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각본·與연출·김형오 주연 ‘1박2일 치킨게임’

김광호기자

‘직권상정’ 할듯 말듯 입장표변… 여야 반전 거듭
한나라 로텐더홀 점령… 청와대도 유감 뜻 표명
민주 “시기 명문화” 압박에 결국 무기력한 굴복

여야의 이번 임시국회 입법전쟁은 몇 차례의 반전을 거듭한 뒤 충돌일보 직전의 벼랑에서 봉합됐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쟁점법안 ‘직권상정’ 입장이 출렁일 때마다 여야의 입장과 성패도 뒤바뀌었다.

靑각본·與연출·김형오 주연 ‘1박2일 치킨게임’

본격적인 입법전쟁의 시작은 지난 1일 오후 3시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협상’에 나서면서였다.

밤 9시까지 3차례 이어진 릴레이 협상 내내 걸림돌은 최대 쟁점인 방송법·신문법 등 미디어법 ‘처리 시기’의 명문화 여부였다. ‘재벌방송’ 비판에 한나라당은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지분을 0%로 고치는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명문화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거듭 거부했지만, 한나라당은 여유로웠다. 미디어법 ‘직권상정’을 통한 ‘강행처리’란 회심의 카드가 배경이었다.

한나라당은 이날 저녁 긴급 의원총회 직후 “우리가 먼저 거총(据銃)하자”며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을 전격 점거했고, 이는 “김 의장의 직권상정 명분을 더해주기 위한 것”(친이계 초선 의원)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진퇴양난’의 수세에 몰렸다. 여당의 선제적 움직임으로 사실상 물리적 저지 수단을 잃은 데다 마땅한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한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협상 ‘결렬’을 선언한 직후 첫번째 반전이 시작됐다. 잠행하던 김형오 의장이 여야 3당 원내대표를 불러 직접 중재에 나서면서다. 김 의장은 미디어법 처리를 연기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사실상 미디어법 직권상정을 배제, 주도권은 급격히 야당으로 기울었다. 2일 새벽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의견 접근을 이룬 잠정 중재안 ‘사인’을 유보한 채 중재안에 ‘표결 처리’ 문구 추가를 요구했다.

이어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김 의장 성토장으로 변했다. “개인 욕심으로 한나라당을 반신불수로 만들었다”며 공공연히 김 의장 불신임 결의안을 거론했다. 중재안은 물론 ‘거부’됐다.

이는 두번째 반전을 향한 ‘압박’으로 작동했다. 2일 아침 한나라당 최고위원단이 서울시내 모처에서 김 의장을 만나 ‘불신임’ 등 “(김 의장이) 의원들의 기류를 잘 모르는 것 같다”(친이계 의원)고 압박했고, 김 의장은 다시 입장을 뒤집어 사실상 ‘직권상정’을 약속했다는 전언이다. “미디어 선진화를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 왜 정쟁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 안타깝다”는 청와대의 유감도 더해졌다.

실제 김 의장은 오후 1시30분 미디어법과 금산분리 완화, 통신비밀보호법(휴대폰 감청) 등 여야간 타협이 안되는 쟁점 법안 15개에 대한 심사기일을 지정, 직권상정 방침을 명확히 했다. 그나마 시한은 1시간30분에 불과했다.

사실상 야당을 향해 ‘처리시기’ 명문화를 압박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날 새벽 해산했던 민주당 당직자·보좌진들이 다시 본청 진입을 시도하면서 경위·방호원들과 충돌했다.

마지막 반전은 민주당에서 나왔다. ‘강행처리’냐, ‘시기 명문화’냐의 선택에 처한 민주당은 결국 심사기일 지정 20여분 뒤 전격적으로 전날 한나라당이 요구한 ‘표결 처리’ 명문화를 수용하겠다고 통보했다.

청와대 각본, 여당 연출, 김 의장 주연의 ‘협박정치’에 굴복한 셈이다.

이후 여야는 원내대표·대표가 잇달아 만나 입장을 맞췄고, 오후 3시40분 박희태·정세균 대표가 “협상타결”을 선언하면서 꼬박 24시간 ‘1박2일’간의 ‘치킨 게임(배짱 싸움)’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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