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9)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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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9)

도저히 그냥 끊을 수가 없었다. 양지는 간신히 틈을 타 제 목소리를 끼워 넣었다. 사태는 불리하게 돼있는 듯했으나 반응 없이 잘라버리기로는 주영할머니의 늙은 목소리가 너무 애연스러워 몰인정하게 자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흡, 콧물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노파의 뒤쪽에서 칭얼거리는 주영이 소리도 들려왔다.

“누라꼬요? 주엥이 이모라꼬요?”

노파의 음성이 갑자기 새청맞게 변했다. 마치 똬리를 틀고 있던 독뱀이 목표물을 향해 온몸을 용수철화 시켜서 튀는, 좀 전의 근천스럽고 기죽은 저자세가 무색해지는 변화였다.

“이보소, 주엥이 이모요. 사람이 그라모 몬 씨요. 이놈으 집구석 우찌 망해 가는고 걸리 볼라꼬 전화는 했소? 대평 최 씨네 누대 양반이라 캐도 별 수 없네요. 여자가 시집을 가모 죽어서 뼈가 되기 전에는 그 집 사립을 안 벗어난다 카는 긴데, 이런 일이 우째 이리 자주 일어나노 그 말이요. 내사 인자는 주엥이 에미보다 사돈이랑 주엥이 이모들이 더 밉소. 어서 가라 내쫓을 일이지 받자는 와하는기요. 사람이 인두껍을 씌고, 항차 양반의 뼈가지를 타고 났다카모 그라는 기 아이요. 내가 어데 몬할 소리했소. 여자가 남으 집에 오모 손을 놔서 대를 이까 (이어) 주능기 지 할 일 아니요. 나이 육십이 넘은 노인, 바깥사돈도 아들 자석 볼라꼬 그 애를 쓰는디, 내 자슥은 그게 대모 아직 청춘이 반절이요. 그란데 이 망종은 저그 아부지 뽄은 안보고 내 집에 쏘(沼)를 파도 유만부동 아니요.”

양지는 전화기를 어깨에 끼운 채 동전을 있는 대로 다시 밀어 넣었다.

“내사 입이 광저리 구녕이라도 말 몬할 새로고마 그래도 내가 입만 뻐끔하모 지가 더 큰소리치고 난리요. (호남의 음성을 흉내 내서) 옛날하고 시대가 달르요.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그렇제 그런 억지가 대국 년에 어데 있소. 딸 자슥은 친정어매를 닮는다카니 지도 의단이 되모, 요새 세상 안 좋소.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모 아들인가 딸인가 알거 아니요. 떡뚜께비겉은 아들만 하나, 더도 안 바래요. 그리만 하모 내가 질로(저를)떡 받데끼 우받들고 있을 낀데……. 집구석이 망할라모 가스나 동장이 난다카더마……. 인자 우짜끼요. 출세하고 똑똑다카는 저그 이모가 책임지소. 아무리 세상이 말세라 캐도 고금 천년에 이런 일은 없소. 지가 뭐 잘했다꼬 큰소리치고 자빡하모 집을 나가요. 아이고 마, 입이 쑵어서 그만할라요. 이 늙은이야 욕 좀 봐라 싶으지만 지 가속이 몬할 짓이제 내사 따신 방에 배 불리 묵고 지 있을 때보다 차라리 이 눈치 저 눈치 안보고 편코 좋소. 말이 났으니 말인데 딱 갈라서던지 우짜던지 인자는 제발 양단간에 기정을 내리라카소”

말이라도 시원하게 내뱉고 나서인지 주영할머니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많이 누그러졌다. 쳐다보기도 아까운 내 자식, 지금이라도 서로 딸 줄라는 사람이 줄줄이 늘어서 있소. 결정적으로 늘 하던 그 말이 종적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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