪽으로 흐르게 도와주는 판막이 선천적으로 이상이 있거나 출산 등으로 손상돼 환자가 서 있거나 허리를 구부릴 때 정맥이 아래쪽으로 역류해 부풀어 오르면서 자궁 및 난소 주변부에 울혈이 생기는 것이다. 1949년 하워드 테일러가 발견해서 ‘테일러 증후군’이라고도 부른다.

만성골반통은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병력을 자세히 듣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아픈지, 음식과 생활습관은 어떠한지 가족관계는 원만한지 등을 들어야 한다. 이 문진을 바탕으로 혈액 소변 방사선검사, 초음파검사, 자기공명촬영(MRI)검사, 혈관조영술검사, 골반경검사 등을 시행한다. 치료는 원인에 따라 다르다. 내막증 환자는 병소를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절제하거나 태워 없애지만 자궁을 보존해야 한다면 신경절단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골반울혈증후군은 환자에 따라 약물요법이나 난소정맥색전술, 자궁적출술 등을 시행한다. 골반유착이 원인이라면 붙었던 부위를 떼어주는 수술을 한다. 대부분의 만성골반통 환자는 불안, 우울증, 강박관념 등으로 고생하기 때문에 정신과적 치료를 병행해야 치료효과가 향상된다.

Q&A 허주엽 원장에게 물어보다

1.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된 숨겨진 습관은?
불가능하다거나 시급한 일이 생기면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게 된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판단되면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며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수없이 기도한다.

2. 내게 힘을 주는 경구나 명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빌립보소 4:13)

3.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극복하는지?
반드시 바둑을 둔다. 같이 둘 사람이 있다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바둑방송을 보거나 바둑과 관련된 책을 보며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고민과 생각을 잠시나마 떨쳐버리고 마음을 안정시키곤 한다. 또 다른 방법은 혼자 조용히 묵상을 통해 복잡한 문제를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복잡한 마음들, 갖가지 생각들을 조용히 앉아서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는 경우가 많다. 심신이 지치고 복잡한 문제들에 부딪히면 조용히 혼자만의 공간에서 묵상을 하며 해결을 하고자 노력한다.

4. 스무 살 때와 지금 내가 달라진 점은?
막연히 의사가 꿈이었던 스무 살 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원했던 꿈을 이루고 그 길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통 받는 환자의 편에서 도움이 되고자 땀 흘리는 내 모습과 진료를 통해 밝은 웃음을 찾는 환자를 통해 만족감을 얻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5. 내가 겪은 가장 아픈 실수와 교훈을 들려준다면
부모님은 살아계실 때 효도하라는 말은 너무도 많이 들었지만 나도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한 불효자였기에 그 말을 들으면 마치 제 얘기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파온다. 살아생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불효는 수천 가지 단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말이기에 실수라는 표현보다는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죄스러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여러분도 꼭 효도하며 사시기 당부한다.

6.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의사가 되기까지 큰 가르침을 주시고 늘 기도로 어려울 때 마다 큰 힘을 주셨던 부모님을 가장 존경한다.

7.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2남 2녀를 둔 이혼남과의 순탄하지 못한 재혼생활로 인해 만성골반통이 생긴 1녀를 둔 이혼녀 환자다. 그녀는 모두 4번 입원했다. 마지막 입원 때 수많은 상담과 면담을 통하여 심적 변화를 겪었다. 그녀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성경구절처럼 희생을 승화시키는 길을 택했다. 그녀는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재혼한 남편의 2남 2녀 자식들을 직업교육 후 독립시키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병을 털어냈고 마침내 골반통에서 벗어났다.

8. 나의 라이벌은?
평생을 살아도 다 알기 힘든 것이 나 자신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성격이나 장단점을 물어오는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정확히 이러저러하다는 답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이길 때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최고의 라이벌을 꼽자면 가장 잘 알 것 같으면서도 어떨 땐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나 자신을 최고의 라이벌로 꼽고 싶다.

9. 의사를 선택한 계기는?
큰형님이 어려서부터 의사가 되는 것이 어떻겠냐며 저에게 권유했다. 아마도 몸이 약하고 코 질환으로 수술까지 하였지만 완치되지 않는 내가 안쓰럽지 않나 생각한다. 나 또한 의사가 되면 콧병이 깨끗이 나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하며 기도하고 노력하였기에 현재 이 자리에 있게 됐다.

10. 산부인과 의사, 이것만은 갖추어야 한다는 자질이 있다면?
산부인과 의사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도 가장 필요한 덕목은 책임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중 상대방의 아픈 곳을 치유해야 하고 심리적인 고통도 함께 공감하고 나눠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은 무엇보다 책임감이 필요하다. 환자가 내 가족이라는 생각과 그 고통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책임감, 다시는 그 고통에서 힘들어하지 않도록 해줘야겠다는 평생의 책임감을 갖고 의술을 펼칠 때 진정한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11. 이 직업 정말 잘 선택했구나 싶었던 때는?
의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어려서부터 동경하여오던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는 뿌듯함을 가졌고 줄곧 의사라는 직업이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웠다. 그 중 가장 만족을 느꼈던 순간은 모두가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어 이곳 저곳을 배회하던 환자를 면담과 상담을 통해 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완치시켜 환자분께서 밝은 미소를 찾아 희망을 얘기하실 때다.

12. 같이 일을 하며 내게 믿음을 주는 사람은?
늘 바쁘고 가족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며 진료시간과 수술로 집안일보다 병원 일에 매여 있는 나를 늘 이해해주고 항상 곁에서 함께 웃고 울어주는 아내가 가장 믿음직스러운 동료이자 등불 같은 존재다.

13. 다시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은?
초등학교시절부터 음악을 참 좋아했다. 만약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음악을 중 3학년부터 시작된 알레르기 비염으로 포기하면서 악기공부를 하지 못했던 점이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약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 비염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음악과 악기 공부를 하고 싶다.

14.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희망이 있다면?
만성골반통 환자들이 가까운 병원에서 손쉽게 치료받고 완치될 수 있도록 의학을 발전시키는 디딤돌이 되고 싶다.

발행일

발행일 : 2009. 10. 19.

출처

제공처 정보

  • 이성주 코메디닷컴

    건강의료 포털 코메디닷컴의 대표이사. 동아일보 의학 기자 출신으로 아침마다 30만 명에게 '건강편지'를 보내고 있다. '황우석의 나라', '대한민국 베스트닥터', '뇌의학으로 본 한국사회' 등 7권의 책을 펴냈다. 고려대 철학과와 연세대 보건대학원을 나왔고 미국 홉킨스 보건대학원에서 연수했다.

  • 사진 김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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