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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영남지방 무형문화재
비공개 조회수 3,089 작성일2017.06.15
영남지방에서부터 전해내려오는 무형문화재 중 음악, 무용, 놀이, 연극 각각 3개이상 이름과 각략한 설명 부탁해요ㅜㅜㅜㅜㅜ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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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통영오광대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  

지 정 일 1964.12.24

소 재 지 경남 경남전역

 

 오광대는 남부지역(낙동강 서쪽지역)의 탈춤을 가리키는 말로, 초계 밤마리 마을 장터에서 놀던 광대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부산 동래, 수영 지방에서는 들놀음, 통영, 고성, 가산 지방에서는 오광대로 불린다. ‘오광대’란 다섯 광대 또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오행설에서 유래된 오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는데, 오행설 의견이 유력하다. 전에는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행해졌으나 현재는 봄, 가을에 오락적인 놀이로 공연되고 있다.

 

통영오광대는 통영지역에서 행해지던 놀이로, 100여 년 전 마을사람들이 마산의 창원오광대를 보고 와서 시작한 것이라고도 하고 원래 창원 구읍(지금의 마산시) 사람으로 창원오광대를 놀던 이화선이 충무시에 이사와서 전파한 것이라고도 전한다.

 

놀이는 문둥탈·풍자탈·영노탈·농창탈·포수탈의 5마당으로 구성된다. 문둥이·말뚝이·원양반·둘째양반·홍백양반·비틀양반·곰보양반·검정양반·조리중·팔선녀·영노·영농양반·할미·제자각시·상좌·봉사·상주·포수·몽돌이·사자·담비 등 총 31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민중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와 첩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심하며 파계승에 대한 풍자는 아직 이 지역에 불교신앙이 남아 있어서인지 약한 편이다. 가장 특징있는 춤은 문둥이춤이다. 이 춤은 문둥이의 생애와 한을 표현하고 있으며 꽹과리가 주도하는 반주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으로 지역적인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오광대 중에서 사자춤이 있는 것은 통영오광대뿐이며, 서민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는 전통놀이마당으로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되어 있다.

 

2.고성오광대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지 정 일 1964.12.24

소 재 지 경남 경남전역

 

고성오광대는 1910년경에 남촌파 서민들이 통영오광대를 보고 오광대놀이를 시작하였고, 그 뒤에 창원오광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탈놀이로 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놀이는 문둥이춤·오광대춤·중춤·비비춤·제밀주춤의 5마당으로 구성된다. 문둥이·말뚝이·원양반·청제양반·적제양반·백제양반·흑제양반·홍백양반·종가도령·비비·비비양반·중·각시·영감·할미·제밀주·마당쇠 등 총 1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고성오광대 놀이의 내용은 민중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와 첩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신랄하지만 파계승에 대한 풍자는 아직 이 지역에 불교신앙이 남아 있어서인지 약한 편이다.

 

고성오광대는 다른 지방의 오광대에 비해 놀이의 앞뒤에 오방신장춤, 사자춤 같은 귀신 쫓는 의식춤이 없고, 극채색(極彩色)을 많이 쓰며 오락성이 강한 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성오광대의 탈은 예전에는 종이로 만든 탈이 특색이었으나, 근래에는 오동나무로 만든 나무탈을 사용하기도 하고 종이탈, 바가지탈을 쓰기도 한다. 주된 춤사위는 덧뵈기(탈놀이)춤인데 배역에 따라 인물의 성격이 춤으로 잘 표현되어 있고, 반주음악으로는 꽹과리, 징, 장구, 북 등 타악기가 주로 사용된다.

 

고성오광대는 서민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는 전통놀이마당으로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되어 있다.

 

3.진주삼천포농악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

지 정 일 1966.06.29

소 재 지 경남 경남전역

 

진주삼천포농악은 진주 삼천포 지역에 전래되고 있는 농악으로 영남농악에 속한다.

 

진주삼천포농악에 쓰이는 악기에는 꽹과리, 징, 장구, 북, 법고가 있으며, 편성은 기수와 쇠, 징, 북, 장구, 법고 그리고 양반과 포수로 되어 있다. 모두가 흰바지와 색깔있는 저고리의 농악복에 색띠를 두루고, 모자(상모)를 쓴 채 연주하는데 개인놀이가 비교적 발달하였다. 판굿에서는 채상모놀이가 돋보이며, 군사놀이인 팔진해식진굿이 특이하다. 빠른 가락을 모는 경우가 많아 힘차고 가락이 다채로워 흥겹다.

 

진주삼천포농악은 판굿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팔진법이라든가 버꾸놀이, 상쇠놀이, 무동놀이(사내아이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 등의 개인기가 뛰어나다. 현재 박염과 김선옥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4.진주검무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지 정 일 1967.01.16

소 재 지 경남 경남전역

 

진주검무는 진주지방에 전승되는 여성검무로서 검기무 또는 칼춤이라고도 하며 대궐안 잔치 때 행하던 춤의 하나이다.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죽은 소년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춤을 추었다는 설과 논개의 얼을 달래기 위해 진주기생들이 칼춤을 춘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진주검무는 도드리장단, 느린타령, 빠른타령에 맞추어 조선시대 무사복을 갖춘 8명의 무용수가 2줄로 마주보고 서서 양손에 색동천을 끼고 칼을 휘저으며 춘다. 춤사위의 종류로는 한삼을 끼고 무릎을 굽혀 도는 숙은사위, 앉아서 추는 앉은사위, 허리를 앞으로 엎쳤다가 뒤로 제치며 빙빙 도는 연풍대가락, 맨손으로 팔을 펴는 손사위 등으로 다양하며 독특하다. 반주악기로는 피리, 저, 해금, 장구, 북 등이 쓰인다.

 

현재의 진주검무는 당시 진주감영(현재의 시청)에 속해 있던 교방청(일종의 기생학교) 기녀들의 의해 전승되던 춤으로 궁중 기녀들이 낙향하여 관청 기녀들에게 가르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주검무는 연출형식, 춤가락, 칼 쓰는 법 등 모든 기법이 과거 궁중에서 열던 검무의 원형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어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5.승전무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

지 정 일 1968.12.21

소 재 지 경남 경남전역

 

승전무는 경남 통영(충무)에서 전승되어 온 북춤으로, 궁중에서는 ‘무고(북춤)’라 하여 기녀와 춤을 추는 사내아이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충무공이 장수와 병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추게 하였으며, 전쟁에 이긴 후에는 축하의 의미로 추게 하였다. 본래 통영지방의 잔치에서 행하던 무고, 검무(칼춤) 등의 모든 춤이 군대가 있던 곳에서 추던 것이라는 뜻으로 승전무라 하였는데, 이 가운데 1968년에 ‘무고’만이 승전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1987년에 검무를 추가하였다.

 

승전무는 활옷을 입고 양손에는 한삼을 낀 4명의 무희들이 중앙에 북을 놓고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북을 울리며 창을 하고 춤을 춘다. 흩어졌다 모여드는 형태는 삼진삼퇴를 뜻하며 전체가 화려하고 웅장하면서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영산회상’가운데 삼현도드리와 타령을 반주음악으로 쓰며, 춤가락은 순박하면서 예스럽고 독특한 향토적 특색을 갖고 있다. 검무의 의상은 홍치마에 흰저고리, 흑쾌자, 전립, 홍띠, 색동한삼 등을 갖추며 무구로 1쌍의 칼을 든다.

 

승전무는 의상이나 사용되는 도구, 춤의 내용 등이 궁중무고와 흡사한 춤으로, 우아한 춤사위와 가락 그리고 치밀한 짜임새는 예술적 가치가 높고 전통성을 담고 있는 우수한 춤이다.

 

6.영산 쇠머리대기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

지 정 일 1969.02.11

소 재 지 경남 경남전역

 

 영산 쇠머리대기는 일종의 편싸움 놀이로, 마을을 동·서로 갈라 두 패로 편을 짜는데 이긴 편 마을에는 풍년이 들고 진 편 마을에는 흉년이 든다고 해서 농경의식의 하나로 전해져 왔다. 영산지방에서는 나무쇠싸움<목우전>으로 많이 불리우며,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민속놀이였으나 현재는 3·1 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줄다리기와 함께 행해지고 있다.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영산의 영축산과 작약산(함박산)의 형상이 마치 두 마리의 황소가 겨루고 있는 것 같다 해서 산의 나쁜 기운을 풀어주고, 불행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보름이 다가오면 산신에게 고사를 지내고 나무를 길이 약 10m 정도로 베어온다. 통나무 3개를 세워 위를 하나로 묶고 아래 발은 넓게 펴 큰 통나무에 고정시켜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세운 나무 중간에 나무를 가로로 대고 튼튼하게 묶어 사람이 잡고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한다. 나무쇠 밑바닥에는 통나무를 가로, 세로 5∼6개씩 대고 엮어 땅에 놓아도 안정적이면서 싸울 때 메기 좋도록 한다. 앞에 세운 통나무 부분에 소머리 모형을 깎아 세우거나 가면을 만들어 세운다. 나무쇠를 메고 싸움터로 나가기 전에 동서 양편에서는 농악을 치고 깃발을 흔들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쇠머리 위에서는 대장, 중장, 소장 세 사람이 올라타고 지휘를 하는데, 사람들은 대장의 지휘에 따라 힘차고 민첩하게 행동해야만 승리할 수가 있다. 싸움은 상대방의 쇠머리를 쓰러뜨리거나 자기 편의 쇠머리로 상대방의 쇠머리 위를 덮쳐 땅에 닿게 하면 이기게 된다.

 

영산 쇠머리대기는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공동체의 민속놀이이며, 영산지방에서 생겨나 영산지방에서만 전승되어 오는 독특한 놀이이다.

 

7.영산 줄다리기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

지 정 일 1969.02.11

소 재 지 경남 경남전역

 

 줄다리기는 마을을 동·서로 갈라 두패로 편을 짜서 노는 편싸움으로, 동서 양편은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상징되며, 생산의 의미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서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전한다. 줄다리기는 줄쌈이라고도 하며 영산지방에서는 ‘줄땡기기’ 또는 한자어로 ‘갈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산의 칡넝쿨보다 길게 줄을 만들어 당겼다는 옛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줄다리기는 주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중부 이남지역에서 널리 행해지는 농경의식의 하나로 보고 있다. 현재는 3·1 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줄의 길이는 40∼50m이며 몸줄의 지름이 1m가 넘는 경우도 있어 사람이 줄을 타고 앉으면 두 발이 땅에 닿지않을 정도라고 한다. 줄이 커서 손으로 잡아 당길 수가 없기 때문에 줄 중간 중간에 가늘게 만든 곁줄(벗줄)을 여러 개 매달아 잡아당기기 좋도록 만든다. 끝에는 꽁지줄이라 해서 가는 줄을 10개정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매달릴 수 있도록 한다. 동·서 양편의 줄을 제각기 만들어 줄다리기 하는 당일에 연결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잡아당겨도 끊어지거나 풀어지지 않도록 비녀목이라 부르는 큰 나무토막을 꽂아둔다. 줄 위에 올라선 대장이 지휘를 하면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각 마을의 농악대는 빠른 장단으로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영산줄다리기는 현대에 이르러서 그 규모가 작아졌지만, 용사(용과 뱀)신앙에 바탕을 둔 농경의례놀이로 암줄과 숫줄의 모의 성행위를 통해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공동체의 민속놀이이며, 온 마을이 참여하는 향토축제로서 그 의의가 있다.

 

8.밀양 백중놀이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지 정 일 1980.11.17

소 재 지 경남 밀양시

 

 밀양 백중놀이는 바쁜 농사일을 끝내고 고된 일을 해오던 머슴들이 음력 7월 15일경 용날을 선택하여 지주들로부터 하루 휴가를 얻어 흥겹게 노는 놀이를 말한다. 이러한 놀이는 호미씻기라 해서 벼농사를 주로 했던 중부 이남지방의 농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밀양에서는 머슴날이라고 하며 지주들이 준비해 주는 술과 음식을 일컫는 꼼배기참을 먹으며 논다해서 꼼배기참놀이라고도 부른다.

 

밀양 백중놀이는 농신제, 작두말타기, 춤판, 뒷놀이 등으로 짜여져 진행된다. 농악을 치며 오방진굿으로 농신제가 시작되면 마당에는 삼대로 만든 농신대를 세우고 새끼를 꼬아서 만든 용을 매단다. 농신대를 중심으로 둥글게 서서 세번 절을 하고 엎드려 복을 비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축문을 읽는다. 작두말타기는 머슴들 가운데 농사에서 우수한 사람을 뽑아 지게목발로 만든 작두말에 태워 놀이판을 돌면서 농악으로 흥을 돋우어 시위하는 놀이이다. 춤판은 양반춤으로 시작되는데 장단에 맞추어 양반답게 느릿하게 추고 있으면, 머슴들이 양반을 몰아내고 난쟁이, 중풍장이, 배불뚝이, 꼬부랑할미, 떨떨이, 문둥이, 곱추, 히줄대기, 봉사, 절름발이 등의 익살스러운 병신춤을 춘다. 이어서 범부춤과 오북춤을 추는데 범부춤은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장고잽이 앞에서 재주를 보인다.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춤으로 다섯 사람의 북잽이들이 북을 치며 둥그렇게 원무를 추거나 원 안과 밖으로 이동하면서 춤을 추는데, 힘이 있고 멋들어진 춤이라 할 수 있다. 뒷놀이는 모든 놀이꾼들이 화목의 뜻으로 다같이 어울려 추는 춤으로 장단가락도 자주 바뀌면서 제각기 개성적이거나 즉흥적인 춤으로 꾸며진다.

 

밀양 백중놀이의 특징은 상민과 천민들의 한이 전체놀이에서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병신춤과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배김내사위는 이 놀이의 주된 춤사위로 춤동작이 활달하고, 오른손과 오른발이, 왼손과 왼발이 같이 움직이는 것이 특이하다.

 

9.가산오광대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73호

지 정 일 1980.11.17

소 재 지 경남 경남전역

 

가산오광대의 유래는 100년 전 어느 봄에 가산의 바닷가에 궤짝이 표류해 와 주민들이 열어보니 탈과 놀이의 대사가 적혀 있는 문서가 들어 있었으며 탈은 궤에 보관하다가 놀이 때에만 썼다고 한다.

 

놀이는 오방신장무·영노춤·문둥이춤·양반춤·중춤·할미와 영감춤의 6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방신장군·영노·양반·작은 양반·말뚝이·문둥이·노장·상좌·서울애기·소무·할미·마당쇠·영감·옹생원·무당 등 총 3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민중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와 첩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가산오광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오방신장무의 춤사위가 남아 있으며 할미가 아닌 영감이 죽는 유일한 오광대이다. 또한 다른 오광대는 한 두명의 문둥이가 등장하지만 가산오광대에서는 다섯 명이 나와서 각자 춤을 추고 장타령, 투전놀이를 하는 것이 특이하다.

 

10.남해안별신굿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82-4호

지 정 일 1987.07.01

소 재 지 경남 경남전역

 

마을의 평안과 장수를 기원하며 어민들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기를 비는 굿으로, 남해안의 통영과 거제도를 중심으로 2년에 한번씩 열린다.

 

무당의 노래가 뛰어나고 반주악기에 북이 첨가되는 것이 특징이다. 동해안별신굿과 달리 진행과정에서 무당이 악사와 주고 받는 재담이 극히 드물고 사설이 없으며 굿이 진지하다. 굿 중간에 북을 치는 고수와 이를 지켜보는 마을사람들이 함께 놀이마당을 이루기도 한다. 굿은 들맞이, 당산굿, 일월맞이굿, 용왕굿, 부정굿, 가망굿, 제석굿, 서낭굿, 댓굿, 손굿, 염불굿, 군웅굿, 거리굿으로 진행된다. 춤은 비교적 단조롭고 소박하며 혼자 추는 독무가 많다. 굿의 시작에는 청신악, 끝부분에서는 송신악을 하는데 이때에는 대금으로만 연주한다.

 

남해안별신굿은 오락성이 적고 이야기는 많지 않으나, 오랜 전통으로 규모가 크며 관중에게 주는 신앙의 신뢰성이 뛰어나다.

 

11.고성농요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84-1호

지 정 일 1985.12.01

소 재 지 경남 경남전역

 

 농요란 농민들이 힘들고 바쁜 일손으로부터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들노래 또는 농사짓기소리라고도 한다.

 

고성농요는 하지 무렵부터 시작되는 농사소리가 주축을 이루며, 등지라고도 한다. 등지란 모내기소리를 뜻하는 경남지방의 사투리이다. 고성지방 농민들은 힘든 일을 할 때 땀방울과 고달픔을 농요를 부르면서 씻어왔고 농요를 통하여 단결심을 강조하여 일의 능률을 올려 왔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경상감사가 고성 들판을 지나다가 모내기하는 농민들의 등지 소리에 도취되어 행렬을 멈추고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마을에서 밤을 새웠다 한다.

 

고성농요는 모판에서 모를 찌면서 부르는 모찌기등지,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모심기등지, 보리타작하며 부르는 도리깨질소리, 김맬 때 부르는 상사소리 및 방아타령 등으로 이밖에 부녀자들이 삼을 삼으면서 부르는 삼삼기소리, 물레질하며 부르는 물레타령 등이 있다. 고성농요를 마당놀이로 공연할 때는 모찌기소리, 모내기소리, 도리깨질소리, 삼삼기소리, 논매기소리, 물레질소리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고성농요의 노랫말엔 이 고장 농민들의 생활감정이 풍부하게 담겨 있으며 향토적인 정서가 물씬 풍긴다. 그리고 투박하고 억센 경상도 특유의 음악성을 간직한 경상도 노래이지만, 지리적인 영향으로 음악적인 면에서는 전라도의 계면조 선율구조로 되어 있다.

 

현재 고성농요는 50여 명의 회원이 보전에 힘쓰고 있으며 후계자 전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12.염장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지 정 일 2001.06.27

소 재 지 경남 통영시 광도면 노산리 333

 

 염장이란 발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이전에는 다양한 재료로 발을 만들었는데, 그 재료로는 대나무발(대나무), 갈대발(갈대), 겨릅발(겨릅), 달발(달풀) 등이 있다.

 

전통가옥인 한옥에서의 생활에는 발이 필수품이었다. 발은 특히 여름철에 강한 햇볕을 막아주어 방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시원함을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도록 하는 기능도 한다. 발은 가마의 문을 가리는 발에서부터 집의 문을 가리는 발까지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졌는데, 대나무발을 만드는데 필요한 대나무는 보통 만번 이상의 손이 가야만 준비될 수 있을 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발은 삼국시대 이래로 많이 사용되어 왔지만, 1970년대 이후 한옥이 사라지면서 그 쓰임도 많지 않아 급속히 수요가 줄어들면서 발을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오늘날에는 전남 담양과 경남 통영 등 일부 지역에서만 만들어지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통영 지역에 발을 만드는 장인으로 조대용 씨가 유일하다.

 

조대용 씨는 대나무를 이용하여 크기가 큰 발을 주로 만들고 있으며, 특히 0.7∼0.9mm 두께의 살대를 만드는 '조름질'과 귀문, 고문, 문자문 등 각종 문양 표현에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발 만드는 모든 과정을 전통방식 그대로 손수 작업을 하여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전통 발을 보존하고 있다. 

201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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